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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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아얏!”
이번에 얻어맞은 쪽은 아스카였다. 시안이 보기 드물게 화를 냈다.
“미친 자식, 그럼 책임감 없으셔서 너랑 네 어머니를 나 몰라라 했으면 좋았겠냐?”
“너, 손이 꽤 빠른데. 검술에 재능이 있을지도.”
아스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시안이 화를 냈다는 사실보다 그가 자신을 때리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헛소리하지 말고!”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책임감이 있을 거면, 내가 평민으로 자란데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니야? 나는 평민이었고, 평민으로 자랐다고. 그런데 하루아침에.”
아스카가 항변했다. 갑자기 집이 바뀌었다. 황궁은 아니나 제도의 대저택이다. 저택까지 들어가는 길이 엄청나게 길다.
신분도 바뀌었다. 바깥의 평민 아이들과 자유롭게 어울려 놀 수 없다.
혼자서 외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사를 줄줄이 달고 다니란다. 신분에 맞는 행동을 보이란다.
황족이기에, 제약은 많아지고 이제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바쁘다. 그녀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파르네세 대공비로서 인정받기 위해선 그녀 나름대로 노력이 필요하다.
아스카의 고난 같은 건 그에 비하자면 사소한 일이다.
또래 어린 하인들에게 말을 놓으라고 하고 함께 어울리며 놀았다가 혼찌검이 났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들은 평민이고, 아스카님은 황족입니다.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아버지의 하수인인 집사는 깐깐했다. 그는 아스카가 적응해야 한다면서, 그의 주변에서 또래의 어린 하인이나 하녀들을 모두 물렸다.
주변엔 이제 어른들뿐이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황제와 가까운 사이라던 아버지도 바쁘다.
거의 평생을 떨어져 살다 보니 데면데면한 사이였는데, 대화를 나누려고 해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수업을 듣기 싫다고 책상을 뒤집어엎고 정원으로 달아나는 한차례의 소동을 벌이고 나자 아버지는 그제야 아스카에게 신경을 썼다.
아버지는 간단히 해결책을 던져줬다. 그는 아스카에게 어울릴 만한 아이들 몇몇을 붙여다 주었다.
‘외로워서 그런 거라면 새 친구들을 사귀어 보아라.’
그렇게 새로 생긴 세 명의 친구들.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는 데다가, 태도가 귀족적이다.
예의 바르면서도 어딘지 거만하다. 파르네세 대공이 아무 친구나 붙여주진 않았을 터.
아스카에게 모범이 되어줄 만한 우수하고도 품행 단정한 고위 귀족 자제들이다.
아스카는 파르네세 대공의 유일한 자식. 황족이다. 그 말이 뜻하는 바를 그들이 모를 리 없다.
귀족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런 것들을 체득하면서 자라나니까.
처음부터 그들은 서열이 정해진 채 만났다. 고작 열 살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스카 님.’
‘말 놔도 좋아. 왜 나한테 존대를 해?’
‘원하신다면 말을 놓지요. 대공께서도 친구로 지내길 원하시니까요.’
그 세 녀석은 아스카에게 어딘지 거북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행동을 영악하게 살피는 느낌도 그렇거니와, 자꾸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
아스카가 뭔가를 하자고 하면 따를 때도 있지만, 정원에서 나무에 오르자거나 하는 위험한 제의에는 ‘대공께서 원하지 않을 거야’라면서 만류했다.
할 수 있는 일과 하면 안 될 일을 끊임없이 아스카 옆에서 주지시켜 주고, 그의 행동을 제약하려고 드는 점은 다른 이들과 똑같다. 어딘지 불편하다.
친구로 지내라고 했지만, 도저히 친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스카는 외로웠고, 가끔 찾아드는 그들과 어울리는 것이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서재에 모여 체스를 두던 중이었다. 아스카는 의외로 체스를 잘 두었다.
다과를 내온 하녀 한 명이 찻잔을 놓다가 그때 마침 체스말을 움직이던 한 녀석의 손과 부딪쳤다. 그대로 찻잔이 쏟아져서 무릎 위를 적셨다. 그는 바로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짓이야!’
‘도, 도련님! 괜찮으신지요!’
너무 뜨거운 찻물은 차의 향취를 상하게 한다. 찻잔에 담긴 차는 화상을 입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뜨거웠다.
눈이 홱 돌아간 녀석이 바로 하녀의 뺨을 후려쳤다. 짝!
‘어디서 감히!’
하녀가 뺨을 움켜쥐자, 그는 찻주전자를 들어 그 내용물을 그녀의 머리에 끼얹었다. 하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스카가 뒤늦게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충격적인 장면에, 당시로서는 순진했던 아스카도 미처 반응을 빨리하지 못했다.
아스카의 표정을 본 그는 그제야 멈칫거렸다. 하녀는 울고 있었다.
그는 곧 부드러운 표정이 되어, 아스카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평민이 귀족의 몸에 상해를 입히는 건 중죄야. 하지만 너희 집안의 시중인이니 이것으로 넘어가지.’
‘그래, 아스카. 손님한테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시중인들에겐 본때를 보여줘야 해.’
‘네가 마음이 약해서 그러는가 본데, 저 하녀는 쫓아내거나 엄히 벌하는 게 좋겠어.’
주변 녀석들도 일제히 그의 편을 들었다.
