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63
462
헬무트
462화
칸트라의 입으로부터 그간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너희가…… 신성 결계를…… 통과하고, 숲이……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칸트라가 있는 바다도 예외가 아니었다.
빙판 위로 자르르 느껴지는 진동. 출렁이는 바다.
그리고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물 밖의…… 녀석들이…… 흉포……해졌다.]물론 마물은 원래가 흉포한 존재. 그러나 물 밖에서 갑자기 서로를 물어뜯고 잡아먹으며 싸워 대는 놈들의 소리가 요란했다.
칸트라는 신성 결계에서 가까운 바다에 전신이 푹 잠겨 있었기에, 바깥 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하지만 제 영역이 부쩍 소란스러워졌다는 것만은 느꼈다.
칸트라는 애초에 소란스럽지만 않다면 제 영역의 마물들이 서로 싸우는 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는 화석처럼 그대로 거기서 죽을 때까지 숨죽이고 있을, 아주 특이한 마물.
그런데 너무 시끄러웠다. 참다못한 그는 물 밑에서 특유의 마기를 내뿜어 마물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용없었다. 영역의 지배자의 말을 듣지 않고 미쳐 날뛰는 마물들이라니!
파헤의 숲의 질서가 깨어지고 있었다.
칸트라는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물 밖으로 모습을 내밀어 놈들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느낌을 받았기에.
마치 저 밖에서 뭔가가 그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아주 강력하고 지배적인 힘이며 의지였다.
칸트라는 더욱 꽁꽁 물 아래로 모습을 숨겼다.
거북이는 위험에 빠지면 등껍질 안으로 사지를 감춘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행인지 물 아래의 마물들은 칸트라의 지배를 받아, 그와 비슷하게 행동했다.
같은 영역 안에서 물 위와 물 밑이 갈렸다.
“물속에서는 마기의 영향이 약하지. 반대로 신성력의 영향도.”
헬무트가 말했다.
그는 그 원리를 통해서, 물속을 헤엄쳐서 파헤의 숲을 벗어났었다. 그것이 첫 번째 탈출.
“여하간 제 몸 하나는 잘도 아끼는 녀석이군.”
헬무트가 지그시 빙판을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그 아래에서 눈을 굴리고 있을 칸트라를.
칸트라의 판단은 옳았다. 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면, 마왕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가 왔다고 잘도 나타나네?”
아레아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게……?]칸트라도 제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신뢰가 있는 사이도 아니건만. 파헤의 숲에서 동족인 마물보다 인간이 믿음직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이다.
헬무트가 부추겼다.
“계속 말해 봐.”
헬무트는 물었다.
“어디로?”
[남쪽으로.]남쪽. 그렇다면, 중앙 권역으로 향했다는 소리다.
“중앙 권역으로 마물이 집결되고 있다는 뜻일까?”
아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결전지는 역시, 그곳이 되리라. 집을 비우고 떠난 엘라가로서는 불쾌한 일이겠지만.
헬무트가 희망적으로 말했다.
“다행이로군. 칸트라가 마왕의 수중에 넘어가지 않아서.”
마물 중의 마물. 파헤의 숲 다섯 권역의 지배자 중의 하나.
성격은 유순한 편이라도, 칸트라가 가진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마왕의 지배를 받아 겁이 사라지고 지능적으로 변모했다면 까다로운 상대가 되었을 거다.
“단지, 칸트라가 그렇게 느끼고 물속으로 모습을 감춰야 했다면 육지에 있는 바하렉은.”
헬무트의 말에 아레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바하렉도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마왕에게 넘어가 버렸든가. 칸트라, 너, 아는 게 있어?”
북쪽 권역은 남쪽 권역만 제외하면 동쪽, 서쪽, 중앙 권역까지 맞닿아 있다. 이웃이라고 할 만한 사이였다. 칸트라가 뚱하니 대꾸했다.
[바하렉…… 안 친한 사이다.]“친한 사이가 있기는 한가.”
아레아가 의심을 드러냈다.
