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남의 집 싸움은 껴드는 게 아니다
서로의 정신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몽을 펼치는 두 자매.
그 악몽의 위험성을 몸소 경험한 나로선 실로 위험한 상황이란 걸 매우 잘 안다.
하지만,
“하여간! 음침한 인형 놀이 좀 그만하고 나가서 마족들 좀 만나라니까! 넌 언니를 위한다면서 언니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지!”
“인형 가지고 노는 게 뭐 어때서요? 내가 나 좋으려고 이런 줄 알아요? 다 언니 위해서 한 일이라니까요!”
방금 말한 그 위험한 상황은 현재 내 눈앞에서 펼쳐지지 않고 있다.
여기서 잠시, 싸움과 관련해서 아주 유명한 옛말을 읊어보고자 한다.
남의 집 싸움은 껴드는 게 아니다.
싸움은 되도록 말리는 게 상책이겠지.
허나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집 싸움을 말리겠답시고 괜히 껴들었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절대 얼씬조차 하지 말아야 할 싸움이 뭐냐고 한다면,
그건 언니 대 여동생, 즉 자매간의 싸움이다.
수호에게서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딱 저 말이 떠올랐다.
여동생의 머리채를 휘어잡고선 폭언을 쏟는 언니,
그런 언니에게 굴하지 않고 따박따박 대드는 여동생.
둘은 금방이라도 서로를 잡아먹을 암사자마냥 으르렁댔다.
내 감히 단언하건대 저 둘을 말리겠답시고 어쭙잖게 끼어들었다간, 바로 먹혀버릴 것이다.
나는 수호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서. 저 두 자매가 머리채 붙잡고 으르렁거린 지 얼마나 됐다고?”
[한 5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로선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난해해서…….]대처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던 거겠지.
이해한다.
어머니인 파트로나로부터 물려받은 기억에도 이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한테 해결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라고 뭐 아는 게 있겠어?
그냥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치고받다가 화해하길 기다려야 한다.
-콱!
자기만 계속 머리채가 붙잡힌 것에 약이 올랐던 걸까?
페로나의 반격이 시작됐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놔?”
“못 놔요! 언니가 돼서 다 큰 동생 머리카락이나 붙잡고 창피하지 않으세요? 미켄 오빠의 반이라도 닮아 보세요!”
“이게! 지 오빠도 꼭두각시로 써놓고 누구한테 설교질이야!”
허락도 없이 자기 옷 입고 나간 걸로 싸우는 흔한 자매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상황.
이 둘이 불과 몇 분 전까진, 악몽의 세계를 펼치며 서로를 제압하기 위한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면 믿겠는가?
뭐 그 난전은 사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봐야겠지.
머리채 싸움이란 방식으로.
암만 봐도 단시간에 끝날 것 같진 않다.
그럼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건 뭘까?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말리기?
아까 말하지 않았는가? 남의 집 싸움은 껴드는 게 아니라고.
그럼 알아서 해결하게 놔두고 물러나기?
그러기엔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지 않은가?
적어도 저 페로나란 몽마족이 나와 내 주변에 얼씬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경고는 해야 한다.
일단은 좀 더 방관해보잔 마음에 우두커니 서서 팔짱을 꼈다.
“벨져 후보는 왜 가만히 있어! 계속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야?”
그런 날 보며 루비아는 나무라듯 소리쳤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우리 집안일이니, 상관하지 말아줘 라고 하는 게 정상 아닌가?
하기야 이 정상적이지 않은 종족과 가문한테서 뭘 바랄까?
덩달아 페로나의 시선도 내 쪽으로 향했다.
나를 지그시 보더니, 대뜸 코웃음을 쳤다.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언니도 정말 남자 보는 눈 다 죽었네요! 아무리 전대 마왕의 후손이라지만, 저런 남자한테 마음을 품어요?”
왜? 내가 뭐 어때서?
“언니를 무슨 벌레 보듯 보고 있잖아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족이라면 모두가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집 주변을 갸웃거리는 게 언니인데! 그런 언니한테 지금까지 눈길 한번 안 준다는 게 말이 돼요!?”
아 그래서 집 주변에 가드들이 그렇게 많았던 건가?
실제로 마계 소시민들 사이에선 루비아와 이사벨중 누가 더 미인이냐는 유치한 논쟁도 종종 벌어진다고 했다.
자기 주인이 마계 제일의 미녀라는데 어떤 하수인이(남자라면 더더욱) 안일한 마음으로 있겠는가?
혹여나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하려는 이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것이다.
물론 내 눈엔 그냥 경계 대상으로밖에 안 보인다.
