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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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근엄한 얼굴의 황실 기사단장이 신입들을 쭉 훑었다.
그의 시선이 신입 중 한 명에게 유독 길게 머물렀다.
아스카.
당연히 그는 아스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기사단 생활은 어떤가.”
그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기사단 내에서는 철저히 기사단 내의 지위에 따른다.
황족이라고 해도 기사단장에게는 당연히 아래였다.
“그럭저럭할 만합니다.”
아스카는 대답했다. 그는 대충 기사단장을 교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레타 아카데미에서도 교장이나 교관은 신분이 어떻든 그의 윗사람이었다.
불손하다고 지적받을 만한 말투였기에, 나머지 세 명이 당황하여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아스카는 태연했다.
기사단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턱을 괴며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새로 온 단원은 적응을 잘 하고있는 모양이더군.”
잘 하고 있는 건지, 가까스로 사고를 치지는 않고 있는 건지. 애매한 일이었으나 어쨌든 사고만 안 치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 신입들은 가까스로 그 말에 긍정했다.
“자네들이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네.”
곧 기사단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인원 배치가 바뀌어서 자네들이 당분간 낮시간에 황태자 전하의 호위를 맡기로 되었네.”
황태자? 다른 세 명도 놀랐지만, 아스카가 제일 놀랐다. 황태자는 그의 사촌 아닌가.
물론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현 황제에게는 오로지 황후의 소생으로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딸은 아스카보다 어리지만, 황태자는 아스카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고 2황자는 아스카와 나이가 비슷했다.
‘아버지도 친구를 사귀게 해준다면서 이상한 녀석들은 붙여줬어도, 사촌들을 만나게 하지는 않았지.’
그건 마치 아스카에게 그들과 대면할 자격이 없다는 것 같았다.
그를 정식으로 파르네세 대공의 아들로서 공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갑자기 황태자의 호위라니. 미심쩍었다.
권력자와 가까이하는 건 신입들에게 주어질 만한 기회가 아니다. 신입이라도 검증되고 검증된 이에게나 허락될 법한 것.
아스카가 기사단에 발을 들인 이후로 그런 결정이 떨어진 데는 분명히 파르네세 대공의 입김이 닿은 것이리라.
그레타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한 아스카는 이제 황태자와 마주할 자격을 갖췄다는 것일까.
아스카는 삐딱하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보기에 모자라기만 했던 아스카도, 검술 실력 하나는 뛰어나니까 이젠 그럭저럭 괜찮은 녀석이 됐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사단장의 말이 이어졌다.
“전하의 눈에 들 기회라고 흥분하지 말고, 본분에 충실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게.”
지시와 경고. 그것으로 기사단장과의 면담은 끝났다. 바짝 긴장했던 신입들은 면담 장소를 빠져나오고 나서 아스카를 돌아봤다.
“저기, 여태까지 묻지 않았는데 대체 어떤 가문입니까. 왜 우리가 황태자 전하의 호위를 맡게 된 거죠?”
“검가 출신이면, 어쨌든 알음알음 알려졌을 텐데 아스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더군요.”
“그레타 아카데미 출신이라면서요. 평민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말도 안 되잖아요? 물론, 당신 태도가 딱히 귀족적이지는 않습니다만.”
랄프, 니일, 가넌의 의심스러운 시선이 따라왔다. 아스카는 침묵을 지켰다. 파르네세 대공은 아스카에게 침묵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사실 난 황족이고 파르네세 대공의 숨겨진 아들인데’따위로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될 것 같다.
“비밀이야.”
툭 내뱉은 아스카는 회피하듯 성큼 걸음을 옮겼다.
다른 세 명이 그의 등 뒤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이를 갈았다.
‘이게 뭔 상황이람? 갑자기 황태자라니.’
하지만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황태자를 인질로 붙들고 황궁을 빠져나간다.’
아스카는 헛된 망상을 했다. 파르네세 대공이 아스카가 2주간 시키는 대로 기사단 생활을 했으니, 이제 떠나겠다고 해도 그를 순순히 보내줄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하지만 도무지 아스카가 황궁을 무사히 빠져나가는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일단 인질로 잡는 것부터가 가능할지 문제고, 그런 짓을 했다간 완전히 끝장이다.
그럴 경우 자신을 어떻게 될지 몰라도 시안의 안위는 보장할 수 없다.
아무리 막 나가는 아스카라고 해도, 그런 짓까지 벌이는 건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내겐 할 일이 있는데.’
헬무트와 함께하기로 했다. 세부적인 계획은 듣지 못했지만, 그건 바덴으로 가면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발목을 잡히면 곤란했다.
‘황태자라…….’
그도 자신에 대해서 알 텐데, 과연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스카는 높으신 분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은 아니었다.
그러니 쫓아내고 싶어할 만큼 자신이 마음에 안 들기를.
그러면 파르네세 대공도 별수 없을 테니까. 아스카는 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물론, 그가 어떤 고뇌를 겪든 황궁 도서관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시안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헬무트건 아스카건 안중에도 없이 현재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
바덴. 늘 온후한 기후대를 유지하는 그곳에 들어선 순간, 익숙한 공기가 느껴졌다.
