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3
제123화. 도리로서
같은 시각, 룩스리아 가의 정원.
꽃을 침대 삼아 낮잠을 취하고 있던 루비아가 눈을 떴다.
“하아…….”
단잠에서 깨어난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마치 악몽이라도 꾼 듯, 전시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켄. 나 물 한 잔만 줘.”
열을 식히기 위해 동생에게 마실 것을 부탁했지만,
“미켄?”
미켄은 응답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정원 정자에 앉아 와인을 음미하고 있었을 그였지만, 어째서인지 정원 전체를 둘러봐도 미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정원 저편에서 다른 몽마족들이 날아왔다.
“깨어나셨습니까 루비아 님?”
몽마족들의 얼굴엔 약간의 초조함이 서려 있었다.
이를 캐치한 루비아는 바로 캐물었다.
“미켄은 어딨어?”
“잠시 외출하시겠다시면서 나가셨습니다.”
“외출을 했다고? 나한테 말도 없이?”
“그, 루비아 님께서 깨어나시기 전에 돌아오신다곤 하셨는데…….”
애매한 대답에 루비아의 얼굴이 차갑게 돌변했다.
“종종 있었니? 나 자는 동안 미켄이 자리를 비웠던 적이?”
“어, 없었습니다! 이번이 처음…….”
“진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살벌한 되물음.
장사 부럽지 않은 체격을 가진 몽마족들은 일제히 숨이 턱하고 막혔다.
“가끔! 정말 가끔 있었습니다! 대체로 루비아 님께서 깨시기 전에 돌아오셔서 저희도 큰 문제는 없다고 봤었는데…….”
몽마족들로선 달리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오겠다고 해놓고선 오지 않은 퍼밀리어.
그런 퍼밀리어의 외출 소식조차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주인.
루비아의 심경은 단연 좋을 리 없었다.
허나 루비아의 얼굴엔 곧 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우리 귀엽다 못해 깨물어 죽이고 싶은 남동생이 그동안 나 몰래 일탈 행동을 하고 다녔구나~?”
그 미소를 마주한 몽마족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럼 누나 된 도리로서 찾으러 가는 게 맞겠지?”
이윽고 날개를 펼친 루비아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바람과 함께 붉은 꽃잎들이 아름답게 휘날렸다.
* * *
아크베리아의 검신을 막아선 열 개의 날 선 손톱.
즉각 손톱의 주인에게 눈을 돌렸다.
현혹 마법에 걸렸음을 상징하는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반겨주었다.
“오해할까 봐 말씀드리자면, 저희 아직 멀쩡합니다…….”
이에 미켄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그럼 뭐, 제정신인 상태에서 날 막으려 했단 거냐?”
“그것도 아닙니다. 전 벨져 후보님이 아닌, 어디까지나 제 동생을 막으려 했습니다. 한데, 제 마음과는 상관없이, 몸이 이쪽으로 움직여 버렸네요…….”
“두 분 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신 거 아닌가요?”
나와 미켄은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에게 보란 듯이 인형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페로나.
인형에서 보랏빛 마력의 오라가 일렁이고 있었다.
“너. 아무래도 네 동생의 꼭두각시가 된 모양이다?”
“그,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동생이라고 제가 너무 안일하게 본 모양이군요. 이 오빠가 얼마나 매력적이었으면 이런 불결한 방식을 쓰면서까지 소유하려 한 건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뱉을 수 있다는 놈의 정신에 살짝 감탄이 나왔다.
허나 웃을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걸 그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벨져 후보님?”
“일단 말해봐.”
“절 베어 주시겠습니까?”
나는 진심이냐는 의미로 미간을 찌푸렸다.
“저도 살아야 하니까 목은 좀 그렇고, 제가 움직일 수 없도록 팔다리 정도만 베어 주시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거밖에 없을 것 같군요…….”
미켄의 목소리엔 더 이상 장난기가 아닌, 온전한 진심만 느껴졌다.
“그게 최선이냐?”
“제 동생은 이미 말로 달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오빠 된 도리로서 따끔한 훈육을 해줘야겠지만, 지금 상태로 힘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냥 네 누님 올 때까지 적당히 버티는 건 어때?”
