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481
480
헬무트
480화
그들이 추락할 무렵, 아래쪽에서는 한차례 소란이 있었다.
구우우웅!
촉수 마물과 분투를 벌이고 있던 세 사람은 굉음을 듣고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똑똑히 보았다. 하늘로부터 그림자를 드리우며 떨어져 내리는 새를.
금속으로 만들어진 골렘은 그야말로 운석처럼 하강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들이 싸우고 있는 장소를 향해서! 깔렸다간 뼈도 추리지 못하리라.
아스카가 비명과 함께 외쳤다.
“으아아악! 피해!”
왜 저게 추락하고 있는지는 지금 중요한 일이 아니다. 깔리면 죽는다!
그들은 부리나케 발을 박차고 전력으로 뛰어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마물은 그렇지 못했다. 인간들이 쇠꼬챙이를 들고 몸을 쑤셔 대서 잔뜩 열이 오른 상태.
놈은 분노에 사로잡힌 채 사방으로 흩어지는 인간 중 누구를 쫓을까 고민하느라 신경을 빼앗겼다.
추락하는 무언가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놈은 그것을 쳐 내 버릴 요량으로 촉수를 뻗었다. 하지만 멍청한 시도였다. 그대로 이 느닷없는 운석에 직격당한 놈은 꺾인 촉수와 함께 무참히 으스러졌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떨어진 그것에는 너무도 묵중한 힘이 담겨 있었다.
쿠과가가가강!
바닥에 움푹 팬 원형의 구덩이가 생겨났다. 파편이 튀면서 마물이 다행히 쿠션이 되어 주었다.
그 때문에 주변에 여파는 크지 않았다. 충돌을 피해낸 아스카와 루크 예거, 레반트가 다시 놈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핵까지 그대로 갈려 버린 놈에게선 아무런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눈 뜨고 보기 어려운 처참한 몰골.
아스카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녀석.”
“덕분에 쉽게 끝났군.”
루크 예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스카가 손가락질했다.
“저쪽을 봐.”
저편에 공중으로부터 내려서는 헬무트와 아레아, 하이케가 보였다. 그들은 곧장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무사했다. 그렇다는 것은.
“성공했나 보네.”
“무사해 보이니 다행이야.”
아스카와 루크 예거는 바로 중심부로 움직였다. 이제 방해하는 이도, 파수꾼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이제 한 가지 절차.
다만, 한 명. 레반트는 사라진 누군가의 존재를 놓치지 않았다.
‘레비나 님은?’
저릿한 불길함이 엄습했다.
곧 헬무트 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그는 서둘러 걸음을 움직였다.
다가선 루크 예거가 하이케에게 물었다.
“일은 어떻게. 잘된 겁니까?”
“네 골렘이 우리 쪽으로 떨어져서 죽을 뻔했잖아!”
아스카가 아레아에게 성을 냈다. 아레아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힐끔 보았다.
“그것도 못 피하면 여기 올 자격도 없었겠지.”
“마왕은 사라졌어. 이제 마계의 입구만 막으면 돼.”
헬무트가 가로막으며 분쟁을 방지했다. 하이케도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뒤늦게 나타난 레반트가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에 그것이 있었다. 바닥에 푹 파묻힌 부서지다 만 신전의 물건.
그래, 그것은 레비나가 들고 있던 지팡이의 머리였다.
이제는 유품이 되어 버린 그것을 레반트는 망연히 내려다보았다.
“레비나 님…….”
어쩌면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직감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레반트가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했어야 했건만.
“그분은 자신을 화하여 마왕을 사르셨어요.”
하이케가 차분히 답했다.
신전에 좋은 감정이 남아 있을 리 없는 그녀이지만, 레비나의 희생을 하찮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누군들 목숨을 바치는 일이 쉬울까.
“……유품이라도 건질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레반트는 지팡이를 주워 들어 소중히 품에 넣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곧 루크 예거가 입을 열었다.
“이제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싸우는 것밖에 재주 없는 그였다. 마계의 입구를 닫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때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알고 있다.]엘라가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마계의 입구로부터 마기를 끌어내는 마왕이 사라지니, 조금 움직일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마기가 존재하는 한 마왕은 또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들이 소멸시킨 것은 완연한 의지를 가진 실체일 뿐이니까.
마계의 입구를 완전히 닫아, 세계의 접점을 지운다. 더 이상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엘라가.”
헬무트는 불길한 감각 속에 그를 쳐다보았다. 엘라가는 빙긋 웃었다
[내가 하기로 예정된 일이야.]“누가 그런 걸 정해.”
[루멘이 알려 주었지, 먼 옛날에.]일순간 침묵이 흘렀다. 모두가 입을 다문 채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엘라가의 기억이 순식간에 천 년 전의 과거에 이르렀다.
엘라가가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이다. 그가 5개월이 지나지 않은 어린 새끼였던 때.
마왕의 영향으로 흉포해진 짐승들에게 부모를 잃고 그마저 목숨을 잃으려던 찰나였다. 어떤 손길이 그를 구해 주었다.
서광이 비치고, 온몸에 후광을 두른 그 인간이 나타난 순간, 짐승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도망쳤다.
