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
제13화. 암시장
싸움은 가급적이면 피하는 게 좋다.
이건 어느 세계를 가든 통용되는 정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돈이나 다른 걸로 메꿀 수 있으면 메꾸는 것이 소중한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비책이다.
그런 와중에 사이클롭스의 안액을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
이걸 안 따르는 멍청이가 될 순 없지.
그래서 지금 오게 된 곳이 바로 이곳, 시장이다.
아 앞에 한 글자 빼먹었네.
왁자지껄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밝은 시장이 아닌,
대낮임에도 시꺼먼 그늘이 사방에 잔뜩 깔린 어두운 시장.
암시장이다.
“메이 너도 여기 이용해본 적 있어?”
“그, 그럴 리가요! 저 같은 마족이 이런 델 어떻게 이용해보겠어요?”
메이는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정했다.
“다만 이곳은 마계의 모든 물건이 모이는 곳이라 들어서, 이곳이라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씀드린 건데…….”
설마하니 내가 진짜로 올 줄은 몰랐겠지.
아무리 어릴 때부터 방랑 생활을 했다지만, 이런 칙칙한 분위기는 메이에게도 매우 낯선 듯 보였다.
“메이의 말대로, 이곳은 탐욕을 상징하는 ‘아와라티아’ 가문이 관리하는 암시장으로 마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품과 재화들이 거쳐 가는 곳입니다. 그러니, 사이클롭스의 안액을 파는 곳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비싸겠지?”
“물론 저렴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돈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금은 충분히 있으니까요.”
브릴리스는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를 우리에게만 슬쩍 보여주었다.
충분한 정도가 아닌데?
여기 물건을 전부 사들일 생각인가?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나를 위한 그 자금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예?!”
브릴리스의 안색이 삽시간에 돌처럼 굳어졌다.
어? 나 뭐 물으면 안 될 걸 물었나?
“저,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벨져 님을 위한 후원자분들이 있으십니다! 그분들에게서 나오는 깨끗한 돈이니, 출처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후원자? 이 길바닥 출신 망나니한테 후원하는 그런 천사 같은 마족도 있어?
그럴 리가 없지.
브릴리스의 말은 당연하게도 내겐 진심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뭔가 숨기는 게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 후원자들께선 아직 본인들의 정체를 밝히기 꺼리시다 보니, 설명은 이 정도로 밖엔…….”
“아니야 됐어. 우리 할 일이나 하자.”
이야기를 급 무마시킨 나는 암시장 입구를 향해 발을 옮겼다.
장소가 장소고, 내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우리 셋은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며 신분을 감췄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드처럼 보이는 우락부락한 체격의 마족이 앞을 딱 가로막았다.
“출입증 있으십니까?”
그딴 게 있을 리가 없다.
“없으시다면 출입이 불가합니다.”
“출입증이라뇨? 이 암시장엔 그런 거 없지 않습니까?”
브릴리스가 무슨 말이냐며 반박하고 나섰다.
“얼마 전 마왕 후보회담 이후, 탐욕의 종주이신 네로 님께서 긴급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앞으로 이 암시장은 아와라티아 가문의 승인을 받은 출입증이 있어야지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없으시다면 아와라티아 본가로 가셔서 출입증을 발급받으십시오.”
허허. 누가 보면 상류층이 이용하는 VIP 전용 매장인 줄 알겠네.
브릴리스는 부당하다며 계속 반발했지만, 가드의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일단은 어쩔 수 없이 잠시 입구에서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벨져 님! 출발 전에 제대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제 불찰이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지 뭐. 그 아와라티아 본가는 여기서 얼마나 걸려?”
“그, 그것이……,”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장소는 우리가 왔던 곳에서 한참 반대 방향에 자리해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이용하지 말라는 것 같은데?
짜증 나는데 그냥 이 길로 확 사이클롭스의 서식지로 가버려?
행선지를 어디로 잡아야 하나 심히 고민하던 와중,
“잠깐 실례하죠.”
대뜸 우리 앞으로 낯선 마족이 다가왔다.
“혹시 암시장에 들어가고 싶은데, 출입증이 없으셔서 못 들어가는 상황이신가요?”
