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3
32
헬무트
32화
“그러면 켈롭은 죽은 거로구나.”
타리크 용병단 사람들이 난색을 보였다. 참, 누구한테도 말하기 힘들게 죽었다.
그의 형도 들으면 어이가 없을 것이다. 어린 4급 용병을 괴롭히려고 숲에 따라 들어갔다가 마물한테 잡아먹히다니.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평소라면 모를까 하필이면 습격이 있었던 날, 동료가 둘이나 죽었는데 그런 짓을 벌인 건 타리크 용병단의 기강 문제이기도 했다.
“타리크 용병단을 대표해서 사과하지.”
2급 용병 중 하나가 살짝 고개를 숙여왔다. 수상하지 않게 잘 수습한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타냐가 나섰다.
“말뿐인 사과로 끝낼 건가요, 막스? 당신들은 그 켈롭이란 자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었어. 그걸 내버려 두고 있다가 이 아이도 죽을 뻔했다고요!”
“켈롭 몫의 의뢰비는 이 아이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하지. 그렇게 처리해 주십시오, 마일즈.”
막스라 불린 2급 용병이 선뜻 말했다. 어차피 그의 돈도 아니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그는 좀 짜증스러웠다. 켈롭의 건도 그렇지만 타리크 용병단의 결점을 의뢰인 앞에서 드러낸 이 상황이.
‘페이스 용병단에선 한 명도 죽지 않았는데 우리 쪽에선 셋이 죽었어.’
인력 손실도 문제지만 안 그래도 상회 쪽에서 페이스 용병단을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일은 그 분위기를 더 확실하게 할 것이다.
도움도 안 되는 녀석이 죽은 걸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도 몰랐다.
“사실 좀 실망스럽네. 내가 두 용병단 사이의 문제에 끼지는 않으려고 한 건, 자네들이 알아서 하길 기대했기 때문이야. 이렇게 분위기가 흐트러져서야 숲을 벗어날 때까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어. 이미 셋이나 죽었잖나.”
“주의하겠습니다.”
마일즈가 한숨을 푹 쉬었다. 상행을 이끌면서 위험한 순간을 제법 많이 겪은 그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불안한 일정은 처음이었다. 이 숲은 생각보다 위험했고 마물은 생각보다 강했다.
‘더 많은 수의 용병을 고용했어야 했나.’
마일즈는 항상 닥칠 위험을 계산하여 여유를 두고 용병을 고용한다. 그 계산이 너무 보수적이었던 건 아닌지, 후회되는 시점이었다.
“뭐, 일단은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으니 이대로 넘어가지. 그 원숭이 마물이 또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니 큰일이로군. 밤에 몰래 돌아다니지 않도록 자네들도 인원을 잘 단속하게.”
“예.”
그리고 그들은 흩어져 각자의 야영지로 돌아갔다. 야영지에 이르자마자 타냐가 휙 돌아섰다.
딱! 헬무트는 눈을 깜빡였다. 때린 것은 타냐였다. 제법 아팠다.
휘두르는 건 감지했다. 아플 거라고 생각해서 피하려고 했지만, 피해도 괜찮을지 살짝 고민하는 사이 주먹이 먼저 다다라 버렸다.
헬무트는 항의했다.
“아파요.”
“아프라고 때렸어! 자식아, 넌 지금 죽을 뻔한 거라고! 보초를 설 때 살짝 말해 뒀으면 내가 뒤를 봐주기라도 했을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라고 혼자 돌아다녀! 생각 없이.”
생각이 없다니. 억울한 소리였다. 켈롭따위 백 명이 달려들어도 상관없고, 아까 그 마물도 헬무트가 쫓아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자는 단 한 명, 자신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헬무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냥 말할까?’
자신은 강하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증명할 자신도 있다. 솔직히 핀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타냐가 헬무트를 발견한 것은 파헤의 숲에서 가까운 장소. 만약 파헤의 숲과 그를 연결 짓게 된다면…….
그녀에게 자신에 대해서 드러내는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닐지도 몰랐다.
타냐가 팔짱을 끼고 추궁했다.
“우리 용병단 사람 다 있는데 너만 안 보여서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또 혼자서 멋대로 돌아다닐 거야?”
“갑자기 급했어요. 밤에 먹은 게 배탈이 났나 봐요.”
헬무트가 둘러댔다.
“그러게 그렇게 무식하게 많이 먹으니까 그렇지.”
