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16
315
헬무트
315화
마을은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온통 부산한 대기에 휩싸여 있었다. 대개 소란은 안 좋은 일에서 따른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테라의 집에는 마을 사람들이 여럿 몰려와 심각한 얼굴로 아제르와 논의하던 중이었다.
마침 식사를 들던 참이라 손님들.
헬무트 일행도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서둘러 도착한 테라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무슨 일이죠?”
눈물범벅이 된 한 여인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테라, 우베르가 베네타에 잡혀갔어요!”
미간에 인상을 쓴 채 서 있던 아제르가 말을 보탰다.
“그녀의 말대로야. 우베르가 잡혀갔어. 이걸 봐.”
그가 건네준 건 베네타 왕실의 문양이 찍힌 종이였다. 테라는 거기에 적힌 글을 읽어내렸다.
“왕의 영토를 침범하였으니, 이에 벌을 내린다. 만약 죄인을 돌려받길 원한다면 대가를 준비하라. 아만다, 혹시…… 우베르가 마을에서 멀리 나갔었나요?”
아만다라고 불린 여인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한동안, 마을 방침이라 나다니질 못했잖아요. 하지만 우베르는 약초꾼이에요!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 때문에 한동안 약초를 살피지 못해서…… 걱정이 많았어요.
오늘은 그가 심어둔 약초를 보고 오겠다고, 조금 멀리 나갈 거라고 하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마을 인근이에요. 여기서 고작 한 시간 거리 정도라고 했다고요!”
“베네타 왕이 이곳을 노린다면, 근처에 병사들을 포진시켜 놨겠지요. 누구 하나 걸려들길 기다리면서. 아니면 마법사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린카나를 상대하려면 마법사 정돈 생각해놨을 테니까.”
테라는 차분하게 읊조렸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침착했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베네타 왕이 이곳 그린카나를 노리고자 한다면 언젠가 인질을 잡히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그린카나의 사람들이 완전히 마을 안에서만 모든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다. 정기적으로 아제르가 가서 물자를 구해온다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기간이 길어지면 한두 사람은 이탈자가 나올 수밖에.
테라는 아만다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탓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탓하는 것도 의미가 없겠죠. 지금은 어떻게 하면 우베르를 구해올 수 있을지 고민해보도록 해요.”
“이 편지를 가져온 자가, 이것도 가져다줬더군. 아만다가 확인해줬어.”
아제르가 슥 내민 그것은 혈흔이 묻은 장갑이었다. 줄줄 흐른 피라기보다는, 저항하는 도중에 얻어맞고 흘린 피를 닦아낸 듯한.
아만다가 발개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베르의 장갑이 맞아요.”
“만약 허튼수작을 부리면 다음에는 장갑이 아닌 손목을 보내겠다더군.”
“아아, 우베르!”
아만다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테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헬무트는 그들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이, 다른 한쪽에 서 있는 일행을 향해서 접근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일단 사태는 파악해야겠다 싶어서 귀담아듣고 있던 그들이었다.
아레아가 헬무트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시안의 어머니와 어딜 다녀왔다면서?”
“아아,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그보다 이번 일은.”
“여기 머무르는 처지로서 도울 수는 있겠지. 로드릴로서도 우리랑 엮이지 않는 쪽이 나을 테니, 대놓고 나서기는 그렇지만.”
아레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한 왕국을 상대로 하는 일인데도 그들에게선 두려움이라곤 씻은 듯이 찾아볼 수 없었다.
대놓고 베네타와 무력적으로 충돌할 수는 없겠지만 인질 정도는 구해올 수 있다. 우베르인지 뭔지, 베네타에 잠입해서 찾아내고 빼돌리면 그만 아닌가.
파헤의 숲에서도 무시무시한 마물들의 눈을 피해 이동하던 그들이다. 인간의 눈을 피해 목적을 달성하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황이 나쁘지는 않네.”
아스카가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지금 손목을 보내오지 않은 게 어디야.”
“손목이 잘렸어도 다시 붙이면 그만이니.”
아레아도 태연하게 호응했다. 정령 마법사 로드릴이 있는데, 그 정도 상처를 치료할 수 없을 거라곤 그쪽에서도 생각지 않았으리라.
다만 흉물스러운 손목을 보내면 정말로, 싸우자는 뜻이다. 베네타도 그린카나의 감정을 크게 상하게 하여 거래를 그르치고 싶은 마음은 없을 테니, 적정한 선에서 멈춘 것이리라.
아스카가 한탄하듯 말했다.
“그런데 어째 뭐든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냐. 거길 나와도 또 문제네. 시안 이 자식, 우리를 써먹으려고 일부러 부른 거 아니야?”
“아니거든? 그랬다면 일단 넌 빼고 불렀겠지! 니가 제일 도움이 안 돼!”
“뭐래? 파헤의 숲에서 가장 편하게 놀고먹다가 나온 게.”
가장 편하게 지냈던 샤를로트가 저도 모르게 헛기침했다. 찔리는 얼굴로 그녀는 냉큼 화제를 바꾸었다.
“그보다 슬슬 베네타에서 거래 조건을 들고나올 것 같군요. 이쪽에서 먼저 접촉하길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인질을 잡아서, 그런 상황이 되게끔 만든 거지요.”
시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베네타에서 그린카나에 바랄만한 게 뭐가 있지? 돈이 아니라면 말이야.”
“정령 마법사의 힘 아닐까요?”
“하지만 로드릴은 이제껏 어떤 나라의 왕에게도 복속된 적이 없어. 나라에 엄청난 재난을 초래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정령 마법사를 건드리는 건 베네타에도 이득이 될 일이 아니지. 베네타에 정령 마법사의 힘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가 있지도 않을 텐데? 내가 알기로 베네타 왕국의 기후는 안정되어 있거든. 요 몇 년간 대규모의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난 적도 없고.”
