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mut: The forsaken RAW novel - Chapter 82
81
헬무트
81화
본인의 외모가 콤플렉스인 아스카가 눈을 부라렸다.
“뒈지고 싶냐? 툭 치면 부러지게 생겨선.”
“툭 치면 부러지게, 뼈가 약해지는 저주를 너한테 걸어줄까? 원한다면 언제든지.”
두 명의 시선이 사납게 부딪혔다.
우아하고 냉소적인 아레아와 거칠고 입이 더러운 아스카는 누가 보기에도 서로 안 맞는 상대였다.
시안이 한숨을 내쉬며 헬무트를 쳐다봤다.
“헬무트, 어떻게 좀 해 봐.”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고.’
헬무트는 눈빛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같은 검술 학부면 학우를 도와줘야지. 기껏 구해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거잖아.”
사실 물에 빠진 놈 건져줬으면 그만이다. 보따리까지 건져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시안은 되는대로 내뱉은 소리였지만, 헬무트에겐 묘하게 설득력 있게 들렸다.
기절한 헬무트를 주운 페이스 용병단 사람들도, 그가 나을 때까지 책임지려고 했었다.
헬무트가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투를 치르는 것보다, 어쨌든 친구 비슷한 게 된 녀석들을 상대하는 게 어째 더 피곤한지 모르겠다.
“아레아, 저 녀석을 좀 치료해 줘.”
‘내가 왜?’ 따위로 반응할 줄 알았던 아레아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내가 저 녀석을 치료하면 넌 나한테 뭘 줄 건데.”
“……네가 바라는 걸 들어주지.”
헬무트는 고민 끝에 말했다. 아레아는 상도덕을 아니까, 적정 수위에서 요구할 것이다. 아레아가 승낙했다.
“좋아.”
잠시 뒤, 치료가 끝나고 아스카가 말끔해진 제 몸을 들여다봤다.
“뭐야, 굉장한데?”
찢긴 옷은 어쩔 수 없지만, 몸의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충 치유할 수도 있었지만, 아레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시안도 감탄했다.
“치유 마법도 잘하는구나. 이거 좀 고난도 마법이잖아.”
“내가 못하는 마법은 없어.”
아레아는 냉랭하게 말했다. 거들먹거린다기보다는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상처가 가벼운 얼굴만은 치료해 놓지 않아서 터진 입술로 뭔가 말하려던 아스카가 오물대다가 내뱉었다.
“난 이만 가 본다.”
그리고 헬무트 쪽을 슬쩍 보더니 문을 열고 쌩하니 가버렸다. 고맙단 인사 따위는 없었다.
아레아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그가 나간 자리를 쳐다봤다.
“저런 녀석을 꼭 치료해 줘야 했나?”
“미친개가 순순히 치료받은 게 어디야? 마음 넓으신 마법 학부 수석께서 양해해 주시지요. 그럼 나도 가 본다.”
“빨리 가 버려.”
시안마저 사라지고 나니, 둘만 남았다.
아레아가 팔짱을 끼고 헬무트를 쳐다봤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그날 수련은 물 건너간 듯했다.
***
잡혀 온 블랙 호크 녀석들을 심문하여 의뢰인을 알아낸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과정만이 남아 있었지만, 정작 사태는 생각한 대로 순탄하게 풀리지 않았다.
휴일이 끝나고 헬무트와 시안, 아스카 귀에 들어온 건 잡아넣은 습격자들이 모조리 탈출했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말이 돼!”
아침부터 호출을 받아 모이게 된 세 명 중 아스카가 버럭 성을 냈다.
아레아 덕에 상처가 모두 나은 그는 아주 팔팔해 보였다. 확실히 정신적인 충격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타입이었다.
“바덴의 감옥 벽은 종잇장으로 만들어졌나? 병사들은 허수아비야? 어떻게 그렇게 많은 녀석이 그렇게 쉽게 탈출할 수가 있지!”
뒷골목에서 칼침을 맞은 아스카의 분노는 정당했다. 그들을 불러모은 아카데미 직원이 난색을 표했다.
“조사하고 있지만, 아마 병사 중에서 뇌물을 받은 녀석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 병사도 그날부로 내뺐다고 하니까요.”
“그러게 잡아다가 직접 고문했으면 됐잖아.”
헬무트가 뒤늦게 불만을 표출했다. 행정 직원이 움찔거렸다.
