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76
475
헬무트
475화
마차 앞에 선 두 마법사의 손에 엄청난 마력이 결집되기 시작했다.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 마법을 퍼붓는다.
마치 두 개의 불덩이가 대기를 살라 먹는 것 같았다. 진동이 마차를 뒤흔들었다.
헬무트가 경고했다.
“엘라가, 몸을 숙여!”
엘라가가 최대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왠지 모르게 굴욕적이었다.
꼭 마왕의 결계에 대고 복종의 자세를 취하는 것 같지 않은가.
“마법이 직격하여 결계에 틈이 생긴 순간, 즉시 진입한다.”
[나도 알아.]엘라가가 투덜거렸다. 바하렉과 이그렐을 넘어, 마차의 뒤로 몰려든 마물들이 성이 난 채 서성였다.
결계 가까이까지는 접근할 수 없다. 하지만 마차의 뒤편은 그들에게 가까웠다.
잔뜩 약이 오른 놈들은 바닥에서 돌이며 흙을 주워다가 던졌다.
시안이 결계를 쳐서 그것을 막아 냈다.
콰득! 콰가각! 콰각!
맹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스카가 혀를 찼다.
“이렇게 성질 더러운 놈들이 다 있나.”
인간 고기 냄새가 그들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시안이 대꾸했다.
“꼭 아카데미 시절 너 같네.”
“뭐라고?”
눈을 부라리는 아스카를 모른 척하며 시안이 아레아와 하이케 쪽을 돌아보았다.
마법은 빠른 속도로 완성되고 있었다.
지잉거리는 결계 소리 속에서 루크 예거가 목을 축이며 중얼거렸다.
“마물들한테 이렇게 주목받아 본 경험은 처음이군.”
“다신 겪고 싶지 않아.”
레반트가 말을 받았다. 처음으로 대화에 끼어든 그였다. 그들 사이에서 전우애라는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전우애를 나누려면, 일단 목적을 달성하고 살아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마법이 완성되었다.
아레아가 먼저 손을 쳐들었다. 그녀의 두 손 사이에서 폭발적인 마력의 결집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레아 스스로 창안한, 도시를 날릴 만한 파괴력을 지닌 고유 마법이었다.
옆쪽에서 조금 늦게, 하이케의 마법이 완성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레아는 검은 결계를 향하여, 소용돌이치는 마법을 풀어놓았다.
“폭풍을 꿰뚫는 빛!”
새하얀 빛이 작렬했다. 유성이 떨어진 듯 찬란한 광채가 시선을 멀게 만들었다. 누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음 순간.
투우우웅!
둔중한 울림과 함께, 결계의 지잉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고강도의 전격계 마법에 생체가 마비되어 버린 것처럼. 이어 하이케의 마법이 직격했다.
“빙결의 창!”
수천 개의 얼음 창날이 결계를 꿰뚫었다.
얼어붙은 물이 바위를 깨부수듯, 창날은 결계를 관통하며 부피를 부풀렸다.
그리고 이내 문이 열렸다. 흩어진 결계의 틈새로 어둠이 비쳤다.
무성한 구름을 뚫고 올라간대도, 밤에 볼 수 있는 것은 어둠뿐이다.
혹은 그 어둠 속에서도 제 몸을 살라 존재감을 드러내는 별과 태양을 비치는 달.
그들은 마왕에게로 향하고 있었고, 또한 신성 결계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왕과 루멘, 모두가 그곳에 존재한다.
[간다! 꽉 붙들어!]외마디 소리와 함께, 엘라가가 그대로 발을 박차고 뛰었다. 그 즉시, 그의 몸이 바로 결계를 통과했다.
뒤에 달린 마차 역시도 결계에 진입했다.
그그그그그!
안개처럼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결계의 저항이 느껴졌다.
하지만 엘라가가 이끄는 힘이 워낙 굉장하여, 마차는 그대로 결계를 물리적으로 부수듯이 지났다.
골렘이 워낙 튼튼하다 보니, 거의 손상 없이 통과할 수 있었다. 그 위에 탄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통과했지?]잠시 멈춰선 엘라가가 물었다. 결계를 통과하자마자 다들 한숨 내돌렸다.
