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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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은 각지에서 몰려든 손님들로 번잡했다.
차기 리노사 대공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모습을 보이는 자리다.
무투회 결승전에서의 일이 이미 타국까지 떠들썩하게 한 터였다.
아쉽게도 그 광경을 놓친 이들은 무성한 소문 속에서 헬무트가 공식 석상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그 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때가 온 것이다.
리노사 대공의 연회에 참석할 만한 신분을 가진 이들은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달려온 터.
그들 중 제국의 고위 귀족이 상당수였다.
원래라면,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제국 유수의 후작가 출신인 리노사 대공비의 몫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 이유를 은밀하게 짐작했다.
리노사 대공비가 미하엘을 지지하고 있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런 상황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장자가 후계자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로서는 탐탁지 않은 상황이었으리라.
물론, 헬무트도 미하엘도 대공비의 친자라면 상관없지 않으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자식이 어미와 가깝지는 않은 법이다.
더군다나 헬무트가 버려진 자식이라면.
리노사 대공의 외탁을 노골적으로 거론할 수 없어서 쉬쉬하고 있을 뿐이지, 헬무트가 대공비의 친자가 아니라는 소문도 퍼져 나가고 있는 터였다.
대공비의 불참이 그 소문에 쐐기를 박았다.
연회장은 이 같은 일들로 유독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흘러넘쳤다.
조심조심 말을 나누면서도, 꽤나 깊은 영역까지 리노사 대공가의 사정을 짐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미하엘 님은 완전히 권한을 잃으신 모양이더군. 건강이 상했는지 처소에서 두문불출하신다 들었어.”
“연회를 환히 밝혀주시는 분이건만. 안타깝군.”
“리노사에서도 신전에 반하는 황가의 손을 들어주었으니, 신전에 가까웠던 미하엘 님은 자연스레 배제되는 흐름 아닌가.”
“실책이 있기도 한데다가, 새로이 후계자가 등장했으니. 어지간해선 차남이 장남을 앞설 수는 없는 법이지.”
“게다가 이번 무투회는 그 이름 높은 바소르의 무투회보다도 더 수준 높은 대회였다는데 거기서 우승을 차지하지 않았나.”
“리노사 대공가도 검사를 높게 여기지. 검사로서 최상이라면야, 자질은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지. 다른 것은 부차적인 문제.”
나라를 다스리는 능력은, 검술 실력과는 다른 것이지만 몇몇 나라에서는 후자를 후계자의 자질로써 매우 중시했다.
리노사 역시도 그런 나라였다.
심지어 검술 실력이 다른 소양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정도로, 리노사에서는 수많은 자질 중 검술 실력을 중시했다.
그 가장 중요한 하나가 부재한 데도, 두각을 드러냈던 미하엘은 다른 쪽으로 출중한 자질을 갖춘 데다가, 정말로 부단한 노력을 했다고 할 만했다.
그것이 송두리째 무너진 지금도 다른 이들의 불행을 즐기는 자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지 않을 만큼.
제 실제의 성질머리가 어떠하든 미하엘은 손쉽게 사람들의 호감을 사고, 그들의 마음을 흡인하는 매력을 가졌다.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복수이기도 했지만 헬무트로서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만약 그를 죽였다면 헬무트는 악랄하고 잔혹한 폭군처럼 반감을 샀을 것이고, 미하엘은 비극의 주인공처럼 포장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려던 미하엘의 의도이기도 했다.
화제는 금세 바뀌었다. 좀 더 리노사의 실정에 대해 잘 아는 자가 입을 열었다.
“흑익 기사단도 헬무트 님의 명을 받는다지?”
“군 권한을 나누어주었다는 것은, 대공께서 이미 결정을 내리셨다는 뜻 아닌가.”
“파헤의 숲이라니……. 정말로, 거기에 버려지는 이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게 전설 같은 걸로만 알았는데.”
“귀부인이 출산하고도 탄생축하연을 열지 않고, 갓난아기가 죽어 나가는 일이 있으면 그런 경우라더군.”
“하긴, 어지간한 귀족가라면 출산에도 수준 높은 치료사들과 신관들이 배치되니까.”
그러나 ‘어둠의 싹을 가지고 태어나, 파헤의 숲으로 보내진다’라는 말이 설화처럼 낯설게 들리는 이들에게도 우려는 있었다.
“그래서,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건가? 그 어둠의 싹이라는 거…….”
어둠의 싹을 가진 이들이 폭주하는 일은, 최근 백 년간 리노사에서 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거의 소문이 나지 않은 터였다.
그만큼 신전이 출생부터 엄중히 단속하고 있는 문제였다. 그 때문에 경각심도 덜했다.
“대공께선 문제가 없다고 하시니.”
“신전에서는 아직 반응이 없지?”
“종합 무투회에서 소동을 벌인 성기사를 풀어주라고 항의하고 있다고 들었네.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나서지 않을까. 그 성기사가 신전에서도 중요한 인물인 듯하니.”
말을 내뱉은 이도, 들은 이들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여기에 신전에 우호적인 인물은 없었다.
그런 자들은 황태자 암살 사건이 있은 뒤로 몸을 사리고 있기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성기사는 하루 전, 풀려나 신전으로 돌아간 터였다.
종합 무투회가 파하고, 리노사 대공 일행이 리노사로 돌아간 뒤 며칠이 흐른 시점이었다.
황태자는 적당하다시피 시간을 끈 뒤, 성기사를 풀어주었다.
그동안 신전의 격렬한 항의가 잇따랐으나, 조사를 명목으로 그를 붙잡고 둔 터였다.
