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1
40
헬무트
40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헬무트는 대강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어둠의 싹을 가진 한 헬무트는 신전과 대척점에 서게 된다. 적에 대한 정보를 들어 두는 건 유익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안티올이라는 마법사, 궁금하군. 그렇게 노골적으로 신전에 적대하고도 살아남으려면 보통 실력으론 안 될 텐데.”
“그래서 자그마치 대마법사라잖아.”
“대신 정신에 좀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수런수런 이어가는 대화를 들으며 헬무트는 생각에 잠겼다. 그 안티올이라는 마법사에게 흥미가 돋았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숨겨야 한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나 생판 처음 보는 마법사를 신뢰할 수는 없는 일.
자신을 실험 재료로 쓰려고 할 수도 있다. 어둠의 싹을 가진 인간을 만나보는 건 그자도 처음일 테니까.
‘내 안에 있는 어둠의 싹.’
비스로 짓누르고 있긴 하지만, 요 며칠 마기가 있는 숲속을 지나면서 조금 크기가 부풀었다.
과거를 찾아가는 것도, 실력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둠의 싹을 제거할 방법도 알아봐야 했다.
그것은 언제 발화할지 모르는 불씨였다. 그리고 헬무트를 광기에 사로잡히게 할 저주받은 힘.
어둠의 싹을 제거할 방법을 알 만한 자들은 얼마 없었다. 신전으로서는 그걸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어둠의 싹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죽여 없애거나 파헤의 숲으로 보냈다.
신성 마법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마법으로는 가능할 것인가? 헬무트는 그것이 궁금했다.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마법사라면 뭔가 다를까.’
안티올, 헬무트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 넣었다.
*
다음 날, 페이스 용병단은 그 지긋지긋한 숲 외곽까지 이를 수 있었다.
습격을 맞아 한시도 잠을 편하게 잘 수 없었던 때가 언제였냐는 것처럼 가는 길은 평온하기만 했다.
몇 안 되는 인원이라 한 마차당 두 명 정도만 배정되었다.
“여기서 나흘 정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했어.”
타나갸 말하자 핀이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도망간 2급 용병들, 파울과 막스는 어떻게 되는 거죠?”
“타리크 용병단으로 가진 않았겠지. 양심이 있다면.”
뒤쪽에서 걷던 션이 반박했다.
“아니지, 그들은 우리가 모두 죽었다고 생각할 테니 타리크 용병단으로 돌아갔을 수 있지.”
“그들만 살아남은 건 문책당할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둘러대면 살아 돌아온 자들한테 뭘 어쩌겠어.”
“무리한 의뢰를 맡긴 뷰탄 상회 쪽 평판도 떨어지겠군.”
“우리가 진실을 알려 줘야겠지.”
“그 새끼들, 살아 돌아온 우릴 보면 아주 기절하겠어?”
“운이 좋다면 마을에서 바로 마주칠지도. 여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딘지는 뻔하니까 말이지.”
핀이 이를 갈며 말했다.
“개새끼들 진짜, 내가 보기만 하면 곤죽을 만든다.”
“네 실력에? 상대는 2급 용병이야. 퓌엔도 그렇겐 못할 거라고.”
하지만 쪽수엔 장사가 없으니 몰매라는 방법도 있다. 이쪽 3급 용병들은 3급 용병들 중에서도 상위권의 실력을 가졌으니까. 타냐도 내심 이를 갈았다.
“그럼, 헬무트가…….”
“야, 조용히 해.”
타냐가 눈치를 줬다. 마일즈나 타리크 용병단의 유일한 생존자인 헨리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
헬무트의 실력에 대해선 모두 함구하고 있었다. 핀을 제외하면 새어 나갈 일은 없어 보였다.
이번 의뢰로 받는 대가에서 7할은 헬무트에게 가기로 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마물 사체에서 얻은 수익도 모두 헬무트의 것이다.
‘목숨을 건져 준 대가라고 하기엔 약소하지만,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퓌엔이 멋쩍은 듯이 웃었다. 헬무트가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의뢰였다. 실패 정도가 아니라 용병단의 몰살로 끝났을 것이다.
그들이 도와준 것도 있었기에 헬무트는 자신이 받는 몫이 타당하다고 봤다. 만족스러운 지분이었다.
“근데 헬무트, 나한테 한턱 쏘기로 한 건 잊지 않았지?”
핀이 다가와서 슬쩍 어깨에 손을 올렸다. 헬무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결국 고민하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 같았다.