바하렉과 이그렐이라는 크나큰 전력이 빠지기는 했으나, 여기까지 오면서 누군가 크게 부상을 당하거나 죽어 나가는 일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마법사들은 일행의 체력을 회복시키고, 마력석을 꺼내 들어 소모한 마력을 보충했다.
아주 잠깐의 휴식이었다.
결계 너머에서 바로 새로운 마물이 덤벼들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헬무트는 몸을 세운 채 주변을 살폈다. 땅은 결계 바깥처럼 여전히 검었다.
“오징어 먹물로 물들인 것 같군.”
헬무트는 자신이 아는 가장 검은 액체를 말했다.
아레아가 눈을 찡그렸다.
“검은 잉크 같다는 표현도 있잖아.”
헬무트는 입을 다물었다. 그로서는 두 표현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단지, 땅과 숲은 온통 검되 안쪽의 광경은 이전의 중앙 권역과 유사했다.
잿빛 안개가 깔려 어두웠으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만큼 짙지는 않았다.
곧 로제타의 환을 씹어 먹은 엘라가가 말했다.
[삼 분의 일 정도 남은 것 같다.]제가 살던 곳으로 가고 있는데 점점 찜찜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
마왕이란 놈을 때려잡기 전에는 이 기분이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무심코 마차 쪽을 돌아본 엘라가가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무슨 일이야?”
“엘라가!”
일제히 검을 빼 들며 경계 태세를 갖추던 그들은, 엘라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일순 몇몇이 표정을 실룩였다.
엘라가의 머리 위로 털이 우스꽝스럽게 꼬부라져 있었다.
멋들어지는 수염의 끄트머리도 끝이 오그라들었다.
꼭 불덩이가 그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난 듯이.
금속성의 마차에 또렷하게 비친 제 모습을 본 엘라가가 소리를 지른 것이다.
원흉은 알 만했다.
엘라가는 사나운 눈으로 아레아를 쳐다보았다.
빙결의 마법을 사용한 하이케의 잘못은 아닐 터.
[아레아, 이게 대체 뭐지?]“마법에 털이 스쳤군요.”
전격계 마법을 시전한 아레아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엘라가가 으르렁거렸다.
[왜 나를 맞추는 거야! 이 멍청한 마법사가!]“맞춘 게 아니라, 전격의 영향이 미친 거예요. 그리고 내가 멍청하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전격계 마법이 쏘아져 나가면서, 대기를 태우며 엘라가의 털까지 지져 버렸던 것이다.
마법을 방해할 수 있기에, 전면에 있던 엘라가는 최대한 마기를 죽인 터였다.
적극 협조한 대가로 그는 이마 털에 손상을 입었다.
위엄 넘치는 모습은 어디 가고, 타다 남은 털이 이리저리 얼룩진 안면은 흉하다기보다는 우스웠다.
[내 금쪽같은 털을, 감히!]“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랄 거예요.”
[내가 네 머리를 태워도 그렇게 말할 테냐!]슬쩍 제 머리카락을 만져 본 아레아가 그제야 말했다.
“미안해요.”
[미안하다면 다야!]심지어 전혀 미안한 말투도 아니다. 아레아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중에 보상하죠.”
엘라가는 휙 고개를 돌렸다. 상심한 그가 길게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앙!
엘라가의 앞발이 사납게 땅을 파헤쳤다.
강렬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그로부터, 마왕의 지배력은 한 달음 멀어졌다.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었다.
헬무트는 엘라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내 머리카락은 태워도 되는데.”
아레아의 머리는 안 되지만, 제 머리로 보상은 가능하다.
엘라가가 사납게 대꾸했다.
[이 일이 끝나면 네 암컷을 대신해서, 네 머리를 속살이 드러날 만큼 태워 주지!]절절한 분노와 원한이 담긴 소리에 헬무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슬쩍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그도 대머리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이다음은 뭐지?”
아스카가 물었다.
그 말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중앙 권역의 중심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중앙 권역까지 수월하게 도달하고 나서 벌어진 끊임없는 전투.