마법사들의 도시이며, 동시에 학술의 도시. 아카데미의 집합체.
그러면서도, 바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검사들이다.
익숙한 공기가 느껴지자, 이어 향수가 몰려왔다.
헬무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묻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4년 만에 바덴에 온 소감이 어때?”
아레아가 물었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헬무트는 이곳에서 그레타 아카데미를 다녔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면서도 특별한 순간들을 겪었다.
아레아를 포함하여. 또한 많은 것을 얻었다. 여기서 얻은 것들이 헬무트를 구원했다.
“나는 이곳을 아마…….”
그리워했었던 것 같다. 파헤의 숲은 헬무트에게 평생을 살아온 곳이었으나 그곳이 그립지는 않았다.
파헤의 숲에서 헬무트는 이물질 같은 존재였고 그가 속하지 않은, 떠나야 할 곳이었기에.
4년이란 길고도 짧은 세월이 지난 지금, 바덴은 기억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모처럼 감상에 잠긴 헬무트에게 엘라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가 그 아카데미인가 뭔가가 있는 곳이냐. 네가 막 1등하고 그랬다던?]“그래.”
[수잔이랑 세라도 여기에 있지?]“아마도? 제대로 도착했다면.”
에단 쿠드로가 그들을 잘 돌봐주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니 바덴 내에서 잘 정착했을 터.
안티올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자립하기로 결심한 듯 헬무트 쪽에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자체로도 그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뜻이 된다.
“가자.”
헬무트와 아레아는 천천히 바덴의 거리를 거닐었다. 함께 걷고 어울리던 순간들이 기억에서 불쑥불쑥 치밀어 올랐다.
헬무트는 자신이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쉬움이라…….’
만약 4년 전, 자신이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리노사에게 당해서 파헤의 숲으로 보내지지 않았다면.
그는 무사히 그레타 아카데미를 졸업했을지도 모른다.
대신 아스카가 차석 졸업자가 되었겠지만, 그라고 해서 딱히 그 사실을 불행하게 느끼지는 않았을 터.
그 4년 동안, 헬무트는 이곳 바덴에서 머무르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인간의 삶을 학습하고 경험하며 추억을 쌓았으리라.
물론, 검술학부에서 배울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고, 검술을 갈고닦는 데 그리 도움되는 일은 아니다.
헬무트가 겪은 일들은 그를 성장시켰고, 파헤의 숲에서 얻은 성취는 컸다.
바덴에서는 결코 그만한 성취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검사에게는 그 성취가 가장 중요한 것일 텐데도, 아쉬웠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그가 놓쳐버린, 놓쳐야만 했던 것들. 그것은 헬무트의 성취 그 이상으로 의미가 있었다.
확고하다고 믿었던 자신의 우선순위가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기분은 낯설었다.
그가 영원히 상실한 순간들.
비록 그런 일이 있었기에, 새로이 깨닫고 다시 얻은 것이 있고, 그것이 비록 검사로서의 성취만은 아니나 그 때문에 헬무트의 상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는 않았다.
헬무트는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어떤 경험과 시간들을 영원히 박탈당한 것이다. 그 시간에는, 줄곧 아레아가 함께하고 있었을 터.
가슴 속이 뜨거워진다.
리노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니, 리노사가 아니다. 헬무트는 자신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았다.
어머니, 리노사 대공비 마그리트. 미하엘과 그 사이엔 믿음이 없었으나, 자신은 어머니를 믿었으므로.
그녀가 어머니이기에. 헬무트가 자식이기에.
그는 첫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이제는 두 번째 걸음을 시작할 차례다.
어느덧 저 앞에서 에단 쿠드로의 저택이 보였다. 자연스레 걸음이 거기에 이르렀다.
바덴에서 그가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항상 그곳이었기에.
아레아는 말없이 그를 따랐다.
에단 쿠르도의 저택 문은, 4년이란 세월 동안 약간 빛이 바랬을 뿐 그대로였다.
헬무트를 본 경비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낯익은 인상이었다. 그건 서로에게 그랬다. 아마 4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게 한 가지 더 있는 모양이다.
경비병이 물었다.
“저어, 혹시……. 그.”
헬무트는 입을 열었다.
“헬무트, 에단을 만나러 왔다.”
경비병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곧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앞으로 달려오는 누군가가 보였다.
에단 쿠드로는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늘 차분하고 근엄한 교관이었다.
항상 헬무트에게 아버지처럼 행동했던.
하지만 지금 그는, 헬무트에게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헬무트!”
그가 외쳤다. 수잔과 세라에게 소식을 들었을 텐데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헬무트를 자신의 옛 후원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한 번도 소리 내어 웃어본 적 없는 그에게 드문 감정 표현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수많은 감회가 서린 눈빛으로, 에단 쿠드로가 헬무트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는 잠시 후, 신음을 토해내듯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그들에겐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