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침입
간절히 찾고자 하는 무언가가 보이지 않을 때, 혹은 어디에 뒀는지 잊었을 땐,
등잔 밑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을 수도 있으니.
암시장, 레트나 화산, 청해 등. 현재 마계 곳곳에 분신을 보내면서 본인만의 계획을 이행시키고 있는 이노투스.
정작 그의 본체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네로의 저택 지하 광장에.
그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 광장 한복판에서 명상을 하듯 고개를 떨구며 앉아 있었고,
그 앞엔 타다만 듯한 짚 인형 세 개가 놓여 있었다.
-뚜벅뚜벅
그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지면을 타고 전해졌다.
묵직하면서도 거만함이 느껴지는 발걸음.
누군지 확인 안 해도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이노투스에겐 매우 익숙했다.
-끼익
지상으로 가는 철문이 열리며 외부의 밑이 지하로 스며들었다.
철문 너머에서 나타난 네로는 중앙에 떡하니 있는 이노투스를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튀어오라고 호출을 해도 반응이 없더니만, 이미 집에 와 있었네?”
이노투스는 태연하게 일어났고 네로에게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네로 님.”
“오셨습니까? 뻔뻔한 거냐? 아님 찔리는 게 없는 거냐?”
네로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헛웃음을 내었고, 서서히 중앙으로 이동했다.
“내가 오면서 좀 많은 걸 들었거든? 하나같이 속이 끓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들로만. 근데 그런 것도 하도 들으니까, 나중 가선 침착해지더라고. 그래서 생각을 좀 해 봤지. 네놈 얼굴을 보면, 가장 먼저 뭘로 화내야 할까?”
네로의 몸은 마침내 이노투스와 초근접 상태가 되었다.
살기 어린 눈으로 전신을 쭉 훑는 동안에도, 이노투스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결국 세운 결론이 뭔지 알아? 화를 내지 말자는 거였어. 대신 들어보기로 했지.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생각으로 네놈이 이딴 짓거리를 하고 다닌 건지!”
한층 일그러진 네로의 얼굴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내가 네놈을 처음 거둘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냐?”
“……가치 있는 소유물이 되라고 하셨죠.”
3년 전, 피투성이 상태로 길가에 쓰러져 있던 이노투스를 처음 거둔 그날,
네로는 자신을 섬기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을 그에게 각인시켰다.
“네가 뭘 했든, 그게 날 위해서 한 일이라면 난 기꺼이 용인해줄 수 있어. 그러니 넌 대답해야 할 거야! 나를 위해 뭘 하고 다녔는지! 그게 아니라면 넌 그냥 여기서 죽는 거야!!”
이노투스의 눈앞으로 네로의 손이 드리워졌다.
발 아래론 붉은빛의 원이 생성되면서 둘의 주변을 감쌌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이노투스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네로 님께선 무엇이 제일 소중하십니까?”
“뭐?”
“만약 제가 다른 후보에게 인질로 잡히고, 그쪽에서 풀어주는 대가로 네로 님의 마혈석을 원하신다고 하면, 네로 님은 주시겠습니까?”
“무슨 되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왜? 네놈이 뭐라고?”
네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눈을 부라렸다.
이노투스는 예상한 대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네로 님은 주지 않으시겠죠. 다른 무엇보다 본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니까요. 허나 지금 이 마계에서, 가장 많은 마혈석을 소유한 마족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누구? 그 마인족 새끼?”
“예. 힘이 곧 전부인 이 마계에서 힘보다, 정을 중시하는 인간 같은 마족…….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이젠 소유하실 시간입니다.”
-끼익!
그때 네로가 들어왔던 철문이 또다시 열렸다.
소리에 이끌린 네로는 시선을 돌렸고, 이에 마주치게 된 것은,
덤덤한 모습으로 열린 문고리를 잡고 있는 또 한 명의 이노투스였다.
“가시죠. 네로 님.”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이노투스는 여전히 네로의 앞에 자리했다.
“네로 님께서 지금 가장 원하시지만, 가지지 못하고 있는…….”
네로는 부릅 떠진 눈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마혈석을 가지러.”
직선을 그리고 있던 이노투스의 입으로 섬뜩한 반원이 그려졌다.
* * *
해가 지는 저녁, 벨져의 집.
집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없지만, 대신 그와 관련이 있는 몇몇 마족들이 손님으로 머물고 있다.
처음엔 떠돌이 의사 코흐가, 그다음은 상인인 마르샤가, 그리고 이젠 대장장이 울타비스까지.
