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68
467
헬무트
467화
크아아앙!
엘라가가 위협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미친놈이 원래 힘이 세듯, 바하렉도 힘이 셌다. 저번보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데, 그래서 더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때의 바하렉은 두려움을 알고, 뺄 줄도 알았으니까. 이 녀석은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는 기세였다.
‘이 녀석 눈깔은 왜 뒤집혀 있는 거지.’
엘라가는 바하렉의 상태를 파악해 보려고 애썼다.
전신에서 불규칙하게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보건대, 마왕의 지배를 받아서 공격하는 것은 아니다.
엘라가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배를 받고 있다면, 오히려 마기가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바하렉은 광포한 마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본능과 야성만이 남은 상태였다. 짐승 정도의 지성은 가지고 있지만, 의식은 없었다.
‘대체 왜 이런 꼴이 되었을까.’
마왕에게 저항하다가 미쳐 버린 건가.
엘라가는 자신한테 이빨을 드러내는 바하렉을 앞발로 후려쳤다.
퍽!
얼굴이 반쯤 돌아간 바하렉은 저편으로 날아갔으나, 놀라운 순발력으로 착지했다.
쿠그그그그!
네 발로 착지한 즉시, 다시 바닥을 박차고 달려든다.
미친 듯이 이를 드러내고, 몸을 들이받으며 끊임없는 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영역의 지배자씩이나 되니 얼마든지 덤빌 만큼 체력이 넘칠 거다.
‘치명상을 입혀야 하는가.’
엘라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적당히 상대해 주던 중이었다. 바하렉을 처치하는 데 심정적인 거리낌은 없다. 어차피 적대 관계인 것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오는 그의 핵을 엘라가가 섭취해야 할 터였다.
나호의 핵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바하렉의 핵까지. 이야기가 좀 묘해진다.
소화야 가능하겠지만, 시간이 걸릴 테고 그동안은 제대로 싸울 수 없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마성이 고도로 발달한 마물답게 엘라가는 다른 마물처럼 단순하게 강해져서 좋다고 닥치는 대로 마기를 흡수할 수는 없었다.
엘라가는 지금 수준에서는 자신의 힘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내가 마왕한테 의식을 빼앗겼다고 했지.’
자신이 인지조차 못 했다는 게 불안하다. 인지를 해야 저항을 하든 할 게 아닌가.
바하렉의 핵을 흡수하는 동안은, 엘라가도 약화될 터. 그때 마왕이 수작을 부린다면…….
[어구, 어구, 어디서 침 흘리는 주둥이를 들이밀어!]열심히 머리를 굴리면서도 엘라가는 바하렉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퍽! 퍽! 퍽!
고양이 펀치라기엔 그의 앞발은 너무도 컸고 성도 부술 만큼 위력이 셌다. 골까지 흔들릴 만큼.
하지만 바하렉은 굴하지 않고 나가떨어졌다가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기세 하나만은 제일이었다.
‘대놓고 찍어 눌러 제압하고 물어서 숨통을 끊는다면, 차라리 편할 테지. 하지만…….’
핵의 사후 처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 힘을 그냥 날려 버릴 수도 없는 거고.
버리고 갔다가 마왕의 수중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대신관한테 처리시킨대도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소모되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괜찮은가.’
엘라가는 슬쩍 주변으로 감각을 퍼트렸다. 어느샌가 몰려온 마물들이 바하렉처럼 살의를 뿌리며 인간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인간들은 제법 분전하고 있었지만, 다 처리할 때쯤 힘의 소모가 엄청나게 클 것이다. 자신이 빨리 이 녀석을 처치하고 도와줘야 한다.
‘이 녀석이 정신을 차리는 편이 가장 간단할 텐데.’
마기로 미친놈이면 마기를 빼내기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때 엘라가의 머리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다. 좋은 타개책이었다. 조금, 위험하겠지만.
‘위험한 건 내가 아니니까.’
나가떨어진 바하렉이 다시 이를 드러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르르릉!
