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73
472
헬무트
472화
화아아아!
강렬한 신성 마법의 빛이 외피를 감싼 마기를 제거하고 그 위로 연달아 마법이 쏟아진다.
불로 지지고 바람으로 살을 가르는 강력한 공격 마법은 선두에 선 놈들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이어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흙기둥이 놈들의 몸을 꿰뚫었다.
마물이라도 고통을 느낄 법한데, 놈들은 물러섬이 없었다.
선두에 선 놈들은 추락하여 늪에 처박혀 가라앉으면서도, 온몸으로 발버둥 치며 살의를 내세운다.
헬무트 일행을 말살하는 게 뇌리에 가득 찬 전부인 듯이.
소름 끼치는 살의였다.
연달아 쏟아지는 마법의 포화를 뚫고, 개중 민첩하거나 튼튼한 몇 놈이 헬무트 일행의 코앞까지 다다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어딜 고개를 들이밀어!”
뛰쳐나간 이그렐이 마기를 실은 주먹으로 놈들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드득!
날아들던 놈들이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공중에서 뭉개졌다.
“건방지게 새 주제에, 감히 이 이그렐님에게? 이거, 내 영역에 있던 놈들 아니야!”
자신이 얼마간 자리를 비웠기로서니 주인을 몰라보고 덤빈단 말인가.
아무리 멍청한 놈들이라지만 발칙하기 그지없다.
이그렐뿐만이 아니었다. 바하렉과 엘라가도 이 발칙한 놈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주인도 몰라보는 것들!] [어디서 하극상이냐?]꼬리와 앞발로 휙휙 후려치고 이빨로 슬쩍 물자 마물들은 금세 박살 나서 늪 위로 떨어졌다.
그 위력이 기가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헬무트와 아스카, 루크 예거, 레반트. 네 검사의 차례도 돌아왔다.
공포심을 거세당한 양 파도처럼 밀려오는 마물의 수는 엄청났다.
마치 파헤의 숲의 모든 날짐승이 이리로 날아오는 것처럼.
콰가각! 콰직! 서걱!
날 선 소음과 함께 동강 난 마물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꿈틀거렸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서라도 공격하려는 놈들이기에 확실히 핵 하나하나를 부숴야 했다.
“으악! 아악!”
“토벌 백 번은 나가야 이 정도 수의 마물을 보겠는데?”
“큭! 날파리 같은 것들이!”
“제발 꿈에만 나오지 마라!”
생전 처음으로 이토록 많은 마물을 본 시안, 루크 예거, 레반트, 아스카는 제각기 소리를 지르며 마물을 상대했다.
그에 반해 정령 마법사와 달리 주문의 영창이 필요한 대신관이나 마법사들 쪽은 조용했다.
조용히 끊임없이 마법을 완성시켜 적을 말살한다.
선별 인원답게, 일행 중 누구도 공황에 빠지거나 덜덜 떠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검사 중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이는 건 역시 헬무트였다.
대단위 공격 마법을 완성시키느라 아레아가 무방비로 노출된 순간, 헬무트는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놈들을 베어 냈다.
서걱! 카르륵!
갑옷을 두른 듯이 단단한 마물도 예외가 없었다.
놈들의 몸에서 핵이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였다.
그녀에게 달려드는 마물을 처치하다가, 마력이 밀집되는 찰나, 몸을 비킨다.
“화염의 폭풍!”
콰르르르!
회오리치며 질주하는 거대한 화염 기둥이 놈들 가운데를 뻥 뚫었다.
“바람의 광란!”
몰아치는 화염은 하이케가 불러낸 바람에 기세를 더했다. 소용돌이치는 불기둥이 마물을 집어삼켰다. 매캐한 연기가 가득 퍼져 나갔다.
불타는 몸으로도 끝끝내 날아와서 이빨을 들이미는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신관은 신성력으로 놈들을 정화하며 마기의 근원인 핵 자체를 날려 버렸다.
생명과 연결된 근원을 잃은 놈들은 가장 확실하게 숨이 꺼져 갔다.
헬무트는 늪 한 발자국 앞까지 나서며 적극적으로 놈들을 처리했다.
밀집되어 일거에 소탕당한 놈들은, 이제 다른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헬무트는 마물들의 동태를 기민하게 알아챘다.
