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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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네세 대공의 움직임은 대단히 빨랐다. 마치 아스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아스카는 다음 날 바로 황실 기사단에 투입되었다.
어쩐지 황실 기사단 예복까지 입고 본격적으로.
“오늘부터 여기서 근무하게 될 겁니다.”
그를 안내하는 기사가 말했다. 딱딱한 말투. 아스카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게 티가 났다.
원한을 잊지 않는 아스카는 그를 바로 알아봤다.
그자는 아스카를 붙잡아오는 임무를 맡았던 황실 기사단원 중 한 명이었다.
아스카의 신분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는 건 기사단 내에서도 알려졌거나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황실 기사단은 황제의 명에 따르고 제국을 수호하는 자들. 입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기사단 안에서는 말이 돌 수 있다. 일단 아스카를 대하는 태도에서 티가 날 테니까.
아스카는 황족에다가 시비를 부르는 성격에 성질도 더럽다.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혹은 ‘이건 비밀인데, 널 생각해서 말해주는 거야’라는 식으로 말이 전해지다 보면 소문이 나는 것도 금방이었다.
“이제 입단한 지 3개월 된 신입 기사단원들이 새로운 단원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 중입니다. 부디 언행에 주의하시기를.”
아스카가 그들에게 악영향을 줄 것을 무척 우려하는 눈치였다.
그 정도면 슬슬 황실 기사단에 익숙해져 갈 때다.
“그건 네 알 바 아니고, 신경 끄고 꺼져.”
명령에 따랐든 어쨌든 원한을 품은 상대에게 곱게 말할 만큼 유순한 성격이 아니었다.
아스카의 냉담한 일갈에 기사의 낯빛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상대는 대공의 아들. 뭘 어쩌겠는가. 기사는 분노를 삭이면서 물러갔다.
벌컥! 아스카는 노크도 없이 당당하게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쨌든 황실 기사단원이라는 건 그에게 몽땅 때려눕혀야 할 적 정도로 생각되고 있었다.
널찍한 방안에는 세 명의 기사들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스카가 들어서자 일제히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아스카는 들어서자마자 던졌다.
“난 아스카다, 나 아는 사람?”
이중 누군가에겐 언질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세 명의 기사는 멀뚱멀뚱하게 아스카를 쳐다봤다.
“뭐야, 대단한 신분이신가?”
한 명이 삐딱하게 입을 열었다. 아스카는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말했다.
“그래, 대단한 신분이시다.”
다들 어이없는 눈초리로 아스카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중 한 명이 손을 쳐들었다.
“네, 아스카 님. 환영합니다. 평민 출신 기사, 랄프입니다.”
“……뭐?”
아스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국의 황실 기사단하면, 명문 검가 출신 귀족들이 우글거리는 곳 아닌가. 느닷없이 평민이라니.
상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평민 출신이 있다니까 놀라셨나 보죠? 황실 기사단은 실력과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갖추고 있는 자라면 누구든 입단할 수 있지요.”
“물론,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서요. 아마 테스트를 보지 않고도 들어왔을 그쪽은 모르겠지만.”
“가넌!”
“왜, 사실이잖아. 나도 나름 검가 출신인데 테스트를 봤단 말이지. 얼마나 대단한 신분이시기에, 테스트도 없이 바로 신입으로 꽂혀.
난데없이 오늘 신입이 한 명 더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예상했다고. 아! 뭔가 대단한 가문 출신의 귀하신 분이 오시나 보다.”
“맞아, 우리 오늘 훈련 일정도 몽땅 취소됐지. 저분 때문에.”
“4인이 3인보다 짝수라 관리하기 편하다고 하니까. 그 명목으로 뽑은 거겠지.”
아스카에게 눈총이 쏟아졌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아스카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뭐지, 정말 신입 기사단원 체험을 해보라는 건가? 아카데미에서처럼 나에 대해서는 감추고?’
아스카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다. 게다가 그에게 다른 사람을 다스릴 역량이 있는지 확인되지도 않았다.
그 탁월한 실력만큼은 황실 기사단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겠지만, 아무리 파르네세 대공의 아들이라도 그 사실이 공표되지 않은 이상 갑자기 황실 기사단에서 그럴듯한 자리에 그를 넣어줄 순 없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아스카가 이미 자신의 신분을 은연중에 드러내 버렸다는 거고, 그래서 아카데미 때와는 다른 상황이 빚어졌다는 거다.
아스카는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난 특채야. 그럴 만하니까 뽑힌 거고. 너희들은 고만고만하니까 테스트 같은 걸 봐서 가려낸 거지.”
슥 봤을 때 이 신입 3명 중 자기와 비견될 만한 실력자는 없었다.
셋이 함께 덤비면 힘들겠지만, 일대일로 싸우면 5분 안에 이길 만한 상대들이다.
명문 그레타 아카데미에서도 그랬으니까, 딱히 이상할 것은 없다.
이들은 아카데미 검술학부 상위권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말을 더럽게 재수 없는 식으로 하시는 걸 보니까, 높으신 분이 맞군요. 내 이름은 니일입니다. 저의 보잘것없는 가문은 궁금하시지 않겠지요?”
“야, 가문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귀족들 사이에서 수많은 멸시를 당하며 무뎌진 랄프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아스카는 그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여태까지 자신이 평민의 입장에서 귀족들에게 빽빽대는 입장이었다면 이젠 완전히 반대가 된 게 아닌가.
특혜까지 퍼 받고 갑질하는 건 아스카 쪽이 된 것이다.
자신이 재수 없다고 생각한 바로 그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은 묘했다.
