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0
제120화. 직접 와서 말해
경고.
특정 행위에 관해 조심하거나 삼가도록 미리 주의를 주는 행위를 말한다.
루비아는 말했다.
짚 인형의 주인은 내게 경고를 전하기 위해 온건파 지부를 습격한 거라고.
아마 마족이 되고서 처음으로 받는 경고가 아닐까 싶은데,
당연하지만 썩 반갑진 않다.
일단 루비아와는 이 일과 관련된 정보를 얻으면 공유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후 상황 전달을 위해 수호와 함께 다시 온건파 지부로 돌아왔다.
“이럴 수가! 그럼 저희를 습격한 주체가 몽마족이었단 말입니까!”
정황을 들은 브릴리스 주먹을 쥔 손을 바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
“몽마족의 짓이긴 해도, 룩스리아 가문이랑은 관련 없어. 그냥 날 고깝게 보는 마족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인가 봐.”
“대체 누가 벨져 님을……!”
페로나라는 루비아의 동생에 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평정심을 지키며 상황을 보던 히블즈가 입을 열었다.
“벨져 후보 그대는 짐작 가는 게 있나?”
“무엇이 말입니까?”
“그 정체 모를 습격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경고를 하진 않았을 테고, 분명 그대가 어떤 행위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이지 않겠나? 거기에 관해서 짐작 가는 게 있었는지를 물은 걸세.”
“행위. 행위라……. 뭐 굳이 따져보면 이거라고 봐야겠죠.”
나는 손가락으로 탁상 위에 어지러이 널브러진 종이를 가리켰다.
전부 영지 운용과 관련된 온건파의 자료들이었다.
브릴리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영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마왕 후보라는 점을 제외하고, 최근에 행보가 바뀐 게 있다면 이거밖에 없겠지.”
“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대체 벨져 님의 영지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러게 말이다.
모두가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영지를 만들겠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걸까?
하다못해 불만 있으면 나한테 직접 와서 하면 될 걸, 이렇게 번거로운 짓까지 하고 있으니,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벨져!”
벌써 소식이 전해진 건지, 이사벨이 모두를 데리고 찾아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내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급기야 탁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 이게 설명하자면 좀 깁니다. 그래도 일단은 크게 다친 마족은 없으니, 안심…….”
“누가 지금 그거 물었어요!?”
나는 잠시 벙찐 채로 이사벨의 날 선 눈초리를 마주했다.
뭐지? 온건파 지부가 왜 습격을 당했는지 물어본 거 아니었나?
“벨져 당신! 루비아의 집에 다녀왔다면서요!”
아…….
속에서 탄식과 함께,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몸의 경고가 전해졌지만,
아무래도 이미 늦은 것 같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그게 왜 안 중요해요! 하나도 빠짐없이 똑똑히 말해요! 그 여자 집에서 뭐 했어요!?”
“하긴 뭘 합니까? 그냥 말 몇 마디만 나누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를 한……!”
나는 재빨리 속에서 짚 인형을 꺼내 이사벨에게 보였다.
루비아와 눈을 몇 번 마주쳤는지까지 캐물을 것 같던 그녀의 눈빛이 일순간 바로 변했다.
“이거, 인형술에 쓰이는 인형 맞죠? 이걸 왜 당신이 갖고 있어요?”
“온건파 지부를 습격한 범인과 관련 있는 물건입니다.”
이사벨은 그제야 내 말을 들을 생각이 들었는지, 진중한 눈빛을 보였다.
이후 모든 전말을 듣고선 턱을 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진 몰라도, 정말 간도 크네요. 감히 마왕 후보의 영역을 건드린 것도 모자라, 같잖게 경고까지 남겼다니. 이런 볼품없는 물건으로…….”
이사벨은 기도 안 찬다는 듯 연신 헛웃음을 뱉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네요. 당장 인원 풀어서 습격의 주동자를 찾도록 하죠. 이참에 벨져의 영역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봐요.”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이 상황을 어쭙잖게 넘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 있다.
