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20
319
헬무트
319화
“일단 모습을 좀 바꾸는 게 좋겠다. 너무 시선이…….”
아레아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사람을 끄는 마력은 효능을 잃었어도 그 사람 같지 않은 외모는 어디로 가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녀 옆에는 헬무트가 서 있다. 둘은 나란히 서자 흑과 백처럼 선명하게 대조되어 더 눈에 띄었다.
도시 초입, 인적 드문 곳에서 둘은 외형을 바꾸었다.
헬무트는 예전의 하이드와 흡사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청년이 되었고, 아레아의 머리 색은 연보랏빛이 되었고, 인상도 꽤 평범해졌다.
둘의 변화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에게 거는 마법은 좀 더 적은 마력으로 강하게 걸 수 있으니까.
“이것도 눈에 띄지만…… 이보다 강한 마법은 피델리스 공작이 감지할지도 몰라. 진작 모습을 바꾸고 올 걸 그랬네.”
아레아가 로브를 걷어 아공간 속에 집어넣으면서 중얼거렸다.
안에 입은 옷은 고급스러운 여행복으로,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떤 옷보다 눈에 띄는 헬무트가 곁에 있었기에 큰 소용은 없을 것 같았다.
헬무트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가고 싶은 곳 있어?”
“있지.”
놀랍도록 단박에 답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대답을 듣는 순간, 헬무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서점. 피델리스는 마법사 가문이 다스리는 도시야. 도시는 영주의 성향에 따라가게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영지 내의 서점도 꽤 클 거고. 이 지역 서점은 다른 지역과 어떻게 다를지 궁금해지는걸?”
‘그런 게 왜 궁금해.’
헬무트는 정말로 궁금했다.
그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을 의무적으로 하는 타입이었지, 그걸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10시간 책을 읽을 거냐 검을 휘두를 거냐 선택하라면 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쪽을 즐겁게 선택할 헬무트다.
하지만 아레아가 공부나 책같은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었다. 반쯤 잊고는 있었지만.
“어서 가자.”
아레아는 살짝 들뜬 기색이었다. 그리고 헬무트에게서 다른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사실 그녀는 그린카나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굳이 따지자면 시안의, 그리고 로드릴의 일이니 그녀의 일은 아니었다.
잠시 머무르고 있다곤 하나 아레아가 꼭 아군에 서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
헬무트는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아는 이런 도시에서 서점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피델리스의 한 커다란 서점에 들어섰다. 서점은 한산했으나 어떤 사람이 이것저것 지시하고 묻고 있어서, 직원은 무척 분주해 보였다.
벽면 가득 책이 들어차 있는 서점 안에서는 종이 냄새가 물씬 풍겼다.
책이 상하는 방지하듯 빛이 어느 정도 차단된 안쪽은 약간 어둑어둑한 상태였다.
아레아는 빠른 속도로 탐독에 빠져들었다. 그녀 옆에 놓인 바구니에는 곧 한 권 한 권 책이 쌓였다.
헬무트는 잠시 그런 그녀를 지켜보다가, 그도 이것저것 책을 뒤적였다.
헬무트의 어깨 위에서 엘라가가 하품을 했다.
그게 바로 헬무트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레아가 가장 선호하는 게 둘이서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는 종류의 데이트라는 것도 잘 알았다.
이런 점에선 참 취향이 다르다.
얼마 후, 직원이 다가와 헬무트에게 말을 걸었다.
“손님! 여긴 동물을 데리고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런 개념 없는 자가!’라고 비난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헬무트가 움직이기 전에, 엘라가가 먼저 아레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이봐, 아레아. 여긴 동물은 안된단다. 난 나가야겠으니 이 허약한 녀석은 네가 지켜라. 알았지?]엘라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서점을 벗어날 기회였다.
어쨌든 그는 헬무트를 지키기 위해 붙어 있는 거였다. 여긴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아레아는 책에 둔 시선을 떼서 흘낏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죠.”
자유롭게 풀려난 엘라가가 마을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닐지는 전혀 상관치 않는 눈빛이었다.
[그럼 넌 약한 주제에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여기 꼭 붙어 있어! 수고해라. 풉!]“…….”
엘라가는 헬무트에게서 약간의 부러움과 분노를 사면서 서점 밖으로 걸어나갔다.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
*
“오늘은 날씨가 정말 화창하네.”
테레사는 번화가에 다다랐다. 그녀를 알아본 몇몇 이들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마법사 로브를 입고 당당하게 길을 누비는 그녀는 피델리스 공작의 여식이었다. 이 피델리스에서는 공주님 같은 존재다.
피델리스는 치안도 좋은 편이었을뿐더러, 웬만한 이들은 그녀 혼자 격퇴할 수 있다.
‘블랙호크가 피델리스에도 본격적으로 자리 잡을 거란 게 문제지만 말이지.’
그들도 음에서 양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철저히 규율을 지키게끔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태생이 어디 가겠는가. 불량배, 깡패, 범죄자에서 비롯된 집단인 것을. 그 때문에 위에서 틀어쥐는 것만큼은 확실하긴 했다.
‘약속했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걱정이네.’
그러나 지금은 블랙호크의 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테레사는 그린카나에 대해서, 그리고 로드릴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린카나 사람들을 아끼는 로드릴이니 지금 상당히 격앙되어있을지 몰랐다.
‘아닌가? 그들도 마법사지. 그리고 시안 역시도.’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테레사가 길을 걷고 있을 무렵, 엘라가는 달라진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린카나에서 그는 사랑받는 존재였다. 예쁘고 털이 보드라운 고양이. 어딜 가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해서 안달했다.
