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
제15화. 통제
마른하늘에 날벼락보다 더 갑작스러운 긴급 통제.
이에 따라 암시장 밖으로 나가는 모든 출입로가 닫히면서, 안에 있는 마족들은 전부 격리 상태에 처하게 됐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왜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통제하겠다는 건데?”
상인, 손님 할 것 없이, 모두가 반발하고 나선 상황.
당장 길을 열라고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시위했지만, 가드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통보를 전했다.
“현 시간부로 암시장의 모든 마족에게 긴급 검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검문을 마치면 바로 통제를 풀어 드릴 테니,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검문? 아니 누가 우릴 검문하라고 지시한 건데?”
“네로 님이십니다.”
그 한마디에 아우성치던 입이 전부 얼어붙었다.
그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둘 은근슬쩍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네로 님께서 지시하신 거라면 따라야지!”
“아, 아무렴! 그분의 말을 거역할 순 없으니까!”
상황에 따른 태세전환은 종족을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시장 구석에서 이름 모를 생물의 다리로 만든 꼬치구이를 질겅질겅 씹으며 그 광경을 넌지시 지켜보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저 가드들의 방비를 억지로 뚫고 내 갈 길을 간다.
둘째는 저들의 지시를 얌전히 따르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지켜본다.
전자를 따르면 후일이 귀찮아질 것이오, 후자를 따르면 지금 당장이 귀찮아질 것이다.
결국 뭘 선택하든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건 매한가지라는 건데.
아, 집 가고 싶다.
“아까 그 네로라고 하는 후보. 우리가 나온 가게에서 내렸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가게 주인. 아무래도 내가 여기 왔단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
“가능성 있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리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쟤들 지금 하는 짓거리 봐봐.”
이유를 묻는 브릴리스에게 검문이 한창 진행 중인 가드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상인, 손님 할 것 없이 몸과 짐 수색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었다.
자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원래 검문이란 건 대상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하는 거란 말이지?
근데 상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우리처럼 얼굴을 감춘 일부 손님들의 경우엔 얼굴을 일절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확실히, 철저하게 몸수색 위주로 검문을 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검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걸까요?”
메이가 바로 맞췄다.
내 감히 예상하는데 저 가드들은 지금 검을 소유한 마족을 찾고 있다.
“그 말은 즉, 네로 후보가 벨져 님을 찾고 있다는 겁니까?”
“그러지 않을까?”
“무, 무엇 때문에?”
“그거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알겠지.”
근데 싫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상황이 나한텐 제일 귀찮을 것 같다.
그냥 처음부터 나란 놈은 여기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떠나고 싶은데.
지금으로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
“소란을 벌여서 탈출하면 어떨까요?”
메이가 대뜸 의견을 내었다.
“소란?”
“네! 마법으로 여기에 불을 질러서 소란을 일으키면, 그 틈에 저희가 빠져나가는 거예요!”
메이야 제발…….
그건 소란이 아니야, 혼란이지.
그녀의 눈빛만 봤을 땐 시장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듯한 기세였다.
“왜요? 왜 안 된다는 건데? 설마 이 시장에서 날 모르는 마족이 있기야 하겠어요?”
“지, 진정하십시오! 이대로 정체를 밝혀버리시면, 기껏 몰래 오신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문득 우리가 있는 쪽으로부터 열 걸음 정도 떨어진 포대 더미 뒤에서, 두 남녀의 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이 목소리, 어쩐지 좀 익숙하다?
나는 자연스레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그럼 지금 나보고 저 근본도 모르는 마족들에게 몸수색을 당하라는 거예요? 그런 수치를 당할 순 없어요!”
“하지만, 이를 거부하시면 이곳에 온 목적 자체를 잃게 되십니다!”
“그딴 거 알게 뭐에요! 내가 미쳤지! 무슨 대단한 거 조사한다고 이런 곳엘……!”
“뭘 조사하러 오셨습니까?”
내가 얼굴을 들이밀며 묻자 곧바로 외마디 비명이 울렸다.
아니 무슨 귀신이라도 봤나?
“누구냐!”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뒤로하고, 같이 있던 남마족이 잽싸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마스크를 살짝 내려 얼굴을 보여주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둘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베, 벨져 후보!?”
둘은 나와 마찬가지로 후드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허나 난 이미 목소리와 눈빛을 통해 둘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내 저택에 찾아왔던 마왕 후보 이사벨과 그녀의 퍼밀리어 드류였다.
“나, 날 엿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냥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기에 와본 것뿐입니다.”