“브릴리스.”
“예?”
“혹시 오늘 지부에 있던 온건파 단원들 명단 좀 알려줄 수 있어?”
“명단 말입니까? 예…. 금방 갖다 드리겠습니다!”
브릴리스는 바로 다른 방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왔다.
단원들의 이력이 세세하게 적힌 명부였다.
받자마자 즉각 검토를 시작했다.
지부에 있었던 단원들의 수는 약 30명.
평소엔 더 많은 인원이 상주했지만, 최근 영지 개척과 관련된 작업에 많이 빠진 터라 이 정도만 있던 것이라고 브릴리스는 덧붙여 설명했다.
“갑자기 단원들 명단은 왜요?”
“확인할 게 좀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사벨에게 대답하다 말고 다시 브릴리스를 보며 물었다.
“오늘 있었던 습격. 정확히 어떻게 일어났던 거라고 했지?”
“그게, 처음은 지부 옥상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다른 곳에서도 하나둘 불이 발생했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단원들이 달려갔지만, 웬 가면을 쓴 괴한들이 단원들의 앞을 막았다고 합니다.”
전투 능력이 부족한 힘없는 마인족들 대부분이었기에, 일단 생존을 위해 지부에서 뛰쳐나왔다며, 현장에 있던 단원들이 설명을 덧붙였다.
설명을 들은 나는 다시 물었다.
“온건파 단원이 아닌 마족도 지부에 드나들 수 있어?”
“애초에 온건파 단원이 아니라면, 이곳이 온건파 지부인지도 모르는 마족이 태반이지. 그런 경우는 극히 적네.”
대답은 히블즈가 대신했다.
다시금 명부를 살펴보는 내 옆으로 세나가 다가왔다.
“벨져는 여기 단원들 중에 지부를 습격한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거든.”
그러자 히블즈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만, 그건 아닐 걸세. 애초에 우리 단원들 중엔 몽마족은 있지도 않아.”
“습격의 주동자는 아니더라도, 협력자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대답에 히블즈는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다음 온건파 전체 회의가 언제야 브릴리스?”
“당장 잡혀있는 일정은 없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소집 좀 해줘. 한 3일 후에 열리는 걸로. 그 회의에 나도 참가할 거라고 꼭 알려주고.”
“베, 벨져 님께서요?”
나는 문제 될 거 있냐는 듯, 브릴리스를 보며 어깨를 들썩였다.
슬며시 명부를 내려놓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죄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단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 *
3일.
마계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단원들이 모이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허나 현재 회의장엔 빈 좌석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단원들이 모여 있었다.
“기별도 없이 갑자기 전체 회의라니, 대체 무슨 일이지?”
“지부 습격 때문에 그러시나? 우릴 안심시켜 주려고?”
“아니, 근데. 정말 벨져 후보님이 오시긴 하는 거야?”
단원들은 각기 말을 주고받으며, 회의의 주최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회의실 정문이 열리면서 온건파의 수장인 브릴리스가 들어왔다.
그 뒤를 벨져가 뒤따랐다.
“베, 벨져 후보님?”
“진짜네? 정말 나오셨어!”
“애초에 참가하신다고 미리 공지도 나왔잖아! 이제 와서 놀라기는…….”
단상 위에 오른 벨져는 말없이 단원들의 동태를 쭈욱 살폈다.
이윽고 웅성거림이 줄고, 침묵이 일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다들 최근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거 알 겁니다. 온건파의 뜻을 따르겠다고 약속한 나에게도 이번 일은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자문을 좀 구하고자, 브릴리스 수장에게 이 자리를 부탁했습니다. 다들 거짓 없이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단원들은 전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제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단원이 있다면, 손을 들어 주시죠.”
최근 행보.
베누스와의 대립, 리고 섬에서 진행한 보물찾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온건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라고 한다면 단연 영지 운용이었다.