“로드릴마저도 발아래 두고자 하는, 막 왕위에 등극하여 기세등등한 베네타 왕의 과욕이거나. 아니면……. 답답하군요. 우리는 그쪽의 정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말입니다. 베네타 왕국의 최근 정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시안이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너희더러 도와달랬어? 너희는 그냥 여기서 먹고 놀다가 갈 생각이나 해. 마물에 신전의 공적에 리노사 대공녀에 뭐에, 괜히 판이 더 커지기만 할 수도 있다는 건 알지?”
“도와준다고 해도 말이 많아.”
“안 도와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네가 사실 제일 문제야. 너라면 나서서 깐죽거리다가 그 영민하다는 베네타 왕, 이성도 잃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거든.”
“뭐라고, 이게!”
아스카가 주먹을 쳐들었다. 둘이 아옹다옹하는 걸 지켜보면서 헬무트는 아레아 옆에 섰다. 낮은 목소리가 그녀에게 흘러들었다.
“베네타에 대해서 내가 쓸 수 있는 카드가 하나 있지.”
아레아는 바로 헬무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또렷한 빛을 냈다.
“호크아이를 말하는 거야?”
호크아이의 탈론이 그에게 세 번의 정보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적 있었다. 헬무트는 그중 두 번의 기회를 소진했다. 하지만 아직 한 번이 남아 있었다. 호크아이의 정보망을 이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레아는 단박에 잘랐다.
“위험해.”
정보를 얻으려면 일단 호크아이에게 접촉해야 한다. 그것도 바로 이곳, 그린카나에서!
호크아이에서 헬무트의 생존을 알아챈다면, 그것이 혹시 리노사나 신전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 이후에 대해서 결코 좋은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호크아이는 애초에 헬무트에게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단체다. 오히려 원수를 졌으면 졌지.
“호크아이는 아직 리노사와 내 관계에 대해서 몰라. 내가 누군지도.”
“알아냈을 수도 있지. 네가 실종되었으니까. 그레타 아카데미에 수소문을 조금만 해봤으면 당시 검술학부 2학년 수석 헬무트가 급작스럽게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있었을 테고, 네 종적이 리노사에서 끊겼다는 것도 어쩌면 알아냈겠지. 넌 그들에게 요주의 인물이니까.”
왜 헬무트가 리노사에서 실종되었을까. 그가 가져간 두 번의 정보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바소르와 리노사에 대한 정보. 그 섬처럼 떨어져 있는 정보를 잇기엔 단서가 너무도 부족했다.
하지만 비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진실에 가까운 비약이.
적어도 그들은, 헬무트의 적이 누군지는 알 수 있을 터였다.
“정보단체들은, 많은 정보를 가져서 무서운 게 아니야. 그 정보를 취합해내서 새로운 정보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게 무서운 거지. 네 편이 아닌 자들에게 네 소재를 알릴 필요는 없겠지. 지금처럼 적이 많은 상황에서.”
“호크아이는 보류하지.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인질까지 잡은 이상 지금 이대로 진행된다면 그린카나에도 곧 큰 소란이 생길 거다. 테라나 아제르도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편안히 이곳에서 쉬다가 간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옳았다.
그대로 외면하고 떠나기엔, 시안 역시도 로드릴이니 이곳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터. 헬무트는 시안에게 빚이 있었다. 그를 돕는 게 옳았다.
헬무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쪽은 이쪽에 대해서 얼마간 아는 것 같고, 이쪽은 저쪽에 대해서 모르지. 호크아이를 통해서든 아니든 우리는 정보가 필요해.”
아레아가 제의했다.
“시안의 어머니에게 우리가 베네타 왕에 대해서 알아오겠다고 하고, 직접 가보는 게 어때?”
큰 도시에서는 웬만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거다. 베네타 왕국의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거고.
베네타 왕이 있는 수도는 그린카나에서 제법 멀었지만, 그 중간쯤에 괜찮은 도시 하나가 생각났다. 헬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으로 가지.”
“그렇게 해주면 우리도 고맙지요.”
테라나 아제르는 헬무트가 말을 꺼내자마자 바로 동의했다.
그들도 헬무트 일행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베네타 왕국을 격파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던 터다.
가서 정세를 살피고 정보만 얻어오겠다고 하는 정도의 도움은 큰 부담이 없었다.
이제 인원을 추려야 했다. 헬무트와 아레아는 당연한 듯이 둘만 떠나기를 원했지만…….
“너희 둘만 가겠다고? 우리를 이런 심심한 시골 마을에 처박아 놓고!”
아스카의 강력한 항변과,
“제가 가면 도움이 될 겁니다.”
샤를로트의 근거는 댈 수 없는 주장에 힘입어 일행이 늘었다.
이제 두 마물이 문제였다. 그린카나에 남겨놓기도, 데려가기도 꺼려지는 두 마물.
나름대로 조용히 지내고는 있었지만, 언제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마물이란 원래 안심할 수 없는 존재이니.
그렇다고 해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선택권은 그들에게 있었다.
이그렐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나는 남겠어. 내가 그린카나를 지켜주지.”
그녀는 그린카나에서 벌어질지 모르는 사건에 좀 더 흥미가 있는 듯했다. 반대로 엘라가는 냉큼 헬무트의 어깨 위로 올라탔다.
“엘라가. 도시에서 정체를 들키면 안 돼.”
[들키겠냐? 난 너처럼 덜떨어진 인간이 아니거든?]“…….”
헬무트는 어깨 위의 고양이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일행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