저 녀석은 죽을 때까지 저 짓을 할 것이다. 엘라가는 놈을 슥 돌아보며 몸을 날렸다.
쿠궁! 투다다다!
바하렉을 정신 차리게 할 것은 그가 아니었다.
* * *
등딱지로 썰매를 타며 노 젓듯이 질주하던 칸트라는 어느덧 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점점 얼음이 얇아지면서 마찰이 생기기 시작한 탓이다.
어느 순간, 칸트라는 우뚝 멈춰 섰다. 영역의 경계가 어딘지 예민하게 감지한 터였다.
[아…… 저기다. 나는 여기까지만…… 가겠다. 너무 달렸더니 피곤하다.]헬무트는 가볍게 그의 등딱지를 툭툭 두드렸다.
“수고했어, 칸트라.”
생전 아무 죄도 없는 상대에게 협박해서 뭔가를 얻어 내는 짓은 해 본 적 없는 헬무트였다.
의외로 바른 생활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칸트라한테는 일방적으로 피해만 끼쳤다.
아이러니하게도 북쪽의 지배자씩이나 되는 칸트라를 상대로 약자를 괴롭힌 느낌이 든다.
[수고……했다. 나…… 어서 내려가라.]일행들은 일제히 칸트라의 등딱지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바닥이 밟히는 감촉은 더 이상 빙판이 아니었다. 풀이 자라나는 대지다.
“일이 잘되면 또 보자고.”
이그렐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칸트라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세 번은…… 안 봤으면 좋겠다. 마왕…… 잡고 이겨라.]정이건 뭐건 그들이 꺼려지기만 하는 소심하지만 냉정한 거북이였다.
칸트라는 그들이 내려서자마자 바로 몸을 빙글 돌렸다.
그리고 왔던 것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아!
바닷속으로 완전히 몸을 감출 때 비로소 그에게 안정이 찾아올 것이다.
“이상하게 귀여운 녀석이야.”
이그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이 경계로, 곧 서쪽 권역이다. 헬무트는 감각을 집중했다.
육안으로도 저편에, 안개가 짙게 낀 것이 보였다. 무겁도록 대기에 가득 찬 마기와 안개.
그 너머에서 둔중하게 맞부딪치는 마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두 개의 거대한 마기가 충돌하고 있었다. 아마도 엘라가와 바하렉. 그렇다면 다른 일행은?
“서두르자.”
헬무트가 말하는 동시에, 아레아가 골렘을 소환했다. 저번에 파헤의 숲에 왔을 때 탄 바로 그 골렘이었다.
새 형태로, 그들을 싣고 날아갈 것이다.
속력은 칸트라 못지않았지만, 골렘은 마력을 많이 잡아먹는다.
하지만 지금은 지체할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가 일제히 골렘 위로 올라탔다.
“내가 이 녀석을 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그렐이 중얼거렸다. 새가 새를 타는 희한한 상황이다. 골렘은 바로 하늘로 솟구쳐,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하이케가 마법으로 바람의 저항을 흘려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렘은 안개 속으로 완전히 진입했다.
피부에 수분 입자가 두두둑 박혔다. 따끔한 만치 이동이 빨랐다.
그러나 아래쪽에서 마기의 충돌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새 결론이 난 걸까?
“탐색 마법이 안 써져. 이 부근이었어?”
아레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위쪽에도 안개가 가득하니, 바닥은 보이지도 않는다.
헬무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 근처였어. 하강하지.”
골렘이 아래로 머리를 움직인 순간, 아래쪽에서 번쩍하는 빛이 보였다. 불쾌한 감각이 헬무트의 뺨을 불길처럼 그슬었다.
‘신성 마법!’
강력한 신성 마법의 돌풍이 안개를 흩어 놨다.
증기처럼 뿌연 바람이 안면을 강타하고, 곧 헬무트 일행의 눈앞에 말끔해진 광경이 들어왔다.
그들이 찾던 모두가 거기에 있었다.
“헬무트!”
