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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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란 시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아스카에게는 길었다. 왜 이리 하루가 흘러가지 않는지 지루해질 만큼.
아스카는 황태자의 괴롭힘-귀찮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게 그에게는 괴롭힘이었다-을 견디면서 하루빨리 이 시간이 가기만을 바랐다.
파르네세 대공이 자신을 보내 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 적성에 안 맞는 호위기사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않을까?
황태자는 그에게 골치 아프거나 어려운, 국정이나 제국 내부의 사정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성의 없는 대답은 또 용납하지 않았다. 때로는 기밀 취급될 만큼 중요한 이야기도 했다.
아스카는 자신이 제국 내부사정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을 깨닫고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걸 알고 있는데 날 순순히 보내 주지 않을 거 아니야?’
황태자가 자신을 오른팔로 만들려고 하는 걸 느끼게 된 아스카였다.
그리고 아스카 입장에선 그건 그냥 괴롭힘이다. 그에게는 절대 황태자를 섬길 마음이 없으니까.
암살 시도가 벌어진 그날 아스카가 늦은 시각까지 황태자의 곁을 지킨 것은 그냥 그 괴롭힘의 일환이었다.
절대 황태자가 아스카를 든든하게 생각해서는 아니다.
그가 신하들 앞에서 연설을 할 때 보란 듯이 하품을 한 게 마음에 안 들었을지도.
어쨌든 신입 4인조 중 그만 홀로 남았다.
문밖에는 다른 황실 기사 몇몇도 있었지만, 방 안에 들어서서 황태자를 호위하는 건 그뿐이었다.
황태자는 그날따라 바빴다. 그는 오전에 회의를 한 직후 자정까지 집무실에서 내내 서류를 들여다보며 아스카에게 질리도록 황위 계승권자의 생활이 어떤 건지 실감시켜 줬다.
아스카는 황태자를 보며 자신이 황태자가 아니라 그저 황족인 것을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던 차였다.
황태자가 문득 중얼거렸다.
“자정이로군.”
“예, 저는 자정까지 전하를 호위 중입니다.”
아스카는 불만을 티 냈다. 황태자가 피식 웃었다.
“나는 도서관에 들려 보아야 겠다. 너는 이만 가 보도록.”
황태자는 잠을 적게 잤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자는 날이 드물 정도였다.
아스카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고 나섰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황태자 할 만도 하지.’
책상물림을 저렇게 길게 하다니.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좀이 쑤신다.
역시 아스카는 마음껏 검을 휘두르는 쪽이 적성에 맞았다.
‘팔마 기사단이 사막에서 마물을 때려잡는다지?’
팔마 기사단에도 충분히 입단할 수 있는 그였다.
아스카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잠깐 생각했다. 걸음을 옮기던 어느 순간 그는 우뚝 멈춰섰다.
‘응? 그러고 보니 도서관이면 시안도 거기 있을 거 아닌가.’
시안은 요새 밤늦게까지 황궁 도서관에 처박혀 있는 터였다.
도서관은 새벽까지 개방이다. 황궁에선 마법을 쓰는데 제약이 있으니 책을 짊어지고 나르는 것조차 귀찮다는 시안이었다.
아스카는 아직 시안과 마주치지 못하여, 미하엘을 만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못한 터였다.
헬무트 쪽과 대화하려면 그가 필요했다.
‘이 녀석은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자신이 황궁에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잊었나?
함께 탈출할 방법에 대해서 논의하진 못할망정 그놈의 책더미에 파묻혀 있다니.
역시 마법사는 구제 불능의 족속이라고 생각하며 아스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황궁 도서관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황태자는 이미 출발했을 터. 아스카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를 기원했다.
괜히 황태자가 시안의 존재를 알아서 좋을 것 없다.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걸음을 내딛던 아스카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이 시각이라면, 황궁 내에서 돌아다니는 이는 보초들이나 경비병이나 기사들이 전부다.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이 스산한 고요함은 뭘까. 아스카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그의 감각은 가히 동물적이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어.’
그렇다면 황궁 도서관으로 향한 황태자에게? 갑자기 긴장감이 일었다.
아스카는 발길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경계하며 기척을 죽였다.
고양이처럼 소리 나지 않는 걸음으로 그는 황궁 도서관을 향해 접근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옅은 소음을 들었다.
챙! 채챙!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주변에 가득한 살기. 골목 너머였다.
아스카는 벽 쪽에 붙어서 고개를 슬쩍 빼고 그쪽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굳은 낯빛의 황태자를 두고 기사들이 복면을 쓴 괴한들과 싸우고 있었다.
괴한들의 실력은, 황실 기사들보다는 살짝 아래였지만 수가 두 배 이상 많았다.
조직력은 황실 기사들이 우위라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하리라.
그 가운데 있는 황태자는 그냥 짐이었다.
아스카는 약간 당황했다.
‘뭐지? 암살의 현장인가.’
자신이 블랙호크인가 뭔가한테 노려져 본 적은 있지만, 이런 본격적인 장면은 처음 봤다. 별 경험을 다 해 본다.
황궁 도서관은 황궁에서도 외지는 아닌데, 어떻게 이런 곳에서 황태자를 향한 암살 시도가 벌어진단 말인가.
황궁 내부의 보안 수준을 의심해볼 문제다.
‘제국도 어지간히 허접하군. 아니면 치밀하게 준비한 걸지도.’
암살자를 맞상대하던 기사 한 명이 소리 높여 외쳤다.
“사람을 불러와!”
기사의 입 모양은 그랬다. 하지만 그 소리는 아스카의 뛰어난 청각에도 정말로 미미하게 들렸다.
