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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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트에게 다른 뜻은 없을 거야.”
마그리트가 위로하듯 입을 열자, 미하엘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어머니가 그것을 어떻게 장담하나요? 어머니도 샤를로트와 대화를 나눈 지 오래되었잖아요.”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그 애는 그런 걸 계산할 만큼 약은 애가 못돼.”
마그리트는 담담히 대답했다.
어머니가 자식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그녀와 같은 위치의 사람이라면.
그녀는 미하엘이 요새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초조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리노사 대공은 자신의 후계자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나왔으면 후계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도 하건만, 그는 계속 결정을 미루었다.
아마 샤를로트가 그레타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리라.
멀고도 먼 것처럼 느껴졌던 샤를로트의 졸업이 어느덧 가까워졌다.
더욱 그녀를 경계해야 할 상황이건만, 미하엘이 항상 의식하고 있던 샤를로트는 갑자기 돌발 행동을 보였다.
학기 중에 수업을 이탈하지 않나, 이제는 제국의 황족과 엮인단다.
그 초조감 속에서 미하엘은 신전의 지지를 적당한 선으로 유지해야 했다.
그것이 이번 행동을 불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실수라고 불릴 것도 없는 일이리라. 하지만 사건은 일어났고, 그 때문에 리노사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본인의 행동으로 결과가 이렇게 돌아왔으니 어떤 할 말이 있으랴.
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마그리트는 침묵을 지켰다.
‘나로서는 대공의 후계자 문제에 관여할 수 없어.’
그것이 대공비의 본분이기도 하다. 마그리트는 리노사를 위한 선택을 해야만 했고, 마그리트보다는 대공이 안목이 있을 터였다.
대공은 리노사의 군주이지만, 마그리트의 남편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녀에게도, 미하엘보다는 대공의 의사가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마그리트가 샤를로트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미하엘이 대공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녀는 미하엘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것은 일단 미하엘이 개차반이 아니라 대공이 될 만한 재목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신과 관계가 좋은 자식이 대공이 되는 쪽이 그녀에게도 유리하다는 본능적인 계산이 깔려있었다.
‘무엇보다 미하엘은…….’
샤를로트와는 달리 욕심이 많아서 자신이 대공이 되지 못한다면,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하리라.
그것이 미하엘의 파멸을 불러올 것이다.
그녀로서는 미하엘이 리노사 대공이 되는 쪽이, 두 자식을 모두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미하엘은 미간을 꾹 눌렀다. 동요를 가라앉힌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이, 인질을 잡으려는 수작은 아닐까요? 혹시 그곳에 갔다가 샤를로트가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요.”
미묘한 애증. 샤를로트가 아무 능력이 없고, 그에 비해 현저히 모자란 혈육이었다면 미하엘도 기꺼이 그녀를 아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샤를로트는 미하엘이 갖지 못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검술의 재능!
게다가 그녀는 자그마치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학부 수석이다. 흑익 기사단장과도 사이가 돈독하다.
미하엘은 졸업한 그녀가 리노사에 가져올 성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미하엘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영역의 것이므로.
“리노사도 황실의 혈통이야. 그들이 리노사에 인질을 요구할 거라면, 샤를로트가 아닌 너를 요구했겠지.”
대공비가 부드럽게 지적했다. 제국에서 미하엘과 샤를로트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지 못할 리 없다.
미하엘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의 경쟁자에게 힘을 실어주면 실어줬지 그 경쟁자를 인질 삼지는 않으리라.
미하엘은 새파란 눈동자로 자신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누구보다 강력한 자신의 편이면서도, 때로는 뜻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그녀다. 리노사의 대공비는 인형이 아니었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어린애처럼 성질을 부리는 것도 안 될 일이었다.
어느새 다시 천사같은 표정이 된 미하엘은 어머니를 향해 눈을 휘어 보였다.
“알겠어요. 걱정은 되지만, 대공께서 결정을 내리셨다면 어쩔 수 없지요. 피곤하군요.”
“그래, 이만 쉬렴.”
탁.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방안은 정적에 잠겼다. 미하엘은 생각에 빠졌다.
그가 늘 하던 대로, 그에게 유리한 경우와 불리한 경우를 가정해보는 것이다.
‘샤를로트가 그자와 맺어질 경우.’
샤를로트가 파르네세 대공의 후계자와 맺어진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강력한 힘이 된다. 샤를로트는 제국을 등에 업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사실이 위협적이기는 해도, 미하엘에게 꼭 나쁘게만 작용한다고는 볼 수 없었다.
제국과 친밀함을 유지하면서도, 제국을 경계해왔던 리노사 대공은 제국이 리노사를 집어삼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될 테니까.
리노사는 이미 오래전, 제국으로부터 분리되다시피 한 나라다.
황실의 혈통이긴 해도, 리노사는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한 지 오래였다.
리노사 대공은 그 사실을 위협받고 싶지 않으리라.
‘하지만 후계자 자리를 생각한다면, 신전보다 제국 쪽이 더 도움이 되는 세력인 것도 사실이지. 다만 샤를로트가…….’
미하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아직도 그녀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유효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번 사태도 충격적일 만큼 예상 밖의 일이니까.
하지만 성품은 쉽게 바뀌지 않고, 샤를로트는 리노사를 끔찍이 아낀다. 그것은 변치 않는 사실.