“그거 퇴학감이라니까.”
시안이 행정 직원 눈치를 보면서 헬무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나 그도 기분은 좋지 않았다. 수면 위에서 일을 공식적으로 처리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습격자들이 도망가 버렸다면, 의뢰인에 대해서 자백을 받아낼 수 없다.
그냥 눈 딱 감고 헬무트에게 맡겨 버리는 쪽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시체는 내가 정령으로 묻어 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시안은 행정 직원을 향해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요? 뭔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레타 아카데미의 학생이 바덴에서 습격당했다. 그게 평민이더라도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사태였다.
분노에 찬 아스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진실의 눈인지 뭔지 앞에다가 그 귀족 녀석들 데려다 놓고 실토하게 하면 되잖아! 어떤 놈이 그랬는지 확실히 알아낼 수 있겠지!”
행정 직원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은 학생이 말한 혐의자들을 불러다 놓고 조사할 예정입니다만, 진실의 눈은 사용되지 않을 겁니다.”
“왜!”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멱살을 잡을 태세였다.
시안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이, 진정해. 그 진실의 눈이란 거 그렇게 혐의만 가지고 쓸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게 아니라고.”
“국가적으로나, 아카데미 기준으로 명백히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학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쓸 수 있으니 이런 경우는 사용을 허락받지 못할 겁니다.”
“뭐? 하지만 이 녀석은.”
아스카가 헬무트를 지목했다. 그가 진실의 눈을 들먹이며 귀족 녀석들이 알아서 실토하게 만들지 않았나.
헬무트는 간단히 답변했다.
“페트리샤 교관님이 발을 맞춰 주신 것뿐이야.”
대다수의 검술 학부 학생들에게 아카데미에 관한 지식은 불필요한 것. 그런 세세한 내용까지 잘 아는 녀석은 지극히 드물었다.
마법 학부 차석쯤 되는 시안이나 알 법한 내용이다.
“빌어먹을!”
아스카가 신경질을 내면서 벽을 걷어찼다.
이제는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오전부터 검술 학부는 뒤숭숭했다. 아스카와 마찰을 빚은 녀석들은 각기 불려가서 독방에서 조사받았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한 검술 학부 2학년 학생들은 서로 대화를 나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 녀석들은 어디로 불려간 거지?”
“휴일에 누가 아스카를 습격했대. 그것 때문에 조사받나 봐.”
“그래?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아스카에게? 귀는 멀쩡하대?”
“직접 습격한 게 아니라 사람을 고용했다나 봐.”
“그래서 저 녀석들이 조사를 받고 있는 거로군. 저 녀석들, 아스카와 사이가 안 좋았지.”
“아무리 아스카 녀석이 싫어도 사람을 고용해서 습격하는 건 좀 심한데.”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일 아닌가. 대체 누가 그런 거지.”
“불려간 녀석들 중 한 명이 아닐까? 아니면 작년에 자퇴한 녀석일 수도 있고.”
“누가 그랬든 수치스러운 일이로군.”
“바덴에서 그레타 아카데미 검술 학부 학생이 습격당한 거야.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맞아, 어쨌든 저 녀석도 우리 학부 녀석이니까. 범인이 누구라도 대가를 치러야겠지.”
그레타 아카데미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구석이 있다지만, 검술 학부의 분위기가 아스카한테 엄청나게 적대적이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아스카는 실력 있는 검사였다. 평민에다가 성격까지 더러운 아스카를 다들 꺼리긴 했지만, 그 실력만은 다들 인정했다.
험한 언사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나름대로 그의 막사는 태도에 미묘한 호감을 가진 녀석들도 있었다.
귀족 도련님으로 반듯하게 자라난 녀석들이 특히 그랬다.
하지만 그들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다른 종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아스카와 섞일 수 없단 걸 인지하고 있었다.
평민과 섞이려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데면데면하게 대하는 것과 멸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레타 아카데미를 다니다 보면 대체로 전자에 가까워지고, 후자는 적어졌다.
물론 신분에 따른 멸시와 성격에 따른 멸시는 다른 문제다.
어쨌든 아스카가 밉상이긴 해도, 그가 습격당한 이상 분위기가 달라졌다.
평민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바트 일당의 행동에 마음속으로 동조하던 녀석들도 슬슬 이건 아니다 싶게 되는 것이다.
