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책임져 줘
관조자.
행동력 없이 무관심하게 보거나 수수방관하는 자를 뜻하는 말이다.
즉 어떤 일에 직접 개입하진 않지만,
잊어버리지 않게 지켜는 본다는 거다.
페로나가 내 손바닥에 쓴 건 이 세 글자가 다였다.
그래도 의미는 제대로 전달됐다.
분명 이 마계에서 그 세 글자에 해당하는 존재를 경계하라는 의미겠지.
-똑똑
방문 너머로 들려온 노크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들어오시죠.”
이사벨, 세나 그리고 루비아가 방으로 들어왔다.
일단 가장 먼저 루비아에게 물었다.
“페로나는 잘 갔습니까?”
“응, 미켄이 우리 집으로 잘 데려갔을 거야. 고마워. 그 아이를 돌려보내 줘서.”
내 집보단 그래도 룩스리아 가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해, 우선은 돌려보냈다.
지금 이 안엔 각자의 퍼밀리어도, 도움을 주는 하수인도, 그 누구도 자리하고 있지 않다.
오로지 나를 포함한 마왕 후보, 그리고 마왕 후보였던 마족들만 자리하고 있다.
나는 책상 위에 있는 종이 하나에 세 글자를 적었다.
그렇게 적은 글자를 그녀들에게 보여줬다.
“이 단어에 관해서 다들 아는 게 있으십니까?”
눈을 치켜세운 이사벨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단어의 뜻은 알죠. 자주 듣는 말이 아니라서 그렇지.”
자주 안 듣는 걸 넘어, 사실 일상생활에선 거의 안 쓴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도 책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어.”
“이, 이런 단어가 있어? 난 처음 듣는데?”
세 여인은 ‘그래서 이게 어쨌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페로나가 제게 알려준 유일한 단서입니다.”
그 말을 듣고선, 순식간에 눈빛이 바뀌었다.
짧은 시간 생각을 끝마친 뒤,
루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벨져 후보가 없는 동안, 페로나가 얘기해준 게 있어. 자기의 힘은 다른 마족에게 마력을 받으면서 완성된 힘이라고. 그 마족은 있는 듯, 없는 듯 마왕 후보의 주변을 배회하고 관찰하는 존재라고 했어.”
“정확히 누구인지는 말 안 했습니까?”
“말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심장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어. 그리고 그 타이밍엔…….”
“위즈 메디아가 왔었죠.”
뒷말은 이사벨이 대신했다.
이어서 잠자코 고민하던 세나가 입을 열었다.
“이 종이에 적힌 단어. 경합 중재위원회랑 관련이 있는 거야?”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아니 100퍼센트 관련이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지.
전말을 얘기하려는 순간 고통을 호소한 페로나,
그리고 그 타이밍에 나타난 경합 중재위원회장.
이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것임은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알 것이다.
“혹시, 이 집에 페로나가 있다는 걸 밖에 알리신 분이 있습니까?”
세 여인은 입을 다문 채, 목을 움직이지 않았다.
없다는 의미였다.
사실상 알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위즈 메디아란 자는 대체 무슨 수로 페로나가 우리 집에 있다는 걸 알았던 걸까?
고민하는 와중에 바닥이 탁하고 울렸다.
루비아가 자신의 꼬리로 바닥을 내려친 것이다.
“나 더 이상 못 기다리겠어!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지만, 내 동생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 경합 중재위원회와 관련이 있는 거잖아? 아니야?”
나를 비롯한 누구도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 나 당장 그 녀석한테 가서 물어볼래! 대체 내 동생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어보는 건 네 자유지만, 그랬다간 네 동생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어.”
흥분한 루비아를 이사벨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사벨?”
“본능에 휘둘리지 말고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해봐. 우리에게 모든 걸 다 말할 것 같던 네 동생은 위즈 메디아가 온 순간, 입을 다물었어. 마치 말하면 자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처럼. 그 상황에 경합 중재위원회에 가서 따지면 어떻게 되겠니?”
“루비아의 동생이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지겠지.”
대답은 세나가 대신했다.
그 말대로다.
