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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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와 내가 무투회에서 맞붙게 될 수도 있다는 소리지.”
그날이 오기를 기꺼이 기다린다는 듯한 서늘한 목소리였다. 아스카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봤다.
“아레아?”
팔짱을 끼고 이쪽을 꼬나보는 보랏빛 눈동자의 은발 미녀는, 아스카의 눈에 여전히 재수 없었다.
“물론 그전에,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네가 무투회에 참가해야겠지만.”
그녀의 입가에 피식 비웃음이 서렸다.
“뭐라는 거야, 이게!”
이런 도발을 받고도 참을 아스카가 아니다. 어떻게든 그는 무투회에 참전하고 말리라.
그러나 아스카는 곧 뭔가를 깨닫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러니까, ‘종합 무투회’라는 게 마법사도 참가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래.”
아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의외로운 일이었다.
살상 능력으로 보아, 마법이 검술보다 약한 힘은 아니다. 오히려 마법의 경우 단숨에 대량 살상이 가능하다는 면에서 더욱 위협적일 수 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마법사는 이런 종류의 시합과는 거리가 멀어왔다.
마법사도 전투 훈련을 받기 마련이고, 아카데미 마법학부 교과 과정에서도 전투 마법이 비중이 낮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마법이 1대 1의 대인 전투에 적합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검술과 달리 발동 시간이 필요하며, 전투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도구의 사용이 제한된다.
마법사는 준비된 공간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도구를 활용하여 싸울 때
일단 순발력 면에서 차이가 나기에 1대 1의 대인 전투에서 비등한 수준의 검사와 마법사가 같은 조건에서 맞붙을 경우, 검사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
물론, 검성급의 검사와 대마법사가 맞붙어본 적은 이제껏 없었으므로 극한의 경지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쨌든 마법사가 무투회에 참가하여 불리한 전투를 무릅쓸 이유는 없는 것이다.
효율의 문제이기도 했다. 검사들에겐 무투회가 자신을 알리고 상금을 따내기 위한 기회이지만, 마법사들에겐 다른 돈 벌 구석이 있었고 불리한 전투로 무투회에서 상금을 따내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이제까지 무투회는 순수히 ‘비스’를 쓰는 이들의 싸움이었다고. 그런데 이번엔 아예 새롭게 규정을 만든 건가? 어떻게 기준을 잡은 건지? 마법사들은, 마법 도구를 쓰잖아. 검사들도 검을 쓰는 데 마법사는 빈손으로 참가하게 할 순 없을 테고?”
시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아레아가 말을 받았다.
“그래, 검사들이 검을 쓰듯이 마법사들에게도 지팡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제한적으로 허용할 모양이야. 그 때문에 협의를 위해 마법사협회를 초청했다더군.”
“마법사협회를?”
시안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제국은 마법사를 배척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법사를 언제든 흑마법사로 돌변할 수 있는 잠재적인 악의 무리로 보는 신전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마법사협회와는 그다지 교류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황실에서는 이번 무투회를 구실로 마법사협회를 확 끌어들여 그들의 영향력을 자연스레 확대할 모양이었다.
이것은 비록 노골적인 방식은 아니나 제국에서 신전을 배척하는 다른 방편이며 또한 새로운 우군을 만들어 신전을 견제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지간한 이들은 무투회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황제의 뜻을 알아들을 것이다.
마법사협회 쪽에서도 그 뜻을 흔쾌히 받아들이리라.
그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을 탄압하는 신전을 몰아내고 제국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이므로.
“과연, 리노사 대공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더라니. 여러모로 계산이 있었군.”
시안이 중얼거렸다. 마법사들까지 참여하는 종합 무투회라면, 바소르의 무투회와도 구별된다. 타국에서도 많이들 관심을 가질 것이다.
아예 판을 크게 벌려서, 주목을 모아보겠다는 뜻도 된다.
‘내게는 더 잘된 일이지.’
헬무트는 이렇게까지 자리가 만들어졌으니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승이란 단어는 헬무트에게 친숙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생각한 건 헬무트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해두겠지만, 난 최선을 다할 거야. 상대가 헬무트 너라도.”
아레아가 손가락을 척 치켜들어 헬무트를 지목했다. 얼떨떨했다. 난데없이 일격을 맞은 헬무트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무투회에 참석할 생각을 했지?”
아레아의 대답은 간단했다.
“백작의 작위를 받으면, 황실 도서관 출입도 가능해지겠지. 무투회의 우승자에게 그 정도 혜택을 주지 않을 순 없을 테니까.”
제도에 온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여전히 황실 도서관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녀였다.
파르네세 대공은 헬무트와 대면하여 그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바소르에서 이루어진 것과 비슷한 양상의 대화.
그리고 그 이후로, 대공은 자신의 저택을 방문한 손님들에 대해서 신경을 완전히 끊고 황궁에 틀어박혔다.
그날 대공에게 아레아의 황실 도서관 출입 권한을 달라는 말을 깜빡하고 하지 못한 헬무트는 이후로 아레아의 극심한 타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황궁 도서관 출입 권한을 가져다줄 수 있는 무투회 우승에 욕심내는 건, 이해할 법한 일이다.
그게 헬무트와 싸워 이겨야 하는 일일지라도. 마법사란 원래 그런 종족이니까.
헬무트는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나를 이기긴 힘들 텐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아레아는 대마법사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고, 헬무트는 검성의 수준에 이르렀으니까.
헬무트는 솔직히 말한 것뿐이었지만, 그의 솔직함이 아레아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당연했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건 붙어봐야 알 일이지.”