“하! 네가 뭘 모르는 것 같은데, 지금 벨져 후보는 나랑 밀당 중이야!”
밀당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오죽 어이가 없었으면 입꼬리도 안 올라갔다.
“나라는 꽃에 쉽게 빠져들지 않을 정도로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제어할 줄 아는 남자라고! 너 이런 마족이 마계에 흔한 줄 아니?”
뭐, 흔하지 않지?
사실 난 완전한 마족도 아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단 생각에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맞다! 벨져 후보 미켄이랑 싸웠다며! 걔 어떻게 됐어!?”
“제 검에 어깨를 찔리고 정신 차렸습니다. 지금은 저쪽 어딘가에서 휴식 중이고요.”
“어휴! 몰래 나갔으면 일이라도 잘 해결하든가! 자기 동생한테 당해서 제어권도 잃고 아주 가관이네! 돌아가면 죽었어 아주!”
미켄은 말했었다.
현 상황을 루비아가 보게 된다면 그냥 끝이 날 거라고.
아무래도 본인이 끝날 것임을 돌려 말한 게 아닐까 싶다.
뭐가 됐든 이젠 상황을 해결해야 할 타임이 왔다.
나는 발걸음을 떼고 그녀들 앞으로 나섰다.
“집안싸움은 나중에 하시죠. 이제 제 일 좀 보겠습니다.”
내 접근에 두 여인은 서로 붙잡았던 머리채를 놨다.
페로나는 꿀릴 게 전혀 없다는 듯 당당한 눈빛으로 나를 마주했다.
나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묵묵히 보기만 했다.
보다 못한 페로나의 입이 먼저 열렸다.
“말을 할 거면 하세요. 왜 뚫어지게 보고만 있는 거죠?”
“말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지.”
페로나는 이해하지 못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인형들을 이용해서 온건파 지부를 습격하고. 히블즈의 정신을 조종해서 영지 설계에 관한 자료를 빼돌리도록 지시한 거, 전부 네가 주도한 일 아니야?”
“맞아요.”
“그럼 내가 온건파 회의에서 했던 말도 다 전해 들었을 거 아니야? 그러니 말해.”
주저앉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기 위해 무릎을 쪼그리고 앉았다.
“나한테서 뭐가 불만인지를…….”
내가 꼭두새벽부터 출발해 이 숲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이 페로나라는 마족이 가진 불만을 듣기 위해서다.
참교육하러 온 거 아니었냐고?
내가 뭐 주변에 작은 것만 건드려도 급발진해서 다 쓸어버리는 망나니인 줄 아나?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까불지 말라고 다른 후보들한테 설치고 다녔겠지.
참교육도 일단 전후 사정을 알고 나서 하는 거다.
반신반의한 듯 눈을 찡그리던 페로나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란다는 그 평화로운 마계……. 정말로 가능하다고 보나요?”
“쉽게 되진 않겠지.”
“평화로운 마계를 위한 전제 조건은 힘밖에 없어요. 당신의 선조가 어떻게 마계의 평화를 이룩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알지.
마계의 강한 놈들 죄다 때려잡아서 허튼짓 못 하게 한 거.
역사로 증명된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하려는 것도 그거랑 크게 다르진 않아.”
페로나는 신뢰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날 찾아왔던 그 히블즈란 마족의 머리를 들여다봤어요. 당신한테 한 번 깨졌음에도 지워지지 않은 불신이 짙게 남아있었어요.”
그 말은 즉, 나와 재결전을 치르기 전에 했던 말은 진심에서 비롯됐다는 뜻이겠지.
예상은 되었기에 그리 놀랍진 않았다.
“그 노인만이 아니에요. 온건파의 마족들도 당장은 당신이 베풀어주는 호의에 열광할 순 있겠죠. 허나 당신의 힘이 어느 순간 구심점을 잃고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태도는 돌변할 거예요.”
맞는 말이다.
어느 세상이든 평화에는 그것을 뒷받침해줄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다.
힘이 받쳐주지 않는 평화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살얼음에 불과하지.
내가 그걸 모르고 이 짓거리를 하고 있겠는가?
“그럼 무너지지 않게 잘 지켜야겠지.”
“그리 쉽게 말할 일이 아니에요!”
“나도 쉽게 되진 않을 거라고 방금 말한 것 같은데?”
페로나는 말이 막혔는지, 입술만 벙긋거렸다.
그러다 다시 눈초리를 세우며 말했다.
“내가 그 평화를 방해한다면요?”
나는 검을 잡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평화를 바란다고 해서, 일을 꼭 평화적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가끔은 극단적이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고수할 필요가 없지.
