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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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주제도 모르고 미친 말처럼 날뛰는군. 평민 따위가!”
제롬의 안면 가득 분노가 드러났다. 단순히 분노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표정이었다. 사바트가 내뱉었다.
“옆에 있는 녀석은 빠져라. 빠지면 살려 주지.”
그는 아스카와 붙어 다니는 시안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건 그가 보이는 최대한의 관대함이다.
“아니, 바덴으로 가서 일러바칠 수 있으니 함께 제거하지.”
제롬이 바로 제지했다. 그의 분노는 일말의 관대함을 보일 수 없을 만큼 컸다.
시안이 중얼거렸다.
“빠지라 하면 빠질 생각이었는데.”
아스카가 바로 눈을 부라렸다.
“의리 없는 자식.”
“나도 네 말투가 재수 없었어.”
원래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아스카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넌 저쪽으로 가서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해결하지.”
파헤의 숲에서 마물과 싸우긴 했지만, 거기서 겪은 가장 큰 고난은 엘라가의 등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베네타에서도 별 충돌이 발생하지 않아서 싸울 일이 없었던 터라 좀이 쑤셨다. 검 손잡이를 쥐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싹 다 죽은 줄 알아라.”
앞으로 나서며 지껄이는 아스카의 서슬 퍼런 기세에 사바트와 제롬도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쪽의 준비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수가 많았다. 이를 악문 사바트가 외쳤다.
“쳐라!”
그래 봤자 갓 아카데미를 졸업한 검사 따위가 얼마나 실력이 대단하겠는가.
기사뿐만 아니라 경험 많은 2급 용병도 웃돈 주고 고용했다.
용병길드의 방침상 귀족을 핍박하는 의뢰는 받지 않지만, 상대가 평민이라면 슬쩍 의뢰를 틀어서 받기도 하는 것이다.
루갈 가문의 기사들과 용병들이 아스카에게로 다가섰다. 아스카에게도 쉽지만은 않은 상대.
목숨을 건 경험은 성장을 가져다준다. 헬무트만큼은 아니지만, 아스카도 파헤의 숲에서 소득을 얻었다. 검사로서의 성장. 쉽지 않다는 게 진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야지, 덤벼.”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결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멈춰라!”
돌연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고, 어디선가 나타난 기사들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나같이 만만찮은 실력자들. 그들의 옷에 새겨진 문양을 본 사바트와 제롬이 눈을 부릅떴다.
“황실 기사단이 왜!”
기사들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깐깐하고 차가운 인상에 말끔한 흰색 마법사 로브. 그의 옷에서 마찬가지로 황실의 문양이 수 놓여 있었다.
황실 마법사 미겔로. 그레타 아카데미 출신으로 아레아나 테레사와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수석 졸업자. 시안과 아스카에게는 까마득한 선배였다.
그리고 황실 마법사 중에서도 높은 입지를 차지한, 차기 수석 마법사. 제국의 귀족이라면 웬만하면 다 아는 유명인이었다.
그는 아스카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사바트 일당에게로 고개를 돌려 차갑게 내뱉었다.
“이자들을 연행하시오. 중죄를 저지른 자들이니.”
기사 몇 명이 나서서 사바트와 제롬을 위시한 그의 일당들을 포박했다. 황실 기사단에게 맞선다는 건 반역의 의미다.
미겔로까지 등장한 이 시점에서 제국 귀족인 사바트와 제롬이 반항하는 건 불가능했다.
제롬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고작 저 녀석이 뭐라고!”
“제국으로 가면 알게 되겠지.”
미겔로는 차갑게 내뱉었다. 기사 몇 명이 포박한 이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미겔로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노골적으로 적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시선이 거북했다.
‘접근하는 걸 알 수 없었어. 기척을 죽이는 마법을 썼다는 소리지. 그걸 내가 느끼지 못했다면, 나보다 한참 상위의 실력자라는 거야.’
기사도 이렇게나 많은데 반항은 의미 없다.
시안은 눈을 깜빡였다. 그보다 수준 높은 마법사가 드물기는 했지만 찾아보기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아레아와는 달리 시안은 수재였지만, 세기에 한 명 날까 말까 한 수준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레카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테레사 피델리스도 당장 그보다 수준 높은 마법사니까.
하지만 너무 빈번하게 만난다. 그게 문제였다.
‘근데 황실 마법사에 기사들까지 여기 바덴에는 왜?’
시안의 시선이 바로 아스카에게로 옮겨졌다. 그는 황실 기사단이 등장한 순간부터 굳어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껏 싸워 볼 수 있어서 흥분했던 터라 아쉬움이 있을 만도 한데, 그런 생각도 싹 지워졌다.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황으로 가득한 아스카의 안면이 애써 태연함을 덮어썼다.
“뭐야, 당신은. 도와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스카는 모른 척 뻗댔다. 그는 미겔로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한테 별로 관심이 없고 검사일 뿐인 아스카가 황실 마법사 미겔로가 누군지 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연관성을 입증했다.