나는 오해하지 말라며 단칼에 잘랐다.
곧 소리를 듣고 뒤따라온 브릴리스와 메이도 둘을 발견하고선 깜짝 놀랐다.
“이, 이사벨 후보님?”
“하, 이래서야 위장한 의미가 없네요. 다들 눈만 봐도 날 알아볼 정도니…….”
당황할 땐 언제고, 그녀는 급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물건 사러 오셨습니까?”
“당신 알 바 아니잖아요!”
아, 왜 괜히 성질이야?
“그, 그럼 당신은 뭘 사러 온 건데요?”
“저도 딱히 말씀드릴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말해요! 내가 그거 알려고 굳이 여기까지 온……!”
이사벨은 말하다 말고 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제가 뭘 사러 왔는지 알기 위해 오셨다고요?”
“그, 그게 그러니까……!”
“뭐 때문에요?”
“그, 그야 당신은 나와 마왕직을 두고 싸우는 경쟁자잖아요! 이런 수상쩍은 곳에서 뭘 사는지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걸 보통 스토킹이라고 하지 않나?
이건 뭐 너무 당당해서 말이 안 나오네.
“한데, 일이 좀 꼬여버렸네요. 듣자 하니, 여기 우리 말고 또 한 명의 마왕 후보가 온 것 같던데. 별로 만나고 싶은 후보는 아니다 보니, 마주치기 전에 빨리 떠나야겠어요.”
“가드들에게 신분을 드러내실 생각입니까?”
“당연하죠. 제아무리 네로 후보의 하수인이라고 한들, 죽고 싶은 게 아니고서야, 날 검문하려 들진 않을 거예요.”
이사벨은 후드와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완전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잠깐만.
이거 잘만 이용하면 혹시?
불현듯 머릿속에서 하나의 묘수가 불씨처럼 피어올랐다.
“이사벨 후보. 저랑 거래 하나 하시겠습니까?”
“거래요?”
“예. 제가 이 암시장에서 뭘 사러 온 건지 알고 싶다고 하셨죠?”
“그, 그렇긴 한데…….”
“그럼 저희를 여기서 나가게 해주십시오.”
정확히 1초 후, 그녀의 미간이 확 움츠러들었다.
“뭘 해달라고요?”
“어차피 정체를 드러내기로 하신 거, 거기에 저희도 좀 묻어갈까 합니다. 이사벨 후보의 일행인 척하고 말이죠.”
“지, 지금 내 하수인으로 위장하겠단 말이에요?!”
나는 씨익 웃으며 긍정의 의사를 보였다.
“마왕 후보가 다른 마왕 후보의 하수인으로 위장이라니? 당신 자존심도 없어요?”
“뭐 딱히 자존심에 지장 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당신 진짜 마왕 후보 맞아?!”
“이건 서로 필요한 걸 얻기 위한 지극히 일반적인 거래일 뿐입니다. 이사벨 후보의 도움으로 이 시장을 빠져나간다면, 제가 산 물건을 바로 말씀드리죠.”
이사벨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은 모호한 표정으로 여러 번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결국은 길게 숨을 내쉬며, 해탈한 듯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나이스.
나는 즉시 마스크를 다시 썼다.
검도 보이지 않도록 아예 후드와 망토 사이로 꼭꼭 감춰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이란 남자.”
“원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라 했습니다.”
어쩌겠는가?
나도 지금의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나는 브릴리스와 메이의 위장도 한 번씩 더 손봐주며 이사벨의 하수인이 되기 위한 완벽한 준비에 나섰다.
“당신도 그만 모습을 드러내세요. 드류.”
“알겠습니다.”
그녀의 지시에 퍼밀리어는 군말 없이 후드와 마스크를 벗고 위장을 해제했다.
준비를 마친 이사벨은 출입구를 향해 당당히 나아갔으며, 그런 그녀의 뒤를 우리는 졸졸 따랐다.
“음?!”
이사벨이 출입구 앞에 도착하자, 그곳을 통제하던 가드의 얼굴에 일제히 경악의 표정이 흘렀다.
“이, 이사벨 이뉘디아?”
가드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상인과 손님들 역시 얼굴에 놀라움이 한껏 묻어있었다.
“지, 질투의 종주께서 여긴 왜?”
“시장에 물건 사러 오지 뭐하러 왔겠어요?”
조금 전 나를 마주쳤을 때 당황했던 모습은 전부 사라지고,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인상만이 남아 있었다.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좀 비켜주지 그래요? 난 이만 여길 떠나고 싶은데?”
