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291
290
헬무트
290화
“어쩌지?”
아레아는 물었다. 그 질문은, 포기하고 여기서 내뺄지 시도할 건지 묻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로서는 권역의 지배자씩이나 되는 칸트라의 능력을 가늠할 수 없다.
헬무트는 칸트라를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북쪽 권역의 지배자. 이곳은 그의 안마당이다. 물 위에서 싸우는 데 인간이 거북이보다 능할 수는 없다.
‘다리언이라도 쉽지 않다고 느끼겠지.’
그래서, 이대로 돌아서야 하는가? 헬무트는 자문했다.
도망치기도 쉽지 않을 상대.
이 상황에서 칸트라를 상대하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일 터.
하지만 기이하게도,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본능이 느끼는 감각.
불씨가 되살아나듯, 잊고 있었던 감각이 생생하게 피어올랐다. 전투에의 갈망.
헬무트는 싸움을 두려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겼다.
어둠의 싹 때문이 아니다.
그는 검사였다. 아주 강력한, 그리고 검으로서 자신을 관철하는 검사.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다리언의 검이 그의 손에 돌아온 참이다. 떠나기 전 휘둘러보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리언 역시 피하지 않고 싸웠겠지.’
그것은 엘라가도 마찬가지. 만약 혼자였다면, 헬무트는 주저 없이 놈과 맞붙었으리라.
하지만 그는 질문해야 했다.
“아레아. 내가 저놈을 끌어낸다면, 혼자 신성 결계로 가서 아다만티움을 가동할 수 있겠어?”
그의 검은 눈이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만약 무리라면…….”
그의 판단은 아레아의 안전보다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아레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있어. 네가 무리가 아니라면.”
보랏빛 눈동자가 또렷한 빛을 발했다. 헬무트의 말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듯이.
둘 다 안전하기만 한 선택을 하는 이들이 아니다.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
헬무트는 슬쩍 웃었다.
“저 녀석, 권역의 지배자답지 않게, 겁쟁이인 것 같은데. 그럼 한번 해보지.”
헬무트는 검을 빼 들었다. 그는 짧은 한마디만을 던진 채 몸을 날렸다.
“틈을 봐서 움직여.”
그리고 바닥을 박차고,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저편에서 일고 있는 사나운 소용돌이를 향해서. 아니, 그 가운데 있는 칸트라를 향해서.
‘여기서 끌어내야 해.’
소용돌이치는 물을 몸 주위에 휘감고 있는 칸트라와는 달리, 헬무트는 그대로 대기 중의 신성력에 노출된다. 패널티를 안고 싸우는 거다.
헬무트는 놈을 조금 더 신성 결계에서 먼 곳으로 유인해야 했다. 그래야 편안히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과격한 방식으로 놈의 시선을 빼앗아야 했다.
콰아아아!
칸트라를 향해 쇄도할수록 마기에 의해서 일어난 차가운 물살이 헬무트의 전신을 후려갈겼다.
비스로 몸을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충격이 만만치 않았을 거다.
신성 결계의 영향권에 있는 탓에, 칸트라의 마기가 헬무트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게 다행이었다.
카강!
소용돌이를 꿰뚫고 헬무트의 검이 칸트라의 등껍질에 직격했다.
껍질 표면이 비스에 의해 깨어져 나간다. 헬무트의 비스는 칸트라의 마기를 뚫어 낼 수가 있다는 뜻이다.
칸트라의 몸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크윽……! 이놈이…… 감히…… 인간 따위가!]칸트라가 노성을 질렀다.
놈 주변의 소용돌이에서 물기둥이 튀어나왔다. 마기에 의한 조종. 굵직한 물기둥이 창살처럼 헬무트가 있던 자리를 덮쳐 왔다.
주변에는 온통 물뿐. 발 디딜 땅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지만, 헬무트는 대신 칸트라의 몸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가 사라진 자리를 물기둥이 휩쓸고 지나갔다.