아무리 회복 마법을 퍼붓는다고 해도, 소모된 힘까지 되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다들 조금씩 지쳐 있었다. 희생자가 없다는 것이 위안일 뿐.
다행히 2번째 장벽을 통과하자 마물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다른 세계에 접어든 것처럼, 간간이 덤벼 오는 놈들은 외형이 이제껏 본 적 없이 기이했다.
“꼭 뭉개지고 재조립된 것 같군.”
파헤의 숲에서 살아온 헬무트조차 그리 말할 만큼 낯설었다.
마물이란 자체가 동식물이 마기로 변화한 존재.
기이한 외형을 하고 있더라도 원형을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표범처럼 길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토끼도 결국은 토끼인 것처럼.
하지만 새로이 나타난 놈들은 달랐다.
원형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몸집의 외눈박이 괴물이라든가 뭉개진 몸뚱이에 수많은 눈이 달린 원형의 괴물.
하지만 제 몸에 저도 익숙지 않은지, 어딘지 비틀거리거나 이상한 곳을 공격하며 몸을 들이박곤 했다.
엘라가가 길을 가로막는 놈들을 불쾌한 듯 후려갈기면 별 저항 없이 튕겨져 나가서 바닥을 굴렀다.
[속도도 빠르고 몸도 튼튼한데, 뭔가 조화되지 않은 느낌이란 말이지.]“마법 실험에서 실패한 키메라 같은 느낌이야.”
마력을 얼추 회복한 아레아가 중얼거렸다.
하나는 확실했다. 그들은 마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계에서 나온 생물인지, 아니면 마계의 영향을 받아 기존 마물의 모습이 변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마계의 입구에서 나온 놈들일지도.”
저항을 뚫고 이곳 세계에 발을 들인 대가로 그렇게 변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시안이 가설을 세웠다. 그러자 아레아가 반박했다.
“물질이 통과할 정도로 마계가 열렸다면, 이미 신성 결계는 깨졌을 거야. 천 년 전에도 마계에서 온 생물은 없었어.”
“세계와 세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건, 형체 없는 힘과 의지로서만 가능하다는 뜻이겠지.”
하이케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누가 마법사들 아니랄까 봐 새로운 연구 과제가 놓이자 바로 논의에 들어간다.
엘라가가 툭 말을 던졌다.
[그보다 긴장들 해라. 머지않았으니까. 이 속도로 가면 세 시간 안에 도착할 거야.]엘라가는 일행의 극렬한 반발에 아까처럼 펄쩍펄쩍 뛰지는 않고 네 발을 움직여 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꽤 빨랐다. 아까까지 마차를 끌던 바하렉의 속도와 유사하게.
“다행히 힘을 회복하고 맞상대할 수는 있겠어.”
아스카가 마차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전신 어느 곳 하나 아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대신관 레비나가 손을 뻗어 그에게 축복을 걸어 주었다.
신성 마법은 그 어떤 마법보다도 인간에게 친화적이다. 금세 몸이 개운해졌다.
레비나가 아스카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황족의 몸으로 이리 힘든 일에 자청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합니다.”
“아, 뭐……. 대신관님도 그렇죠.”
적의 적은 친구이니 이제 대신관도 친구인가? 그렇다기엔 뭔가 아닌 듯하다.
아스카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여긴 좀 쉬운데? 제대로 된 경비병은 바깥쪽에만 잔뜩 세워 놓은 건가 보군.”
서겅!
꾸물꾸물 기어서 옆을 스쳐 지나가는 마차 위로 머리를 내민 거대 애벌레를 베어 내며 루크 예거가 중얼거렸다.
마물의 출몰이 잦아든 탓에, 두 명씩 경계를 서며 돌아가면서 쉬기로 한 터였다.
“여기도 경계일지 모르지요.”
그와 함께 경계를 서던 헬무트가 대답했다.
1차 장벽과 2차 장벽 사이에서도 그들은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다.
그렇다면 도착지 부근에서, 그들은 또다시 장벽을 만날 것이다. 이번 장벽은 이전보다도 쉽지 않으리라.
다만 마왕을 물리치는 일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파헤의 숲에서 마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호사였다.
그리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