울타비스는 며칠간 망치질을 하지 못한 것에 몸이 뻐근해진 듯, 이리저리 기지개를 켰다.
“이럴 거면 그냥 내 대장간으로 보내달라니까 그러네? 주인도 없는 집에서 이게 뭐 하자는 건가?”
“일단 벨져 님이 오실 때까진 기다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봐도 아직 밖에 나가시는 건 너무 위험하세요!”
메이는 그런 울타비스를 순수한 눈빛과 말투로 달래주었다.
손녀뻘 되는 아이가 저리 말하니 짜증을 낼 수도 없는 노릇.
울타비스는 하품을 하며 손가락으로 망치만 툭툭 건드렸다.
현재 그가 있는 방엔 메이만이 아닌, 마르샤도 함께 자리했다.
둘은 그녀가 깨어있는 모습을 며칠간 보지 못했다.
“저 누님이 낮잠이 많진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건 좀 심할 정도군. 여기 있는 동안 눈뜬 모습을 아예 못 본 것 같은데? 꼬마 아가씨는 본 적 있나?”
메이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암시장 이후로 못 봤어요. 코흐 님 말론, 밤중에 몇 번 깨셔서 식사도 하시고, 책도 읽으신다던데……. 몸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서 걱정되네요.”
“아 그 부분은 걱정 말게. 적어도 나보단 오래 살 누님이시니, 뭐 큰 문제가 있고 그러진 않을 거야. 근데 그 의사란 친구는 지금 뭐 하고 있나?”
의사, 즉 코흐를 말한 것이었다.
“지금 주방에서 약초를 달이시는 중이에요. 기력 보충에 좋은 포션을 제조하신다고 했어요.”
“그 친구, 왠지 낯이 익단 말이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미심쩍은 마음에 턱을 쓸던 울타비스는 이내 벌떡 일어섰다.
“어디 가세요?”
“어제 보니까, 저택 외부 울타리가 영 허술하더구나. 그래도 명색이 마왕 후보의 집인데, 방범 시설이 그래서야 되겠어? 할 일도 없는데, 내 그거나 손봐주마.”
그렇게 울타비스는 망치를 들며 방을 나갔고,
어쩌다 보니 잠든 마르샤와 둘이 남게 된 메이는 그녀가 누운 침대로 다가갔다.
마르샤는 배 위로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옅은 숨을 쉬고 있었다.
메이는 그 옆자리로 조심히 앉았고, 손가방에서 책 두 권을 꺼냈다.
한 권은 항상 지니고 다녔던, 아만 크라우넬이 저술한 크라우넬 가의 마도서고,
다른 하나는 레트나 화산에서 이노투스의 분신으로부터 얻은 똑같은 이름이 적힌 마도서였다.
“마도서가 두 개란 사실을 못 들었는데…….”
메이 역시 마르샤가 깨어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마르샤는 좀처럼 메이와 만나주지 못했다.
혹시 일부러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메이는 오늘이야말로 밤을 새워서라도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독서를 하기 위해 책을 편 순간,
-턱!
어느 틈엔가 깨어난 마르샤가 메이의 왼쪽 팔을 붙잡았다.
깜짝 놀란 메이는 책을 떨어트렸다.
“깨, 깨신 거예요 할머니?”
마르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은 미칠 듯이 떨렸지만, 나오는 건 신음뿐이었다.
대신 초조함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눈동자로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가까이 와라.’
그 신호를 알아챈 메이는 마르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머니.”
마르샤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무척 위태로웠다.
“주머니……!”
숨 쉴 힘까지 전부 동원해 간신히 뱉어낸 말.
잠시 멍을 때린 메이는 이내 서둘러 마르샤의 주머니를 뒤졌다.
잠시 후, 마르샤의 왼쪽 허벅지 주머니에서 뭔가가 잡혔다.
메이는 그 물건을 망설임 없이 꺼냈다.
작은 향수병 같은 반투명한 유리병이었다.
안에는 콩알만 한 크기의 검은 환이 십여 개 정도 들어 있었다.
마르샤는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머으…… 거.”
“머, 먹여달란 뜻인가요?”
그녀에게 먹여달란 뜻으로 받아들인 마르샤는 곧장 환을 꺼내 마르샤의 입으로 가져다 댔다.
이에 마르샤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아니라는 뜻이었다.
“너… 머으…… 거!”
마르샤는 아예 손가락으로 메이를 지칭했다.
환을 먹어야 할 대상은 환자인 마르샤가 아닌 바로 메이.
