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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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의 손에는 작은 환이 들려 있었다.
반투명한 껍질 안에서 뭔가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소름 돋게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그걸 본 순간 미하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이미 창백했던 얼굴이, 피멍이 올라온 곳을 제외하곤 더 이상 하얘질 수 없을 만큼 하얗게 질렸다.
경악과 공포가 서린 얼굴에 대고 헬무트가 환을 들어 보였다.
“이게 뭔지 아나 보군.”
블랙호크에서 한때, 헬무트에게 사용하려고 했던 바로 그 벌레다.
심장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며, 한 달에 한 번 특수하게 조제된 약을 삼켜 벌레에게 먹이를 보충해주어야 한다.
약의 배합법은 유충 때부터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갈리기에, 벌레마다 다르다.
만약 먹이를 주지 않는다면 벌레는 심장을 파먹을 것이다.
마력에 예민한 놈이기에 마법으로도 제거하는 것도 쉽지 않다.
벌레는 위협감을 느끼면 그때에도 심장을 갉아 먹어 숙주의 명줄을 끊을 것이다.
“천하디천한 암살자들이나 사용하는 수법을 내게……!”
미하엘은 방어태세로 뒷걸음질 쳤다.
“알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
헬무트는 그대로 미하엘에게 덮쳐들었다.
“싫어! 아무도 없느…… 아아아악!”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대는 미하엘을 제압한 뒤, 입을 강제로 벌렸다.
몸에 근육이라곤 존재하지 않으니 근력도 변변찮은 미하엘이다.
그를 강제하는 건, 갓난아기를 강제하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헬무트는 곧장 환을 그의 목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콜록, 콜록! 미하엘은 격렬하게 바둥거리면서 입안의 이물질을 뱉어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목울대가 들썩이며 환은 결국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다.
헬무트는 그제야 미하엘을 놓았다. 쿠당!
“흐으으으악!”
바닥에 엎어진 미하엘이 눈물을 쏟아 내며 헛구역질했다.
미하엘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로,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삼킨 것을 토해내려고 애썼다. 필사적인 몸짓이었다.
케엑! 그러나 그가 뱉어낸 건 환이 아니라 위액에 젖은 껍데기 파편이었다.
그 안의 벌레는 이미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더, 더러운 벌레를! 이 마물!”
헬무트는 차가운 눈으로 미하엘의 발악을 지켜보았다.
미하엘은 알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이내 가슴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벌레가 파고들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얼마간의 통증이 따른다고 들었다.
‘아레아가 손본 거니, 별 이상은 없겠지.’
목숨엔 지장이 없으리라. 헬무트는 블랙호크를 통하여 벌레를 사들였다.
애초에 그것은 절대적인 독약 같은 건 아니다.
리노사 대공자쯤 되면 마법사협회의 힘을 빌리거나 아예 치료사를 불러, 벌레를 제거하는 고난도의 시술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거기에 아레아의 마법이 가미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대마법사쯤 되지 않고서야, 미하엘에게서 벌레를 제거할 수는 없으리라.
괜한 시도를 했다간 목숨이 달아날 것이다.
‘그렇게 죽어도 상관없지만.’
벌레가 자리를 잡았는지 떨림이 잦아드는 미하엘의 몸을 헬무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모습으로 가식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었던 미하엘이었다.
침과 눈물 콧물로 범벅된 미하엘의 얼굴은 하찮으면서도 우스웠다.
오히려 흐트러짐 없는 쪽은 헬무트였다.
고고한 척하던 녀석이, 이렇게나 간단히 바닥까지 드러내다니. 헬무트는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오냐오냐 자란 과였지.’
남들을 이용해 먹을 수 있을 만큼 똑똑하기에, 그리고 늘 우위에 설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에 강해 보였을 뿐이다.
치욕적인 꼴을 당해보았을 리 없으니, 제가 구석에 몰린 상황에선 인내심도 없다.
실은 약한 몸을 무기로 제멋대로 살아온 도련님에 불과할 뿐.
그래서 그에겐 패배자로서의 삶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게 쉬운 것이다. 딱히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샤를로트는 너무도 바르고 정의심이 강했기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약한 동생이 자신을 함부로 대한다고 해서 되갚아 주지 못했다.
미하엘의 태도는 헬무트에게도 얼마간 먹혔다.
하지만 그가 헬무트의 뒤통수를 친 이 시점에서도 먹히리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그것 하나만큼은 놀라울 만큼 제 어머니를 닮았다.
초식 동물처럼 몸을 웅크린 미하엘이 입가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구역질 나네요. 감히 내게 벌레를 먹이다니.”
애처로움을 유발하는 투정이었건만, 헬무트는 냉담히 대꾸했다.
“사람은 살면서 알게 모르게 벌레를 먹는다더군. 오늘이 처음은 아닐 테니 신경 쓸 것 없다.”
“그걸 지금 위로라고……!”
“누가 위로 같은 걸 한다는 거지?”
헬무트는 기가 찬다는 듯이 반문했다.
가해자에게 그런 걸 기대하다니, 양심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어리광도 수준급이다.
그 타박에 일순 감정이 폭발한 미하엘이 헬무트에게 달려들었다.
“왜 나를 이런 식으로 살려둬요! 왜!”
제 팔을 붙들고 소리를 질러대는 얼굴을 헬무트는 무심하게 마주했다.
“나를 적으로 만들면서, 결말까지 네 뜻대로 될 거라 생각했나?”
