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64
463
헬무트
463화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것치고 칸트라는 망설임 없이 헬무트가 준 환을 삼켰다.
[이거…… 정신이 맑아진다. 좋은 냄새…….]“그게 있으면 너도 마왕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거다. 우리를 도와주겠어?”
아레아가 부드러운 투로 물었다.
[나는…… 찾는 거만 도와줄…… 거다. 싸우기…… 싫다.]“그건 네 마음이지. 하지만 마왕이란 녀석이 부활하면 너도 노려질 텐데?”
[나는 내 영역에…… 있을 거다. 바닷속에 있으면…… 괜찮다.]기대도 안 했지만, 같이 싸우는 건 안 할 모양이었다.
하긴 마왕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해서 마물인 칸트라에게 나쁠 것은 없다.
어차피 마물이 득실거리는 파헤의 숲에서 살아왔던 칸트라다.
엘라가나 이그렐처럼 스스로의 의지가 충만하거나 싸돌아다니는 걸 즐기는 성격도 아니다.
적으로 돌아서지 않았으니 그걸로 일단 다행일 만큼 충분했다.
“네 좋을 대로 해.”
헬무트는 흔쾌히 답했다. 아레아가 한 가지 사실을 지적했다.
“서쪽이면 우리와 다른 쪽으로 간 사람들은 바하렉의 영역으로 갔다는 거잖아. 그리고 놈은 마왕의 지배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지.”
헬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하렉도 중앙 권역으로 향했을지 모르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험해지겠어.”
“그럼 어서 출발하지. 서쪽으로.”
루크 예거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합류하려면 서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할 터.
“그 전에.”
잘라 말한 헬무트가 물었다.
“이봐, 칸트라. 네 영역에 우리 말고 떨어진 다른 이들은 없나?”
[너희 말고도…… 다른 녀석들…… 있었던 것 같다.]녀석들이라고 하면, 복수다. 여럿이라는 것.
두 갈래로 나뉘었으니 이쪽에 더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마 아레아가 쏘아 올린 불꽃을 보지 못할 상황이거나, 거리가 떨어져 있거나.
헬무트와 아레아가 서로를 돌아봤다. 아레아가 물었다.
“우리를 그쪽으로 인도해 줄 수 있겠어?”
[어딘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여기서 서쪽으로 가다 보면……]가다 보면 알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헬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가지.”
[잠깐…… 비켜서라.]세 사람이 가장자리로 물러서자, 빙판이 온통 지진 난 듯이 흔들렸다.
콰드드드드득!
아래쪽으로부터 얼음이 갈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내 그들이 서 있던 빙판에 금이 갔다.
콰지직! 쿠궁!
얼음을 뚫고 드러난 것은, 칸트라의 머리였다.
칸트라는 머리 주위에 깔린 얼음을 부수며 빙판 위로 기어올랐다.
“과격한 거북이로군.”
루크 예거가 질린 듯이 말했다.
드러난 칸트라의 몸은 기가 질릴 만큼 거대했다.
그는 이만큼 거대한 마물을 만나 본 게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너희는…… 느리다. 등에…… 타라.]칸트라에게서 그들을 빨리 쫓아내고 싶다는 의지가 풍겼다.
아레아가 물었다.
“그보다 상태는 괜찮아?”
[정신은…… 맑다.]칸트라의 황금색 눈동자는 맑고 뚜렷했다. 아레아가 품에서 로제타의 환을 꺼내며 말했다.
“입 좀 벌려 봐.”
칸트라가 입을 열자, 헬무트가 아레아의 손에 놓인 환을 던져 넣었다.
“녹여 먹으면서 가지.”
[많이 좀…… 줘라. 맛있다……]“……그래.”
로제타의 환은 넘치도록 충분하게 가져왔다. 정 안 되면 이곳에서 재배를 할 수도 있었다.
시안과 합류한다면 말이지만.
식탐을 드러내는 칸트라의 입에 잔뜩 환을 집어넣은 헬무트는, 바로 그의 등 위에 올라탔다.
아레아와 루크 예거도 올라섰다.
