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23
322
헬무트
322화
그들이 테레사와 대화를 하고 있던 시각, 헬무트와 아레아는 한 식당에 들어서 있었다.
큼직한 여관 1층에 있는 시끌시끌한 식당이었다.
음식은 평범 이하였다. 아레아가 선호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이런 곳이야말로 정보를 수집하기 최적이다.
그들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여 이곳을 찾았다. 언제 떠날지 모르지만, 현재로서 그들은 로드릴의 식객이다.
식객으로서 최소한은 하자는 게 헬무트와 아레아의 의도였다.
“다들 우호적이군.”
헬무트가 중얼거렸다. 베네타의 현 국왕은 즉위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는 빠르게 안정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현 국왕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위 계승권자였기도 한데다가, 본인도 수완이 좋았고 피델리스 공작의 지지도 있었다.
비록 그 기반이 탄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국왕이 베네타를 장악하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쐐기를 박을 뭔가가 더 있다면 좋겠지만…….
게다가 이곳은 피델리스. 피델리스 공작이 딸에 이어서 현 국왕의 편에 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현 영주가 국왕의 편이니 피델리스에선 국왕에 대한 평가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피델리스가 국왕의 편에 섰다면, 이번 일은 피델리스가 개입했을 거야.”
식사에 거의 입도 대지 않은 아레아가 중얼거렸다. 어쨌든 이곳은 그녀 취향의 식당은 아니었다.
“피델리스라면 로드릴이 어떤 존재인지 알 테니까. 베네타 국왕이 로드릴을 건드리는데 개입하지 않았을 리 없어. 반대하든 아니면 주도했든.”
“절대적인 힘을 가진 대지의 정령사. 어떻게 건드릴 수 있지?”
그건 마치, 엘라가를 건드리는 것 같은 일 아닌가? 헬무트의 의문은 당연했다.
물론 현재의 엘라가는 그 이상의 존재였다. 능히 나라를 멸할 수 있을 만한 마물.
신전과 정면으로 맞붙는대도, 아무리 마물이 신성력에 약하다 한들 엘라가가 질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마치 또다시 등장한 마왕 같은 존재였다.
“제약이 있고, 지킬 것이 있고, 그래서 한계가 있는 인간이니까. 직접적으로 부딪히지 않는다면 이용할 수 있다고 본 거겠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적절히 이용하는 게 귀족다운 일이니까.”
“국왕이 아닌 귀족의 생각이라는 건가?”
“막 계승권 전쟁에서 승리하여 왕위에 오른 국왕이 과연 독단으로 로드릴과 맞붙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려고 할까?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건 그일 텐데? 누군가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겠지. 그것도 왕이 신뢰하는, 왕과 아주 가까운 인간.”
아레아의 추측은 사실에 가까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피델리스야.”
“시안이 피델리스 쪽과 이야기하러 갔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도 있겠군.”
“그들의 요구 조건이 로드릴이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이라면 말이겠지. 저쪽에서도 과격한 방식을 쓴 만큼 뒤로는 보상을 챙겨주려고 할 거란 말이지.”
아레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우리를 떼어놓고 간 걸까. 피델리스와 접촉한다면 우리와 함께하는 게 안전할 텐데.”
가장 강한 아레아와 헬무트를 놓고 저희끼리만 간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헬무트는 간단하게 답을 냈다.
“문제가 생기면 구하러 오라는 뜻일지도.”
“그래, 우리가 피델리스의 눈에 들어서 좋을 것도 없으니까.”
신전의 공적 아레아에 헬무트는 두말할 것도 없다. 요는 그들에 관한 정보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로드릴이라도 그들과 엮이면 곤란해질 수 있다. 그것은 베네타를 상대로 하는 로드릴의 약점이 될 것이다.
“음식이 맛이 없는데, 다른 곳에 가 볼까.”
그렇게 권하는 헬무트의 접시는 거의 비어있었다.
헬무트야 파헤의 숲에서 워낙 오래 살다 보니까 대충 먹을 수 있었지만, 아레아가 문제였다.
헬무트가 자신을 생각해 주자 아레아가 눈매를 휘며 웃었다.
“좋은 생각이야.”
구색 맞추기라도 대충 이것저것 주워들었다. 시안네 일행이 돌아오는 대로 얘기를 들어보면 될 것이다.
와장창!
그때 저편에서 소란이 일었다.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거한 한 명이 사내 한 명의 멱살을 쥐고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퍽! 사내의 코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 옆에서 사내 두 명이 살벌하게 눈을 부라렸다.
주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춰서 수군거렸다.
“저 자식들 또 저 짓거리네.”
“영주님께서는 왜 저런 녀석들을 받아들인 건지.”
“저런 놈들도 이제 영지에서 합법적으로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건가? 말세로군.”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고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근방에서 소문난 건달패들인듯했다. 툭하면 시비를 걸어서 누구 한 명을 패놓고 주머니를 털어서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죽이는 것도 아니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상대를 골라서 시비를 건다고 했다.
옆자리에 상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불안한 얼굴로 떠들어댔다.
“저 자식들이 속한, 그…… 뭐지? 그 암흑가 단체가 이제 베네타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한다고 하잖아. 그래서 잔챙이들도 저렇게 기세등등한 거지.”
“어째서 국왕 폐하께선 그런 선택을 하신 건가?”
“거래가 있었나 보지. 높으신 분들 사정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빨리 먹고 나가자고. 괜히 불똥 튈라.”
헬무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암흑가 단체……?’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블랙호크. 헬무트와도 큰 갈등을 빚었던, 국왕과도 거래하고도 남을 만한 거대한 암흑가 단체.