헬무트를 괴생물 보듯이 쳐다봤던 게 언제였냐는 것처럼 다시 친근한 척 달라붙었다. 머리가 단순한 핀다웠다.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지?’
저번에 스리슬쩍 넘어간 걸 아예 제 마음속에서 약속이라고 확정 짓고 있나 보다.
헬무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션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말했다.
“야, 야, 핀. 넌 양심도 없냐. 한턱은 네가 쏴야지 임마. 생각해 보니 헬무트가 계속 널 봐주고 있었구만. 어쩐지 네가 멀쩡한 게 이상하다 했어.”
“자기가 바보라서 다친 걸 가지고 나한테 그러네.”
“이 녀석이, 근데?”
타냐갸 끼어들어 션을 제지했다.
“이봐, 우리 아직 의뢰 중이라고. 잡담은 여기까지!”
“넌 이따 두고 보자.”
핀은 션을 향해 혀를 날름 내밀었다. 여느 때의 페이스 용병단이었다. 퓌엔이 헛웃음을 지으며 대화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턱은 내가 쏜다. 그러니 뭘 먹을지 생각이나 해 둬.”
그 말이 힘을 북돋은 것 같았다. 속도를 높인 그들은 해 질 무렵, 숲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마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여행 장소와 거리가 먼 이 마을에서 이만한 규모의 일행을 맞이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구경거리를 보는 듯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페이스 용병단은 바로 마을에 있는 유일한 여관에 들이닥쳐 방을 잡았다.
험한 생활에 익숙해진 용병들이라도 휴식 기간의 편한 잠자리가 그립지 않은 건 아니었다.
페이스 용병단원들은 그저 미치도록 쉬고 싶었다. 그간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걸어서 온몸에서 냄새도 풀풀 풍겼다.
“여기 다른 손님은 없소?”
퓌엔이 묻자 여관 주인이 말했다.
“용병으로 보이는 손님 두 명이 있었는데, 자네들이 오기 전에 짐을 챙겨서 급히 떠나던데.”
그들이 도착하면서 마을이 소란스러워졌다. 이목이 집중된 걸 보고 도망친 것 같았다. 우터가 혀를 찼다.
“새끼들 더럽게 빨리 내빼네.”
“어쨌든 이걸로 알았겠지. 자기들이 타리크 용병단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것을.”
배신자이자 도망자들이다. 페이스 용병단에서는 그들이 벌인 짓에 대해서 만방에 알릴 생각이었다. 뷰탄 상회도 그러기로 약속했다.
“우리 쪽 주가는 오를 테니 앞으로 의뢰는 많이 들어오겠군.”
타리크 용병단은 다수의 용병을 잃었다. 떨어진 평판과 줄어든 인원을 복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경쟁자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이었다.
“이번 같은 의뢰는 사양하지.”
타냐가 이를 씩 드러내며 웃었다. 며칠 만에 짓는 환한 미소였다.
*
쪼잔한 구석이 있는 퓌엔은 그날 당장 그 한턱이라는 걸 쐈다.
그의 계산대로 술을 마실 수 없거나 몸이 피로한 부상자들은 의뢰품을 정리하자마자 곧바로 침대로 들어가 버려서, 사실상 식당으로 내려온 사람은 몇 명 없었다.
타리크 용병단의 헨리는 눈치가 있다면 낄 수 없는 자리였다.
“야, 헬무트.”
잡일에서 제외돼서 체력이 닳긴커녕 쌩쌩한 헬무트와 어린 나이답게 힘이 뻗치는 핀만 식당에 덜렁 내려와 있었다.
정작 그들을 불러 놓은 퓌엔도 타냐와 함께 돼지 바비큐만 뜯어 먹고 위로 올라갔다.
“내일 오전에 출발해야 하니까, 일찍들 자라고!”
그 말만을 남겨 놓고서.
“이거 다 퓌엔 앞으로 달아 두면 된대. 뭐 먹을까?”
핀은 잔뜩 신난 눈치였다. 처음으로 맡은 의뢰에서 갖은 위험한 일을 다 겪었다. 경험을 쌓는 거라면 아주 제대로 쌓았다. 괴롭힘에서부터 죽음의 위기까지. 거기다 더해, 기적까지도.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다.
몇 안 되는 메뉴가 적힌 메뉴판에서 있는 대로 술과 음식을 시킨 핀은 헬무트에게 바로 나온 흑맥주를 권했다.