그리고 낑낑거리는 엘라가를 잡아 올리는 손길이 있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 인간은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자의 손길이 닿자, 엘라가의 상처투성이 몸은 금세 치료되었다.
금빛 눈이었다. 그자는 빛이 감도는 눈으로 엘라가에게 속삭였다.
‘내가 너를 살렸으니, 네게 사명을 주마.’
짐승의 소리와는 다른 그 음성은 온화했고, 또한 몸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듯한 울림을 품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 숲은 오염되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마기에 물들게 될 것이다.’
놀랍게도, 그의 말을 들으면서 엘라가에게 이지가 생겨났다.
엘라가는 그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살아남아 강해지고, 정점에 서거라. 때가 오면,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엘라가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그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내 이름은 루멘이다.’
그리고 엘라가를 남겨 둔 채, 그는 떠나갔다.
루멘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루멘은 그저 태양처럼 밝고, 강렬한 존재로 어린 표범의 기억에 자신을 선명히 새겼다.
그리고 엘라가는 조금 특별한 표범이 되었다. 다른 미물들과는 다르게 생각할 줄 알고, 조금 더 강인한 힘을 가진 표범.
루멘이 준 힘은 신성력이 아니었다. 그저 신체를 발달시켜 엘라가가 살아남고, 강해져서 파헤의 숲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그 때문에 엘라가는 파헤의 숲이 신성 결계에 닫히고 나서도 순조롭게 마기를 받아들여 마물이 될 수 있었다.
[기억이 최근에야 떠올랐어.]엘라가가 담담히 말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에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루멘은…… 이런 사태가 올 줄 알고 안배를 해 놨던 거로군요.”
하이케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엘라가가 뭘 해야 하는데.”
헬무트가 물었다. 그에게는 그게 더 중요했다.
[마계의 입구를 닫아야지. 나는 이곳의 마기를 흡수하며 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 거야.]“그리고?”
[마계의 입구로 들어간다는 건, 마계로 간다는 뜻이지. 그 후로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도 엘라가는 담담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것처럼.
“엘라가가 그럴 필요 없어. 다른 방법이 있겠지.”
헬무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관 레비나는 희생을 치를 만했다.
신전은 마왕을 막아서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니까.
마물인 엘라가는 아니었다. 천 년 전의 약속 따위, 이제 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루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여기에 있지 못했겠지. 나는 빚을 갚아야 해.]기억났으니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아직 신성 결계는 남아 있고, 루멘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엘라가는 순순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헬무트는 그렇지 못했다.
“아니, 그럴 수 없어.”
어린애 같은 부정이었다. 엘라가를 잃을 수는 없다.
그를 두고 떠나갔으나,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과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다르니까.
[헬무트, 네 삶은 네가 선택했지. 그러니 이것도 나의 선택이다.]엘라가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이번에 하지 않는다면 안 된다. 마계의 입구가 남아 있는 한 마왕은 다시 등장할 테니까.
그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었다.
[나보다 강한 녀석이 마계에 있을지 궁금해서.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순조롭게 마계에 이를 수 있을지, 아니면 막대한 마기 속에 휩쓸려 사라질지 모르겠지만.
그는 마물이니까. 그곳이 자신에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엘라가는 느긋하게 마음먹었다.
“예비된 일이었어. 그를 보내 줘. 우리는 이 일을 매듭지어야 해.”
저편으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의 목소리이되, 다른 사람의 것처럼 여러 갈래의 울림이 섞여 들렸다.
헬무트는 그쪽을 쳐다보았다.
대지를 딛고 선 시안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발치로부터 뻗어 나온 막강한 힘은 여전히 마계의 입구로 흘러들어 그곳의 대지를 감싸고 있다.
그건 시안이되 시안이 아닌 존재.
“대지의 정령.”
헬무트가 읊조렸다.
몰이해가 몰아쳤다. 어째서 세상을 구하고도 상실을 겪어야만 하는가.
자신은 신전이 아니었고, 그저 가진 것조차 잃어야 했던 평범한 인간일진대. 어째서 자신만이.
어째서 엘라가까지.
이게 예비된 일이라면, 어째서 자신에겐 이런 순간들이 예비되어 있는가.
한 번, 두 번, 세 번……. 그래, 이번이 세 번째였다. 어째서 그에겐 그토록 가혹한 운명만이 주어지는가.
수많은 인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따뜻하고 포근한 잠자리에서 안온함만을 누리고 있건만.
힘을 가진 자에게 의무가 따른다지만, 그 힘의 대가가 이토록 큰 것이던가.
앗아 가고 난 뒤, 다시금 그 빈자리에 찾아드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런 교환조차도 가혹하지 않을 수 없다.
헬무트는 한 번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무엇도 잃고 견디고 싶어 본 적이 없다.
자신을 길러 준 엘라가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
그래, 이 세상과도.
아레아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헬무트.”
그 손길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헬무트는 지독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는 마왕도 벨 수 있을 만큼 강해졌지만, 여전히 잃어야만 했다.
엘라가는 여전히 미소 지은 채 그를 향해 말했다.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네가 기적을 이루었으니, 나 또한 이룰 차례지.]그 기적의 끝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엘라가의 의지는 굳건했다.
헬무트는 자신이 그를 막아설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마왕에게 비스를 거의 소진해 버린 터. 이제는 그의 순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