이 페로나란 여인이 나에게 그런 존재라고 판단이 선다면, 난 가차 없이 검을 뽑을 것이다.
급 어두워진 분위기 속에서 보다 못한 루비아가 나섰다.
“이런 상황에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내 동생 그리 나쁜 애는 아니야.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할게. 이 아이가 벨져 후보에게 얼씬거릴 일은 앞으로 없을 거야.”
“그걸 제가 뭘 보고 믿습니까?”
“이거면 증명이 될까?”
믿음의 증표로 그녀가 내게 들이민 물건은 다름 아닌,
마혈석이었다.
“벨져 후보가 원할 때까지 가지고 있어도 좋아. 내가 먼저 달라고 하진 않을게. 어느 정도 믿음이 생겼다 싶으면, 그때 돌려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
깜짝 놀란 페로나가 발끈하며 물었지만, 루비아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가족이잖아.”
루비아는 평소엔 볼 수 없던 초연한 미소를 지었다.
“가족의 실수를 덮어주고, 해결해주는 게 같은 가족으로서 해야 할 도리 아니겠어? 난 그 당연한 일을 해주려는 것뿐이야.”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
예상 못 한 대답이면서도, 마냥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녀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 루비아란 여자는,
무작정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던 건 아니었으니.
나만큼,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이상으로 마계의 평화를 원했던 여자였다.
그녀가 건넨 마혈석을 잠시 지그시 바라보다가도,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는 생각에 결국 받았다.
이 마혈석, 벌써 두 번이나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응~! 나중에 또 봐 벨져 후보!”
루비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요염한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배웅했다.
나는 그렇게 수호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걸까요 벨져 님?]걱정스러운 듯이 묻는 수호의 말에 나는 ‘으으음’ 소리로 화답했다.
“뭐 일단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으니까. 일단 지켜봐야겠지.”
[그 페로나란 분이 가진 힘……. 정말 그분의 것일까요?]“그게 무슨 말이야?”
수호는 본인도 뭐라 표현하기 모호했는지, ‘어……’ 하는 탄식을 내질렀다.
[거기 있는 인형들을 보면서 마력의 기운을 감지해봤는데, 뭔가 그분의 마력만 있는 것 같진 않았어요.]“그럼 다른 마족의 마력도 있었다는 거야?”
[그랬던 것 같아요!]수호의 말을 들은 순간, 내면에서 알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이 샘솟았다.
그 마음에 이끌린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다시 숲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벨져와 수호가 떠나고, 덩그러니 남겨진 두 자매.
덤덤한 루비아와 다르게 페로나는 좀처럼 흥분을 삭히지 못했다.
“다른 마왕 후보한테 마혈석을 넘겨주다니! 언니 제정신이에요?”
“그러니 처신 잘하렴 동생아. 네가 또 이상한 짓을 하면 그 남자가 이 언니의 힘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이미 끝났어요! 벨져 후보는 돌아가자마자 언니의 마혈석을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할 거야.”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페로나는 눈을 깜빡였다.
루비아는 그런 페로나의 머리를 곱게 쓰다듬어 주었다.
“마왕이 돼서 마계의 모든 마족들에게 행복한 꿈을 선사해준다……. 이런 언니의 낭만적인 꿈이 넌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니?”
“아니요. 절대 불가능해요!”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루비아는 싱긋 웃으며 페로나의 말에 동조했다.
“그럼 왜……?”
“이 언니는 안 되지만, 그 남자라면 가능할 거야.”
그 남자.
당연히 벨져를 의미했다.
“그러니, 설사 내 마혈석을 완전히 소유한다고 해도, 난 문제 없다고 봐~!”
“하, 하지만…….”
“설교는 여기까지. 상처에 쩔쩔매고 있을 네 오빠 때문에 이만 가봐야겠다. 그래도 나름 온 보람은 있었네.”
떠나려던 루비아는 몸을 돌리다 말고 다시 페로나를 보았다.
“자기만 재능 없다고 찡찡대던 막내가 이 언니와 악몽을 겨룰 정도로 성장하고 말이야!”
성장이란 말에 페로나는 잠시 시선을 회피했다.
그 표정은 부모에게 비밀을 숨긴 어린아이처럼 매우 불안해 보였다.
“그럼 또 보자. 동생아~!”
루비아는 그렇게 떠났다.
홀로 남겨진 페로나는 루비아가 떠난 방향만 아련하게 바라보았다.
이내 감정이 복받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거기 있는 거 아니까 나와요.”
그러면서 그녀의 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누군가를 불러냈다.
부름에 응한 마족은 곧장 모습을 드러냈다.
“용케 내 기운을 감지했군.”
그는 네로의 퍼밀리어, 이노투스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