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56
455
헬무트
455화
소국이라고 해도, 검성급의 실력자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다만 파헤의 숲은 마왕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아무리 신성 마법의 가호가 있대도, 심지가 굳고 악인이 아니어야만 정신계 공격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안에서 내분이 벌어지면 안 되니까.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헬무트가 대신관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신전 쪽에서 3명을 채울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나 그쪽에 적대적인 세력이 많은데, 단 두 명이 나서다니.
대신관과 성기사.
다만 그 둘만으로도 파헤의 숲에서는 대단한 전력이었다.
특히 성기사의 실력은, 맞서 본 헬무트도 잘 알았다.
그는 루크 예거를 능가하는 실력자였다.
순수한 검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그는 성검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만약 헬무트가 비스가 아닌 마기를 썼다면, 그를 격퇴하긴 어려웠으리라.
상성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힘의 격차도 뒤엎는다.
“실패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니까요.”
레비나가 답했다. 모든 걸 쏟아 붓기에는, 그들이 짊어진 사명이 가볍지 않았다.
미지의 파헤의 숲으로 뛰어드는 일.
신전에서도 파헤의 숲에 발 들여 본 적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성공도 보장되지 않는데 뒤도 남기지 않고 뛰어들 수는 없다.
그러니 이것이 투자할 수 있는 최대의 전력.
만약의 실패를 대비하는 쪽은, 남은 아가토 대신관이 될 것이다.
“한 명은 조금 더 두고 보죠. 여기 있는 이들로도 충분히, 계획을 세울 수는 있으니까.”
아레아의 말에, 레비나가 본론을 시작했다.
“우선, 그저 대비만을 하며, 신성 결계가 무너져 내리길 기대하는 쪽보다는 행동하는 쪽이 더 낫다는 데 동의합니다. 부활하기 전의, 신성 결계와 충돌 중인 마왕과 맞붙는 것이 훨씬 쉬울 테니까요.”
“파헤의 숲 자체의 위험성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시안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받았다.
파헤의 숲도 숲. 그는 정령을 다스릴 줄 안다.
게다가 그의 능력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모습을 숨기고 이동한다면, 생각보다 수월할지도 몰랐다.
레비나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신성 마법을 통한 진입은, 파헤의 숲 내부에 대한 좌표로 이동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저 신성 결계 안으로 이동하도록 루멘께서 허락하시는 것이지요. 이제까지와 비슷하게, 신성 결계 안에서 무작위의 지점으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그들의 목표 지점은 중앙 권역이다. 엘라가의 영역.
파헤의 숲 중심부의 상공에 그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직 마왕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러나 결집하는 마기의 의지.
그리고 그 아래에 마계의 입구가 있다.
마계의 입구를 막고, 마왕을 멸하거나 아니면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할 터.
“운이 좋으면 중앙 권역 가까이에 떨어지게 될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곤란을 겪을 수도 있지요.”
샤를로트가 물었다.
“상공을 통한 접근은 왜 배제되는 것이지요?”
신성 결계의 상공은, 마물로부터 안전할 텐데. 마왕이란 존재가 거기 서려 있다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마계의 입구에 손대지 못하니, 마기의 원천을 봉쇄하지 못해요. 힘이 곧 의지인 마왕을 멸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레비나는 덧붙였다.
“또 한 번 거기서 힘으로 신성 결계를 통과했다간, 결계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국, 파헤의 숲에 무리 없이 진입하는 방법은 신전의 마법진을 통해서라는 거다.
단순할 정도로 명쾌한 사실.
헬무트가 지적했다.
“우리가 성공한다고 해도, 신성 결계가 무너지게 되면 여전히 문제는 잔존합니다.”
“최전선을 제대로 구축하기 전에, 파헤의 숲의 마물들이 뛰쳐나온다면 큰일일 테지요.”
레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신성 결계는 마물을 가두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진입한 이들이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신성 결계는 무너진다.
그러니 결계에 진입하는 작전은, 최전선의 준비가 끝난 이후에 실행되어야만 했다.
아무리 서둘러도, 며칠 내로는 무리였다.
“가닥은 잡아 두었지만, 이 작전에 대해서는 아직 조금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레비나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그녀 평생 파헤의 숲에 들어갈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 없었건만.
안티올이 대답했다.
“그것은 그쪽에서나 이쪽에서나 함께 논의해 보면 좋겠지요. 서로가 가진 정보가 다를 테니까요.”
그렇게 신전의 공적과 신전의 공조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회담에 더해 회담이 이어졌다. 질릴 만큼 연속된 논의에 모두의 정신이 피로해졌다.
대화를 마치고 빠져나가던 참이었다.
“헬무트.”
헬무트는 부름이 들려온 쪽을 돌아봤다.
루크 예거가 거기 서 있었다. 그는 씩 웃으며 헬무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싸우게 돼서 기쁘다.”
말 그대로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함의를 담고 있는 말이었다.
나를 도와준 네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어서.
루크 예거가 나선 것은 대단한 영웅 심리라거나, 팔마 기사단으로서의 명예 때문이 아니었다.
루크 예거는 강했다.
그는 연합의 커다란 전력. 그가 참여하면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어떤 이해관계에도 치우치지 않고, 주저 없이 목숨을 건다.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루크 예거는 그런 자였다.
처음 보았던 인상 그대로, 변치 않게 강직하며 그렇기에 믿을 수 있는.
비겁과는 거리가 먼 올곧은 강인함.
팔마 기사단장이라는 자리에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자.
헬무트가 그를 찾아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때보다는 당신도 쓸 만하겠지.”
헬무트는 가볍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루크 예거는 불쾌해하지 않았다.