시안을 버리고서라도 맹렬히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느새 기사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사바트 일당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실력자들. 아스카가 느끼기에도 무조건 지는 싸움이다.
미겔로는 아스카의 모른 척을 싹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찾고 있었습니다, 아스카님.”
뻣뻣한 마법사치고는 공손한 태도였다. 시안은 다시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아레아의 추궁을 받았을 때도 아스카는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끝끝내 입을 다물었다. 아무 문제 없을 거라면서.
근데 황실 기사단에 황실 마법사까지 우르르 몰려오다니.
‘대체 정체가 뭐지?’
당연한 의문. 그 답은, 바로 알 것 같았다.
황실 기사들이 이렇게나 많이 몰려온 데다가 황실 마법사 중에서도 미겔로씩이나 되는 인물이 움직였다는 건, 제국에서 중요한 사안이라는 소리다.
황실과 연관된 중요한 사안.
아스카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답은 하나다. 황족.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시안이 아연해하며 외쳤다.
“아스카, 너네 가문이랑은 엮이는 일 없을 거라면서!”
그런데 황실이라니, 황족이라니. 아스카의 표정에 드물게도 당황한 기색이 묻어났다.
“아니…….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무례하군. 고귀하신 분이니 그런 식으로 편하게 말하지 말도록. 여기는 아카데미가 아니다.”
미겔로가 차분한 어투로 지적했다.
‘아스카가 고귀하신 분…….’
그 말이 전해주는 괴리감에 정신이 달아났다. 아스카도 그렇게 느꼈는지 달아오른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이 녀석은 내 친구야! 그리고 누가 고귀하신 분이야 닭살 돋게!”
“아직도 부인하고 계시나 보군요.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계시는 거겠지요.”
미겔로가 어린애를 보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스카 님을 찾느라 시간이 오래 지체되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스카는 입을 딱 다물었다.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뻔했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 맺힌 얼굴에 눈에 선했다.
이만한 전력을 보내왔으면, 강제로라도 데려가겠다는 뜻이리라. 자신 혼자만이면 반항이라도 해보겠지만, 시안도 함께 있다.
‘여태까지 나한테 신경도 안 썼으면서 갑자기 이제 와서 왜 이래.’
아스카로서는 갑작스럽다 못해 이상하게까지 느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높은 신분을 가진 자에겐 제약이 따른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만 어리다는 이유로 허락되는 자유도 있었다.
성인이 되면, 이제껏 누리던 자유를 박탈당할 거라는 것을 아스카는 몰랐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유예는 끝났고 이제 그의 아버지는 그를 내버려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미겔로가 감정 없는 말투로 말했다.
“모시고 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의 눈길이 슬쩍 시안을 훑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시안 로드릴. 그는 아스카에 대한 정보를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안다.
“그래, 가자.”
망설임은 잠시, 결국 아스카의 입이 떨어졌다. 그의 얼굴은 드물게도 심각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담판을 지어야겠군.’
이렇게 나온 이상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시간은 좀 걸릴 테지만 말이다.
“시안, 너도 함께 가자. 우리 집으로.”
시안은 말발이 좋다. 그게 아버지한테도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그는 모범생이고, 어른들이 좋아할 만한 상이었다. 데려가면 어머니도 괜찮게 보실 것이다.
아스카답지 않은 계산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이루어졌다.
“내가 왜? 나까지 갈 이유는 없잖아.”
시안이 질색해 보였다. 상황은 압박적이었으나 여전히 반말이었다.
시안에게 아스카에게 공대를 쓰는 건, 그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것만큼이나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왠지 들어가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나가는 것은 마음대로가 아닌 그런 곳으로 향하게 될 듯한 느낌이 들어서 몹시 꺼려졌다.
아스카가 쌍심지를 치켜들었다.
“의리 없이 나를 두고 너 혼자 빠져나가겠다고?”
“나 원래 그런 거 없는 거 알잖아. 아까는 빠지라면서.”
“그땐 그때고.”
혼자 가기 싫었던 아스카와 시안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시안에게는 선택권이 없던 것이다.
미겔로가 시안에게 다가섰다. 그의 얼굴은 차갑고 엄숙했다.
“시안 로드릴.”
“왜, 왜요?”
“함께 가지. 아스카 님이 원하신다.”
미겔로가 턱짓했다. 그거면 이미 결정된 것처럼. 여기서 신분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안심하라는 듯이 덧붙였다.
“손님으로 가게 되는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설마 나랑 어울렸다고 고문실에 끌려가기라도 하려고.”
아스카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하하 웃었다.
황실 기사와 마법사를 배경에 두르고 서서 지껄이는 소리는 왠지 모를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요, 가죠.”
시안이 마지못해 대꾸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국 체험도 하면서 손님을 홀대하지 않을 테니, 호사도 누려 보자고 생각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근데 바덴에서 만나기로 한 헬무트와 아레아는 어떡하지?’
그러나 시안도 마법사. 연락할 방법은 있을 터였다.
그렇게 그들의 목적지는 반강제로 변경되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