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33
432
헬무트
432화
적은 하나였으나 그 단 하나의 적이 지금 그들 모두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헬무트의 강함을 안다.
오로지 혼자서, 신전의 군대를 뚫고 루멘의 첫 번째 검을 부러뜨리며 그들 앞에 다다른 저자의 소름 끼치는 강함을.
헬무트가 속도를 올린 순간, 신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들었다.
이를 드러낸 마물이 바짝 뒤로 따라붙듯이 공포감이 치달렸다.
그들은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신성 마법을 퍼부었다.
백색의 마법이 비처럼 그를 향해 쏟아졌다.
키아아아앙! 콰슉!
사방이 온통 백색으로 물들었다. 헬무트의 시야도 하얀빛으로 가득 찼다.
헬무트는 오로지 감각만으로 그 결사적인 신성 마법의 폭우를 피해 내야만 했다.
그것은 마기를 가진 그에게 흡사 죽음의 비였다.
그러나 신관들은 아직 백 명도 넘게 있었고, 그 모두의 공격을 피해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베어 낸다.’
몇 번이나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그에게 남은 비스를 가늠할 여유도 없었다.
잿빛으로 물든 검이 대기를 갈랐다.
검으로써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신성 마법의 중심을 부수고, 적들의 공격을 무용하게 만든다.
아직 헬무트는 그들 전체가 신전 본토로 퇴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대신관들과 신관들은 건재했고, 이곳은 그들 군대의 복판이었다. 등 뒤로 성기사들이 그를 쫓고 있었다.
수많은 신전의 병력이 잔존하는 지금, 남겨 두고 온 리노사 쪽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모른다.
흑익 기사단이 분전한다고 해도, 절대적인 전력에서 차이가 나니 밀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가 결계를 부쉈기에, 신관들이 위기에 빠졌다고 여겨 앞쪽의 병력들도 회군할 테지만.
그렇게 되면 상황은 그에겐 더 안 좋아진다.
‘그럼 나는 위기로군.’
헬무트는 침착하게 자신의 상황을 평가했다.
아주 안 좋았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려놓을 방법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대신관을 사로잡는 것.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신성 마법의 폭우 속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제법 건재하게. 몇 걸음 앞에 신관들이 보였다.
어떤 살인마가 난입하여 그들에게 검을 휘두른대도 저항하지 못할 순한 양들.
신성 마법이 없다면 그들은 울부짖기만 할 뿐 물리적으로는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위에서 거대한 그물처럼 덮쳐드는, 대신관들의 대단위 신성 마법.
시간 차로 닥친 그것을 피할 공간은 없었다.
검으로 베어 낸다고 해도, 비스에 어마어마한 손실이 있을 것이다.
헬무트는 손을 뻗었다.
도망치는 신관의 뒷덜미를 붙잡고 들어 올려 방패를 세웠다.
제법 몸집이 큰 자였다.
콰스스스!
그의 새하얀 몸뚱이는 제대로 방패 역할을 수행해 냈다.
헬무트는 사로잡히자마자 실신한 그 신관을 바닥에 내던졌다.
쿠과광!
“아악!”
대신관들 쪽으로 내던져진 몸뚱이는 다른 신관 몇 명을 쓰러트리고 나서야 멈추었다.
‘괜찮은 무기야.’
헬무트는 바로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신관들은 신성 마법을 바닥까지 쏟아붓다가 그가 코앞까지 닥치자 벌 떼처럼 달아났다.
등을 보이는 그들에겐 더 이상 그를 공격할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대신관들은 그에게 신성 마법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신관들의 것보다 정교하고 위력적인 신성 마법. 쏟아지는 간격도 촘촘했다.
헬무트는 몇 번이나 비슷한 방식으로 신관을 방패로 세웠다.
손실은 최소화했으나, 방패로 완전히 덮지 못해 드러난 부위가 온통 화끈거렸다.
뜨거운 물을 부은 듯한 화상의 통증.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빌어먹을 대신관들. 마르지 않는 샘 같군.’
이제껏 엄청난 신성력을 소진해 왔음에도, 그들에게서 힘이 떨어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를 향해 퍼부어지는 신성 마법의 위력은 여전했다.
헬무트 정도는 수십 명도 산 채로 태워 버릴 수 있는 힘.
신관을 방패막이로 삼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헬무트는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
“으, 아……!”
도망치다가 다리가 꼬여서 쓰러진 어린 신관 한 명이 보였다.
하얗게 질린 채 버둥대며 그를 쳐다보고 있는 얼굴은 앳되었다.
아마, 고작해야 열서너 살.
덜덜 떨며 엉덩이로 기어 뒷걸음치는 그의 눈에 헬무트는 마왕처럼 비치리라.
동정은 사치며, 신관이 헬무트에게 바랄 수 있는 자비는 없었다.
하지만 전의를 상실한 상대를 굳이 살해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퍽!
헬무트는 그를 걷어차 기절시키고 지나쳤다.
뒤통수를 노릴 수 없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는 누군가에게 증명할 필요도 없이, 마기가 자신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의 전신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상흔을 남기는 대기 중의 신성력. 이제까지 수도 없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간 신성력의 존재가 살의와 같은 뜨겁고 파괴적인 욕망을 억눌렀다.
그것은 예전부터 그랬다. 어둠의 싹을 봉인하기 전에도…….