“야, 이거 마셔 봐. 이 집에서 직접 만든 거래.”
한 모금 들이킨 헬무트는 얼굴을 찌푸렸다.
‘독인가?’
끄윽 거리며 가스가 밀려 올라와 목이 따갑고 코가 얼얼했다.
하지만 통증은 미미했고, 곧 알싸한 향과 함께 그윽한 풍미가 혀에 배어 들었다. 기름진 고기 안주와 딱 어우러지는 맛이었다.
이게 술이라는 건가? 이야기는 들었지만 색다른 맛이다. 밀려오는 취기를 비스로 내보내며 헬무트는 말했다.
“맛있는데.”
“그렇지? 이 집 흑맥주가 맛있네. 더 시키자.”
‘시킬까?’라고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돈은 퓌엔이 낸다.
핀은 사정없이 맥주잔을 비웠다. 배가 터지도록. 화장실도 두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점점 취해갔다. 무슨 소리를 하긴 하는데 혀가 꼬여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대체로 자신의 열네 살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그 각박함과 고단함에 대해서 떠드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헬무트는 핀과 처음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술은 본심을 이끌어 낸다고 한다. 사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핀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먼저 했다. 무시할 수 없게 또렷한 발음이었다.
“야, 네가 보기에도 나 좀 검술에 재능이 있는 것 같지 않아? 마물 같은 거 처음 보는데도 검도 막 이렇게 휘두르고 싸우고 그랬잖아. 진짜 실전은 처음이었다고! 이러다가 막 2급 용병까지 올라가고 그러는 것 아니야?”
대개의 용병은 실력이 있어도 3급 용병에서 멈춘다. 그중 특별한 용병만이 2급 용병까지 올라가고 실력과 경험을 쌓은 데다가 재능을 더한 이들이 1급 용병에 이른다.
노력하면 검술은 늘지만, 용병으로서 의뢰를 수행하면서 살아남아 급을 올리는 건 노력만으론 안 된다. 운과 재능도 따라 줘야 한다.
그런데 핀은 노력과 운과 재능 중 가진 건 오로지 운뿐이었다.
현실감과 동떨어진 소리에 기가 막혔다. 술기운 때문인지 참지 못한 헬무트는 대놓고 말해 버렸다.
“아니.”
“응?”
“네겐 검사로서의 재능이 없어. 겁도 많고, 검술도 어설프지.”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자 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심장의 튼튼함과 간의 크기도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다. 배짱이 재능이라면 핀은 그 재능이 바닥이었다.
용병이란 건 기본적으로 위험이 따르는 직업이다. 실력은 둘째치고 겁쟁이 핀은 심장에 무리가 가서 얼마 안 가 쓰러져 버릴 것이다.
핀이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다.
“야,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네가 강하다는 건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을 무시…….”
“그런데 넌 요리를 잘해. 네가 만든 음식들은 다 맛있었어. 잘하는 쪽 재능을 활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헬무트는 진지하게 말했다. 이 여관의 음식은 썩 맛있는 편은 아니었고, 핀이 만든 게 더 나았다.
핀 쪽이 훨씬 재료가 부족하고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건 솜씨의 힘이다.
그 힘든 와중에서도 매번 조금씩이라도 다른 메뉴를 고안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핀도 요리하는 걸 즐기고 있다.
헬무트에게는 검사로서의 삶 외에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점에 불만도 없다. 그는 강해져야만 했고, 검을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게 즐거웠다. 강해지고 있다는 게 즐거웠다. 자신보다 강한 다리언과 엘라가를 이기고 싶었다.
단조롭기 그지없는 파헤의 숲에서의 삶. 거기서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낙이며 목표였다.
헬무트는 검을 통해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굳이 검을 들 필요 없다면, 거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길을 가도 되지 않을까.
헬무트는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 세상에 나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걸 보면서 떠올린 생각이었으며 헬무트에겐 대단한 발전이기도 했다.
일단 남에게 이 정도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핀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는 헬무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헬무트의 말이 뒤통수를 후려친 것 같았다. 충격이 술기운을 깨웠다.
‘나도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우연한 기회로 페이스 용병단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 이름 높은 용병단에서 지내면서 핀도 자연스럽게 그들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용병이 되는 것 말고 다른 길을 생각하지 못한 건 핀에게 당연했다.
하지만 헬무트는 그에게 다른 길을 던져 줬다. 핀이 생각해 보지도 못한 길을. 핀이 미심쩍게 물었다.
“너, 그 말, 진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