발칙한 짓을 벌였으나, 성기사를 처벌하기에는 미약한 죄이니 좁고 불편한 곳에서 고생 좀 해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건 전적으로 푹신한 침대와 널찍한 방안에서 뒹굴 황태자 시점에서의 고생이었지만, 경고의 의미가 있기도 했다.
앞으로 신전의 면책 특권은 효력을 다 발휘하지 못할 테고, 신전에 속한 이들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
구속당해있다는 것 자체가 신전의 고귀한 성기사로서는 생전 처음 겪어본 굴욕이었을 터.
그러나 성기사는 성검을 가지고 저항하며 탈주하지 않았다. 그는 탈옥하는 죄수처럼 감옥을 부수고 나서기보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떳떳이 걸어나가기를 원했기에.
뜻대로 되기는 했다. 혹독한 수련을 해왔을 검사로서는 좀이 쑤시는 며칠을 견뎌내고 난 뒤에.
이후로 아직은, 신전으로부터 어떠한 본격적인 움직임도 일지 않은 터였다.
신전으로서도 제국과 리노사가 그들의 결합을 확고히 한 이상, 양쪽에 모두 검을 들이대는 선택은 쉽지 않을 거라고들 예상했다.
연회에 참석한 이들은 곧 음악 속에서 근심을 잊어버리고 먹고 마시며 사교를 즐겼다.
그러한 와중에, 리노사 대공 일가의 등장이 이루어졌다.
리노사 대공과 헬무트, 그리고 샤를로트였다.
“라토나의 연회에 참석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리오. 소개하지요. 내 아들이며, 리노사의 후계자인 헬무트요.”
대공은 등장하자마자, 리노사의 군주답게 좌중을 굽어보며 그답게도 직설적으로 헬무트를 소개했다.
헬무트는 앞으로 나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정중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고개만 까딱하고 마는 모습이 거만해 보이기까지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리노사의 후계자다웠다.
그 옆에 당사자가 가져야 할 긴장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던 듯한 샤를로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분이시로군요. 세상에.”
“정말로…… 대공 전하를 닮으셨습니다.”
감탄과 놀람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대공을 비껴 연회의 주인공인 헬무트에게로 집중되었다.
헬무트는 제게 달라붙는 수많은 시선에 개의치 않고 무덤덤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이미 오갔던 말들이 새로이 꺼내지긴 했으나, 그 듣기에 썩 좋지 않은 말들을 뛰어난 청각으로 고스란히 들으면서도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공비가 나를 배신했다는 이야기는 알려지지 않았나 보군.’
그가 그녀로부터 두 번이나 버려졌다는 사실은 연회장에서 아는 자가 없는 듯하다.
4년 전, 라토나의 왕성에 머무른 그를 기억하는 이가 있을 만도 하건만.
라토나의 왕성은 완벽하게 외부로부터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듯했다.
리노사 대공가가 어떤 불명예스러운 소문에 휩싸이건, 헬무트는 상관없었다.
대공도 그닥 개의치 않은 듯했다.
언제나 새로운 바람은 입짓을 몰고 오기 마련이다.
지금 잠시 떠들썩하더라도, 소문은 헬무트가 자리를 확고히 하면 불식되리라.
“그리고 또 하나, 공표할 소식이 있소.”
대공은 간격을 두고 입을 열었다.
힘이 실린 목소리에 부산했던 장내가 다시 침묵을 머금었다.
“내 후계자의 약혼녀이자 마법사, 아레아요.”
은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아레아.
어디서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단숨에 자신을 각인할 모습이었다.
그 사실이 번거롭긴 해도 아레아 자신도 꺼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마저 느끼는 그녀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후광을 입은 듯이 연회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녀가 헬무트 곁에 서자, 그의 어둠과 그녀의 빛이 하나로 녹아드는 환영마저 엿보였다.
어둠도 빛도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았다. 제각기 있어야 할 자리에 맞게 있는 듯이 조화로웠다.
훗날 리노사의 대공과 대공비가 될 한 쌍이었다.
부모를 잃은 뒤 줄곧 하이케의 그늘에서 자신을 감추며 숨어 살았던 아레아는,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 미소 지었다.
숨김없이 발산되는 그녀의 마력이 대기를 타고 번져나갔다. 귀부인들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해갔다.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이라든가, 권력자에 대한 호감. 그 어떤 것이든 좋았다.
아주 작은 호감의 불씨가 있다면, 동성을 매혹시키는 아레아의 마력은 그것을 불길로 만든다.
평생 감추고 살았던 힘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기분은 스스로도 새로웠다.
“아레아라고? 평민인가?”
“마법사 아레아라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데.”
연회장은 곧 술렁거림에 휩싸였다.
당장 연회장에 그녀의 이름을 아는 이가 없더라도, 그레타 아카데미 출신이라면 그녀를 모를 수 없다.
리노사에도, 제국에도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아레아는 남자가 아니었나? 어째서 남자로 변장하고 다녔지?
자연스레 뒤따를 소문과 의혹들.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슬며시 일었던 긴장감은 의지로 탈바꿈한다.
헬무트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레아는 그 손을 맞잡았다.
이곳 라토나의 왕성은 그녀가 뿌리박을 장소. 헬무트의 곁이었다.
마주하는 그녀의 눈빛에 고요하던 헬무트의 마음에도, 파문이 일었다.
먼 과거로부터 시작된 이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헬무트의 입술이 달싹였다.
말재주 없는 그이지만,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때 연회장의 문이 열리고, 검은 갑옷의 기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사람들 틈새를 헤치고 성큼 걸음을 옮겨 신속하게 대공에게 이르렀다.
흑익 기사단장 알론소였다.
“대공 전하, 무례를 용서하소서. 급한 전갈이 당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