그것이 어쩌면, 그들 신전이 필요악인 이유인지도 모른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헬무트에게 닥치는 대로 신성 마법을 쏟아부으며 앞쪽의 신관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 대신관들도 결정을 내렸다.
레비나에게서 전음이 도착하고 바로, 대신관 한 명이 주변의 신관들과 함께 귀환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대신관 세 명이 뒤쪽의 신관들과 함께 빠르게 몸을 물렸다.
헬무트를 향해 견제 식으로 신성 마법을 펼치면서도 그들은 착실히 거리를 벌렸다.
이미 라토나의 병력과 맞붙은 앞쪽에도 퇴각 명령이 내려졌다.
이쪽으로 몰려드는 군대와 합류하여 성역으로 귀환한다.
그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저 눈앞의 사악한 자를 막아설 누군가. 희생이 필요했다.
누가 그 일을 한단 말인가. 신전의 첫 번째 검조차 꺾였는데 그보다 전투에 약한 신관이 어찌.
헬무트를 향해 쉼 없이 신성 마법을 퍼부으면서, 대신관 아가토가 선언했다.
“제가 남아 발을 붙들 테니, 견제만 하면서 물러나십시오.”
그의 엄숙한 얼굴에서 눈빛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죽음을 각오한 눈빛.
성전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모두가 그러했지만, 막상 죽음이 목전으로 닥친다면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니.
그렇기에 최후까지 죽음 앞에 결연한 자의 의지는 빛나게 마련이다.
대신관들이 신음을 토했다.
“그, 그렇게 하기에는.”
“아가토 대신관님!”
아가토는 대신관들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고 오래도록 대신관 자리를 지킨 인물이었다.
그의 희생을 누구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어서! 신전을 지켜야 합니다!”
아가토는 버럭 소리를 높였다. 주춤거림도 잠시, 모두가 아가토의 결정에 따랐다.
“훗날 루멘의 품에서 뵙겠습니다.”
남은 자에게 죽음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 사악한 자는 강했고, 여기 있는 전력이 달려든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장담할 수 없는 승리에 모든 것을 걸고, 신전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신관 레비나가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올 정도면, 상황이 정말로 위급할 것이다.
퇴각하기로 결정했으니, 전부가 그 결정에 따라야만 했다.
아가토는 이제 홀로 남았다.
그는 지팡이로 땅을 짚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덩그러니 남은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한 헬무트는 경계하듯 속도를 늦추었다.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앞쪽의 신관들이 헬무트를 향해 전력으로 공격을 가하며 시간을 끌어 주었다.
신성 마법이 이토록 전폭적으로 쏟아졌으니, 저자도 결코 멀쩡하지 못하리라. 비록 그들 신관의 목숨은, 촛불처럼 꺼져 갔지만.
참담함을 느끼며 아가토는 자신의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지팡이의 머리를 잡고 돌리자, 아래쪽 자루가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검이었다.
아가토는 대신관이기 이전에 성기사였다.
성기사로서 남기에, 그의 검술 실력은 두드러지지 않는 데 반해 그의 신성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래서 아가토는 신관이 되었고, 대신관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는 성기사로서의 자신을 잊지 않고, 꾸준히 검술을 갈고닦았다.
비록 그의 검술 실력은, 레반트와는 비할 것이 못 되나 대신해서 그는 신성력을 누구보다 더 잘 다루는 성기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가 남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 괜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는 이 중에서 가장 전투에 능숙한 신관이기도 하니까.
‘잠깐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막상 그의 근처까지 이른 헬무트는 조금 당황했다.
자꾸만 신성 마법을 쏟아붓길래, 거기에 신경 쓰면서 접근했더니 인원이 빠져나가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왜 여기에 한 명만 홀로 남아 있는지. 다른 자들은 어디로 향했는지.
‘귀환했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아.’
혹시 자신의 감각을 흐리는 술수가 펼쳐진 건가. 헬무트는 의심했다.
그러나 그들이 퇴각을 결정했다면…… 뭔가 변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을 잡아 죽일 기세로 리노사를 침략한 그들이 아닌가.
헬무트는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넌지시 물었다.
“내빼기로 결정했나?”
“헬무트.”
처음으로 불린 자신의 이름에 헬무트는 흠칫거렸다. 대신관들은 그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어둠의 싹에 사로잡힌 사악한 존재로 보았을 뿐.
그런데 여기 있는 대신관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헬무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너를 안다.”
“알겠지, 나를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했으니.”
헬무트는 무료한 듯 검에 손을 가져갔다. 말하는 틈에 베어 버리면, 될까?
‘대신관 같은데 왜 검을 들고 있지.’
저 검도 성검이나 그에 준하는 성물인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헬무트에게도 계산이 좀 필요했다.
시간을 끌려는 목적은 분명했으나, 아가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 너를 보았다. 나는 내가 파헤의 숲으로 보낸 자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지. 갓난아기였던 너를 파헤의 숲으로 보낸 것은, 바로 나였다.”
헬무트의 몸이 움찔했다.
그의 눈빛에 알 수 없는 빛이 번뜩였다. 자세가 앞으로 낮춰졌다.
고해하듯 아가토의 말이 이어졌다.
“안타까웠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도, 4년 전에도.”
“그러나 나는 살아서 여기에 있지. 당신들은 실패했어!”
그 순간, 아가토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헬무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