“산개하고 있군. 마물이 이 정도 머리가 있나?”
엘라가가 꿈틀했다.
[마물을 무시하는 거냐! 뭐 저 녀석들은, 조종당하고 있는 거겠지만.]맹목적으로 달려들면서도 또 흩어질 땐 흩어진다. 그건 마왕의 의지란 뜻이다.
일부는 옆구리로 날아들었고, 일부는 아예 크게 꺾어 뒤에서 일행을 덮쳐 왔다. 수적 우위로 둘러싸 포위하는 식이었다.
세 마리 영역의 지배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들에 비해 인간들은 힘이 한정되어 있다.
“여기서 잔챙이들을 상대하는 데 힘을 다 소진할 순 없어요!”
레비나가 다급히 외쳤다. 대신관답지 않은 어휘 선택.
하지만 그녀 말이 맞았다. 늪을 앞에 두고 멈춰 서서 계속 밀려오는 놈들을 맞이할 수는 없다. 중앙으로 진격해 나가야 한다.
“놈들이 조종당해서 덤벼드는 거라면, 아레아!”
세 마리를 동시에 참살한 헬무트가 아레아를 돌아봤다. 마물의 산개로 대단위 공격 마법이 무용해진 터.
아레아는 숨을 내돌리며, 범위가 좁은 마법으로 한 놈 한 놈 쏘아 맞추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헬무트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즉시 알아챘다.
“충분히 가지고 왔어.”
그녀는 품에서 로제타 향초를 잔뜩 꺼냈다.
이전까지에는 일행 주위에 언뜻 향만 풍기게 했던 터. 싸우는 새에 그나마의 향도 흐려진 터였다.
아레아는 로제타 향초를 마차 가운데에 가득 실은 채로 불을 붙였다.
“바람의 날개.”
하이케의 마법을 받아 마물의 살점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늪 특유의 냄새만이 자욱했던 대기에 로제타의 향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청량하고 향긋한, 정신을 맑게 해주는 향이었다. 일행 모두가 뚜렷한 각성 효과를 느꼈다.
멀쩡하던 정신도 더욱 예리하게 살아나는 감각.
끼이……?
달려들던 놈들이 멈칫거렸다. 짙은 농도의 향이 호흡기로 스미면서 이지를 자극했다.
희미해졌던 의식이 돌아오자, 바로 본능이 살아났다. 파헤의 숲에서 놈들을 살아남게 했던 본능.
그것이 앞에 서 있는 어떤 존재들을 생생히 느끼게 했다. 포악한 마기를 내뿜으며 서 있는 두 마리 마물!
엘라가와 바하렉. 인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이그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둘만으로도 놈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기에는 충분했다.
키이이이익! 키이이이이익! 캬아아아악!
비상, 비상! 괴물 출현이다! 인간어로 해석하자면 거의 그런 뜻이었다.
산개해서 덮쳐 오던 놈들이 순식간에 궤도를 틀었다. 거의 기겁하다 싶은 몸짓으로 놈들은 등을 돌려 헐레벌떡 사라졌다.
그것으로 잠깐의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우르르 몰려온 놈들이 향을 맡고 정신을 차려서 도망간다. 그 와중에 제 놈들끼리 뒤엉켜 늪 위로 떨어지면서 뭉개졌다.
아레아가 경고했다.
“향의 효력이 떨어지면 다시 돌아올 거야.”
여기는 중앙 권역이고, 중앙 권역에는 마왕이 있다. 마왕이 강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을 테니, 향의 효과는 곧 휘발되듯이 날아갈 것이다.
바하렉이나 엘라가, 이그렐이 이상 조짐을 보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우리는 전진해야 해.”
헬무트는 차분하게 말했다. 엘라가가 난색을 보였다.
[늪은 어쩌냐? 난 덩치가 커서 그런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힘들다고. 헤엄쳐서 건널 수도 없어.]뛰어넘는다면 좋겠지만, 뛰어넘으려면 저 너머에 땅이 나와야만 한다.
이그렐을 변신시켜 타야 하나?
하지만 엘라가 한 마리에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바하렉까지 태우긴 무리였다.