그녀는 리노사 대공녀로서의 의무와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파르네세 대공의 후계자와 맺어진다고 해서, 제국이 리노사를 집어삼키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으리라.
그 때문에 그녀 선에서 혼담을 거절해버릴 수도 있었다.
리노사 대공은 샤를로트의 의사에 반하는 혼담을 진행하지 않을 테니까.
그건 미하엘의 잘못을 샤를로트가 덮어쓰는 일이 되기에 공정하지 못한 일이기도 하다.
‘샤를로트가 파르네세 대공비가 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
미하엘이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리노사에서 샤를로트의 자리가 애매해질 테니 신분 비슷한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사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게 그녀에게도 속 편하리라.
어쨌든 그녀가 제국으로 가야 하는 건, 결정된 사실이니까.
미하엘은 조금 더 가능성 낮은 가정을 떠올려보았다.
‘괜히 제국에 갔다가 엉뚱하게 황태자가 샤를로트에게 눈독 들이는 건 아니겠지?’
샤를로트는 미인이다. 파르네세 대공의 숨겨진 아들도 그녀에게 반했으니, 예상 외의 사태가 또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샤를로트가 황후가 된다면, 차라리 그쪽이 간단할지도 몰랐다.
그 즉시, 리노사 대공은 리노사를 위하여 샤를로트가 가진 권한을 박탈할 테고, 그녀는 리노사 대공 자리를 다신 바라볼 수 없게 될 테니까.
“제국이라…….”
미하엘은 문득 중얼거렸다.
이제껏 그는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다져왔다. 장벽과 같은 변수들을 헤쳐오면서.
샤를로트의 졸업을 앞두고, 새로운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지만, 미하엘은 그 바람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리라.
그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에게 리노사 대공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일 테니까.
*
방학에 근접한 시기였다. 샤를로트의 이번 학기 성적은 그녀의 기준에서 엉망이었다.
엉망이라고는 해도 상위권이었으나, 그녀는 일단 중간고사를 보지 못했다.
대체 시험을 치르기는 했으나, 필기의 경우 성적의 80퍼센트만 반영된다.
수석만 차지하던 샤를로트의 눈에, 미흡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냥 이번 학기에 휴학하고 다음 학기에 집중해서 조기 졸업을 할 걸 그랬나.’
애매하게 돌아온 게 문제였다. 하지만 샤를로트로서도 헬무트를 구한 이상 아카데미에 돌아오지 않고는 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하던 일에 충실해야 했다. 그녀는 그레타 아카데미의 학생이니까.
‘마지막 학기라.’
다음 학기만 끝나면, 이곳 그레타 아카데미를 졸업한다. 하지만 이 방학이 끝나고 돌아올 수 있을지는 샤를로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리노사 대공의 인장이 박힌 편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리노사에서 바덴으로 파견된 흑익 기사단원이 그녀에게 직접 전해준 것이다.
“대공 전하의 명입니다.”
방학을 맞이하자마자 바덴에서 곧장 제국으로 향할 것. 여기선 준비할 것도 없었다.
바덴에서 제국으로 향하는 길에, 그녀는 리노사의 사람들과 합류하여 제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리노사 대공녀로서 공식적인 첫 방문이었다. 어쩌면, 거기서 아카데미 학생들하고도 마주치게 될지 몰랐다.
그러면 이미 암암리에 알려진 듯한 그녀의 정체가 들불이 번지듯 소문이 날 것이다.
고작 한 학기 남았다지만, 샤를로트로서는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나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따라야겠지.”
리노사 대공의 명령이니 그건 당연했다. 하지만 제국에서 자신의 방문을 요청한 까닭이 마음에 걸렸다.
“아스카 선배…… 때문인가?”
바덴에 머무를 때 잠시 찾아온 아레아에 의해서 아스카의 정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 샤를로트는 놀랐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가 범상한 신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평민이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친구들에게조차 그토록 열심히 숨기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혼담이라니.”
샤를로트는 복잡한 눈으로 편지를 쳐다보았다.
아스카 선배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은 샤를로트도 알고 있었다.
아스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녀석이었고, 그는 누가 보기에도 샤를로트에게 관심이 있다는 티를 팍팍 냈으니까. 아무리 둔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샤를로트 역시도 귀족이었다. 그녀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서 잠시 드러났던 무언가는 사라지고, 샤를로트의 얼굴은 다시 차분해졌다.
“거기서 모두 다시 만날 수 있겠어.”
파헤의 숲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한 기억이 샤를로트에게 제법 강렬했다.
그들이 그리웠다. 헬무트와 아레아, 아스카와 시안. 그 모두가 제국의 수도에 있었다.
헬무트는 바덴에 있는 동안 샤를로트에게 접촉하지 않았다. 그녀가 리노사의 감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한 것이다.
아레아는 모습을 바꾼 채 나타나 샤를로트와 간단한 대화만을 나누고 갔다.
“나도 준비해야겠지.”
그녀는 편지를 얌전히 품에 집어넣었다.
이미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기사단원에게 대공의 명에 따르겠노라고 말한 터였다.
제국을 공식적으로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면서도, 다가올 재회가 기대되었다.
짐을 꾸리기 위해 방안에 들어서는 샤를로트의 가슴에 미묘한 설렘이 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