메이로선 이 환의 정체는 무엇인지, 자신은 왜 먹어야 하는지 어느 하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처절하고도 처절한 마르샤의 눈빛을 보고선 차마 못 먹겠단 말 또한 할 수 없었다.
결국, 메이는 얼떨결에 환 한 알을 입 안에 넣었고,
그대로 꿀꺽 삼켰다.
그리고 흐른 약 10초간 정적.
맛을 느낄 새도 없었으며, 몸의 별다른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머, 먹긴 했는데, 이건 뭔가요 할머니?”
뒤늦게 환에 관해 마르샤에게 물어봤지만,
“할머니?”
마르샤는 어느샌가 다시 잠에 빠지고 말았다.
메이는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상황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마르샤의 주머니에서 꺼낸 병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마르샤의 약을 달이던 코흐가 방에 들어왔다.
“마르샤 할머니가 깨어나셨어요! 그런데 다시 잠드…….”
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자 몸을 돌린 메이는,
-풀썩!
말을 잇던 도중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뭔가에 걸려 넘어진 게 아니었다.
불현듯 정신이 멍해지나 싶더니, 갑자기 몸이 마비되고 말았다.
메이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코흐 쪽으로 손을 뻗었지만,
코흐는 놀란 기색은커녕, 세상 무심한 눈으로 쓰러진 메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서 메이는 처음으로 위압감을 느꼈으며, 이에 본능적으로 마르샤에게 받은 병을 그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주먹에 꽉 쥐었다.
메이는 머지않아, 마르샤와 마찬가지로 긴 잠에 빠져들었다.
무방비 상태가 된 메이를 물끄러미 보던 코흐는 그녀의 옆으로 엎어진 갈색 표지의 마도서를 집었다.
그러곤 유유히 방을 나갔다.
복도, 계단, 테라스, 거실 등.
코흐가 가는 곳엔 메이와 같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마족들이 가득했다.
다행히 죽은 건 아니어서 전부 숨은 붙어 있었지만,
절대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이윽고 저택 밖으로 나가는 내문에 이르니, 한 손으론 문고리를, 다른 한 손엔 망치를 쥔 채로 쓰러진 울타비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정신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
인기척을 느낀 울타비스는 고개를 들었고, 코흐를 보고선 피식 웃었다.
“아, 자네,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누구인지…….”
어쩐지 낯이 익은 이유가 있었다.
허나 때는 이미 늦은 상황.
“이거, 집주인이 빨리 와야 할….”
울타비스는 더 뒷말을 잇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
코흐는 자비 없는 발길질을 통해 쓰러진 울타비스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문고리를 잡은 순간,
“머, 멈추십시오!”
힘겨움이 느껴지는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코흐의 행동을 막았다.
브릴리스였다.
그녀를 돌아본 코흐는 흥미로움을 느낀 듯 안경을 추켜올렸다.
“용케 독에 중독되지 않으셨군요. 그동안 이 저택의 구성원들이 먹는 음식이란 음식엔 전부 넣었을 텐데…….”
“벨져 님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제 정신은 그리 나약하지 않습니다! 이미 온건파 지부에게 연락해 지원 병력을 요청했습니다! 그, 그들이 오면…… 당신은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브릴리스는 숨을 헐떡거리며 힘겹게 말을 이었고, 그런 그녀를 코흐는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 말은 아직 오지 못했단 뜻이군요. 그럼 시간을 드릴 터이니, 그 지원 병력에게 다시 연락을 넣으십시오. 지금 당장 왔던 길 멈추고 돌아가라고. 살고 싶으면…….”
“그, 그게 무슨…!”
-똑똑
코흐의 등 뒤, 내부 정문에서 두드림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다급히 소리치던 브릴리스의 말이 뚝 멈췄다.
“이미 늦은 모양이군요.”
코흐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선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그렇게 잡은 문고리를 돌리고, 문이 열리며, 문을 두드린 당사자가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브릴리스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출입을 허가하지 않은 낯선 침입자는 들어오자마자, 코흐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 많았다. 코흐.”
코흐는 가벼운 묵례로 답했다.
방문객의 얼굴을 본 브릴리스는 충격을 받은 나머지,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이, 이노투스?!”
탐욕의 종주, 네로의 퍼밀리어.
그가 왜 여길 찾아왔단 말인가?
애석하게도 침입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먼저 저택 안으로 입성한 이노투스는 아직 문밖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보며 안쪽으로 손을 뻗었다.
“들어오시지요….”
그의 인도를 받으며 들어온 마족은 바로,
“집 좋네?”
네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