“배가 고파서…….”
핑계를 대다가 타냐의 표정이 점점 더 험악해지는 걸 발견했다.
헬무트는 문득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떠올렸다. 핀이 이렇게 추궁당할 때면 뭐라고 했더라.
“미안해요.”
다리언한테도 한 적 없는 말이다. 사실 헬무트는 다리언에게 미안한 일을 하지 않았다.
다리언도 헬무트를 굴리면서 미안하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고마워하란 생각은 했어도.
학습한 대로 내뱉은 말이었다. 핀과 어울린 게 헬무트의 사회성을 조금씩 발달시키고 있었다. 타냐의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그래, 너도 켈롭, 그 자식이 죽은 건 신경 쓰지 마라. 죽을 만해서 죽은 거니까. 괜히 죄책감 갖지 말고.”
“네.”
죄책감은 모르겠지만, 다른 감정은 느끼고 있다. 헬무트는 자신의 사냥감을 그 마물에게 빼앗겼다. 약이 오르는 상황이었다. 일방적인 손해다.
‘그대로 물러나진 않겠지?’
나호만큼은 아니지만 독기가 느껴지는 놈이다. 또 들이닥칠 것이다. 이 숲을 벗어나기 전에.
‘켈롭의 의뢰비를 얻었으니 이득인가.’
돈이 필요했는데, 돈이 더 생겼다. 그 하나만큼은 만족스러웠다.
*
원숭이 마물이 여기까지 쫓아왔다는 게 알려진 이상, 그곳에서 더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다들 잠이 싹 달아난 것 같았다.
3급 용병 두 명에 4급 용병 하나. 놈이 혼자서 세 명의 용병을 해치웠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바로 출발할 거란 지시가 떨어졌다.
“강행군을 할 테니 대련이나 수련은 삼가고 체력을 아끼도록. 최대한 빨리 숲을 벗어나기로 했다.”
퓌엔의 말에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거의 마친 상태였다. 곧 출발할 것이다.
“야, 헬무트.”
핀이 슬쩍 다가와 옆구리를 찔렀다. 아니,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헬무트가 싹 피해 버리자 칫 하고 혀를 차며 옆에 달라붙어서 말했다.
“야, 문제아. 나 앞으로 낮이고 밤이고 너한테 딱 붙어 있으래. 너 딴짓 못 하게.”
‘그럼 넌 안전해지겠네.’
생각하면서도 귀찮음이 몰려왔다. 앞으로는 핀을 종일 달고 다녀야 한다니.
말하는 걸로 들어선 밤에 홀로 수련하는 일도 요원해진 듯하다.
잠들었을 때 몰래 빠져나갔다가 걸리면 그땐 타냐에게 고막이 나가도록 호통을 들을 것이다.
“넌 진짜, 무슨 똥이 마렵다고 저 컴컴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갈 생각을 하냐. 겁도 없이.”
“네가 겁이 많은 거겠지.”
“나라면 대충 아무 구석에나 눴을 텐데. 타리크 용병단 놈들이 밟기를 바라면서 말이지.”
핀이 키득대며 웃었다. 슬쩍 타리크 용병단 쪽 눈치를 본 그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솔직히 켈롭 그렇게 된 거 쌤통이야. 진짜, 사람 죽은 거 가지고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난 그 자식 밤마다 마물한테 물려가길 빌었는데 내 소원이 이뤄진 거 아닌가?”
스스로 응징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소원조차 소심하다.
이게 자신 또래 소년들의 평범한 생각인지, 또래를 만나본 적이 없는 헬무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핀은 소심하고 겁쟁이였다.
“너도 살아 있는 게 어디야. 마물을 만나고도 살아 돌아온 역전의 용사님! 평생 쓸 운을 다 썼을 거야.”
핀이 헬무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웃었다. 엉기는 게 불편한 헬무트는 핀을 밀쳤다.
“그만해.”
하지만 핀은 헬무트에게 밀쳐 내지는 것에 익숙했다. 생긴 것부터가 도도한 녀석이다.
“저 컴컴한 곳에서 그놈을 본 기분이 어땠어? 나 죽었구나 싶지 않았어? 야, 난 그놈이 심장 빼 들고 서 있을 때 기절하는 줄 알았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던데.”
아마 원숭이 마물과 싸우라고 했다면 기절했을 거라고 핀은 진지하게 말했다.
파헤의 숲에서 나호의 모습을 봤다간 심장마비로 죽었을 녀석이다.
