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1
제141화. 계획의 시작
마계 대륙 어딘가, 경합 중재위원회의 은거지.
검은 로브를 두른 열 명의 마족들이 자리한 가운데, 그 중심에는 위원장인 위즈가 자리했다.
마족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근심이 가득했다.
“위즈 님. 복제자의 단독행동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처리해야 합니다!”
“카넬의 전언을 듣고도 그런 말을 합니까? 무슨 수를 썼는진, 몰라도 그의 몸속에 걸어 놨던 저주 마법이 사라졌습니다! 현재로선 그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관조자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저주 마법의 소실.
이런 상황을 대비한 플랜 B를 구축하지 않은 중재위원회는 서로 심각한 상황이란 말만 주고받을 뿐, 정작 해결책은 내놓지 못했다.
사실 플랜 B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 어떤 계획인지 그들은 모르기만 할 뿐.
그 계획은 오직 위즈만이 알고 있었다.
위즈는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정면을 보며 말했다.
“손님이 오신 모양이군.”
“예?”
“모두 나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말을 이해하지 못한 마족들이 어리둥절한 사이,
-벌컥!
은거지 오두막의 문이 벌컥 열렸다.
초대한 적 없는 손님을 본 마족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세, 세나 피그리티아?”
바로 나태의 종주 세나였다.
후보들 중,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경합 중재위원의 은거지를 그녀가 단신으로 찾아온 것이다.
“드디어 찾았네, 위원장?”
세나는 위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를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의자에서 일어난 위즈는 정중한 몸짓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뭐하고들 있나? 어서 나가지 않고?”
“하, 하지만 위즈 님!”
마족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위즈만 두고 갈 순 없어 반발했지만,
“나가긴 누구 마음대로 나가?”
그건 세나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세나는 아래쪽으로 늘어트린 손가락을 살짝 까딱였다.
그 순간, 은거지 전역에 디버프 존이 형성되었다.
“허억!”
위에서 몸을 짓누르는 듯한 엄청난 중압감에 마족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위즈 역시 디버프에 영향을 받으면서 몸을 들썩였지만, 세나를 향한 시선만큼은 거두지 않았다.
“무, 무엇 때문에 오셨는진 몰라도, 저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건 내가 판단해.”
“일단 디버프를 거두고 저들을 내보내 주시죠! 세나 후보도 뭔가 알고 싶은 게 있으니, 여기 오신 것 아닙니까? 그 진실을 알려줄 수 있는 건 저뿐입니다!”
세나는 그럼에도 디버프를 거두지 않았다.
그녀가 반쯤 감긴 눈으로 위즈를 노려보는 사이,
곳곳에선 곧 숨이 넘어갈 듯한 마족들의 신음이 울려 퍼졌다.
그 신음이 사그라질 때쯤,
디버프가 사라졌다.
절반 정도의 인원들이 겨우 숨을 들이쉬고 있었고, 반은 아예 거품을 문 채 기절했다.
위즈는 그나마 정신을 차린 인원들에게 남은 이들을 수습해서, 나갈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오두막에는 위즈와 세나 단둘만 남았다.
세나는 돌릴 것 없이 바로 직진했다.
“네가 우리 엄마, 아빠를 죽였니?”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세나는 다시 한번 디버프를 발동했다.
자기 질문에 대답하긴커녕, 반문한 것에 대한 응징으로.
“큭!”
목이 조여오는 고통에 위즈는 손을 들려 했지만, 디버프에 걸린 몸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내가 물은 질문에만 대답해.”
감길 듯 말 듯, 항상 반쯤 덮여있던 세나의 눈꺼풀이 화악 뜨였다.
그 눈을 마주한 위즈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어떤 말을 하건, 자신이 오늘 살아서 이 집을 나가기란,
매우 희박할 것임을.
하지만 그럼에도 위즈는 ‘그렇다’, ‘아니다’가 아닌, 전혀 다른 말들을 입 밖에 내었다.
“세, 세나 님은 이 마왕 경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아십니까?”