마침 헬무트와 아스카가 검술 학부가 모여 있는 교정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조사를 받느라 수업은 반 휴강 상태로, 교관들도 자리를 비웠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저 녀석들, 같이 다니잖아. 의외네.”
평민이란 단어로 묶인다지만, 헬무트와 아스카는 외모만큼이나 성격이 참 달랐다.
헬무트도 성격은 만만찮은 듯했지만 차분하고 성실한 데 반해 아스카는 그야말로 물어뜯을 거리를 찾아다니는 미친개였다.
이성과 감정이란 말처럼, 냉정한 헬무트와 감정적인 아스카는 서로 어우러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그 둘이 같이 있자, 생각만큼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헬무트, 저 녀석이 쫓기는 아스카를 도와줬다는데?”
“그래?”
몇몇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혔다. 아까부터 기분이 안 좋은 티를 팍팍 내고 있던 아스카는 괜히 눈을 부라렸다.
“뭘 봐?”
재빨리 시선이 돌아갔다. 헬무트는 아스카를 빤히 쳐다봤다.
하루도 시비를 안 걸고 넘어가는 날이 없다. 이 녀석은 길 가다가 칼 맞아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다.
“왜?”
의기양양하게 이쪽을 쳐다보는 아스카를 향해 헬무트도 질문을 돌려주고 싶었다.
‘왜?’
왠지 모르게 아스카는 왠지 헬무트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었다. 길들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따르는 건 의외다.
단순히 헬무트가 그를 구해서인지, 아니면 헬무트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걸 알아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비 거는 건 네 자유인데, 난 끼어들 생각 없으니 그렇게 알아.”
괜히 아스카가 누군가와 싸움 붙는데 자신까지 동참할 생각은 없다.
그를 구해 주고 치유해 준 것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했다.
후견인까지 달고 있는 몸으로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는 없다. 아스카와 엮여서 소동에 말려드는 건 그에겐 독이었다.
“재미없게 말하네. 뭐, 모범생을 목표로 하는 건가?”
헬무트는 선뜻 긍정했다.
“우등생을 목표로 하고 있지.”
이왕이면 검술 학부 수석도 되고 싶었다. 최고란 건 언제나 좋은 단어니까.
그건 성적에 목숨을 거는 아레아를 룸메이트로 둔 영향이기도 했다.
차석인 시안도 무시하는 아레아는 수석인 자신을 제외한 그 아래 모든 녀석을 눈 아래로 깔아 봤다.
어떤 의미로는 제일 차별이 심한 성격이었다.
“뭐야? 그건.”
“네 문제는 앞으로 네가 알아서 처리해.”
“몰인정한 소리 하네. 같은 평민끼리.”
“같은 평민이라고 친한척하지 말라면서.”
자신이 한 말을 돌려받은, 아스카는 당황하다가 코웃음 쳤다.
“너, 생각보다 소심한 새끼였구나. 그걸 기억하고 있게.”
“말버릇 고쳐.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헬무트의 검은 눈이 경고하듯 번뜩였다.
이건 평민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아스카는 용병인 핀보다도 입버릇이 지저분했다.
생긴 건 꼭 모든 말이 ‘요’로 끝날 것 같은데 말이다.
기어오르는 건 허용할 수 있었으나, 이런 건 허용 범위 밖이었다.
아스카가 투덜거렸다.
“아, 알았어. 진짜 자기가 무슨 교관도 아니고.”
그런 아스카는 교관도 난색을 표할 만큼 막 나가는 녀석이었다. 실력이라도 받쳐줘서 다행이다.
“뭐 그렇게 도도하게 굴어. 어차피 너도 친구 없으면서. 나라도 같이 있으면 좋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건, 친구 하자는 뜻인가. 그의 말을 파악해 본 헬무트는 조건을 걸었다.
“그건 너 하는 거 봐서.”
아레아는 과외를 해 줬고, 시안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녀석은 무쓸모에 자신보다 약했다. 지금으로써는 짐 덩이일 뿐이다.
아레아를 보건대 아카데미 생활에서 꼭 친구가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스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의외로 순순히 굽혀왔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헬무트는 그 말을 끝으로 목검을 쥐고, 한쪽 자리에 섰다.
이 녀석 일로 어제 수련을 게을리했다. 오늘, 어제의 몫까지 채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