늘 자신감 넘치는 그는, 그렇기에 너그러웠다.
“그때 진 빚은 갚아 주지.”
“당신이 날 구하겠다고?”
“잘 기억하고 있네.”
그때 서늘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헬무트는 내가 구할 테니까.”
아레아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루크 예거는 헬무트의 손을 재빨리 놨다.
그는 헬무트와 그녀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왠지 견제당하는 느낌인데, 내 착각인가?”
“쓸데없는 소리를. 쉬어요. 회담은 계속 열릴 테니까.”
헬무트는 그 말을 건네고 돌아섰다.
아레아와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그는 문득 마지막 한 명이 누가 될지 궁금해졌다.
얼마 후면 답을 알게 되리라.
* * *
용사의 영광을 차지할, 남은 한 명은 제국으로부터 나야 한다.
그것이 제국 수뇌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가 과연 그 자리에 적당한가.
황실 기사단장?
실력은 부족함이 없으나, 그는 대귀족이며 가주다. 짊어져야 할 것이 많았다.
황실 기사단을 쭉 둘러보자니, 실력은 전반적으로 뛰어났지만, 루크 예거만 한 인재는 없었다.
그렇다고 타국에서 들이민 인재들은 눈에 차지 않았다.
객관적인 실력의 지표가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다.
평화의 시대였다. 전투 능력은 결국 전쟁을 통해서 발휘되는 것.
근 백 년간 기껏해야 내전이나 국경 분쟁 정도만 발발하고 있으니, 인재라고 해도 눈에 띄게 발화하지 못한 것이다.
아스카가 슬쩍 황태자를 찾아왔다.
“갈 사람 없으면 내가 가고 싶은데요.”
파르네세 대공에게 붙잡히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였다.
“그들과 친하고, 믿을 만하고, 실력도…… 있긴 있으니까 말이죠.”
하도 참가 인물들이 쟁쟁하다 보니 아스카의 자신감도 조금 줄었다.
하지만 의욕은 충만하다.
황태자도 아스카가 적합자라고 판단했다.
실력은 조금 더 나은 자가 있을지 몰라도, 파헤의 숲에 갔다 와 본 그보다 적임자는 없었다.
또한 제국의 황족이라는 상징성으로도 부합했다.
하지만 그는 파르네세 대공의 적자였다.
그래서 문제였다. 대공과 대공비가 한사코 반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맥락을 같이 하는 이유로, 황태자조차도 아스카가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황태자는 아스카를 보며 불쑥 내뱉었다.
“전설적인 장인 레이튼과 황실 마법사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검이 있다. 비스를 증폭시켜 주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가치의 특수한 금속을 썼지. 거기다가 대기 중의 마력을 검 자체가 흡수, 저장하여 마법을 펼칠 수 있다.”
“그 검이 왜?”
아스카는 가닥을 잡지 못한 얼굴이었다.
“레이튼이 자처하기를, 일생의 역작이라고 하더군. 아무에게나 내려 줄 수 없는 검이지. 따라서 황실의 혈통이거나 황제의 인가를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제야 아스카의 눈동자가 커졌다.
장인은 연장을 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충실한 그였다.
무기에는 욕심 없이 살아왔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그 검이 있으면, 파헤의 숲에서 싸우는 데도 도움이 되겠군요.”
그의 부족한 실력을 채워 줄 만한 물건 아닌가.
아스카는 순식간에 싱글벙글해졌다.
“그렇지. 하지만 그건 네가 파헤의 숲으로 갈 인원으로 선정되었을 때 이야기지.”
“솔직히, 결정은 전하가 하는 거 아닙니까.”
아스카가 그토록 빛나는 눈으로 황태자를 바라봤던 적이 없었다.
황태자는 무심히 제 사촌 아우를 쳐다보며 내뱉었다.
“가고 싶다면 내게 충성 맹세를 하고 가라.”
마왕을 퇴치하고 돌아오면, 아스카는 영웅이 된다.
그는 적통에 가까운 황족이며, 황위 계승권에 가까이 있었다.
마음먹으면, 황위 찬탈도 노릴 수 있는 존재.
그가 현재는, 황위를 바라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바뀌기 마련이다.
보장 없이 그에게 위협이 될 만한 힘을 쥐여 줄 수는 없었다.
아스카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파르네세 대공 부부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가 가기 위해선 황태자의 지지가 필요했다.
교활하다거나 계산적인 게 아니다. 황태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조처일 뿐.
하지만 그게 얄밉게 느껴지는 건, 아스카가 황태자에게 사감이 충만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거기에 더해서, 샤를로트도 포기하시죠.”
황태자가 움찔거렸다.
“그건 그녀의 결정에 달린 일…….”
“내가 없는 새에 전하가 무슨 수작을 벌일지 모르니까요. 빨리 맹세하세요. 포기한다고. 그럼 나도 충성 맹세인지 뭔지 합니다.”
황태자의 입가에 비딱한 미소가 올라앉았다.
“의외로 나를 사모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절대 아닙니다. 의외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는 거네!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거.”
아스카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황태자의 안면에 갈등이 비쳤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 그가 선호하는 방식이다.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 보이지도 않았다.
샤를로트의 의사가 어쨌든, 그는 황태자이니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
황태자는 이내 엄숙히 내뱉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원하던 것도 얻고, 연적도 포기시키고 얻을 것만 있는 거래였다.
아스카는 만족했고, 황태자도 만족했으나 어딘지 찜찜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거래는 종료되었다.
마지막 남은 인원은 아스카가 될 것이다.
파르네세 대공 부부를 설득한 즉시, 선정 결과가 발표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