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67
466
헬무트
466화
[누굴 성검으로 찔러! 이 미친 녀석아.]경계 태세를 보이는 엘라가에게 아스카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정신을 못 차리면 어쩔 수 없지. 마왕이 마기인지 뭔지면 신성력에 약할 거 아닙니까.”
[다신 그런 일 없을 거다.]엘라가는 말하면서도 자기 자신이 못 미더웠는지, 시안에게서 로제타의 환을 얻어 내어 우걱우걱 씹었다.
하지만 아스카의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튼 이대로는 안 되겠으니 걸어갑시다. 우리가 뭘 믿고 당신 등에 타요?”
일단 그는 타기 싫었다.
엘라가의 등에 올라타는 것은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구토감과 죽음의 위기, 그리고 이번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마기와도 싸웠다.
대신관 레비나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이대로면 빨리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전투 불능이 될 겁니다.”
이미 엄청난 전투를 치른 듯이 온몸이 다 저리고 피로가 몰려왔다.
마왕을 때려잡을 용사들도 멀미에는 어쩔 수 없었다.
[나약한 녀석들.]엘라가가 혀를 찼다.
태우기 싫어했던 게 언제냐는 듯 엘라가는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니들 걸음으로 걸어서 어느 세월에 도착해. 파헤의 숲이 그렇게 좁은 줄 아냐? 게다가 이곳은 바하렉의 영역이야.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다고.]바하렉처럼 예민한 녀석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마왕의 지배를 받아 중앙 권역으로 내려갔다면 차라리 나을 터.
‘하지만 그렇다면 마왕이란 놈은 왜 우리 일행을 둘로 갈라놓은 거지?’
수작을 부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뭔가 불안했다. 헬무트와 조속히 합류하는 게 좋을 터였다.
“열심히 뛰지요.”
“바람의 정령이 도와주면 될 거예요.”
“레비나 님은 제가 업겠습니다.”
아스카와 시안, 레반트가 연달아 입을 열었다.
4명의 인간들이 칠색 팔색하는 가운데, 엘라가가 강경하게 윽박질렀다.
[잔말 말고 올라타!]왜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인간을 태워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일단 그는 인간이 아니니 왜 자기 등에 타는 게 힘든지 모른다. 배가 불렀다는 생각이 들뿐.
자그마치 파헤의 숲에서 가장 강한 마물의 등에 오를 기회가 아닌가.
[야, 안 뛰어오르고 달리기만 할게. 그럼 됐지?]결국 그들은 타협점을 찾아냈다.
엘라가는 귀찮은 인간들을 짊어지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마기를 써서 마왕한테 지배당할 뻔했으니, 마기를 쓸 일이 없으면 일단은 괜찮을 터였다.
중앙에서의 결전에서나 가서 신경 쓰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순순히 흘러가지는 않았다.
그곳으로부터 떠난 지, 몇 시간 후였다.
북쪽 권역까지는 꽤 가까이 온 시점에서, 앞쪽에 뿌연 안개가 끼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기의 안개가 아닌 자연 현상.
그러나 새하얀 김처럼 뿌연 안개는 오감을 흐리기에 충분했다.
‘날씨가 왜 이래. 되는 일이 없군.’
보통 이런 곳에서 사고가 터진다. 엘라가는 신신당부했다.
[너희들 딱 달라붙어 있어라.]마지막 고비였다. 엘라가는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진한 습기가 털을 축축하게 적시고, 눈앞을 가렸다.
그로서는 아까의 상황을 의식하여 마기를 끌어 올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감각이 제한당했다.
대신해서 시안이 바람의 정령으로 안개를 흩었지만, 밀도 높은 안개는 몰아낸 자리로 다시금 밀려들었다.
“으음,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
시안이 불안감에 몸을 움츠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엘라가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이런 곳에 바하렉이 올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털이 축축해진다. 털 짐승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곳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느슨해지려는 때, 돌연 발이 푹 빠졌다.
철퍽!