“누님이 오시기 전에 이 상황을 끝내야 합니다. 지금 모습을 누님이 보시기라도 한다면…….”
“한다면?”
“그냥 끝입니다.”
말을 마친 미켄의 입술에서 떨림이 일었다.
더불어 앞으로 벌어질지 모를 끔찍한 일에 대한 공포가 눈에서 확연히 엿보였다.
“역시 미켄 오빠라고 해야 할까요? 꽤 오랫동안 정신을 유지하고 계시네요? 역시 쉽게 넘어올 남자는 아니었네요?”
페로나는 그런 미켄을 보며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니랍니다. 기껏 제 인형이 되어주셨으면…….”
-꽈악!
“절 위해 최선을 다해 움직이세요!”
순간 나와 검을 맞대고 있던 미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쾅!
어느 틈에 움직인 건지,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일격이 들어왔다.
머리에 그치지 않고 팔, 다리, 등, 배 등 1초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다섯 번의 연격이 휘몰아쳤다.
분노의 종주 베누스와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나와 다시 한번 눈을 맞댄 미켄은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읊었다.
“몽환의 환영…….”
주문과 함께 미켄의 몸에서 또 다른 미켄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몽마족의 비기 중 하나인 분신 소환이다.
분신은 원을 그리면서 주변에 늘어섰고, 누가 본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교하게 꾸며낸 미소로 나를 위협했다.
“잘 찾으셔야 할 겁니다.”
수백 개의 달하는 보랏빛의 눈동자 속에서 아련히 울리는 그의 목소리.
“가짜가 아닌 진짜 절, 베어 주셔야 합니다…….”
그마저도 아직 정신이 완전히 뺏기진 않았는지, 목소리에서 힘겨움이 느껴졌다.
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페로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꺼림칙하게 웃는 미켄의 환영만이 잔뜩 보일 뿐이었다.
* * *
벨져와 미켄이 원치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이,
사태의 장본인인 페로나는 현장에서 벗어나 숲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다급함이라곤 일도 보이지 않는 굉장히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그런 그녀의 앞에 굴곡진 뿔이 돋아난 장신의 남성이 나타났다.
[당신이 페로나 룩스리아라는 마족인가요?]페로나는 살짝 당황한 듯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네. 그렇긴 한데, 당신은 누구죠? 용마족인가요?”
[수호라고 합니다.]“수호요? 혹시 벨져 후보의 일행인가요?”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설마 당신 같은 멋진 남자도 있을 줄은 몰랐네요? 뭐, 제가 도망치면 쫓으라는 지시라도 받으셨나요?”
[아니요. 벨져 님은 제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럼 왜 제 앞에 나타난 거죠?”
[당신에게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왔습니다.]말을 잇는 수호의 눈빛은 순수하면서도 굳건했다.
[전 당신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지른 일은 얼추 알 수 있죠. 이 숲에 걸려 있는 수많은 생명들의 비명이 제 귀에 맴돌고 있으니까요. 왜 이런 짓을 한 건가요?]페로나는 슬며시 눈을 내려 수호의 손을 보았다.
수호의 손엔 다량의 짚 인형이 들려 있었다.
“왜 이런 짓을 했냐고요? 그럼 반대로 물어볼게요. 왜 이런 짓을 하면 안 되죠? 우린 마족이에요. 강자가 약자를 유린하는 것이 법칙처럼 살아왔죠. 난 그 법칙을 따랐을 뿐이랍니다.”
질문 자체를 이해할 수 없던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수호라고 했죠? 한눈에 봐도 엄청난 힘을 가지신 분이란 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그 힘은 분명 태생부터 얻은 것이겠죠. 하지만 이 마계의 대다수 마족은 그러지 못해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가진 자 중에서도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로 나뉘죠.”
[당신은 많이 가진 자가 아닌가요?]“그랬으면, 이런 인형을 만들지도 않았겠죠.”
페로나는 피식 비웃으며 수호의 말을 부정했다.