아스카가 소리 높여 외쳤다. 아래쪽 상황은 가관이었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마물의 시체들. 초토화된 땅의 흔적.
그 와중에 다행히도 네 명의 사람들은 멀쩡히 서 있었다. 반쯤은 사고로 죽길 바랐던 대신관과 성기사마저도.
‘전력의 손실이 없으니 다행인가?’
단지 험난한 전투를 치렀는지, 네 사람 모두 깔끔한 꼴은 아니었다.
엘라가가 멀쩡한지는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는 네 발로 땅을 디디고 서서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헬무트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바하렉?’
헬무트는 새가 착지하길 기다리지 않고 바로 뛰어내렸다.
탁!
그가 안착한 곳은 엘라가 앞이었다. 그가 심드렁하니 말을 건넸다.
[늦게도 왔군.]“바하렉과 싸운 건가?”
“살아 있는데? 왜 확실히 하지 않았지?”
헬무트는 검에 손을 가져갔다.
바닥에 쓰러진 바하렉은 꿈틀거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었다.
전신에서 풍기는 마기를 보건대, 아직 싸울 기력이 있어 보인다.
아마 신성 마법에 직통으로 얻어맞은 터. 엘라가가 있는데 굳이 신성력을 여기서 낭비할 필요가 있던가. 헬무트는 의아해졌다.
엘라가의 목소리가 느긋하게 날아왔다.
[가만 내버려 둬 봐. 먹힌 것 같은데?]헬무트는 엘라가 곁에 서서 바하렉을 지켜보았다.
바닥에 안착한 일행들이 그에게 다가와 섰다. 모두의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바하렉은 서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번뜩이는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이게 웬…….] [여어, 정신 차렸나.]뒤늦게야 엘라가의 모습을 본 바하렉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뭐, 뭐냐! 엘라가? 왜 네 녀석이 여기에 있어? 게다가 인간들까지 데리고 내 영역을 침범하다니!]좀 전까지 박 터지게 싸웠던 것치고는 이상한 소리지 않은가. 헬무트는 더더욱 의아해졌다.
엘라가가 바하렉을 향해 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건방진 놈, 당연한 것 아니냐? 네놈을 제정신으로 돌려 놓은 게 바로 나니까!] [제정신…… 그래, 그랬지.]바하렉이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듯이 눈을 끔뻑였다.
[네가 어쩌다가 정신 줄을 놓았는지, 기억하고 있는 거냐?] [기억이…… 난다. 중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한테 어떻게 한 거냐?]바하렉은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엘라가를 쳐다보았다.
엘라가가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성 마법에 얻어맞으면, 네가 정신을 차릴지 모른다고 생각했지. 간단하잖아?]그래서 엘라가는 대신관이 있는 쪽으로 바하렉을 유인했다.
그 김에 4명을 둘러싼 채 미친 듯이 덤벼들고 있던 마물들은 자동으로 뭉개졌다.
바하렉도 나 아니면 모두 적인 상태라, 바글거리던 마물들은 두 마물의 난입으로 거의 초토화가 되어 버렸다.
4명은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다른 위기 앞에 놓였다. 엘라가와 싸우던 바하렉이 눈앞에 있었다.
그때 엘라가가 말했다.
[야, 대신관.]“예?”
[내가 제압할 테니, 저 녀석 머리에 대고 신성 마법을 갈겨라. 강력한 한 방. 알지?]그러면서 엘라가는 눈을 부라리며 경고했다.
[대신관이니까, 바하렉한테만 맞출 수 있지? 나한테 신성 마법 닿지 않게 잘 조준하라고.]“노력……해 보지요.”
[절대 내가 혼자 상대하기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거든!]이유는 끝나고 설명하면 될 터였다. 마침 그가 말을 끝내게 무섭게, 바하렉이 몸을 던져 왔다.
엘라가는 바로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잠시 뒤, 그의 이빨이 바하렉의 뒷덜미를 물고 발광하는 놈을 전신으로 찍어 눌렀다.
그리고 때맞춰 레비나의 신성 마법도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