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24
323
헬무트
323화
탈론은 피델리스를 방문하는 중이었다.
이곳은 그린카나와 왕도 가운데 있는 도시.
그린카나의 동태를 살피려면 그 일은 피델리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물론, 피델리스 공작은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어떤 귀족인들 자신의 영지에 블랙호크를 들이는 것을 반기랴.
비록 국왕의 방침에 따르더라도 공작의 기준에서 블랙호크는 암흑가집단에 불과할 뿐 정보길드니 뭐니 양지화한다길래 내버려 두곤 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블랙호크 같은 집단이 변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부의 엄명이 있더라도. 블랙호크의 혈기왕성한 젊고 도덕성 없는 구성원들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 때문에 소소한 충돌도 빚어지는 중이었다.
단지 어딜 가나 건달이나 부랑배는 있는 법이므로, 문제 될 만큼 큰 사건은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피델리스 공작이 문제 삼을 만 한 살인이나 강간 같은 중범죄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태는 다른 면에서 의외로웠다. 피해자가 이쪽에서 났다는 점에서.
탈론이 고개를 모로 꺾으며 물었다.
“여관 식당에서 소란이 있었다고?”
“예, 아무래도 시비가 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 쪽 녀석이 중태라 해서…….”
피델리스 지부장이 고개를 조아렸다. 베네타 왕국에서도 피델리스는 큰 도시.
피델리스 지부장하면 그 위치가 결코 낮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라도 탈론 앞에서는 그저 흔하디흔한 지부장일 뿐이다.
탈론은 피델리스 지부장의 미묘한 태도로부터 그가 말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읽어냈다.
“시비가 붙었다는 그자는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지?”
“그, 그것이…….”
독사 같기로 소문난 피델리스 지부장도 탈론 앞에서는 쩔쩔맸다.
거짓말로 속여봐야 소용없다. 탈론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다고 알려진 자이니.
그 즉시, 준엄한 질타가 떨어졌다.
“아랫것들을 잘 단속하라고 하지 않았나. 앞으로의 블랙호크는 예전과 같지 않을 거라고 말했건만.”
피델리스처럼 중요한 도시에서 문제가 되면, 다른 곳은 오죽하겠는가.
“그, 문제가 될 만큼 사고를 치고 다니던 녀석이 아닙니다. 그냥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수준의 용돈 벌이나 하던 녀석인데…….”
문제가 된 자는 피델리스 지부장의 조카였다. 팔은 안쪽으로 굽어지는 법이다.
탈론이 없었다면 피델리스 지부장은 뿌득 이를 갈며 즉시, 자신의 조카를 때려눕힌 그 누군가를 향해 암살자를 보냈으리라.
‘쓸만한 인재가 없군.’
탈론은 내심 혀를 찼다. 대업을 이루고 있는데, 어찌 이리 잡음이 많단 말인가.
그는 이번 로드릴의 일이 끝나는 즉시, 블랙호크의 구성원들을 단속하는 데 심력을 쏟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마나 중태이기에?”
중얼거린 탈론은 곧, 중태에 빠졌다는 지부장의 조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탈론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팔을 이런 식으로 부러뜨린 것을 보건데, 보통의 솜씨가 아니었다.
‘비스를 다루는 아주 수준 높은 검사. 용병으로 치자면 최소한 2급 이상.’
피델리스 인근에 2급 이상의 용병이 누가 있던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정보가 취합되어 그림이 그려졌다.
“금발의 젊은 남자였다고 합니다. 귀족 도련님처럼 보일 만큼 곱상한 청년이었다고 하던데…….”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어떤 모습이 있었다.
오래되어 빛바래야 할 그 기억이, 어째서 지금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상처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잔인함, 과감함, 그러면서도 얼음처럼 냉정한. 이를 드러내는 상대를 간단하면서도 무참하게 뭉갠다.
그런 자가 있었다. 아니, 있었었다. 멀고도 가까운 과거에. 그러나 그자는 사라졌고,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에 관해 짐작 가는 것은 있었으나, 그 짐작이 맞는지 탈론도 확인하지 못했다.
정보는 너무도 적었고, 비현실적이었다. 일어날 법한 일을 가정하는 게 정보를 다루는 자의 역할이다.
‘깊게 생각할 것 없지.’
수금을 하러 다니건 어쨌건, 블랙호크의 일원이 누군가에게 당했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면 되리라. 그의 머리는 아직 잊지 않았으므로.
탈론은 명했다.
“초상화를 그려와라.”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탈론은 초상화가 그려진 종이를 손안에 두고 앉아 있었다.
초상화에 그려진 얼굴은 지독하게 낯익었다. 그림으로도 고스란히 드러날 만큼 잘생긴 얼굴.
그 눈빛도 분위기도 실제의 것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탈론은 그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이드.’
아니, 헬무트. 4년여 전 사라진 소년. 이제는 어느덧 청년이 되었던가. 세월이 무상했다.
그러나 헬무트의 검은 과거에 날카로웠던 이상으로 날카로워져 있으리라.
이제 그 검을 꺾을 자 몇이나 될까.
탈론이 아는 한 최고의 천재.
비정상적일 만큼 강했다. 인간의 강함이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가 지금에 와선 얼마나 강해졌을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살아있었군. 그동안 한 번도 정보망에 걸리지 않더니.’
그것은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힘든 일이다. 블랙호크의 정보망은 기막히게 촘촘하니까.
아주 오지에 있지 않는 한 거기에 포착되지 않기란 힘든 것이다.
탈론은 지난 세월 헬무트라는 위험요소가 그물망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흐려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리노사에 의해서 제거된 것처럼 보였으니까.