무게 탓에 그의 앞발은 순식간에 반 이상 진흙에 잠겨 들었다.
‘늪인가? 찜찜하게.’
하얀 털이 오염되고 있었다. 엘라가가 앞발을 빼내려던 그때였다.
안개 사이로 광채가 번뜩였다.
투다다다다!
쪽에서 거대한 몸집의 무언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기세로 달려왔다.
온 땅이 흔들리고 늪이 출렁거렸다. 이 서쪽 권역에, 그럴 만한 존재는 하나뿐이다.
[바하렉!]외침과 동시에, 엘라가의 앞발이 늪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바하렉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몸을 들이받았다.
쿠과강!
엄청난 충격이 주변의 안개를 온통 흩어 놓았다.
그의 등으로부터 튕겨져 나간 인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엘라가는 돌아보지 못했다.
바하렉이 그에게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기에.
크르르르릉!
[이 녀석이 미친 건가.]한 번 자신에게 무참하게 졌으면서, 이런 식으로 기습한다고 먹힐 줄 알았나. 그렇다면 어리석거나 만용이거나. 하지만 바하렉은 둘 중 어느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이지를 잃은 눈빛이 탁했다.
마왕의 지배를 받는 것 같지는 않지만, 순전히 미쳐 버린 듯이.
충격의 여파로 잠시 물러났던 바하렉은, 날카로운 이빨을 내세우며 엘라가에게 달려들었다.
두 마물의 격돌이 시작되었다.
콰과광! 쿠과광!
성난 격돌음 속에서, 흩어진 네 명의 인간들은 각기 정신을 추슬렀다.
다행히 두 마리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기와 바람이 기상 현상마저도 변화시키고 있었다.
주변의 안개가 흩어지고 있다는 소리다.
그 덕분에 시계가 확보되었다.
레비나가 신음을 냈다.
“으음…….”
이중 가장 육체적으로 취약한 건 그녀였다. 그러나 레반트는 철썩같이 레비나를 감쌌다.
“괜찮으십니까, 레비나 님?”
“나는 괜찮아요. 레반트, 당신은.”
“조금 긁혔을 뿐입니다.”
“다른 이들은 무사한가요?”
“그러니까, 타기 싫댔잖아!”
아스카가 성을 내며 저쪽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충돌의 순간, 비스를 끌어 올려 충격을 완화하고, 날렵하게 튕겨져 나가는 몸을 굴려 고양이처럼 착지했다.
온몸을 탁탁 털고 엘라가 쪽을 꼬나보는 모습이 멀쩡해 보였다.
“으악! 몸이…… 몸이……!”
시안이 엄살을 내지르며 반쯤 묻혀 있던 늪에서 뛰쳐나왔다.
아래에 불을 붙인 듯이 쑥 빠져나온 그는 아스카의 옆에 바로 안착했다.
정령이 그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진흙이 달라붙은 옷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안은 바로 청결 마법으로 자신의 몸에서 진흙을 제거했다.
“마법이란 참 사기적인 힘이야.”
아스카가 투덜거렸다.
그 둘은 곧 대신관과 성기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엄청난 충돌이었기에 웬만하면 부상을 입을 만도 한데, 여기 있는 이들은 인간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들.
다들 잘도 제 몸을 간수하고 있었다.
넷은 빠르게 한자리에 모였다.
엘라가와 바하렉은 거칠게 맞붙고 있었다. 흩어진 안개 속에서 언뜻 그 격렬한 몸짓이 눈에 들어왔다.
그 파장으로 인해, 사방이 소음과 진동으로 가득했다.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꺼낸 것은 레비나였다.
이 파헤의 숲에서 엘라가보다 강한 마물은 없으니, 놔두면 엘라가가 이길 것이다. 하지만 저러다가 또 엘라가가 마기에 지배당해 폭주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럼 좋겠지만…….”
시안이 말끝을 흐렸다.
바윗덩이처럼 큰 호랑이와 표범의 싸움. 근처에 다가가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났다.