“내 평생 마물 위에 올라타서 이동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루크 예거가 경이롭다는 듯이 말했다. 헬무트는 그에게 충고했다.
“균형 잘 잡아요. 떨어질 수도 있으니.”
“응? 거북이가 빨라 봐야 얼마나 빠르다고.”
그 말이, 칸트라를 도발한 것 같았다.
[인간들…… 간다!]칸트라는 그들을 태우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출발했다. 흡사 태풍이 이는 것 같았다.
콰드드드득!
빙판을 짓밟고 뭉개면서 그의 몸이 미끄러지는 듯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정말로 떨어질 뻔한 루크 예거가 헬무트의 손을 붙잡고 간신히 균형을 찾았다.
“뭐야? 이 녀석. 거북이가 어떻게.”
“마물이니까요.”
헬무트는 간단하다는 듯이 답했다. 이미 겪어 봤지만 그에게도 낯설었다.
칸트라는 짧은 네다리를 빠르게 휘저으면서 등딱지를 썰매 삼아 얼어붙은 땅 위를 나아갔다.
땅이 얼어 있기에 더욱 유효한 이동 방식이었다.
충격이 고스란히 그들에게로 전달된다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속도만은 퍽 빨랐다.
말도 없이 한참 동안 서쪽으로 나아가던 칸트라는,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섰다.
[인간…… 냄새가 난다. 옅게.]“누가 있나?”
아레아가 손을 들어, 탐색 마법을 펼쳤다. 그러나 마기로 자욱한 대기에서 읽히는 것은 없었다.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저 멀리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운보다는 시각으로 확인하는 게 더 빨랐다.
두 명의 사람. 한 명이 날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그 아래 매달려 있다.
불투명한 안개에 휩싸인 듯한 대기를 뚫고, 그들은 빠르게 날아와 칸트라의 등 위에 안착했다.
칸트라가 불편한 신음을 냈다.
[……한 명. 뭐지? 느낌이…… 이상한걸.]“아레아, 무사했구나.”
하이케가 피곤한 듯 머리카락을 툭툭 털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상태는 멀쩡해 보였다.
“하이케. 내 마법이 느껴지지 않았나요? 찾았는데.”
중간중간 수정구를 통해서, 하이케에게 전음을 보냈던 아레아였다. 돌아오는 소식은 없었지만.
“이곳 대기가 혼탁해서, 교신이 불가능해. 시야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든 느껴지지가 않아. 너희가 하도 소란스럽게 접근해서 안 거지. 그리고 일이 있었단다.”
하이케가 제 옆쪽을 향해 손짓했다.
하이케 옆에는 왠지 시들시들한 기색의 이그렐이 붙어 있었다.
핑크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안녕.”
손을 흔들어 보이는 움직임이 왠지 맥이 없었다.
“왜 그러죠?”
“이그렐은 조금 전까지 바닷속에 처박혀 있었거든. 그 때문에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하이케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리 이그렐이 새 마물이라지만, 바다에 빠졌다고 해서 나오지 못할 이유는 없을 텐데.
칸트라가 말했듯이, 이 부근 마물들은 잠들거나 중앙 권역으로 떠나가지 않았나.
“무슨 일이 있었지? 이그렐.”
헬무트가 물었다.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이그렐이 아니라 칸트라였다.
[이그렐? 남쪽의…… 이그렐! 그 새 말이냐……? 어쩐지…… 나를 잡아먹으려고……!]칸트라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 진동에 위에 서 있는 이들인 몸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그렐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누가 널 잡아먹어? 속 울렁거리게! 너처럼 살이 질기고 껍질 딱딱한 놈을 누가 먹고 싶어 한다고. 나는 육지 새야!”
그제야 칸트라의 몸에서 떨림이 멈췄다. 그는 곧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인간의…… 모습이냐.]“마법이란 것의 힘이지. 인간의 모습이어야 통제가 더 쉬우니까? 일종의 봉인이라고. 그런데, 그래도 문제가 있었지.”
이그렐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제 머리를 꾹꾹 눌렀다.
하이케에게서 로제타의 향이 확 풍겼다.
