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32
431
헬무트
431화
콰직!
검이 날아와 그의 어깨를 꿰뚫은 순간, 레반트의 입에 신음이 흘렀다.
신음을 토해 낼 틈도 없이, 두 번째 검이 날아왔다.
강화된 회복력이 곧장 상처를 수복했으나, 검보다 그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이쪽을 향해 잿빛의 검이 매처럼 날아들었다.
그것이 노리는 곳은 머리. 꿰뚫리면 치명적이다. 레반트는 검을 들어 방어했다.
신성력이 검 주위로 방패처럼 펼쳐지며 그를 지켰다. 그러나 잿빛 검은 궤도를 틀었다.
콰사삭!
옆구리의 갑옷이 벗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불붙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레반트는 통증을 견디며 검을 틀었다. 적은 빨랐지만, 대처하지 못할 속도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쩐지 공격도, 방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 이!”
분노에 가득 차 휘두른 성검은 허공을 베었다.
휘우우우웅!
스치기만 해도, 뼈까지 신성력으로 녹여 버릴 위력을 담은 검이었다.
하지만 헬무트는 스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새처럼 빨랐으며, 자유자재로 적을 농락했다.
연약한 날개가 다치면, 새는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치지 않으면 그만.
전신의 피가 얼어 버린 듯한, 감각마저 마비시키는 몰입이었다. 표적을 노리는 헬무트의 눈빛은 지독히도 냉정했다.
헬무트의 검은 바늘 같았다.
치명적이진 않지만, 레반트의 전신을 조금씩 후벼 팠다.
상처를 수복하는 속도보다 상처가 나는 속도가 빨랐다.
레반트는 급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레반트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온전한 힘을 드러낸 성검이 손아귀에 있었다.
그는 대신관들의 축복을 받았다. 여기는 신성한 군대의 정중앙이었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밀린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불가해한 일이 지금, 명백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헬무트는 차근차근 그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그가 이기는 방법은 간단했다.
레반트의 공격은 피하고, 허점이 보이면 찌른다.
무투회 결승전에서 맞붙었을 때, 레반트의 검은 견고했다.
그가 천천히 쌓아 올려 다루는 데 완전히 능숙해진 힘.
검사마다 다스리는 힘의 한계는 다르다.
그의 검술이 포용하는 선상에서, 실력은 극대화된다.
검술로써 힘을 온전히 다스리는 범주. 그것을 검사의 경지라고 일컫는다.
갑자기 막강한 힘이 주어진다고 한들 주어진 힘만큼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레반트가 성검의 힘을 온전히 다스리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거기다가 대신관들이 신성 마법을 퍼부어 준다고 한들, 그 힘을 전부 소화해 내진 못한다.
‘주제에 맞지 않게, 과한 힘을 얻었어.’
그러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차례다. 헬무트는 자신의 적을 차가운 눈으로 주시했다.
휘이이잉!
검날이 아니라 신성력과 한 덩이가 되어 휘둘러지는 성검.
그 위력은 엘라가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막강했다. 하지만 닿지 않으면 의미 없는 공격일 뿐.
‘신성력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는 강박. 스스로 휘둘릴 만큼의 근력. 힘에 휘둘리는데, 뜻하는 대로 움직이긴 어렵지.’
정교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그 막무가내의 검. 반응만 한다면 피해 내는 건 일도 아니다.
헬무트는 경지에 오른 자. 레반트의 동작 정도는 빤히 읽혔다.
그를 뚫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을 일일 테지만, 이처럼 무식하게 공격해 온다면 오히려 손쉬웠다.
자연스레 몸이 열리고, 동작이 커진다.
헬무트는 그의 검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무수한 틈을 보았다.
틈이되, 비집고 들어가려면 마기를 가진 헬무트에게는 상처를 감수해야 하는 틈.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피할 수 없었다.
이 성기사는 마지막 남은 벽이었다. 이제까지처럼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름 쓸모도 있지.’
레반트는 대신관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듯, 그들의 결계를 등지고 있다.
그로부터 날아오는 신성 마법은 모두 그의 몸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신성력은 신성력을 흡수하니까.
아까 성기사를 방패 삼으면서 느낀 사실이다. 그를 방패로 두고 싸우는 한, 헬무트는 신성 마법으로부터 안전했다.
결계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가서 도와야 하는가. 그들도 싸워야 하는가.
섣불리 달려들었다간 방해가 될 듯하여, 성기사들조차 머뭇거리고 있건만.
병력을 헬무트에게만 집중하기에, 리노사의 군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리노사의 정예, 흑익 기사단이다.
헬무트가 베어 낸 성기사의 시체가 산을 이룰 터. 그의 무용을 보고, 전의가 살아난 그들은 헬무트의 뒤를 쫓아 이곳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절대적인 병력의 차는 여전하건만, 오히려 열세에 몰린 쪽은 신전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이 헬무트다.
‘이제 슬슬 마지막이로군.’
헬무트는 치명적인 일격을 준비했다.
모처럼 공을 들인 사냥이었다. 상처 입은 사냥감이 눈앞에 있었다.
쏟아 낸 피로 레반트의 하얀 갑옷도 온통 새빨갛게 물들었다.
작고 큰 상처가 그의 전신에 가득했다. 손상과 회복을 거치면서 온통 열감이 휩싸인 몸.
감각은 서서히 둔해지고, 조바심과 미칠 듯한 분노가 정신을 흐린다.
다 잡은 먹이.
레반트의 성검에서 빛이 잦아들었다.