그들이라면 합법적으로 활동하게 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베네타 국왕과 거래를 했을 수도 있다.
호크아이의 탈론이라는 자는, 그 정도로 융통성이 있어 보였으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어쨌든 블랙호크와는 더 이상 접점을 만들지 않을 거다. 헬무트와 아레아가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이쪽을 보고 있던 거한 한 명이 그들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조금 전까지 사내 한 명을 두들겨 팬 그는 흥분감에 젖어 있었다. 이미 거나하게 한잔한듯한 거한에게선 술 냄새가 훅 풍겼다.
그는 헬무트를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이거 웬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리까리하게 생긴 놈이잖아? 여자처럼 생긴 놈이 여자를 끼고 있네?”
헬무트의 시선이 가볍게 들렸다. 직선을 긋듯 사소한 움직임이지만, 기이하게도 위압적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 원래의 모습이 아닌, 일전에 취했던 하이드에 가까운 모습.
위협적인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쉽게 볼 수 없을 듯한 분위기가 훅 풍겼다.
거한은 멈칫했다. 본능이 미세하게 그를 자극한 탓이다.
하지만 이 곱상한 놈을 상대로 그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취해있던 탓에, 본능은 흥분감을 이기지 못했다.
“어딜 건방지게 꼬나 봐! 병신이!”
쾅! 그들이 앉은 테이블 위로 사나운 소음이 울려 퍼졌다. 물잔이 흔들리며 액체를 쏟아냈다. 기묘하게도 헬무트와 아레아 둘 모두에게 물 한 방울 튀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싸우면 안 되지 않을까?”
아레아가 차분하게 물었다. 헬무트와 거한, 둘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런 녀석쯤 별것 아니지만 아레아는 괜한 소란으로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이, 거한에게 거슬리는 소리로 들렸음은 분명했다.
“이년이?”
헬무트의 눈매가 싸늘해졌다. 저편에서 일행이 거한을 부추겼다.
“자크, 거기서 뭐 하는 거냐? 빨리 손봐주고 와.”
헬무트가 입을 열었다.
“싸우고 싶다는데.”
“그럼 빨리 끝내.”
대화는 담백했다. 그것이 더 화를 돋웠다. 거한은 테이블을 내려친 주먹을 들었다.
“이 새끼가!”
그리고 욕설과 함께 헬무트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질렀다.
결과는 무참했다.
콰득! 콰드드득! 쿠궁! 헬무트는 검조차 뽑지 않았다. 그저 손을 좀 움직였을 뿐이다.
게거품을 뿜으며 바닥에 쓰러진 거한은 두 팔이 이리저리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마치 겉은 그대로이나 안쪽의 뼈만이 토막토막 나누어진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기절한 모양이다.
헬무트는 냅킨으로 손을 슥 닦아냈다.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었다.
“아, 심했나?”
가볍게 손봐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반 죽여 놓은 꼴 아닌가. 아레아는 심했다고 말하는 대신, 널브러진 거한을 힐끗 보며 재촉했다.
“가자.”
아직 숨이 붙어 있다. 그것은 아직 살인죄를 면할 수 있다는 소리다.
죽어도 피델리스에선 그렇게 신경 쓰진 않을 만한 자이지만, 뒤에 세력이 있다고 했으니.
다행히 헬무트의 압도적인 실력에 일순 기가 질렸는지, 거한의 일행들은 계산을 치르고 식당을 나서는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헬무트나 아레아나 별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기만 했다.
식당을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헬무트와 아레아는 테레사와 대화를 마치고 번화가로 돌아오고 있던 시안 일행과 딱 마주쳤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다만 시안 일행은 바로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둘 다 모습을 바꾸고 있었기 때문에.
헬무트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건넸을 때야, 그들은 두 사람을 알아보았다. 살짝 놀라다가 금세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어라, 헬무트? 그리고 옆은…… 아레아인가. 낯선 모습이네.”
“모습을 바꿨군. 헬무트, 넌 그래도 눈에 띄지만.”
“그래도 바로 찾았네. 운이 좋아.”
“그런데 저쪽이 좀 시끄러운 듯한데? 그새 사고 쳤냐?”
시안이 헬무트와 아레아 등 너머로 식당을 지목했다. 헬무트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별일 아니야. 시비가 좀 붙어서.”
“……어떤 녀석인지 몰라도 상대에게 애도를 빌지.”
아스카가 쯧쯧 혀를 찼다. 아레아가 입을 열었다.
“정보를 좀 들었어. 피델리스와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났어?”
아레아의 그 짤막한 질문에서 시안은 잠깐 뜸을 들였다.
그로서는 아레아가 테레사가 피델리스라는 걸 아는지, 그녀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지,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신경 쓰는 거지? 테레사 선배가 헬무트한테 접근했던 건 옛날 일이잖아. 게다가 내 일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시안은 왠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감췄다.
테레사와 아레아의 충돌이라니. 끔찍하게 느껴진다. 비록 실력은 압도적으로 차이가 날 테지만.
“피델리스 공작의 딸이 그레타 아카데미 출신이었어. 그녀가 곧 공식적으로 마을을 찾겠다더군. 여기서 알아낸 걸 가지고 부모님과 대화를 해봐야겠어.”
그 짤막한 설명에서 헬무트와 아레아는 많은 것을 알아챘다.
“그럼 이제 돌아가자.”
그들은 식당에서 벌어진 소란을 뒤로하고 그 즉시 피델리스를 벗어났다. 약간의 재를 남기고서.
그리고 그 재는 곧, 불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