힘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공정하게 살 수 있는 영지를 만드는 것.
이는 평화를 추구하는 온건파의 이념에 딱 들어맞는 일이었다.
손을 드는 단원이 하나도 없자, 벨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전부 마음에 드는 모양이네요. 그럼 이번엔 다른 걸 묻죠.”
단원들은 다시 벨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아직 못 미더운 단원이 있으시다면……. 손을 들어주시죠.”
벨져는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하게 말했지만, 이를 들은 단원들의 표정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손 든다고 해서 안 잡아먹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표현해주시죠.”
눈치를 보던 단원들 사이에서 하나둘 손이 올려졌다.
스무 명이 조금 안 되는 수였다.
이에 벨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해합니다. 굳이 손 드신 분들이 아니더라도, 저에 대한 의심을 품고 계신 분도 있겠죠. 하지만 제 마음은 몇 달 전과 비교해서 달라진 게 없습니다. 나 여전히 마왕이 될 거고, 그 과정을 여기 온건파와 함께할 겁니다.”
벨져의 연설이 계속될수록 단원들의 표정은 점차 밝아져 갔다.
어느 마왕 후보가 저리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믿음을 주려 하겠는가?
일부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니, 앞으로 제게 불만이 있거나, 뭔가를 건의하고 싶다면…….”
벨져가 잠시 뜸을 들인 사이, 장내엔 적막이 감돌았다.
“직접 와서 제대로 말하세요. 어쭙잖은 짓거리 하지 말고…….”
뒷말을 이은 벨져의 눈에 순간적으로 냉기가 감돌았다.
이전까지의 말이 단원들을 위한 덕담이었다면,
이번엔 특정 누군가에게 전하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말을 마친 벨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세를 누그러트렸다.
“아 참고로 브릴리스와 상의해서 조만간 영지 하나 더 만들 생각입니다.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으니, 다들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벨져는 단상에서 내려왔으며, 연이어 브릴리스가 올라왔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회의라기보단 일방적인 통보령에 가까웠던 시간.
허나 단원들은 크게 반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래? 우리 온건파가 이렇게 빛을 볼 날이 올 줄이야!”
“바빠지는 거 좋지! 바랬던 일이라고!”
“다음 영지는 어디로 정하시려나!”
단원들은 한동안 회의실을 떠나지 않은 채, 서로 말들을 주고받았다.
모두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웃고 있었지만,
회의장 구석에 있던 단 한 명의 마족만이 차가운 눈빛을 유지했다.
“여전하군…….”
마족은 그대로 회의실을 나갔다.
* * *
한밤중, 벨져의 저택 내 브릴리스의 집무실.
책상 위엔 아직 처리되지 않은 그녀의 업무 자료들이 가득했다.
어둠이 깔린 방 안으로 이윽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방의 주인은 아니었다.
큰 키와 우람한 체격의 남마족.
그는 자연스럽게 브릴리스의 책상 위로 다가가더니, 자료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짧은 탐색 끝에 그가 찾아낸 자료는,
[영지 개발 후보지]다음으로 영지를 개발할 후보 예정지들이 정리된 문서였다.
마족은 어둠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글씨를 날 선 눈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살펴봤다.
그러다 갑자기,
-휙!
마족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낀 것이다.
“분명 건의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제 방으로 와달라고 했을 텐데요……?”
창문에 스며든 달빛을 받으며 저택의 주인 벨져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면, 딸처럼 여겼다던 수장을 다시 한번 납치할 생각이라도 하신 겁니까?”
“……내가 올 거란 걸 알고 있었나?”
“누군가가 올 거란 걸 예상하긴 했죠. 하지만 당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마족은 살짝 체념한 듯한 눈으로 벨져를 응시했다.
정갈한 흰 수염이 돋보이는 익숙한 얼굴의 마족.
브릴리스의 방에 찾아온 밤손님은 바로,
“온건파의 수호자님…….”
히블즈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