“난 룩스리아 가의 막내로 태어났어요. 루비아 언니와 미켄 오빠는 일족의 뛰어난 힘과 재능을 물려받은 몽마족으로 성장했지만, 난 그러지 못했어요. 난 가졌지만, 둘보단 덜 가진 자에 속했거든요. 그래도 불만은 없었어요. 언니, 오빠는 내게 다정했으니까요.”
재능을 물려받은 형제들과 그렇지 못한 막내.
그래도 쾌활하고 다정한 성격을 가진 형제들 덕에 페로나는 따돌림 없이 잘 살아왔다.
“하지만 그 다정함이 문제였어요. 마족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힘으로 모두를 누르는 것에 있지만, 언니를 비롯한 우리 일족원은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었었으니까요. 마왕 후보가 된 이후로도, 모두에게 달콤한 꿈을 선사하고 싶다는 헛된 망상을 품었었죠. 아무리 언니의 꿈이라지만, 지지해주고 싶진 않았어요.”
[그럼 당신이 바라는 꿈은 무엇인가요?]“바라는 꿈? 그런 건 없어요. 마족이면, 마족답게. 모두를 힘으로 눌러야죠. 그래서 동생 된 도리로서 언니에게 깨달음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떻게?]“이렇게요!”
페로나는 대답과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주변 나무들로부터 마력의 빛이 일었다.
정확히는 나무에 걸려 있는 인형으로부터 일어난 빛이었다.
빛에 감싸진 인형은 점차 자라나면서 형태가 변하더니, 곧 날개와 꼬리가 돋아난 몽마족의 모습으로 변했다.
불과 10초 사이에 인형으로 만들어진 수십 명의 몽마족 군단이 만들어진 상황.
처음 접한 광경에 당황한 수호는 선 채로 입만 벌렸다.
“너무 놀랄 필요 없어요. 살아있는 생명이 아닐뿐더러, 죽은 시체를 마력으로 부활시킨 것도 아니니까. 그저 다른 마족들로부터 빼낸 정기를 인형에 주입해서 만든 복제품 같은 거예요.”
[이런 걸 왜?]“말했잖아요. 루비아 언니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인형들은 보라색 눈빛을 밝히며 서서히 수호에게 다가갔다.
“이 인형들은 오로지 나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내 말만 따르죠. 어떤 반항도 하지 않으며, 나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요. 힘을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취해야 하는 가장 이성적인 모습이죠. 전 언니가 마왕이 되면, 그 밑에 있는 모든 마족들이 이런 인형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가능해요! 매일 매일 마족들에게 악몽을 선사하면 되는 거죠!”
쾌락을 충족해줄 수 있는 행복한 길몽이 아닌,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끔찍한 악몽.
페로나는 마계의 마족들에게 매일 같이 이런 악몽을 주입해 모두가 감정이 없는 인형이 되길 원했다.
“하지만 언니는 이런 내 생각을 받아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나를 위험한 존재로 치부하고, 종주가 되자마자 날 룩스리아 가에서 쫓아냈죠. 예상했던 일이라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접진 않았어요. 언젠간 언니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지냈었는데…….”
가벼운 어조로 이야기를 풀던 페로나의 목소리는 점차 무겁게 가라앉았다.
“갑자기 벨져…… 라고 하는 이상한 마족이 나타났더라고요?”
벨져를 부를 땐 아예 이까지 갈며, 대놓고 증오심을 드러냈다.
“평화? 힘없는 마족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계? 진짜 웃기지도 않아요. 전대 마왕의 후손이라면서 그런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니. 나로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예요! 그래서 내 인형들을 그의 영역에 보낸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를 찾게끔 유도했죠!”
페로나는 지금까진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며 광소를 남발했다.
“자! 이제 한 명만 더 오면 되겠네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으니까……. 우리끼리 좀 놀아볼까요?”
페로나의 물음에 섬뜩함을 느낀 수호는 한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물러난 순간에 깨달았다.
몸이 이전과 다르게 매우 무거워졌다는 것을.
마치 팔과 다리가 보이지 않은 실에 묶인 듯한 느낌이었다.
“당신의 정기를 내게 주세요!”
페로나는 그런 수호를 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