“하, 하지만 지금은 네로 님께서 긴급 통제를 지시하신 터라.”
“그 지시에 제가 따를 이유는 없지 않나요?”
역시 마왕 후보는 후보.
정말 예사롭지 않은 패기를 가진 여자가 아닐 수 없다.
기세에 눌린 가드들은 그녀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이 어렵게 흘러가진 않을 듯 보였다.
“그, 뒤에 계신 세 분은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내 짐꾼들이에요.”
“짐꾼치곤 딱히 짐은 없는 것 같으신데?”
“산 게 없으니까 당연히 짐도 없죠! 무슨 당연한 걸 묻고 있어요!”
이사벨은 같잖은 통제령에 쇼핑 욕구가 싹 사라졌다며 오히려 책임을 전가하기까지 했다.
오죽하면 뭐라 대꾸할 수 없어 허둥대는 가드들이 불쌍할 정도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얼른 지나가시죠!”
결국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가드들은 성벽 같던 방비를 풀고, 그녀에게 길을 내주었다.
이사벨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그 사이를 도도하게 지나갔다.
우리는 그 뒤를 잽싸게 따랐다.
매우 순조로우면서도 문제없는 상황.
이거야말로 호랑이를 등진 여우, 아니 호랑이 등의 여우라고 할 수 있지.
이대로 문제없이 암시장을 빠져나간다면……!
어라?
종종걸음으로 나아가던 두 발이 일순간 멈추었다.
주변 상황을 보기 위해 조심스레 눈을 돌리던 와중, 가드들 사이에 있던 한 마족과 눈을 마주쳤다.
저 마족 낯이 익다.
낯이 익은 게 아니라, 불과 한 시간 전에 봤다.
암시장 입구에서 우리한테 출입증을 팔던 그 암표상이다.
나를 마주한 그의 눈은 이미 동그랗게 커진 상태였으며, 아예 손가락으로 대놓고 내 쪽을 가리켰다.
누가 봐도 아는 마족을 발견했다는 듯이.
나는 속으로 제발 모른척해 달라며 빌었지만,
녀석의 입은 이미 소리를 지르기 위해 크게 벌려지고 있었다.
“벨져 후보다!”
아, 망했다.
* * *
통제는 풀렸다.
통제의 목적인 나를 찾았으니, 그것을 더 지속할 이유는 없을 터.
암시장은 다시 출입을 재개했다.
물론 난 아직 시장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지만.
1평 남짓한 허름한 천막 안에서, 날 찾는 이 시장의 주인이 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마왕 후보씩이나 되는 마족을 이런 허름한 곳에다가 방치하면 어쩌자는 거야?
적장은 대우해줘야 한단 말 모르나?
듣자 하니 돈도 많다면서 이상한 데서 아끼고 있네?
아, 그래 뭐 나야 그렇다 치는데…….
“왜 아직 여기 계십니까?”
내 옆엔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 암시장을 떠나지 않은 이사벨 후보가 자리하고 있었다.
“왜요?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네로 후보가 찾는 건 분명 저뿐일 텐데요?”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벨져 당신이 나와 함께 이 암시장을 나가냐 마냐에 있죠. 분명 같이 나가면 말해준다고 했죠? 당신이 여기서 뭘 샀는지.”
“그냥 밖에서 기다리시면 될걸…….”
“그럴 순 없죠. 당신이 또 나중에 말을 바꾸면 어쩌려고.”
네네 마음대로 하십쇼.
나는 해탈한 마음에 그냥 등을 쭉 기대고 늘어졌다.
나도 모르겠다. 이젠 알아서 돼라지.
“그렇게 늘어질 여유는 없을 텐데요? 네로 후보가 어떤 후보인지 몰라요?”
“네. 모릅니다.”
“아니, 대체 당신은 아는 게 뭐예요?”
왜 또 성질이실까?
너는 떠들어라, 나는 무시할란다 라는 마음으로 귓구멍을 닫으려는 찰나,
“네로 님께서 오십니다.”
마족 한 명이 천막을 걷고 들어와 소식을 알렸다.
곧 천막 너머로 다수의 발소리가 들렸다.
-펄럭
이윽고 육중한 체구의 한 마족이 천막을 대차게 거치고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칠 겨를 없이 바로 준비된 자리에 착석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벨져 후보.”
그러고선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요구를 던졌다.
“당장 내 물건을 돌려주십시오!”
하. 벌써부터 피곤해지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