페로나와 관련된 의문을 해소해줄 열쇠는 현재 위즈 메디아가 가지고 있겠지만,
그 열쇠를 탐하려는 순간, 그자는 페로나라는 의문의 자물쇠를 아예 없애 버릴 것이다.
“이건 아까 말하려다가 만 건데, 운디네와 네 동생 몸을 조사하다가 한 가지 발견한 게 있어. 그녀 몸엔 지금, 저주 마법이 걸려 있어.”
“저주 마법?”
“그래. 특정 조건이 성립되면 발동하게 만들어진 아주 아주 정교한 술식으로 부여된 저주 마법이야. 풀려면 못해도 몇 달은 걸릴 거야.”
“그 마법이 발동되면, 페로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
이사벨은 대답할 필요가 있냐는 듯 손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루비아는 허탈한 듯 웃다가도 머리를 부여잡았다.
“진짜 집 나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 거니 페로나…….”
그래도 멘탈이 완전 부서지거나 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나름 마왕 후보로서의 강인한 정신이 돋보였다.
“그래. 정리해보자면, 우리 같은 마왕 후보 주변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존재가 있다는 거네? 내 동생은 그 존재 중 한 명이었던 것 같고. 이거 기분이 좀 그렇다. 그동안 짜여진 게임판 위에서 놀아났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 그런가?”
이사벨과 세나는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녀들도 루비아의 생각과 같음을 보여주는 반응이었다.
침묵을 깨고 이사벨이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우리도 좀 떨어져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본가로 돌아가시겠다는 겁니까?”
“이런 일은 서로 협력해서 정보를 공유하기보단, 각자 알아서 찾는 게 좋다고 봐요. 세나 당신도 당분간은 청해에 있으세요.”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게 할게. 벨져랑 못 지내는 건 아쉽지만, 지금은 이사벨 말이 맞는 것 같아.”
“각자 그 존재를 찾으면 다시 연락하기로 해요. 당연하겠지만 이 일은 당분간 우리만 알고 있어야 해요.”
이사벨은 냉정하게 돌아서려다 말고, 루비아를 보았다.
이내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이번만큼은 협력이야 루비아. 네 동생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을 거라면 우리 쪽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설마 네가 먼저 협력이란 말을 꺼낼 줄은 몰랐네? 정말 많이 변했어 이사벨~!”
“착각하지 마. 어차피 이 일이 끝나면, 넌 다시 적이 될 뿐이니까. 내 목적도 변하지 않아. 난 너를 비롯한 모든 마왕 후보들을 제치고…….”
한순간 이사벨의 눈동자가 내 쪽으로 향하다 돌아갔다.
“저 남자를 마왕으로 만들 거야…….”
잔잔하지만 모두에게 선명히 들린 목소리.
그 누구도 감히 부정의 의견을 낼 수 없는 그녀의 굳건한 절개를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허나 루비아는 그 기개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히죽 웃어 보였다.
“그게 네 꿈이니 이사벨?”
“어. 내가 죽어서도 변하지 않을 꿈이야.”
“멋있네. 같이 이뤄주고 싶을 만큼…….”
아예 좋은 꿈이라며 칭찬도 해주었다.
평소의 보던 기 싸움과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나름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 와중,
“아니다! 그냥 동조해줘야겠다!”
루비아는 대뜸 꼬리를 살랑이며 내 앞에 터벅터벅 다가왔다.
그러곤 요염한 눈웃음을 흘리며 나를 빤히 바라봤다.
“있잖아 벨져 후보!”
“왜, 왜 그러십니까?”
순간 1초 뒤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거란 불안감이 속에서 강하게 번져 올랐다.
이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치려 하니,
-턱!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루비아가 내 뒷목을 틀어잡았다.
“난 이제부터 당신 거야!!”
“그게 무슨 말… 흡!”
말을 이을 새도 없이, 욕망에 젖은 그녀의 혀가 내 입술을 헤집고 들어왔다.
후읍 하고 들이마신 숨으로 그녀의 체향이 가득 밀려왔다.
끈적함이 느껴지는 체액은 덤.
영혼에 각인된 몽마족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일면서 허공에 손을 내저었지만,
루비아는 그럴수록 나를 더 세게 옥죄였다.
이윽고 의식(?) 끝내 그녀의 거친 숨결이 귓전을 울렸다.