그러고 보니, 가까이 오면서 내내 로제타의 향을 짙게 풍기고 있던 그녀였다.
“뭐, 그럭저럭 해결됐지만.”
하이케가 설명을 시작했다.
“결계에 근접했던 그때, 마왕이 이그렐 님을 지배하려다가 실패했잖아. 하지만 머릿속에 뭔가를 심어 뒀던 모양이야.”
마왕이 새겨 둔 각인은, 바깥세상에서는 작용하지 않았다.
이그렐은 자신이 완전히 그것을 떨쳐 냈다고 믿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신성 결계를 통과하면서부터, 잠들어 있던 그것이 되살아났다.
혈관으로 퍼져 나가는 병처럼. 순식간에 몸을 부풀리며 이그렐의 정신을 장악하려고 들었다.
머리가 찌르는 듯이 아프고, 정신이 흐릿해지려고 했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자각과 제 몸을 둘러싼 마법, 그리고 미리 입속에 삼킨 로제타의 환이 이그렐의 정신을 붙들어 주었다.
마기를 터뜨리면 마법이 깨지고 아티팩트가 망가진다.
바깥세상에서도 인간형으로 있을 때면 제약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이그렐은 변신을 억제했다.
로제타의 환을 최소로만 복용한 것이 아쉬운 시점이었다.
설마 마왕과 맞닥뜨린 것도 아닌데, 이동하자마자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겠는가.
‘로제타가 필요해!’
이그렐은 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이 지배력을 떨치려면 그게 즉효약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북쪽으로 이동하는 일행에서 마법이 틀어져, 중도에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파헤의 숲에 홀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리고 이어, 이그렐은 제가 빙판을 딛고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아래에서 찰랑거리는 것은 바다.
평소라면 절대로, 물에 몸을 빠뜨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본능이었다.
이그렐은 주먹으로 힘껏 빙판을 후려쳤다.
그리고 생겨난 구멍 아래로 몸을 던졌다.
지독하게 차가운 물이 그녀의 전신을 얼렸다.
인간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해도, 이그렐은 마물이다. 그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통증은 잦아들고, 정신이 깨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감각은 다른 쪽으로 쏠렸다. 지독한 추위만이 느껴졌다.
상태를 완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저 통째로 얼려 정지시키는 것뿐.
수중에서 이그렐은 마기로써 호흡했다.
로제타의 환이 없는 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함께 온 이들이 그녀를 도와주기 전에는.
하지만 누군들, 그녀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 드넓은 파헤의 숲에서, 저는 물에 빠져 존재조차 감지하기 힘든데.
이곳에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나?
‘괜히 돌아왔어.’
대체 왜 제가 홀로 떨어져 나간 건지도 모르겠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이그렐은 체념하듯 생각했다.
그때였다. 위쪽으로부터 눈부신 은빛이 비쳐 든 것이.
수표면으로부터 환한 빛과 함께 은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물 아래로 헤엄쳐 내려오고 있었다. 흡사 구원자처럼.
이그렐은 그녀가 누군지 깨달았다.
‘하이케잖아.’
위험한 짓이다. 이곳은 파헤의 숲. 혹시 물속에서 다른 마물이 공격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하이케는 대마법사. 위험을 감수할 만한 역량이 있다.
근처에 떨어진 그녀는 이그렐의 존재를 감지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이그렐이 바다로 몸을 던지자 물속으로 뛰어들어 쫓아온 것이다.
이그렐에게 필요한 게 뭔지, 그녀는 바로 알아챘다.
[이그렐, 이것을.]하이케는 마법어로 의사를 표현했다.
이그렐은 그녀가 건네주는 로제타의 환을 받아 가득 입에 물었다.
그리고 하이케를 데리고 솟구쳐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후로 하이케의 도움을 받아, 이그렐이 완전히 정신을 바로잡기까지는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정 안 되면 그대로 물속에 잠겨 있겠다고 생각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슬슬 이동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너희가 온 거지.”
이그렐의 또렷한 시선이 그들에게로 꽂혔다.
이제 일행은 다섯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