“틀렸어요. 당신은 나한테 이래선 안 돼!”
더 이상 들어주기 어렵다. 듣다간, 기껏 벌레까지 비싸게 구해다가 먹인 그를 죽이고 싶어질 테니까.
헬무트의 눈썹이 치켜 들렸다. 그는 그대로 미하엘을 밀치려 했다.
그러나 미하엘이 그전에 재빠르게 외쳤다.
“내가 당신을 살려줬잖아!”
“……네가, 나를?”
죽이려 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의문.
그러나 미하엘의 눈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감정은 원망이었다.
“그래요, 나는…… 신전에 말할 수 있었어요.”
“무엇을.”
“당신이 검성 다리언의 제자란 거. 난 알고 있었어요. 당신의 검을 봤으니까. 그들도 알았다면…… 절대로 당신을 살려두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확실히 그걸 알았다면, 신전은 대공비의 뜻에 따라 헬무트를 파헤의 숲으로 보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으리라.
검성 다리언. 그 이름은 신전을 과민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난 그걸 숨겼어요. 그건 내가 선택한 거야. 난 당신을…… 4년 전 라토나에서 제거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대신, 파헤의 숲으로 보냈죠. 당신이 살아왔던 곳으로.”
신전의 손으로 깔끔하게, 자신의 정적을 처리한다. 그럴 만한 절호의 기회였다.
한 번 파헤의 숲에서 나온 헬무트를 파헤의 숲으로 다시 보내는 것보다는, 더욱 확실한 방법.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건 미하엘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때의 미하엘은 헬무트가 거기서 죽길 바라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이성적인 척은 했지만, 평생을 제 욕망을 좇아 바라는 대로 살아온 미하엘이었다.
그때의 그는 자신의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했다.
뭔가를 누르듯 눈을 감았다 뜬 헬무트가 싸늘하게 꼬집었다.
“양심을 자의적인 방식으로 챙기는군.”
하지만 의외이기도 했다. 당시의 헬무트한테는 아무 의미 없던 그 후계자 자리가, 미하엘에게는 전부였기에.
평생을 제 것이라고 일궈왔던 것을 잃을 변수를 용납할 그가 아니다.
헬무트는 미하엘에게 혈육이기 이전에 경쟁자였다.
형제라도, 진심으로 애정을 품었어도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면 제거한다.
미하엘은 그런 녀석으로 여겨졌기에.
“……그래요, 난 그랬죠. 하지만 그래서 당신은 살았잖아! 살아서 여기에 다시 왔지. 그러니 내게…… 당신이 이럴 수 없는 거예요.”
이제 알겠냐는 듯이, 당당하게도 주장한다.
제가 마치 헬무트에게 빚이라고 지운 것처럼.
헬무트는 더 때릴 곳도 없이 피멍이 든 미하엘의 처참한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 사실을 말하는 이유는 뭐지? 네가 그랬으니 자비로운 죽음을 달라는 건가? 여기서 숨을 끊어달라고.”
말문이 막힌 듯, 미하엘은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피하듯 눈을 내리깐 그의 얼굴엔 당혹이 서렸다.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은 것처럼.
헬무트는 그제야 알았다. 이 녀석이 정말로 죽음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을.
헬무트가 설마 자신을 죽이랴 하는, 그런 생각도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 안일한 발상은 평생 어리광이 받아들여지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맞아본 것도 오늘이 처음일 녀석이다.
잘못을 좀 했다고 해서 누군들 리노사 대공자를 크게 벌할 수 있으랴.
자신의 선택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발상은, 무의식적으로 배제된다.
오히려 일생을 죽음에 가까이 있었기에, 죽음이란 단어가 그에겐 더욱 가벼웠다.
헬무트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미하엘의 이런 점을 대공이 모를 리 없다.
만약 헬무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대공은 미하엘을 후계자로 삼지 않았으리라.
이기심과 욕망만이 있을 뿐, 미하엘에겐 리노사를 지탱할 의지와 책임감이 없었다.
그것을 가진 쪽은 차라리 욕심 없는 샤를로트였다.
헬무트는 입을 열었다.
“너는 샤를로트의 형제이며 리노사 대공가의 일원이지. 그게 내가 너를 살려두는 이유는 아니야.”
입술만 깨물고 있던 미하엘의 시선이 들렸다.
“너는 쓸모가 있다.”
미하엘은 나름의 인재였다. 어쨌든 똑똑하고 왕재로서 교육받은 덕에 리노사의 실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배신하지 못하게만 해 둔다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에게 분노를 표하긴 했어도, 헬무트가 진정 분노했던 상대는 미하엘이 아니었다.
미하엘을 믿은 적은 없지만, 마그리트를 믿었다.
그녀의 가장 사랑하는 자식에게 화풀이하는 것은 온당했다.
헬무트는 경고했다.
“한 달에 한 번, 약을 먹지 않으면 그 벌레는 심장을 파고든다. 살고 싶다면 네 쓸모를 입증해라.”
그가 쓸모없는 존재라면 헬무트는 약을 주지 않을 테고, 미하엘의 죽음은 심장마비 정도로 치부되리라.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미하엘은 리노사에서 언제든 병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미하엘에게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헬무트는 그를 놔두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는 대기하고 있던 알론소에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치료가 필요할 겁니다.”
몸이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걸레짝처럼 두들겨 맞았으니, 허약한 미하엘은 또다시 앓아누울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