대신관들이 퍼부은 축복은 아직 그를 감싸고 있었지만, 레반트는 성검의 위력을 버렸다.
자신의 검술을 극대화할 수 있는 힘으로 승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성검을 비껴 낸 헬무트의 검이 곳곳이 박살 난 갑옷 위를 그대로 파고들었다.
콰슈슉!
공교롭게도 레반트가 시안을 베어 낸, 정확히 그 부위였다.
내장이 보일 만큼 크게 갈린 복부에서 피가 솟구쳤다. 신성력을 담은 피가 튀자 닿은 부위가 쓰라렸다.
하지만 헬무트는 멈추지 않고, 검을 움직였다.
콰삭!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살과 뼈가 함께 베였다.
팔뚝의 절반이 잘렸다.
그를 향해 날아들던 성검이 이탈하여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크아……!”
헬무트는 검날로, 성검의 검 손잡이를 힘껏 후려쳤다.
쾅! 쿠슝!
쇳덩이이기에, 다룰 수는 없어도 물리력을 행사할 수는 있다.
성검이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결계를 자유로이 통과할 수 있는, 신성력이 담긴 검!
같은 힘을 가졌기에 그것은 공격이 아니고, 신성 결계로 막지 못한다.
“피해!”
“검이 날아온다!”
그러나 경고가 채 닿기도 전에, 눈부시게 새하얀 검이 그들을 덮쳤다.
흡사 거대한 창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단 한 번도 그들을 향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무기였다.
콰드드드드득!
결계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신관들은 그 불의의 습격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몇 명이나 신관을 꿰뚫은 다음에야, 성검은 멈추었다. 신관의 몸을 그대로 꿰뚫은 채로!
“아, 아니 이게 무슨.”
“루멘이시여!”
그 광경은 마치, 헬무트가 성검마저 조종하는 듯이 보였다.
마가 신성을 지배한 듯이. 공포스럽다 못해 전율이 일었다.
레반트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루멘의 첫 번째 검은 패퇴했고, 성검은 신관을 해쳤다.
신관들은 다급히 서로가 서로를 일으키며 숨이 붙어 있는 이들에게 신성 마법을 퍼부었다.
“대신관님!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저희에게 길을 알려 주소서!”
신관들이 비명처럼 내지르며 아우성쳤다. 대신관들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혼돈과 충격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몰렸다고 느끼는 순간은 처음이었다.
목숨을 바쳐서 어둠의 싹을 가진 자를 척결하고, 성전을 완수할 것이다!
그런 각오를 하지 않은 이가 없었건만, 그 누구도 패배를 생각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이 거룩한 싸움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 없는 신전이었다.
루멘의 뜻을 따르는 그들은 옳았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빛은 그만큼 환했다.
루멘이라는 이름은 그 어떤 어둠도 물리치는 빛이었다.
그러나 저곳의, 저 헬무트란 자에게 깃든 어둠은 심연이었다.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심연.
처음으로 자신들의 빛을 압도하는 어둠을 만난 그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가장 오래된 대신관마저도. 이곳을 잠식한 것은 달도 뜨지 않는 밤이었고, 새벽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막, 레비나로부터 전음이 도착했다.
신전이 마물에 의해 반파되었고, 심각한 위기 상황이니 속히 돌아와야 한다고.
루멘의 성역이 침범당하다니!
눈앞의 전황보다도 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신관 레비나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위중함이 그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대신관 한 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돌, 돌아가야…….”
그때였다.
콰앙!
요란한 소음과 함께 파동이 번져 나갔다. 흩어지는 결계의 파편은 안개처럼 작은 입자로 공기 중에서 흩어졌다.
신성력의 안개 속에서 그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피가 말라붙은 검은 갑옷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의 눈빛은 속을 알 수 없이 짙었다.
신관들이 다급히 결계석을 돌아보았다. 결계가 강제로 무너지는 바람에, 결계석은 균열이 쩍쩍 가 있었다.
“이럴 수가.”
신관 한 명이 탄식하듯 내뱉었다.
그것은 신전의 주요한 성물이었다.
전쟁 시에 결계를 펼쳐 신관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효력 자체가 강력한 것은 아니다.
신성력을 극대화하는 효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신성력이 공급되어야 효과가 있는 것.
신관들이 충격에 빠져 돌보지 못한 사이, 약화된 결계가 단숨에 그에게 뚫리고 만 것이다.
헬무트는 서서히 호흡을 내쉬었다. 검을 쥔 손이 아려 왔다.
정신은 여전히 또렷했으나, 육체는 오랜만에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다.
헬무트는 지쳐 있었다.
레반트가 쓰러진 직후, 성기사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강력한 신성력을 상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몸은 서서히 갉아 먹혔다.
신성력이 닿은 전신은 화상을 입은 듯이 쓰라렸고, 비스는 빠르게 소진되었다.
엘라가와 마찬가지로, 그도 이곳에서 힘을 보충할 수는 없다.
이 싸움이 끝나야 비로소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싸움의 끝이 다가와 있었다.
헬무트는 양 떼처럼 새하얀 신관들 속에서, 유독 화려한 옷을 입은 다섯 명의 대신관을 손쉽게 찾아냈다.
그들의 존재감이 거대한 다섯 개의 횃불처럼 선연했다.
불시에 의문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이 상황조차도 루멘의 뜻이라 믿을까.’
혹은 시련? 그러나 헬무트로서는 알 수 없는 답이었다.
느슨해질 여유는 없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그의 발이 땅을 박찼다.
승리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