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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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었다. 모래바람이 휘도는 사막은 먼지가 일어, 그날따라 희뿌옇고 흐렸다.
뼈와 살을 바짝 말려 버릴 듯이 쨍쨍한 햇빛도 먼지의 막에 가로막혔다.
마물이 마을을 습격한 지금, 만약 사막을 지나는 이가 있다면 불분명한 시계에 불안감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미약한 시각에 의존하여 사는 인간들에게나 큰 문제. 마물에게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사실이다.
놈은 모래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건조한 모래가 놈의 표피를 사각사각 긁어내렸다.
그 감각 탓일까. 목이 말랐다. 얼마 전 피와 살점으로 가득 배 속은 이미 텅 비어 버린 채였다.
인간이란 마물에게 그런 존재다. 아무리 씹어 삼켜도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미칠 듯한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이제 남은 것은 허기진 본능뿐.
하지만 놈은 알고 있었다. 놈이 운 좋게 차지할 수 있었던 힘의 정수. 붉은 전갈의 핵.
그것이 놈의 마성을 일깨웠다. 중요한 경험과 지식이 몸에 밴 듯이 살아났다.
인간은 먹이지만, 때로는 그 어떤 마물보다도 위협적인 적이 된다.
그런 인간들이 있었다. 단단한 표피와 날카로운 이, 거대한 몸집이 무색하게 마물을 산채로 분해하는 인간들.
마기와는 다른 힘을 가진 인간들, 빛나는 쇠붙이를 다룰 줄 아는 인간들. 혼자여도 강했고, 여럿일 때는 더 강했다.
팔마 기사단. 그들의 이름까지는 몰랐지만, 놈은 그들이 여기 이 사막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이 놈이 마을을 습격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건 놈으로서도 위험한 일이다. 그건 붉은 전갈조차 하지 못한 일이니까.
하지만 붉은 전갈은, 오래도록 그들을 피해 살아남았고, 수많은 인간을 먹어치웠다.
놈도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놈은 본능을 억누를 수 있을 만큼 마성을 자각한 마물이니까.
쉭쉭. 놈에게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입에서 내는 발성이 아닌, 몸으로부터 나오는 소리.
놈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식욕이 일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점령했다.
기척이 느껴졌다. 저 너머에서 몇몇 인간들이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놈이 처음 습격한 이후로, 작은 집단으로 모여 살던 인근의 인간들은 두터운 돌벽이 쌓인 곳으로 도망쳤다.
그곳에는 수많은 인간이 있었지만, 놈은 그곳을 침범할 수 없었다.
놈은 알고 있었다. 인간이 많이 모인 곳일수록 위험하다는 것을.
하지만 돌벽에 쌓인 은신처는 은신처일 뿐이다. 언제까지나 거기 갇혀 살 수는 없는 법.
때로 인간은 무리를 지어 은신처 밖으로 나왔다. 다른 서식지로 향하는 인간들.
모래 속에 푹푹 빠지는 발과 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나약한 몸뚱이를 가진 인간들!
그들은 놈의 영역이나 다름없는 사막에서 놈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쉭쉭. 놈을 에워싼 모래가 흔들렸다. 사막에는 세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 폭풍이 부는 것처럼 강한 바람이었다.
모래 아래로 이동하는 놈의 움직임은 그 바람 속에서 감춰질 것이다.
서서히 먹잇감을 향해 접근하는 놈의 눈에는 붉은 광채가 맴돌고 있었다.
*
“이 정도면 맛있게 보이겠지.”
루크 예거가 자기 뺨을 툭툭 쳤다.
건장한 성인 남자. 훤칠하게 큰 키에 근육질이라 몸의 면적도 넓다. 고기가 좀 질기긴 하겠지만, 마물이 탐낼 만한 큼직한 먹이였다.
기사 한 명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단장 정도면 뭐 젊고 고기도 야들야들하지요.”
“아마 놈도 알아보고 우리 쪽을 노릴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마침 마물이 편안하게 느끼는 날씨니.”
루크 예거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의 표정에는 별다른 긴장감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마물을 토벌한 팔마 기사단장이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미끼를 던졌음에도 마물이 나타나지 않는 것뿐이었다.
“다른 녀석들한테서 신호가 온다면 바로 이동해야 한다. 이런 날씨에서는 혹시 신호를 보지 못할 수 있으니 다들 주의해라.”
“예, 알겠습니다. 단장님.”
팔마 기사단원들은 네다섯 명이 한 조로 나뉘어 말도 타지 않은 채 움직이고 있었다.
그보다 적은 인원이면 수상하게 보일 테고, 그보다 많은 인원이면 놈도 섣불리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일부러 도보로 이동하고 있었다. 말을 탄다면 도망치기 쉬우니, 그보다 다리가 느려서 더 쉬운 먹잇감으로 보이기 위해서다.
“제발 좀 우리를 노려 주기를.”
루크 예거는 중얼거렸다. 나뉜 조 중에서는 그가 있는 이쪽의 전력이 최고지만, 다른 쪽으로 간 팔마 기사단원들이라고 해서, 약하지는 않다.
적어도 놈이 등장하면 신호를 보내고 이쪽이 합류할 때까지 버틸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팔마 기사단장이 있는 이쪽에 나타나 주는 것이 가장 편안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모래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든 모래 섞인 바람이 시야를 가득 메우며 안면을 후려쳤다.