전신으로 뻗어 나간 비스가 헬무트의 몸을 가볍게 했다.
탁!
그는 부서진 빙판의 조각을 밟고 섰다.
소용돌이가 빙판을 크고 작은 조각으로 박살을 내 놓은 탓에, 밟을 만한 조각들은 제법 있었다.
“거기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덤벼! 겁쟁이.”
도발하듯 던지자, 칸트라의 눈동자에 분노가 피어올랐다.
[나는…… 북쪽의…… 칸트라다! 건방진…… 인간…… 북쪽……은 내…… 영역. 침입자는…… 제거……한다!]어쩐지 아레아의 존재가 안중에도 없어진 칸트라였다. 소용돌이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칸트라가 네 다리를 움직여 헬무트가 서 있는 자리를 빠르게 덮쳐 왔다. 흡사 상어가 물 위의 먹이를 덮치는 것처럼.
‘단순한 녀석이로군.’
어쨌든 물속을 빠져나올 마음은 든 모양이다. 마법을 썼는지 아레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칸트라의 시야에서 벗어난 채로, 신성 결계에 접근할 기회를 볼 것이다. 이대로 놈을 유인한다.
덩치 차이가 큰 만큼, 몸통 박치기를 그대로 맞아 주는 건 용납해선 안 된다. 비스로도 방어하기 힘든 공격이 될 테니까.
헬무트는 공격을 피하면서, 조금씩 칸트라를 끌어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놈은 흥분할 대로 흥분해서 도망치는 헬무트를 집요하게 쫓았다.
몸 주변에 물의 소용돌이를 두르고 신성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던 칸트라도 신성 결계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물 위로 올라왔다.
칸트라의 몸 주변에 있는 소용돌이는 자연히 옅어졌다.
엘라가와는 달리, 칸트라는 짧은 팔다리를 가진 데다가 날카로운 발톱도 이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치악력은 상당해 보였지만, 목도 짧고 움직임도 굼뜨다. 입에 물릴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대신 놈은 마기로 물을 움직일 줄 알았다. 그것도 무척 원활하게.
사방에서 뻗어 오는 물기둥을 피하거나 베어 내느라 헬무트는 정신이 없었다.
대개의 마물이 직접적인 공격을 선호한다는 것을 볼 때 칸트라는 마물 중에서도 특이한, 마법사에 가까운 타입이었다.
‘엘라가라고 해도, 이 바다에선 놈을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아니, 엘라가라면 이곳으로 오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빙판이 그의 체중을 이기지 못할 테니까.
오히려 헬무트가 여기서 칸트라를 상대하는 데는 더 유리할 터였다.
거대한 거북이 마물과 인간과의 사투. 파헤의 숲에서 일어날 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주시하던 아레아는, 칸트라가 충분히 멀어졌을 때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아다만티움을 가동하고 헬무트를 돕는다.’
차라리 잘 되었다. 칸트라가 이동했다고는 하나, 그가 있는 이 주변에 다른 마물은 없을 터였다.
권역의 지배자는 일반 마물들에게 어디까지나 기피 대상이니까.
썰매에서 배 형태로 약간 모습을 바꾼 골렘이 신성 결계를 향해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칸트라가 움직이는 파동이 그대로 파도로 밀려오는 탓에, 수월하게 결계 근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신성 결계에서 고작 몇 걸음 떨어진 거리.
‘속이 울렁거려.’
아레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신성력이 그녀의 마력을 짓누르는 느낌이 역했다.
마법사인 그녀가 그 정도인데 헬무트가 이 자리에 서 있었다면 엄청난 반발력을 느꼈으리라.
‘여기 오래 있을 수는 없어.’
그녀의 골렘도 빠른 속도로 마력을 소진하고 있었다. 칸트라와 헬무트 쪽으로부터 밀려온 파도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 건 쉬웠지만, 더 밀려가지 않게끔 버텨야 했다.