그는 앞선 상황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 바로 우리의 처지를 꿰뚫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굳이 먼 길 돌아서 아와라티아의 본가로 가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필요하신 출입증이 바로 여기 있거든요!”
그는 손가방에서 꺼낸 세 장의 출입증을 우리 앞에서 보란 듯이 흔들었다.
“원래는 한 장당 금화 4개씩 받아야 하지만, 3장 묶어서 금화 딱 10개! 주머니가 그리 두둑하신 것 같지 않아 보여서, 내 특별히 싸게 드리는 겁니다!”
아와라티아 본가에서 발급받아야 한다는 출입증을 시장 입구에서 버젓이 파는 상인이라.
어이쿠. 이런 친절한 상인이 다 있을… 리가 없지.
두말할 것도 없는 암표상이다.
“그 출입증이 유효한지는 어떻게 압니까?”
“아이고, 아가씨 속고만 사셨나? 사기 같은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마셔요! 정 불안하면 한 장 빌려 드릴 테니, 가서 확인하셔 봐!”
확인까지 해보라며 당당히 말하자, 브릴리스는 멋쩍은 반응을 보였다.
“금화 10개는 너무 비쌉니다. 7개로 해주시죠.”
“아이 나 이미 손해 보고 파는 거라니까요! 알았어요! 그럼 8개! 내 더는 못 깎아 드립니다!”
암표상은 두 손을 흔들며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브릴리스는 8개도 못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미간이 계속 꿈틀거렸다.
“흥정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브릴리스.”
보다 못한 내가 앞으로 나섰다.
“8개면 된다고?”
나는 암표상의 바람대로 주머니에서 8개의 동전을 꺼내 지불했다.
“하하! 역시 남자라 시원시원하…… 손님 지금 장난해요?”
암표상은 목소리를 확 내리깔며 날 선 눈으로 물었다.
“왜? 맞잖아? 8개.”
“내가 금화 8개라 했지, 언제 동화 8개라 했어?!”
그렇다.
내가 지불한 것은 금화 8개가 아닌, 동화 8개.
참고로 착각한 거 아니다.
“장난하지 말고, 저기 들어가고 싶으면 얼른 금화 8개 내놔요!”
“장난은 내가 아니라 니들이 치고 있는 거고.”
“무, 무슨 말을?”
“너. 저기 있는 가드들이랑 한통속이잖아.”
뻔한 상술이다.
갑작스레 규정이 바뀌었다면서 입장을 거부시킨 뒤, 암표상을 들러붙게 해서 시작부터 돈을 뜯어내는 일.
이미 입구에서 문전박대당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킥! 풋내기 손님은 아니신가 보네?”
암표상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우리 서로 곤란할 일은 피합시다. 내 좀 더 양보해서 금화 5개에 드릴 테니까. 조용히 거래합시다. 어쨌든 저긴 들어가셔야 할 거 아니야?”
금화 5개면 처음 제시한 금액의 절반.
솔직히 저기서 반은 더 후려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의반 금액도 난 지불할 생각이 없다.
이런 망나니 마족을 위한 소중한 후원금이라는데, 허투루 쓸 순 없잖아?
“너희가 이렇게 출입증 팔고 다니는 거, 아와라티아 본가에선 알고 있냐?”
“헹! 뭐 본가로 가서 신고라도 하시려고? 당신 같은 마족이 고자질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눈 하나 깜짝…….”
얼굴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살며시 내렸다.
“엥?!”
여유 가득했던 암표상은 내 맨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황함에 요동치던 눈동자는 머지않아 내 허리춤에 꽂힌 검으로 향했다.
상인만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박식한 놈들도 없다.
이 암표상도 결국 상인이라면, 내 얼굴을 몰라보진 않겠지.
“그래도 나 정도면, 그쪽에서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을까 싶은데?”
“베, 벨져 후보?”
나는 씨익하고 지은 미소를 다시 마스크로 감춰냈다.
고개를 휙휙 돌리며 주위 눈치를 보던 암표상은 곧 울며 겨자 먹는 얼굴로 출입증 세 장을 내밀었다.
“충고 하나 드리죠. 저 안에 들어가시면 신분 드러낼 생각 마시고,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셔서 조용히 떠나십시오. 혼란을 원치 않으신다면…….”
“뭐 새겨는 듣지.”
나는 출입증을 잽싸게 낚아채고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가자.”