‘설마, 나를 검으로 벨 생각은 아니겠지?’ 따위의 방식으로 나올 것도 없이 헬무트에겐 아레아를 향해 검을 든다는 것 자체가 거북한 일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아레아는 헬무트를 향해 마법을 주저 없이 난사할 것 같았다.
그녀의 두 눈은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의지로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아레아를 탓할 수만도 없었다. 헬무트에게도 슬며시 기대감이 일었다.
아레아와 첫 만남 이후로, 헬무트는 그녀에게 종종 호승심을 느꼈다.
아레아는 강한 마법사. 한 번쯤 맞붙어보고 싶다.
그건 이성에 대한 본능 못지않은 또 다른 본능의 영역. 두 개의 본능 중 우위에 있는 것은 명백했지만, 그것이 다른 하나의 본능을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다.
‘그녀도 꺾지 못한다면 내게 자격이 없는 거겠지.’
가치 있는 무언가를 얻으려면 늘 시련이 따른다.
이번의 시련이 자신의 마법사 여자친구라는 건 유감이었지만.
어차피 그녀도 알 것이다. 그녀가 헬무트를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헬무트는 오만한 마음으로 관대하게 넘어갔다.
“여자친구랑 싸우기 싫어서 그렇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아레아를 대신 꺾어줄게. 넌 결승까지 올라갈 텐데, 설마 쟤가 결승까지 올라가겠냐.”
아스카가 안심하란 듯이 헬무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꼴에 검사라고 자신감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아레아는 코웃음을 쳤다.
헬무트 입장에서도 아스카가 아레아를 꺾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분 나쁜 일.
자신의 여자친구를 꺾는 건 자신이길 바랐다. 남다른 방식의 소유욕이었다.
“너는 참가나 결정짓고 말하라고. 아직 허락도 못 받았잖아?”
시안의 일침에 바로 아스카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러는 넌 참가할 생각도 없잖아. 어차피 해봐야 조기 탈락할 주제에!”
“누가 조기 탈락한다는 거야? 정령 마법사는 일반 마법사보다 대인 전투에 유리하거든?”
정령은 정령계에 발을 걸친 존재. 일반인의 눈에 기운만 느껴질 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정령은 자기 스스로 이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생명체이며 정령 마법사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정령의 이지도 발달한다.
일반적인 마법사와 정령 마법사의 차별점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정령은 주인의 의사를 반영하면서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에 능동적이다.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예측불허함과 마법 발동 시간이 필요치 않다는 장점까지.
정령이 여럿이라면 상대는 마법사에 정령까지 여럿을 상대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다.
그 싸움 방식이 마력 소모 면에서 더 효율적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으나 보이지 않는 상대가 제각기 공격까지 해온다면 까다롭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좋아, 나도 참가한다.”
잠깐 고민을 마친 시안이 결연한 말투로 내뱉었다.
“파헤의 숲에도 갔다 왔는데 사람 상대 정도야. 간단하지.”
가서 별로 전투를 치른 건 없지만, 일단 파헤의 숲에서 살아나왔다는 자체가 시안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
아스카는 호기심이 도는 얼굴로 시안에게 권했다.
“그래? 그럼 우리 한 번 대련해볼래?”
“좋아, 한 번 해볼까?”
그렇게 둘이서 방을 빠져나갔다. 안 봐도 결과는 알 것 같았다. 아스카에겐 모처럼 신나는 일이리라.
헬무트와 아레아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우리도 대련…….”
“싫어.”
아레아가 단칼에 잘랐다.
“나는 마법사고 1대 1 대인전투에서 검사를 상대할 방법이 있어. 내 전투방식을 네게 미리부터 공개할 이유는 없지.”
벌써부터 경쟁자 보는 듯한 느낌이다. 헬무트는 한 가지 사실을 지적했다.
“아무리 신전이 이번 무투회에서 배제될 거라고 해도, 넌 그레타 아카데미에서 유명인이었어. 아레아가 여자라는 게 알려지면, 하이케와의 연관성까지 알려질지도 모른다.”
아레아가 하이케의 손녀라는 게 밝혀진다는 건, 신전의 공적이 된다는 뜻이다.
신전과 많은 국가가 틀어지긴 했어도, 그들의 공적 선언을 무시할 건 못되었다.
하지만 아레아는 역시 철저했다.
“누가 ‘아레아’로 참가한대? 전통적으로 무투회는 가명으로의 참가가 허용되지. 변장마법은 안되지만, 가면을 쓰는 것도 가능하고.”
새침하게 말한 아레아가 방을 나섰다.
“그럼 나도 이만 가볼게.”
혼자 남은 헬무트에게 구석에서 낮잠을 자던 엘라가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이봐, 나도 좀 무투회에 참가할 수 없나?]엘라가도 무투회에 흥미가 도는 눈치였다. 마물은 싸움을 좋아한다.
헬무트는 제 발치에 오는 작은 고양이를 쳐다보며 내뱉었다.
“……서류 작성은 어떻게 해. 동물에게 참가 자격을 주는 무투회는 없어.”
그 한 마디에 엘라가가 불만을 터뜨린 건 당연했다.
[약해빠진 인간들이 나처럼 강한 마물이 참가할까 봐 수를 다 써놨군! 자기들끼리 고만고만하게 싸우려고!]그렇게 존재하지 않을 법한 예외까지 고려하여 규정을 짰을 것 같지는 않지만, 헬무트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어쨌든 아레아와 엘라가에게 헬무트의 우승이 안중에도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