“그딴 건 궁금하지도 않아!!”
“들으셔야 합니다! 이건 선대 나태의 종주를 비롯해 지금의 세나 님, 그리고…….”
위즈는 죽을 각오로 악을 쓰며 소리쳤다.
“전대 마왕의 후손 벨져와도 관련이 있는 일이니까요!!”
세나의 불꽃처럼 타올랐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뭐?”
“15년 전이었습니다…….”
위즈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15년 전, 청해 인근.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천둥 번개와 폭풍우가 치는 바다 앞으로 두 마족이 자리했다.
“영광입니다! 마계 7대 유력자 중 한 분이신 나태의 종주님을 뵙다니요! 제 앞날에 행운이 따르려나 봅니다!”
한 명은 당시 평범한 마족에 불과했던 위즈 메디아,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행운? 글쎄, 너와의 만남이 과연 나에게도 행운일까?”
세나의 아버지이자, 선대 나태의 종주.
‘세이론 피그리티아’였다.
세이론은 한껏 예를 차리고 있는 위즈를 스캔하듯 전신을 쭉 훑었다.
“이름이 위즈 아이른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위즈 메디아가 아니고?”
미소를 유지하던 위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왜? 내친김에 네 선조가 과거 전대 마왕 벨시페르의 고문이었던 ‘루이스 메디아’라는 것도 말해줄까?”
“……속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위즈는 부정하지 않고 자신이 메디아란 성을 가진 마족임을 인정했다.
세이론은 활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하하! 긴장 풀어. 뭐라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저 마혈석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기억 속에 너와 닮은 얼굴이 있었을 뿐이야.”
“역시 대단하시군요.”
“그래서, 날 왜 찾아왔니?”
위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설마 날 우연으로 봤다. 이런 말 하진 않을 거지? 이 요란스러운 바다에 아무 목적도 없이 왔을 린 없잖아?”
“……나태의 종주께선, 지금 이 마계가 평화롭다고 보십니까?”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네? 평화롭다고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릴 겁니다.”
“평화롭지 않다고 하면?”
“그럼 좀 더 평화롭게 할 방안을 말씀드리겠죠.”
세이론은 입술을 모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흥미를 느꼈음을 파악한 위즈는 말을 이었다.
“이 마계의 새로운 마왕이 되어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그때, 폭풍우 치는 바다 위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용솟음쳤다.
소용돌이 속에선 세이론의 계약 마수인 카리브디스가 이빨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할까?”
세이론은 그렇게 위즈를 카리브디스 안으로 데리고 갔다.
마계이면서도, 마계가 아닌 새로운 이공간.
위즈는 그곳에서 평화를 위한 자신의 계획을 세이론에게 전부 이야기했다.
정리하자면, 마계를 대표하는 7개의 가문 중 가장 강한 마족 한 명을 마왕으로 선별하며, 선별된 이에겐 마혈석을 통해 다른 후보들이 가진 힘을 전부 넘긴다는 것이었다.
세이론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무표정을 유지했다.
이야기가 끝난 순간, 입을 열었다.
“내가 몇 번째니?”
“몇 번째라 하시면?”
“네가 이 이야기를 전한 순서 말이야. 이 엄청난 계획을 나한테만 말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나태의 종주님이 처음입니다.”
다른 종주들은 비교적 소재 파악이 용이한 것에 반해, 나태의 종주 세이론은 평소 마계 대륙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 탓에 파악이 힘들었다.
그나마 청해에서 자주 확인된다는 정보를 어렵게 입수하였고, 어차피 종주들을 다 만날 거, 가장 만나기 힘든 종주부터 만나잔 마음에 위즈는 청해로 온 것이었다.
“그래? 이런 게 운명적 만남이라는 건가?”
세이론은 흥미롭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경합이라는 거 말이야. 다른 종주들이 흔쾌히 따를까?”
“그러기 위해서 제가 중재할 것입니다. 이미 제 뜻을 함께해줄 구성원과 조직들도 전부 결성한 상태입니다. 남은 건 종주님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쉽진 않을 거야.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직 내부적으로 어지러운 가문들도 있을 테니까.”