브릴리스와 메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뒤를 따랐다.
그렇게 정당하게 구매(?)한 출입증을 가드에게 제시하자, 가드는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바로 우리를 들여보냈다.
“벨져 님의 추측이 맞았던 모양입니다.”
“추측이라고 할 것도 없었어. 상황이 너무 뻔했거든.”
그나마 내가 신사적인(?) 마족이라 값은 지불해 준 거다.
마계의 모든 재화가 오가는 장소답게, 시장 안엔 여러 물건이 모여 있었다.
의식주를 위한 기본적인 식재료부터, 마법 아티팩트 제작을 위한 파우더와 용액들, 거기에 정체 모를 마수의 사체들까지.
허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가 찾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정처 없이 찾는 것보단, 묻는 게 나을 터.
나는 가까이에 있는 마수의 사체를 파는 상점으로 찾아갔다.
“뭘 찾으시오?”
“사이클롭스의 안액을 구하고 았습니다만…….”
“사이클롭스의 안액?”
점주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런 건 자기 가게에 없다고 했다.
다른 상점을 몇 군데 더 둘러봤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한 상인은 어느 정신 나간 마족이 사이클롭스의 사체 같은 걸 공급하겠냐며, 황당해하는 반응도 보였다.
쉽게 구할 재료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돌아다닐 생각은 하고 있었다만,
“부, 분명 모든 물건이 있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가게를 돌아다닐수록 메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신이 괜한 헛걸음을 자초한 건지도 모른단 생각에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의견에 동조한 브릴리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이렇게 된 거, 뭐라도 성과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우리 앞에 마수의 사체를 파는 또 다른 상점이 나타났다.
돌아볼 대로 다 돌아본 만큼, 아마 여기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띠링
어울리지 않는 맑은 종소리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전 상점과 다르게 이곳은 마수의 사체가 진열되어 있지 않았다.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 상점 간판을 다시 확인해보려는 순간,
“뭘 찾으러 오셨소?”
나이 지긋한 노파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며 필요한 걸 물었다.
“그…. 혹시 사이클롭스의 안액 있습니까?”
그런 거 안 판다며 바로 반응했던 다른 점주들과 다르게, 노파는 대답 없이 나를 잠시 빤히 바라봤다.
“이쪽으로 오시오.”
그러면서 대뜸 가게 안으로 우릴 인도했다.
우리는 얼떨결에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노파는 낡은 테이블이 있는 작은 방으로 우린 안내한 뒤, 혼자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어……. 저희 제대로 온 거 맞죠?”
눈치를 보던 메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 분명 밖엔 마수의 사체를 파는 가게라고 쓰여 있긴 했습니다만…….”
그 사체를 파는 가게치곤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당장 분위기만 봤을 땐 마수 사체가 아닌 어느 퇴역한 마법사가 마법 재료를 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가게였다.
이런저런 의문과 의심의 꽃이 피어갈 때쯤,
“사이클롭스의 안액이라 했지?”
노파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향수병처럼 생긴 작은 병을 우리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사이클롭스의 안액입니까?”
노파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하고 누리끼리한 것이 꼭 흙탕물을 보는 것 같았다.
내 아무리 사이클롭스를 상대하고, 잡은 경험은 있다지만 놈의 눈 속에 담긴 액체까지 본 적은 없다.
막말로 이 노파가 아무 액체나 갖다 주고, 사이클롭스의 안액이라고 해도 난 모른다는 건데…….
흠. 이걸 어떻게 봐야 하지?
“일단, 이거 얼맙니까?”
“동화 한 닢.”
응? 얼마라고?
“동화 한 닢이요?”
“그렇소.”
믿을 수 없는 마음에 재차 물었지만, 노파의 말은 변하지 않았다.
뭐야? 이거 진짜 사이클롭스 안액 맞아?
무슨 사이클롭스나 되는 상급 마수의 안액이 동화 한 닢밖에 안 돼?
나로선 사기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너무 의미 없는 가격에 파시는 거 아닙니까?”
“당신에게 의미 없는 물건이기에, 의미 없는 가격에 파는 것뿐이외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에 눈이 번뜩 뜨였다.
노파는 처음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얼굴로 담담히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 양으론 마검을 만들 수 없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