[물속의 내 부하들…… 친하다. 그들은…… 지배받지 않기 위해…… 수면, 택했다.]“그래서 이렇게 북쪽이 조용한 거로군.”
공격할 만한 놈들은 잠들거나 남쪽으로 내려갔으니 텅 빈 땅이었다. 이곳에 있는 건 칸트라뿐.
“이 아래 녀석이 북쪽 영역의 지배자라는 거야? 바하렉은 그, 서쪽 영역의 지배자고?”
루크 예거가 숙지한 지식을 떠올리며 물었다. 헬무트가 가볍게 긍정했다.
“맞아요.”
“처음부터 거물을 만났네. 칸트라는 마왕한테 협조할 마음은 없나?”
루크 예거가 지나가듯이 추궁했다.
[마왕…… 낯선 단어다. 그런데…… 싫어. 중앙…… 쪽에서 뭔가가 열렸다. 마기가 마구…… 흘러나온다. 칸트라…… 물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나를 강하게 하지만…… 나를 지배하려는 뭔가. 칸트라…… 자유가 좋다. 나는…… 이대로가 좋다. 필요…… 없다.]“이 녀석 말하는 게 귀여운데.”
루크는 뜻밖에도 마물에게 호감을 보였다.
헬무트는 칸트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마계의 입구에서 마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거로군.”
[짓누르던…… 마기 덩어리…… 사라져서…… 나와 바하렉뿐이기에…… 균형이…… 깨졌다.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알지?]칸트라는 스스로도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달된 마성은 초월적이 앎을 가져다준다. 세계의 흐름에 가까운 지식. 그것은 본능과 흡사하다.
“다섯 마리의 권역의 지배자가 마계의 입구를 짓눌러 닫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로군. 마기는 마기로서 막는다.”
“하지만 나호가 죽은 데 이어서 엘라가와 이그렐마저 떠났으니 마계의 입구를 누를 만한 바위가 치워진 거겠지.”
헬무트와 아레아가 말을 주고받았다.
바깥에서 예측한 대로다. 적어도 북쪽의 상황은 예상보다 좋아 보였지만.
‘힘든 싸움은 중앙 권역에서. 그곳에 가기 전 흩어진 이들과 하나로 뭉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 마왕은 파헤의 숲에서 이미 거의 대부분의 마물에게 벌써부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왕이 불러모은 마물의 수가 어마어마할 터.
파헤의 숲의 마물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엘라가야 별생각 없이 상대하겠지만, 그는 마물 중의 마물. 마물은 자신보다 더 강한 마물을 이기지 못한다.
‘일단 엘라가와 함께 있지도 않고.’
낭패였다. 엘라가가 북쪽 권역에 왔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근처에 떨어졌다면 마물인 그는 뛰어난 감지 능력으로 어렵지 않게 헬무트를 찾아냈을 터.
여기서 먼 곳에 있을 게 틀림없었다.
엘라가도 단독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 테니, 누군가와 합류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로제타를 충분히 수급받을 수 있다.
헬무트가 물었다.
“칸트라, 너는 어쩔 거지? 우리는 중앙 권역으로 가서 마왕을 막을 거다. 너는 이대로 남을 건가?”
칸트라는 마왕의 지배를 받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레아가 여기 있고, 로제타의 뿌리도 충분하다.
헬무트가 협박하긴 했으나, 이 거북이와는 저번에도 원만하게 이별했다.
나쁘지 않은 관계였으니 잠시나마 한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으리라.
[마왕…… 무섭다. 나는 싸우기…… 싫다. 조용히…… 살고 싶다.]칸트라에게서 시무룩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북쪽 권역의 지배자씩이나 되면서 패기가 없는 녀석이로군.”
루크 예거가 혀를 찼다.
아레아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칸트라. 너는 인간의 기척을 멀리서도 느낄 수 있어? 마법의 흔적이라거나 파동 같은 것 말이지.”
마기가 너무 짙어서, 마법으로 장거리 탐색조차 힘든 환경이다.