대표적으로 이뉘디아 가문을 지적한 말임을 위즈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세이론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깊은 고민에 잠겼다.
좀처럼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에 위즈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세이론 님을 비롯한 피그리티아 가의 선조들은 대대로 보았겠지요. 힘이 없는 마족들이 이 마계에서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 말에 세이론의 눈이 다시 날카롭게 돋아났다.
“우리 마계는 단 한 명의 절대 강자가 필요합니다! 둘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한 명만 있으면 됩니다! 힘이 전부인 땅에서 절대 강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 그게 바로 바람직한 마계의 모습입니다! 마계가 가장 평화로웠던 때가 바로 전대 마왕이 집권했던 시기였음을 세이론 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알지. 그 마왕의 최후가 어땠는지도 잘 알고…….”
위즈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마족에게 있어서 힘은, 일종의 욕구와 같아. 쌓이면 쌓일수록, 어딘가에 풀고 싶어지지. 그게 아니면 제어가 안 돼서 폭발할 거야. 전대 마왕처럼.”
“그 점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대책도 마련해 뒀겠네?”
위즈는 사뭇 비장해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세이론은 그 대책을 듣지 않으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잠깐 따라와 볼래?”
위즈는 얼떨떨하게 일어났으며, 그대로 세이론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어느 방.
세이론은 바로 들어가지 않고, 두어 번 노크 했다.
“들어갑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내며 문을 여니, 책장 몇 개가 세워진 서재 같은 공간이 드러났다.
방 안엔 세이론의 아내인 올리비아 피그리티아가,
올리비아의 품엔 둘을 닮은 갓난아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 나한테 주고, 잠시만 나가주겠어요?”
올리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인도해주었다.
아이는 세이론의 유일한 자식,
세나 피그리티아였다.
세이론은 다시 위즈에게 물었다.
“넌 자식이 있니?”
“있었습니다.”
있었다. 그럼 지금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세이론은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내가 선조들처럼 똑같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의문이 하나 든 게 있어. 넌 우리가 힘이 필요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뭔가를 지키기 위해서겠죠.”
“그래 맞아. 나한텐 그 지키고 싶은 게 바로 이 아이야.”
부모에게 있어 자식보다 소중한 보물은 없다.
이건 종족을 떠나 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본성과도 같았다.
“사실 이 아이 정도는 내가 얼마든지 지킬 수 있어. 내가 없어도, 이 아이가 자라면, 자기 몸 하나는 충분히 지킬 정도의 힘을 가지겠지. 하지만 이 마계의 많은 마족들은 그러지 못할 거야.”
세이론은 마혈석에 담긴 기억과 본인이 직접 경험한 여정 등을 통해 느꼈다.
이 마계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마족들이 많다는 것을.
“난 내 아이가 혼자 사는 게 아닌, 아픔이 없는 여러 마족들과 함께 어우러지길 원해.”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해보자. 그거.”
위즈는 잠시 침묵했다.
“그거라고 하시면?”
“그야 당연히 마왕 경합이지. 난 찬성했으니까, 가서 다른 후보들 설득해봐. 준비되면 나한테 다시 알려주고. 이봐 제임스!”
세이론이 이름을 부르고 정확히 2초 뒤,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울렸다.
“부르셨습니까 종주시여.”
“얘 좀 밖으로 데려다주고, 나랑 연락할 방법도 알려줘.”
지시를 받은 제임스는 곧장 위즈를 인도했다.
위즈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순간,
“이왕 하는 거, 다른 쪽도 불러봐.”
세이론이 다시 위즈를 불러 세웠다.
“그래도 나름 마왕 경합인데, 7대 가문 말고, 다른 쪽에서도 후보자가 나와야 하지 않겠어? 그래 예를 들면…….”
위즈는 그때만 해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년을 걸쳐 계획한 이 마왕 후보 경합에,
“전대 마왕의 후손이라든지.”
그를 끼게 될지를.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