‘다시 나타났다면, 그는 무엇을 원할까.’
복수? 아니면……. 그 무엇이든 일대의 사건을 일으키리라. 강자의 움직임은 미풍에 그치지 않는 법이니까.
여하간 오랜 세월 모습을 감췄던 그가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갔는가.
탈론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었다.
헬무트를 비롯하여 피델리스를 방문한 그의 일행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 그의 앞에 놓였다.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한 세부 묘사였다.
일행 중 가장 경계심 많은 이도 설마 이 넓은 도시에서 자신들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이 베네타 국왕이 블랙호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비상한 정보력과 그것을 취합하는 능력. 그는 테레사 피델리스가 직접 대면하고 알아냈던 것을 방안에서 알아냈다.
‘총 다섯 명이로군. 시안 로드릴. 로드릴의 후계자로군. 그레타 아카데미 시절 헬무트와 돈독한 친분. 아스카, 검술학부 수석. 이 역시 마찬가지. 나머지 일행은…… 마법사는 모습을 바꿀 수 있으니, 마법학부 수석 아레아. 리노사 대공녀이자 검술학부 수석 샤를로트.’
탈론은 아스카에 대해서 진작 조사해놨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가 시안 로드릴의 친구이기 이전에 헬무트의 친구였기 때문에.
아스카 자체가 가문과의 교류가 굉장히 적었기에, 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극도로 힘든 일이었다.
높은 가문의 자제는 필히 주변의 다른 귀족이나 세력가와 교류하게 되어있다. 그를 통해 존재가 어떻게든 알려진다.
그 논리에서 아스카는 예외였다. 그는 평민이 아님에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존재 같았다.
게다가 아스카는 예민했고, 추적을 따돌리는 데 능했으며 혼자 움직였다. 하지만 그가 방학마다 향하는 곳을 속일 수는 없었다.
탈론은 아스카의 정체를 알아냈고 그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블랙호크에서 건드려선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만을 새겨두면서.
그런 의미에서 헬무트가 과거 아스카를 구해준 건 잘된 일이었다. 만약 그때 아스카가 블랙호크에 의해서 살해당하기라도 했다면, 블랙호크는 뼈저린 대가를 치러야 했으리라. 조직 전체가 무너져내렸을지도 모른다.
‘이 또한 운이겠지. 그보다 이렇게 모이기도 힘들 만큼 대단한 인물들만 모였군.’
그들은 무력적으로도 대단한 전력이지만,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개인의 무력보다는 그쪽이 더 골치 아팠다.
이들이 바로 그린카나에 새로 합류한 자들이었다. 피델리스를 방문하여 목적을 달성하고 사라졌다.
그 와중에 아마도, 테레사 피델리스와 접촉하기도 했다.
‘테레사 피델리스. 영악하지만 풋내기인 아가씨지. 이야기가 제대로 되었을지 모르겠군.’
제대로 되었어야 할 거다. 로드릴의 자존심이라면 외부의 전력에 도움을 빌지 않을 테지만, 외부의 전력이 스스로 도움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니까.
“추적하여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블랙호크의 피델리스 지부장이 방안에서 나온 탈론을 향해 재촉했다.
조카를 반병신으로 만들어놓은 자들이다. 마법이든 약초든 돈이 있다면 낫게 할 수는 있었지만, 조카는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았다.
내 새끼 눈에서 눈물을 뽑았으면, 상대의 눈에서도 눈물을 뽑아야 한다.
피델리스 지부장은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탈론은 그를 슥 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지부장은 눈이 없군. 조만간 자네의 자리는 대체될 걸세.”
“예……?”
“그마저도 잃고 싶지 않다면, 부지부장의 자리에서 잘 생각해 보도록.”
그 말만을 남긴 채 탈론은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바로 향한 곳은 베네타의 왕성이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탈론은 불과 얼마 전에 국왕과 대면한 터였다. 마침 테레사로부터 보고를 받은 국왕은 담담하게 그를 맞아들였다.
피델리스와 블랙호크는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랬다.
왕은 그들을 화합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애초에 고상한 마법사 가문의 대귀족과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블랙호크가 손을 잡기는 어려운 법이니.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피델리스와 블랙호크는 알게 모르게 경쟁 중이었다.
국왕 데비스는 영민한 자였고, 피델리스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신하에게 의존하는 왕은 왕이 아닌 법이니.
비록 그가 피델리스를 더 신임하는 것처럼 행동하더라도, 그의 냉정한 머리 한쪽에는 항상 왕 다운 균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피델리스 반대쪽 추는 블랙호크였다. 세력이 없는 왕에게 블랙호크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
물론, 국왕의 저울이 피델리스 쪽으로 기울어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것은 피델리스가 더 헌신적으로 현 국왕의 즉위를 도와서가 아니었다. 피델리스에게 무게를 싣는 것은 감정의 추였다.
테레사 피델리스. 데비스의 즉위를 도운 여자. 유능한 마법사이자 피델리스 공작의 아름다운 딸.
그레타 아카데미 시절, 그녀와 헬무트 사이에 대해선 어떤 소문이 퍼져있었다.
대개는 사실과 상관없는 소문이다. 탈론도 그 소문이 진짜일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할 수는 있었다. 균형을 맞추는 데 말이다.
베네타의 국왕은 경솔한 자가 아니었고, 그 사실을 안다 한들 감정의 추가 흔들리게 될 뿐 그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거다.
탈론은 입을 열었다. 곧 그의 보고가 국왕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그 보고를 국왕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알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