‘뭐지……, 이 상황은. 이게 아닌데.’
초장부터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둘 수는 없다.
이주일. 그것이 아스카가 이곳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었다. 한 달이었는데 박박 우겨서 반으로 줄였다.
그마저도 못하겠다고 선언해버릴 수는 없다. 제도까지 끌려온 이상 저쪽에선 황실 마법사도 동원할 수 있는데,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는 거니까.
“어쨌든 실력은 그렇게 자신할 만큼, 있다는 거로군요. 일단은 믿어드리지요. 그건 대련에서 증명해 보이면 되니까.”
“물론이지.”
서열이라면 확실히 해줄 수 있다. 아스카에겐 익숙한 일이니까. 니일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건 있어요. 우리는 다 같은 황실 기사단의 일원이고, 그 점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여기서는 신분의 격차보다도 지위를 더 중시하니까요.”
“평민 출신인 랄프를 하인 취급하면서 부려먹고 그러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이는 꽤나 돈독한 듯, 니일과 가넌이라는 녀석들은 아스카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랄프를 감싸고 있었고.
아스카처럼 처음부터 신분을 과시하는 거만한 녀석이 평민 출신을 무시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퍽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가 평민 출신만 부려먹는다는 거야? 너희 셋이 나한테는 다 비슷한 녀석들인데, 부려먹는다면 너희 셋 모두를 부려먹겠지!”
아스카는 큰소리를 땅땅 쳤다. 이왕 하는 김에 아예 이쪽으로 나가기로 한 것처럼. 아스카는 황족이지 귀족이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타당했다.
랄프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혹시 평민 출신 부기사단장님한테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니죠?”
황실 기사단씩이나 되는 곳에 평민 출신 부기사단장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아스카는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랄프가 덧붙였다.
“저야 그렇게 쳐도 그분께도 그렇게 불손한 태도를 보이면 하극상으로 징계를 당하고 감옥에 갇힐지도 몰라요.”
‘그러는 게 우리한테도 편할 텐데’라고 니일이 작게 중얼거렸다. 가넌이 입을 열었다.
“아스카 님,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쪽 허드렛일을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도 황실 기사단원이니 각자의 일은 각자가 하는걸로 합시다. 이제 막 입단했으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도와드리겠지만요.”
셋이서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마치 아스카 대응팀을 구성한 것처럼.
시비에 응해주는 것도 아니고, 제 할 말을 다 하는데 그게 또 맞는 소리다.
새로운 상황에 아스카는 뭐라고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랄프가 쓱 손을 내밀었다.
“그보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는 받아주겠죠?”
그의 손을 빤히 쳐다본 아스카는, 못 내키는 척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스카처럼 평민으로 자라났던 녀석도 아니고, 정말 평민이었던 녀석.
그런데도 황실 기사단에 들어올 정도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평민인 친구를 감싸는 이 녀석들도, 이 분위기도 모두 적응이 되지 않아서, 궁금해졌다. 알고 싶어졌다. 자기가 몰랐던 게 있었던 건지.
“그래, 한번 잘 지내보자고. 약한 녀석들아.”
아스카는 씨익 웃었다. 그레타 아카데미에서 보이던 악동의 미소였다.
*
그 시각, 시안은 약간의 자유를 허락받았다. 황궁의 일부 구역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갇힌다고 하기엔 황궁이 꽤나 큰 장소라서 불편함은 없었다.
게다가 머무는 방도 호화스럽고, 대공의 손님이라 대우도 좋다.
졸지에 감금 생활을 하게 되긴 했지만, 그만큼의 특혜도 주어졌다.
파르네세 대공은 보상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불가피하게 자네의 거동을 제한해야겠네. 대신 그냥 머물면 지루할 테니, 황궁 도서관을 이용하게 해주지.’
제국의 보고, 황궁 도서관. 온갖 고대 서적과 마법 서적이 집대성된 그곳은 모든 마법사가 꿈꾸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아무나 발을 들일 수 없다. 황실 마법사나 나라에 공헌을 세운 자들, 혹은 고위 귀족들에게나 허용되는 장소다.
파르네세 대공쯤 되니까 이런 특혜를 허락한 것이지, 웬만한 이들이었다면 턱도 없었다.
시안의 불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역시 이러니 권력자와 친해서 나쁠 게 없다.
그는 역시 자신이 줄을 잘 섰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보다 이제, 마법을 쓸 수 있단 말이지.’
물론 마력을 사용하는 데는 여전히 제약이 있다. 시안의 양 팔목에는 마력을 제어하는 족쇄가 차여져 있었다.
마법을 쓴대도 황실 마법사까지 동원할 수 있는 상대를 두고 일을 벌이진 못할 테지만, 파르네세 대공은 철저한 성격이었다.
시안이 희귀한 정령 마법사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별건 못하겠지만, 아레아에게 연락 정도는 할 수 있지.’
만나기로 한 예정이 뒤틀렸다. 그들에게 이쪽의 사정을 전해줘야 했다.
다행히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시안은 이미 아레아의 수정구에 연락해 본 적 있다. 한 번 연결된 마법은 흔적을 남긴다.
시안은 거기에 연결하기만 하면 되었다.
아레아는 시안이 보낸 신호를 바로 수신했다.
[무슨 일이야.]낭랑한 목소리고 울려 퍼졌다. 시안은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어, 아레아. 우리 바덴으로 못 갈 것 같아. 문제가 생겼거든.”
언제 또다시 마법을 제한당할지 모르니 지체할 시간이 없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시안은 아레아에게 이제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모조리 이야기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수정구에서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