물론, 귀족 중에서도 어지간히 성질이 더러운 녀석이 아니고서야 뜨거운 물을 사람에게 쏟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상대는 고작 하녀인 것을. 분풀이로는 과했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시중인들이 급히 하녀를 데리고 나갔다. 아스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물었다.
‘내가 저런 실수를 했다면? 나한테도 그랬을 거야?’
그 질문을 꺼내는 아스카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당연히 안 그러지. 넌 다르잖아.’
‘하녀 따위의 실수와 네 실수를 어떻게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어.’
그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아스카로는 그때에도 지금도 알 수 없었다. 아스카는 불쑥 내뱉었다.
‘나도 평민이었는데?’
그때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아스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부로 그들의 얄팍한 우정은 끝장났다.
귀족과 평민. 황족과 귀족과 평민. 그렇게 나뉜 세상은 아스카가 평생 알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면 그가 살던 시골 마을에서는 모두가 평등했고, 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그의 할아버지뿐이었으니까.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인정받는 원로이긴 하지만, 딱히 귀족으로 대우받는다거나 마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닥친 새로운 세상은 낯설고 이상했다. 제도의 귀족들은 특히나 더욱 권위적이었다.
그들은 평민을 그저, 자신들과 구분된 가축 같은 생물체로 취급했다.
황족이 되어서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보는 것은 이상하고, 불쾌하고 때로는 역겨웠다.
황족인 자신한테는 빌빌 기면서, 평민은 평민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대하고 차별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아스카와는 별 인연이 없었다.
아스카는 대공이 소개해 준다는 모든 친구를 거부했다. 그런 것이 친구라면, 사귀지 않는 편이 낫다.
그는 아버지가 그를 불러낸 자리에서도 말했다.
‘난 친구, 필요 없다니까요.’
일단 아버지의 안목을 믿을 수 없다. 그가 데려온 고위 귀족 자제들은 특히 그런 성향이 짙었으니까.
당당하게 선언하는 아스카에게 아버지가 제의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검을 배워 보는 게 어떠냐.’
가정교사의 말에 따르면 아스카는 영민하나 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육체적인 활동을 즐긴다고 했다.
황족의 혈통은 검에도 재주가 있다. 아스카도 검에 흥미가 있었던 터라,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기본 검술을 익히고 기초 훈련을 받았었다.
검을 배우고 실력을 쌓아서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이 어떠냐는 게 아버지의 제안이었다.
‘바덴의 아카데미에서는 신분을 숨기고 친구들을 편안히 사귈 수 있지. 아카데미 방침상 학생은 신분을 누출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 네 입맛에 맞는 친구를 거기서 사귀어 보는 것은 어떠냐.’
아스카가 아무하고도 교류하지 않고 외로이 지내는 건, 좋지 않다고 본 터였다.
황족이기에 일정한 소양을 갖추기만 한다면 굳이 어떤 부분이 뛰어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학문이나 마법 쪽이 아니라면 검술 쪽으로라도 두각을 보이는 편이 나았다.
그를 파르네세 대공의 적자로서 선보이기에도.
아스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아스카는 바로 다음 날부터 검을 배웠다. 그의 재능은 상상 이상이라 모두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 갑갑한 곳을 벗어나, 아카데미에 가겠다는 염원이 아스카에게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고, 쏟아낸 땀만 강을 이룰 만큼 노력이 있었다.
검을 제대로 배운 지 몇 년 되지 않아, 그는 입학생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그레타 아카데미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 아스카의 과거다. 유심히 듣고 있던 시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헬무트만큼은 아니지만, 네 인생도 참 음, 뭐랄까? 어디 소설에 나오면 딱 좋겠다.”
“뭐라는 거야. 전설적인 정령사의 후손인 주제에.”
우려할 것도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시안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헬무트나 샤를로트나 리노사 대공의 자식이었다. 그들과 아스카가 다른 것도 없다.
“아무튼 그래서 네가 아카데미에서 평민인 척하고 다닌 거구나. 용케 아무도 몰라봤네.”
“내가 파르네세 대공의 아들이라는 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난 사교계에도 나간 적이 없거든. 그때 세 녀석은 제국 아카데미에 다녔을걸? 게다가 나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고 다니지 않기로 입단속 당했으니까.”
“그런데 네가 아카데미로 떠나면, 너희 어머니는 힘드시지 않았을까? 게다가 졸업하고도 넌 거기가 싫다고 이렇게 가출한 거잖아”
“가출은 무슨, 독립이거든? 그리고 어머니야 뭐,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셔서 거기서 잘 적응하고 사시지. 부모님 두 분 사이는 좋아. 어머니도 제도에서 생활하는 게 마을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좋으신가 봐. 제도는 화려하고 파르네세 대공비라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고.
어머니는 사람들의 호감을 잘 사는 편이고, 음 좀 단순한 데가 있으시거든.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든 거의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신달까. 힘들거나 불쾌한 일이 있어도 금방 잊으신단 말이지.”
아스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시안은 감탄하듯 말했다.
“세상을 행복하게 살기엔 좋은 성격이시네. 아, 비꼬는 거 아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쨌든 어머니는 문제가 없어. 문제는 나지. 나는 이곳이 싫어.”
“왜 싫은지는 알 것 같은데, 넌 어쨌든 자그마치 제국의 황족인 거잖아.”
그쯤 되면 싫고 좋고를 따질 수 없이, 자유로운 삶이 허락될 만한 신분이라고 볼 수 없다.
이렇게 도망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