“지, 지금 뭐 하자는……?”
“뭐긴? 아무에게도 안 준 내 처음을 당신에게 준 거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달콤하네?”
루비아는 침이 발린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앞으로 나 잘 책임져줘야 해 벨져 후보! 아니 벨~져~!”
이 서큐버스가 끝내 미친 모양이다.
책임은 뭔 놈의 책임?
이건 그냥 강제 추행이……!
-빠직!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련의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렸다.
나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곳엔,
“하…….”
아무 말 없이 숨을 내쉬며 나와 루비아를 살기에 찬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이사벨이 보였다.
그녀의 뒤론 언제라도 소환돼서 마법을 날릴 듯한 오색 빛 정령의 구체가 살벌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 * *
정말, 정말, 정말 위험했던 상황이지만,
자칫 이 저택이 날아갈 뻔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무마는 시켰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색욕의 종주 루비아와도 단일화를 이루어냈다.
루비아는 마왕 후보직을 포기하고, 내게 모든 걸 지원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밝혔고, 이 사실을 다른 몽마족들에게도 알리겠다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사벨과 세나도 조용히 각자의 집으로 귀환했다.
이사벨은 가면서 우선 일부터 끝내고 나중에 보자는 아주 아주 섬뜩한 말을 던졌다.
다소 경황이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이젠 나도 주어진 일을 해결해야 할 때가 왔다.
관조자.
지금 어디서도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신원미상의 존재.
그를 찾아야만 한다.
아직 예감이긴 하지만, 그리 먼 곳에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 혹은 이 집에 있을 수도 있겠지.
“레솔루티오(resolútĭo)!”
복도를 걷는 와중, 왼쪽 방에서 마법 주문이 들렸다.
목소리를 통해 메이가 한 것임을 바로 인지할 수 있었다.
이에 소리가 들린 방문을 열어보았다.
“아! 벨져 님 이야기는 다 끝나셨어요?”
방에 있던 메이는 평소처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그 옆엔,
“오, 오셨습니까 벨져 님!”
수호와 함께 집에 데리고 왔던 떠돌이 의사 코흐가 있었다.
“둘이 뭐 하고 있었어?”
“이 나뭇가지를 분석하고 있었어요!”
메이는 익숙한 나뭇가지를 내 앞에 들어 보였다.
코흐가 적림에서 가져왔다는 바로 그 나뭇가지였다.
“설마 코흐 님이 이곳에 오실 줄은 몰랐어요! 1층에서 우연히 뵙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상황을 보니, 대충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메이도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곤 바로 자신이 해보겠다며 나뭇가지를 받은 거겠지.
그 타이밍에 내가 들어온 거고.
“그래서? 뭐 발견된 건 있어?”
“어, 이제 막 시작해서, 아직 뭘 발견한 건 없지만…….”
메이는 마력으로 감싸진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는 시늉을 취했다.
“아무래도 이 나무엔 저주 마법이 서려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설마 했더니만, 나로선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듣고 말았다.
저주 마법이라.
“그런 것까지 확인할 수 있는 거야?”
“네! 자세한 건 좀 더 분석을 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저주 마법과 비슷한 술식 구조가 이 나뭇가지에 있는 걸로 확인됐어요! 잘만 하면, 코흐 님께서 궁금해하셨던 적림과 혈마족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긴 한데.
아무래도 지금은 일의 순서를 좀 바꿀 필요가 있어 보였다.
다시 방문을 연 나는 우연히 복도를 지나가던 한 시종을 붙잡았다.
“브릴리스 좀 불러줘. 지금 당장.”
지시를 받은 시종은 바로 브릴리스를 찾아갔다.
그러곤 다시 방문을 닫았다.
잠시, 호출에 응한 브릴리스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벨져 님?”
“어.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시종을 포함해서 이 저택에 있는 구성원들 말이야. 총 몇 명이나 돼?”
“서른 명 정도 됩니다만…….”
“그래? 그럼 그 인원들을 지금 전부 모아줘.”
“예. 알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지시에 브릴리스는 의아한 듯했지만, 이유를 묻진 않았다.
“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벨져 님?”
대신 메이가 물었다.
“메이 네가 수고 좀 해줘야겠다.”
메이는 순수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