그들은 모두가 두건을 깊이 눌러쓴 채, 짐을 짊어지고 이동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말이 점점 없어졌다. 팔마 기사단원이라고 해도 입을 열면 들어오는 모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대한 모래 언덕을 오르던 때였다. 한차례 강렬한 바람이 언덕 위를 쓸고 내려갔다.
촤아아아아!
모래가 와르르 무너져내리며 그들을 미끄러트렸다. 일순 균형을 잃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열을 지어 걷고 있던 다섯 명이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다들 괜찮나?”
그 말을 내뱉자마자, 루크 예거는 눈살을 찌푸렸다. 진동이 느껴졌다. 자연적인 울림이 아니다. 저릿한 마기가 느껴졌다.
피부가 오싹했다. 그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정면으로부터 삐죽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촤악! 카강!
“오호라.”
가시와 함께 비산한 모래 알갱이가 안면을 후려쳤다.
하지만 검을 뽑아 저를 향한 공격을 막아 낸 루크 예거는 씩 웃었다.
하필이면 그를 노렸는가. 제대로 걸렸다.
쏴아아아.
흘러내리는 모래 속에서 거대한 몸체가 모습을 보였다.
모래 빛과 유사한 색의 털투성이 몸체. 여덟 개의 눈이 붉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거미로군.”
쉭쉭! 놈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놈이 공격한 순간 이 인간은 놈의 이빨에 꿰뚫려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쉽게 놈의 공격을 방어해 냈다. 이건 절대로, 보통의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다.
마주 선 인간에게선 공포감이 느껴지긴커녕 여유가 느껴졌다.
그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비스라고 불리는 힘이었다.
루크 예거가 목소리를 높이며 손짓했다.
“부하도 달지 않고 오셨군. 다들 손님을 대접해 드려야지!”
피요오오오오 펑! 퍼펑!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간 신호탄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빛을 퍼뜨렸다.
그 자리에 있는 팔마 기사단원 전원이 검을 뽑아 들었다.
놈은 그제야 이들이 누군지 깨달았다. 붉은 전갈로부터 물려받은 기억 속에서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속임수였다.
쉭쉭! 동요하는 놈을 향해 다섯 개의 검이 들이밀어졌다. 루크 예거가 선언했다.
“오늘로써 네 운명도 정해졌다!”
*
사막에서는 대규모의 추격전이 펼쳐졌다. 정확히는, 하나의 마물을 대규모의 인원이 추적하는 양상이었다.
거대한 황색 거미는 모래를 퍼부으며 포위망을 돌파했고, 그 직후 빠른 다리로 사막을 주파하고 있었다.
제가 지배하는 주변의 마물을 불러모아 길을 가로막으면서.
팔마 기사단원들은 용케도 놈을 따라잡았다. 추적 마법에 능한 마법사도 함께한 터였다.
이 드넓은 사막에서 숨어 있는 놈을 찾아내긴 쉽지 않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기에 모습을 드러낸 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더럽게 빠르구만.”
기사단원 한 명이 거친 숨을 토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말도 없이 두 다리로 비스를 끌어올려 거미를 쫓고 있었다.
모두가 비슷한 사정이었다.
루크 예거는 가장 앞장서서 검을 쥐고 달렸다.
‘반드시 놈을 잡는다.’
학습 능력이 있는 놈이니, 두 번 똑같은 수법에 당하진 않으리라. 어떻게 꼭꼭 숨어서 인간을 잡아먹을지 모르니 이 기회에 처리해야 했다.
다른 팔마 기사단원들은 그만큼 빠르지 못했다. 루크 예거가 다른 이들을 따돌리다시피 하고 앞으로 홀로 튀어나온 모양새였다.
선두에 서 있는 그의 시야에 놈의 뒷모습이 보였다.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몸을 날려서, 놈의 다리를 자른다면!
그때 놈이 우뚝 멈춰섰다. 저 앞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잿빛의 궤적 같은 것을 본듯했다.
낯선 듯 익숙한 기운이었다. 비스라 불리는 그것. 거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쿵. 모래 바닥은 거미가 바닥과 충돌하는 충격을 둔중하게 받아 삼켰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루크 예거는 이제껏 쫓고 있었던 거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흐릿한 시야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어라 너는.”
루크 예거가 눈을 부릅떴다.
한 청년이 거기에 서 있었다. 사막과는 대조되는 빛깔이었다.
암흑의 정수를 담아낸 듯이 새카만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와 새하얀 피부.
어딘지 위압적인 분위기의 청년이다. 귀족적인 인상에 바소르의 기준으로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긴 이목구비는 모난 데 없이 반듯했다.
루크 예거는 어딘지 낯익은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시선이 마주쳤다. 검은 눈의 청년이 문득 입을 열었다.
“당신은 참 운이 좋군요.”
많은 함의가 담긴 말이었다. 그 목소리. 예전과는 달리 많이 굵직해졌지만, 그 결은 변하지 않았다.
전율이 일었다. 루크 예거는 본능처럼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곧 소리쳤다.
“하이드!”
상대는 느긋하게 대꾸했다.
“내가 알려준 이름은 그게 아닐 텐데.”
루크 예거는 잠시 후에야 기억 속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알려준 이름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헬무트.”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하지만 어떤 기억은 단 한 순간일지라도 깊숙이 각인되어 평생 잊히지 않는다. 루크 예거에게는 헬무트라는 존재가 그랬다.
그 헬무트가, 4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이 자리에 있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