더 밀려가면 골렘은 신성 결계와 충돌할 것이다. 그 경우 골렘의 핵이 파손될지도 모른다.
‘이 주변에 다른 마물은 없겠지?’
아레아는 주변을 슥 돌아보았다.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마법을 행사하기가 까다로워진다. 주문을 외울 수 없으니까.
물론, 그녀는 주문을 입으로 외우지 않고도 마법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리 강력하지 않은 마법에 한해서다.
게다가 신성 결계에서 목적을 달성하고 막 벗어나는 순간은 무방비 상태.
마물이 그렇게 결계 가까이 접근할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아레아는 힘겹게 마법을 펼쳐서 주변에 다른 마물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아다만티움을…….’
품에서 꺼내 들자, 아다만티움은 바로 새하얀 빛을 발했다.
아다만티움이 내뿜는 빛줄기는 바로 수면에서 어린아이 키 정도 파고든 아래를 지목하고 있었다.
깊지는 않지만, 손 뻗어서 닿을 깊이는 아니다. 정확히 설치하려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서 손으로 위치를 잡아야 한다.
‘아, 잊을 뻔했네.’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물론, 마법으로는 쉴 수 있지만, 신성 결계에선 마법도 쓸 수 없다.
그녀는 품에서 기다란 관을 꺼내어 다른 손에 쥐었다.
수관. 이게 그녀를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아래쪽은 입으로 물어 공기를 빨아들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제는 물에 뛰어들어야 할 때였다. 그녀는 맑게 일렁이는 바닷물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칸트라가 시커멓게 마기를 뿜고 있었던 때가 언제냐는 듯이, 결계 가까이의 바다는 맑기만 했다. 그리고 틀림없이, 얼음처럼 찰 것이다.
헤엄은 칠 줄 알았지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눈을 찡그린 아레아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물은 예상대로 소름 끼치게 차가웠다.
체온을 조절하는 마법이 걸린 로브가 한기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고 있었지만, 로브 바깥으로 드러난 살갗은 차가웠다.
결계에 진입한 즉시 전신이 이 얼음 같은 수온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기절하진 않겠지?’
아레아는 수관을 물었다. 짭짤한 바닷물 맛이 느껴진다. 눈앞에 신성 결계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파도에 떠밀린 그녀는 아다만티움을 들고 바로 신성 결계로 몸을 밀어 넣었다.
곧 지독한 압박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 압박감은 그녀에게서 추위를 앗아갔다.
아레아는 전신의 마력을 일으켜서 결계에 저항했다. 다른 마법 같은 건 행사할 여력이 없었다. 다행인 점은, 수중이기에 신성 결계의 압박이 생각보다 덜했다는 것이다.
아다만티움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기까지는 고작 5분이 걸렸지만, 아레아에게는 수십 분이 흘러간 것 같았다.
아다만티움이 제대로 가동되는 걸 확인한 아레아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바로 결계를 빠져나왔다.
물 위로 고개를 빼자 어쩐지 멍했다. 잠이 쏟아졌다. 체온이 내려간 탓이다. 지독한 추위는 짧은 시간에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가쁘게 숨을 토하며 아레아는 골렘 위로 올라오자마자 바로 스크롤을 뜯었다. 마법을 쓸 정신도 없었다.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죽을 뻔했네.”
마법도 없이 얼음장 같은 물속에서 머무는 건 역시, 마법사가 할 짓이 아니다.
바로 골렘에게 결계로부터 멀어질 것을 지시하며 아레아는 결계 쪽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된 거겠지?’
결계의 색이 조금 투명해진 것 같았다. 신성력이 워낙 강하게 느껴지다 보니 이렇게 가까이에선, 결계의 변화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만약 계획대로 네 방향에서 모두 아다만티움 가동에 성공했다면, 신성 결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있으리라.
‘좋아, 이젠 중앙 권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어.’
그러나 문득 뒤를 돌아본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