그렇게 큰 놈들인데도, 움직임은 눈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다.
아스카의 시선이 움직였다.
“저놈 하나만이 아닌 것 같은데.”
크르르르릉.
사나운 울음과 함께 사방에서 모여드는 기척이 느껴졌다.
크고 작은 마기의 기척들. 하나같이 바깥세상에서 이름을 떨칠 만한 마물인 데다가, 무수히 수가 많았다.
피부에 오싹 소름이 일어섰다.
두 권역의 지배자가 맞붙을 정도면, 다른 마물은 얼씬도 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놈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여기 있는 네 명의 인간들을 노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중 둘은 마물이 꺼리는 신성력을 풍기고 있지 않은가.
아스카가 중얼거렸다.
“누굴 도울 때가 아니었어. 파헤의 숲에서 마물과의 첫 전투로군.”
“대신관만 믿을게요.”
시안은 슬쩍 레비나 쪽을 쳐다보았다.
저번에 왔을 때도 전투란 걸 제대로 치러 본 적이 없는 그였다.
대신관 레비나와 레반트는 비장한 표정으로 각기 지팡이와 성검을 들어 올렸다.
적이었던 이들이 함께 싸우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이 합작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는, 싸워 봐야 알 일이다.
마물들이 덮쳐 옴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뭔가…… 먼 데서…… 파동이 느껴진다.]부지런히 달리던 칸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칸트라가 이동하는 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일행은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원래 겁많은 녀석이 예민한 법이다. 칸트라보다 감지 능력이 뛰어난 이는 여기에 없었다.
헬무트가 물었다.
“파동이라고? 누가 싸우는 건가.”
[으응…… 두 개의 격돌……인 것 같다.]“엘라가와 바하렉인가?”
아레아가 중얼거렸다. 마왕은 그들을 둘로 나누어 지배자가 존재하는 영역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것은, 싸움을 붙이겠단 의도였으리라.
제거하거나 힘을 빼어, 자신의 부활을 저지하지 못하게 만들 셈으로.
다만 마왕의 계산 밖이었던 것은, 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칸트라는 매우 평화적인 마물이라는 것.
헬무트에게 당해 본 이상, 그와 맞붙지 않을 거라는 거였다.
마왕은 몰랐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결과로 북쪽에 떨어진 이들은 퍽 평온했다.
칸트라가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왠지 가까이 가기…… 싫어진다.]“아직 네 영역이잖아. 경계까지만이라도 가지.”
헬무트가 독촉했다. 빠르기는 칸트라가 제일 빨랐다. 거북이 주제에 속도 하나는 엄청나다.
“엘라가와 바하렉이 붙고 있다면, 금방 승패가 날 텐데. 걱정할 건 없겠어.”
이그렐이 입을 열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엘라가는 그만큼 강했으니까.
“하지만 아마, 다른 네 명도 거기 있을 텐데요.”
하이케가 턱을 짚었다. 아레아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바하렉이 중앙 권역으로 가지 않았다면, 칸트라처럼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일 수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한 번 진 엘라가에게 정면으로 싸움을 걸진 못할 테지. 그렇다면 마왕의 지배를 받고 있을 가능성도 있을 테고, 혼자가 아닐 가능성도.”
“높겠지.”
헬무트가 결론을 지었다.
엘라가야 걱정이 되지 않지만, 다른 4명을 잃는다면 큰 손실이다.
그들 중 둘은 마왕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헬무트는 발을 퉁 굴렀다. 등딱지에 울림이 번져 나갔다.
“칸트라, 서둘러!”
칸트라는 채찍을 맞은 것처럼 퍼득거리며 속도를 올렸다.
쿠구구구구!
그의 짧은 사지가 얼어붙은 땅을 빠르게 스치고 있었다.
그러나 얼음은 점점 얇아지고, 눈도 확연히 줄었다.
곧, 원래의 땅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들이 서쪽 권역에 이른다면.
그리고 거기까지는 멀지 않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