그중에서 그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소수였을지라도.
‘이게 무슨 상황이래.’
하지만 여기, 피델리스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생선 가게 근처를 얼쩡거렸더니 도둑고양이 취급을 하면서 돌을 던지질 않나, 아이들이 우르르 쫓아와 그를 잡으려고 들었다.
“와! 도둑고양이다! 잡아라!”
“잡아서 매달아 놓자!”
“털도 벗기자! 목도리를 만드는 거야!”
“고양이는 구워 먹으면 무슨 맛이 나지?”
졸지에 어린 인간들에게 쫓기게 된 엘라가는 지금 상황이 그냥 어이없었다.
‘이 콩알만 한 것들이!’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육체적 능력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니, 앞발로 한 대치면 그대로 머리를 날려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인간 마을에 올 수 있었던 건,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털이 쭈뼛 곤두섰다. 두려워서가 아니다. 본능을 자극하는 상황이었다.
엘라가는 파헤의 숲, 중앙 권역의 지배자.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이후로 한 번도 미물처럼 이렇게 쫓겨본 적 없는 몸이었다.
‘이런 걸 참아주는 건 마물이 할 짓이 아닌데.’
돌까지 던지는 건 엄연히 공격 아닌가. 유연하게 돌팔매질을 피해서 달리면서 엘라가는 생각했다.
상대가 아이건 어쨌건 전신을 찢어발겨서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야 족하리라.
흉포한 심성이 피어올랐다.
그가 귀엽게 여기는 건 세라였지, 우르르 몰려다니는 폭력적인 인간 아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라가는 자신이 인간 아이들을 꽤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헬무트 녀석은 귀여운 수준이었던 게 맞군.’
슥 보니, 주변이 온통 벽이라 딱히 기어오를 만한 곳이 없었다.
엘라가는 일단 여길 벗어나는 즉시 그들을 따돌리기로 결심했다.
“저기다, 잡아!”
“거기 너희들, 뭐 하는 짓이지?”
막 모퉁이를 도는 순간, 낭랑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아이들은 멈칫거렸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테레사가 공작의 딸다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영지 내에서 동물을 학대하다니. 너희들은 어느 집의 누구냐.”
테레사의 얼굴은 피델리스 전역에 알려져 있었다. 그녀를 목격한 아이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주춤거렸다.
“마녀다!”
“마녀가 나타났다!”
한 아이가 먼저 외치면서 등을 돌림과 동시에 테레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누가 마녀라는 거야? 버릇없는 것들. 부모가 누군지 색출해내서 이 일에 뼈저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귀족에다가 마법사. 상대가 아이라도 주저 없이 응징할 만한 조건이었다.
테레사는 특히 그레타 아카데미에서도 한 성격하는 걸로 소문난 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뭐라고 중얼거리든 엘라가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흠, 나를 도와주는 인간이라니. 새로운 기분이야.’
마법사로 보이는 데다가, 붉은 갈색 머리카락. 꽤나 미인이었다. 엘라가는 그녀 앞에 서서 소리를 냈다.
“냐옹.”
순식간에 테레사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어머, 어쩜. 정말로 예쁜 고양이구나. 털이 참 깔끔한데, 누가 키우던 녀석인가? 어쩌다 이런 곳까지 흘러와선. 괜찮니? 어디 보자.”
그녀는 손을 뻗어 엘라가를 살포시 안아 들었다.
엉겁결에 외간 여자의 손길을 허용한 엘라가는 살짝 얼떨떨한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냐옹?”
“그래, 그래. 네 주인은 어디에 있니. 버려진 건 아니겠지? 한 번 찾아볼까?”
테레사는 엘라가를 향해 손을 들이댔다. 엘라가에게서 기억을 읽어서, 이 하얀 고양이의 주인을 찾아볼 셈이었다.
하지만 그 즉시, 위기감을 느낀 엘라가는 그녀의 품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마법사라면 엘라가에게 마법을 걸 때 반발력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평범한 고양이에게 존재할 수 없는 반발력.
다행히 테레사는 하이케가 건 마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수준은 못 되었다.
피델리스 공작이라면 바로 엘라가가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겠지만.
‘어휴, 마법사였지? 큰일 날 뻔했네.’
이 여자. 아이들이 마녀라고 외치면서 내빼는 걸 보니, 아마 피델리스 내에서 소문난 마법사인 듯하다.
테레사는 재빨리 그녀에게서 거리를 두는 엘라가에게 다가서며 걱정스레 물었다.
“어머, 어디로 가는 거야? 집으로 가는 길 아니?”
엘라가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냐옹!”
“안다는 거야?”
“냐옹.”
“고양이가 말을 알아들어? 신기하네. 그럼 먼저 가볼래? 내가 뒤를 지켜줄게.”
어차피 산책을 나온 터.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테레사가 손을 움직이자 엘라가는 종종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테레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엘라가의 뒤를 따랐다. 엘라가는 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이미 한 차례 학을 떼었다. 더 이상 마을을 돌아다닐 마음이 들지 않는 터였다.
그 와중에도 엘라가의 모습을 보고 그를 건들려는 이들은 있었지만, 뒤에 서서 눈을 부라리는 테레사를 발견하고 바로 모른 척 제갈
길을 갔다.
한동안 씩씩하게 나아가던 엘라가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테레사가 물었다.
“다 왔어? 그런데 여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