바하렉을 두고 갔다가 그가 적으로 돌아서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여길 어떻게 지나지?”
늪을 쳐다보며 루크 예거가 물었다.
하이케가 말을 받았다.
“전체가 늪은 아닐 테지, 길을 찾는다.”
그녀의 시선이 시안에게 돌아갔다. 지형의 문제라면, 누가 가장 빨리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뻔했다.
“아, 맞아.”
다급히 땅의 정령을 보낸 시안은 곧 길을 찾아냈다.
“이거 전체가 늪이 아니라…… 늪과 굳은 땅이 섞여 있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육안으로는 늪과 굳은 땅을 구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땅의 정령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지체해선 안 됐다. 분량이 많다고는 하지만, 로제타의 향도 언젠가는 떨어질 테니까.
바하렉이 다시 마차를 끌었다.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이 낫다.
시안이 마차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바하렉에게 길을 인도했다.
“오른쪽, 거기서 왼쪽! 다시, 왼쪽이요!”
목청껏 소리 높여 방향을 지시하면서.
엘라가는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부나방처럼 달려든 마물이 로제타의 향을 맡고 정신을 차려 도망가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개중 끝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한 녀석들은 나약한 정신에 뼈저린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만 했다.
그러나 참교육도 계속되다 보면 교육자의 신경 줄을 갉아먹는다. 심지어 무상 교육이었다.
“이건 뭐, 마물 시체를 팔아다 치울 수도 없고.”
팔마 기사단장답지 않은 소리를 루크 예거가 불만스레 지껄였다.
아스카의 날카로운 경고가 울려 퍼졌다.
“거기 조심해요!”
“방심하지 마라! 늪에서 나온다!”
하이케가 소리쳤다. 거대한 식인 물고기가 펄쩍 뛰어올랐다가 소득 없이 늪으로 빠져들었다.
첨벙!
뒤이어 아래로부터 거대한 악어가 솟구쳐 나와 일행의 옆구리를 기습했다.
헬무트는 그대로 흉악한 놈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까드득!
악어는 뇌수를 철철 흘리면서도 끈질기게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인간의 몸뚱이를 두 쪽으로 가르고도 남을 무시무시한 치악력을 담은 입이 사납게 여닫혔다.
헬무트의 두 번째 일격이 악어의 핵을 꿰뚫었다. 거대한 몸뚱이에서 깊숙하게도 있었다.
그러나 놈 하나가 아니었다.
‘악어라서 나는 놈들보다 늦게 온 거로군.’
저 멀리서 늪 위를 스쳐 오는 둔중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육지에 있는 그들을 쫓고 있는 늪지대의 마물들.
본디 중앙 권역에 늪 따위는 없었건만. 어디서 온 녀석들인지 새삼 궁금해할 필요가 있겠는가.
파헤의 숲 전체에서 모여든 마물들이 이곳, 중앙 권역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바하렉, 계속 달려. 시안은 인도에 집중해!”
“바하렉, 오른쪽, 오른쪽!”
속도를 늦추지 않았기에 늪에 빠질 뻔도 하면서, 그들은 기민하게 나아갔다.
가는 길 족족 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날아오는 놈들에 이어, 늪에 사는 놈들도 그들을 습격하기 시작했지만, 그게 끝은 아닐 터였다.
늪지대를 벗어나면 땅을 밟고 서는 놈들이 발 디딜 곳 없이 빼곡하게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리라.
“수가 너무 많아.”
대신관 레비나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성물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는 동안 힘을 회복하고 있기로 했다.
대신관의 신성력은 마왕에게 치명타를 안겨 줄 수 있는 힘이다. 이런 놈들에게 허비해 버리면 곤란했다.
책상물림을 즐기는 대신관답게, 그녀의 체력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파헤의 숲에 오기 전에도 그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체력을 길러 봐야 얼마나 길렀겠는가.
레반트가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걱정 마십시오, 레비나 님. 아직 신성 결계가 꺼지지 않았습니다. 위대하신 루멘이 우리를 인도할 겁니다!”
레비나는 불안을 느끼지도 않을 만큼 광신적인 차세대 신전의 인재를 보면서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적어도 그들은 나아가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들은 결국, 중앙 권역에 도달하리라.
레비나는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