아레아도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 불꽃을 쏘아 올려 동료들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근처에 있긴 할 거라고 생각했으니.
파헤의 숲에서는 마법을 쓰는 데는 제약이 따른다.
대마법사나 그에 준하는 실력자가 아니면 대기 중의 마기의 저항을 뚫고 마법을 시전하는 것조차도 수월하지 않다.
하지만 칸트라는 마물이다. 영역의 지배자쯤 되는 마물이면 이 짙은 마기 속에서 오히려 감각과 능력이 극대화될 것이다.
이 녀석이 도와준다면 합류가 수월해질지도 몰랐다.
칸트라는 긍정했다.
[나는…… 권역의 지배자 중에서도…… 감각이……뛰어난 편이다.]헬무트와 아레아는 쉽게 납득했다.
소심하고 숨어 있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라면, 감지 능력도 발달했을 만했다.
[그런데 너희들…… 언제까지 내 영역에…… 있을 거냐.]칸트라는 결국 그게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는 아직 헬무트의 검에 꿰뚫린 기억을 잊지 않았다.
헬무트는 그에게 차분히 권유했다.
“네가 도와준다면 좀 더 빨리 떠날 수 있을 테지.”
[그래 놓고…… 또 왔다.]“이 이상 현상을 초래한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해. 일행이 파헤의 숲으로 이동하면서 뿔뿔이 흩어졌거든.”
헬무트와 아레아가 연달아 입을 열었다.
칸트라는 고심하는 기색이었다.
[바깥에서…… 뭔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두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서. 한쪽은…… 내 영역으로. 한쪽은…… 서쪽으로 간 것 같다.]헬무트와 아레아, 루크는 서로를 돌아봤다. 좋은 정보였다.
칸트라는 벌써부터 쓸 만함을 입증해 보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파헤의 숲에 입성하고 나서 닥친 상황이 좋았다.
헬무트는 재차 입을 열었다.
“우리가 동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하는데.”
[싫다…… 내가 왜. 너희가…… 알아서 해라.]칸트라는 시큰둥했다. 생각해 보니 귀찮았다.
여기까지 온 것도 그로서는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인 거였다.
“영역의 지배자씩이나 되면 상황이 좋아지길 바라기만 하면서, 무임 편승하려는 안일한 사고는 버려.”
일침을 가한 아레아가 덧붙였다.
“뭐라도 도움을 줘. 그래야 우리가 파헤의 숲을 정상으로 돌려놓지 않겠어? 그렇게 되어야 너도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거고.”
물론, 마왕을 물리친 이후의 신성 결계가 사라진 파헤의 숲은 이전과 같지 않겠지만.
이 소심한 거북이가 바다를 타고 남하하여 적극적으로 인간들을 잡아먹는 일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마 이전처럼 살아가리라.
마물의 수명이 어디까지일지 모르지만, 거북이 마물인 칸트라라면 아주 오래 살 거다. 거북이는 원래 수명이 기니까.
아마 이 녀석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북쪽의 제 영역에서 조용히 살다 갈 가능성이 컸다.
칸트라가 기분 나쁜 내색을 보였다.
[너…… 나쁘다. 말을 막한다. 나는…… 물 밖으로 오래 나갈 수…… 없다.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마왕에게 지배받을 거라면, 걱정할 것 없어. 우리도 대처를 생각해 왔으니까.”
헬무트는 다짜고짜 빙판에 검을 꽂아 넣었다.
콰드드득!
잿빛 비스가 빙판을 뚫고 좁은 구멍을 냈다.
빙판은 사람 키보다 두꺼웠지만, 헬무트는 단번에 바다까지 뚫는 데 성공했다.
구멍에 찰랑이며 물이 넘쳐 났다. 칸트라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짓이냐! 공격……이냐!]“아니, 먹어 봐.”
헬무트는 구멍에다가 로제타의 환을 몇 개 떨어트렸다.
구멍 위에 동동 떠 있던 환은 빨대로 빨아들이듯 아래로 쑥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