“글쎄, 별로.”
“태연한 척하긴. 오줌 싼 건 아니지?”
‘이 녀석, 용병의 자질은 모르겠지만 검사로서의 자질은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헬무트는 말을 삼키기로 했다.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 핀이 빽빽대면 귀찮아진다.
핀은 식사 담당이었다. 이런 야영지에서 단순한 식재료만으로도 맛좋은 음식을 다양하게 만들어 냈다. 그것이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핀에게 권력을 안겨 줬다.
식사 시간에는 핀이 뭐라고 까불어 대건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실 페이스 용병단에서는 그걸 위해 핀을 데려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요리사로서 급료 값을 넘치도록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헬무트는 생각난 김에 말했다.
“나 의뢰비 늘었어. 켈롭 몫을 내게 준대.”
“와우 좋겠다. 그렇게 집요하게 괴롭혀 대더니 그놈도 쓸모가 있네. 나중에 한턱내는 거지?”
“한턱을 내?”
“그래, 의뢰를 마치고 마을에서 말이야. 몰래 술 좀 먹자고. 성년이 안 됐다고 사람들이 자꾸 술을 못 먹게 한단 말이야.”
소곤거리는 그들을 향해 그림자가 졌다. 헬무트는 모른 척했다. 곧 묵직한 주먹이 내리꽂혔다. 딱!
“아야!”
비명을 지른 핀의 눈에 눈물이 글썽 고였다.
“멀쩡한 애를 잘도 꼬드긴다! 이 자식이 이거, 의뢰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술 먹을 궁리부터 하고 있어!”
“타, 타냐…….”
머리를 부여잡은 그에게 도끼눈을 뜬 타냐가 소리쳤다. 그녀가 손짓했다.
“출발한다, 가자!”
핀은 구시렁거리면서도 그녀의 말에 따랐다. 헬무트도 함께였다.
*
“뭔 놈의 마물이 이렇게 빈번하게 출몰하지.”
이제는 익숙해진 마차 밑에서 아예 주저앉은 핀이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깥쪽에서 맹렬히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오늘 종일 듣고 있는 소리였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습격이 시작되었다. 물리치고 출발하고 나면 다른 놈들이 또 몰려왔다.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용병들은 몰려오는 마물을 상대로 끊임없이 싸웠다.
헬무트와 핀은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마차 밑으로 들어가 숨었다.
“이 숲의 마물이 모두 몰려온 건가?”
“그럴지도.”
헬무트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파헤의 숲과 자신을 연결 짓지 못하도록 실력을 감추자고 결심하고 나니 싸우고 싶어서 근질근질했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꼭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서야겠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바깥쪽 마기의 기척을 보니 다 잔챙이들이다. 용병들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거였다.
“그 원숭이 마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습격도 없었잖아? 그때 죽은 마물 가족들이 복수하러 온 건가?”
창의적인 발상이었다. 헬무트는 핀을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핀은 바깥쪽 동정에 귀를 기울이느라 헬무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근처에서 키엑!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자 핀은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헬무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힘을 빼려는 것 같은 움직임인데.”
지능 있는 원숭이 마물. 놈의 마기가 거리를 두고 느껴졌다.
놈은 용병단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서지 않은 건 더 효율적으로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부하들을 나눠서 끊임없이 보낸다. 신경이 곤두선 인간들은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들이 지쳤을 때 나타나 처리한다. 뭐, 그런 구상하기 어렵지 않은 계획.
파헤의 숲에서야 마물이 인간을 상대로 고전을 치르는 일 자체가 거의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상대할 때도 단순하게 정면으로 맞부딪치지만은 않는다.
원숭이 마물은 인간을 상대해 본 적이 있는 듯했다. 핀이 뒤늦게 헬무트 쪽을 돌아봤다.
“어, 어?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
그 뻔한 계획을 알아챈 이가 있을까? 하지만 알아챈다고 한들 어쩔 수 있을까.
저 숲속으로 쳐들어가 원숭이 마물을 잡아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놈이 당장은 싸워 주지 않겠지.’
헬무트를 경계하고 있을 터. 그리고 자신을 맞상대한 3명의 2급 용병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용병들은 자신의 의뢰에 충실했다. 오면 맞서 싸우고, 짐마차를 지키며 나아간다.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헬무트는 그 흐름 속에서 조용히 관망했다. 그에겐 지루한 흐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