꼭 솜덩이에 먹혀 버린 것처럼.
‘마법?’
아스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황궁에서는 마법의 사용이 제한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마법이 펼쳐지고 있다니.
‘이 구역에 보호 결계가 해제된 거야. 심상치 않군.’
아마 황실 마법사가 결계의 상태를 손수 점검할 터. 자정이 지난 시간인데 결계에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확인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지금은 황실 마법사도 최소한의 교대 인원만 남았을 테니, 황족의 처소 위주로 결계의 상태를 점검할 것이다.
하지만 황태자는 자신의 처소가 아닌 이곳에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왜 그러게 밤늦게 싸돌아다니시나.’
황태자를 호위하는 기사들은 오늘따라 유달리 수가 적었다.
사람을 불러오라지만, 도움을 청하러 인원을 뺄 여력도 없다.
누구 한 명이 자리를 이탈했다간, 그 이탈한 기사도 쫓겨 죽을 테고 이 뻑뻑한 상황에선 나머지도 오래 버티지 못할 거다.
적들은 황태자를 살해하고 내빼면 그만일 터였다.
‘황태자가 죽으면 내가 황위 계승권에 가까워지지.’
그 점을 상기하자 소름이 쫙 돋았다. 절대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아스카는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어쨌든 명색이 황족이며 황실 기사다. 황태자가 공격받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사이, 상대의 전력에 대해서 계산을 마친 아스카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모처럼 호위기사로서 임무를 다할 때였다.
***
그 순간, 위기에 빠진 황태자는 오랜만에 저릿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황궁 한복판에서 겪는 죽음의 위기!
현 황제가 황위에 오르기 전에도 자식인 황태자는 암살 시도를 익히 겪었다.
파르네세 대공이 괜히 아스카를 숨겨 키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또다시 황태자가 노려질지는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여기가 황궁이라지만, 자신이 안일했다.
‘이 시점에 암살이라니.’
이런 늦은 시각, 황태자가 황궁 내부를 돌아다니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에 올라온 서류는 복잡했고, 그걸 처리하려면 황궁 도서관의 자료가 필요한 터였다. 그것도 여러 권.
내일은 내일의 일이 산적해 있다. 마침 잠도 오지 않았던 터라, 황태자는 가볍게 나들이 겸 집무실을 나섰다.
오늘따라 호위는 단출했다. 아스카는 돌려보냈고, 황태자를 호위하던 정예 기사들도 공교롭게도 황제의 황궁 밖 행차에 차출된 터라, 자리를 비운 터였다.
여기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지위와 실력이 낮은 기사들.
원래라면 부기사단장 아래급 한두 명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호위가 소홀해진 드문 날이었다.
이런 날에는 황태자도 움직임을 삼가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그는 움직였고, 그 때문에 습격을 당하고 있었다.
‘그 녀석을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황태자는 아스카를 떠올렸다.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학부 수석 정도면, 황실 기사단에서도 먹혀주는 실력이리라.
게다가 지금은 한 명이라도 아쉬웠다.
신호탄을 쏘아봤지만, 소리도 없이 공중에서 먹혀들어 갔다.
적들은 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바로 이 황궁에서! 이게 말이 되는가.
‘신전의 폐쇄를 선언한 게, 그들을 움직였는가.’
이제까지 황실에서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린 적은 없었다.
신전의 세력을 제국에서 밀어내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조심스럽고 덜 노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슬쩍 예산을 줄인다든가 신전과 친밀한 귀족을 주요 직무에서 배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의도는 티가 났지만, 그쯤은 신전에서도 자신들이 황제의 정적을 편든 대가를 치른다고 생각했으리라.
간접적으로 항의를 비추긴 했으나, 신전 쪽에서는 오히려 제국의 황실에 더 잘 보이려고 해 왔다.
대신관이 직접 제국을 찾아온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마다 겉치레식 예우와 대화로 끝났지만 말이다.
황태자가 꽤 규모 있는 신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하자 신전도 더 이상 온건한 방식을 택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쯤 되면 격분했다고도 볼 만한 반응이다.
‘애초에 그것이 그들에게 걸맞은 방식이지.’
신의 힘이 인간에게 주어졌을 때부터, 그 힘을 사용하는 의도가 변질될 것을 왜 루멘은 모르고 있었던가.
고결한 대신관들은 머리 꼭대기에 서 있고, 미천한 인간들이 그 권위를 대행할 뿐이라도.
“크윽!”
기사 한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한 명이 줄었다. 적들은 여전히 생생했다.
황태자는 이를 악물었다. 한쪽에 재능이 있으면, 다른 쪽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는 황태자로서는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검에는 자질이 평범한 수준이었다.
검을 손에 들고 있기는 했으나, 도움이 될 리 없다.
“황태자 전하! 우리가 이곳을 막을 테니 황궁 도서관으로 뛰어 들어가십시오. 그 안은 복잡하니 숨어 계실 수 있을 겁니다!”
기사 한 명이 재빨리 속삭였다. 황태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는 터였다.
그들이 마지막 방법을 쓰려는 그때였다.
“안녕!”
경쾌한 말소리와 함께 섬광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푸슉! 피가 허공에 비산하며 한 명의 암살자가 고깃덩이로 변했다. 털썩!
모두가 일제히 그쪽을 쳐다보았다. 사나운 미소를 머금은 푸른 머리카락의 구원자가 거기 서 있었다.
황실 기사단 복장에 반듯한 외모를 갖춘 그의 입에서는 바로 어울리지 않게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니들같이 음습한 새끼들을 정말 싫어하거든. 오늘 싹 다 뒤진 줄 알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