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1
제151화. 심판
한낮, 이사벨의 저택 침실.
잠에서 깨어난 메이가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아…!”
메이는 외마디 신음을 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는 독 때문에 두통이 느껴진 것이다.
“일어나셨습니까 메이 양?”
그러자 옆에서 몇 시간 동안 간호 중이던 한 몽마족이 물을 건넸다.
미켄이었다.
“미켄 님? 언제부터 제 옆에?”
“줄곧… 이라고 해야겠죠? 본가로 떠나신 벨져 님께서 저보고 메이 양을 부탁한단 말을 남기셔서, 그 지시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메이는 받은 물컵을 보며 침묵에 잠겼다.
“아! 그러고 보니 미켄 님께서 절 구해주셨죠? 경황이 없어서 감사 인사도 못 했네요! 정말 고마워요 미켄 님!”
“꽃을 지켜야 하는 제 소임을 다했을 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전부 가신 건가요?”
“예. 메이 양께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창밖으로 눈을 돌린 메이는 ‘그곳’이 있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상과 다르게 메이의 표정은 심각하지 않고, 사뭇 덤덤했다.
“걱정되시진 않는 겁니까? 벨져 님이?”
“걱정되죠. 하지만 지금은 괜찮으신 것 같아요.”
메이는 생긋 웃으며 미켄을 돌아보았다.
“저희는 퍼밀리어잖아요. 다른 누구보다도 주인의 상태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관계……. 제가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건, 벨져 님께서도 무사하시다는 걸 증명하는 것 아닐까요?”
순수하면서도 명확한 해답에 미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훌륭한 대답이십니다.”
허나 미켄은 그리 말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메이의 말대로, 현재의 벨져가 정말 웃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와 마주하고 있는 다른 마족은 반대의 상황에 처해있을 것임을.
하물며 그의 퍼밀리어 또한,
웃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 * *
그 시각, 벨져의 집.
서로 간의 끝장을 보기 위한 두 마족은 다른 이공간으로 전이되고,
남은 다섯 명의 마족들은 즉각 대치 상태에 돌입했다.
마르샤와 이노투스는 각자 마력을 발현한 손을 서로에게 뻗은 채, 언제든 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침묵에 휩싸인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마르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째 갈수록 붕대 너머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게 보이는구먼. 전이한 주인의 상태가 썩 안 좋은 모양이지?”
이노투스의 미간이 미세하게 움츠러들었다.
“둘 중 누가 살아서 나오든 자네들에겐 별로 좋을 게 없을 거야. 세 개의 마혈석을 지닌 후보를 고작 반인반마 따위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깜짝 놀란 브릴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인반마라니요? 이노투스 저자도 혼혈이었단 말입니까?”
“아, 집사 아가씨는 모르고 있었겠군. 저 둘은 형제라네. 100년 전 인계 레지에타에서 넘어온 인간 무리 중 아직까지 유일하게 살아있는 그들의 혈족이라고 할 수 있지.”
“즉 인간, 마족 어느 쪽에도 낄 수 없는 돌연변이인 셈이지.”
마르샤의 설명에 울타비스는 조롱을 덧붙였다.
“꽃은 땅 위에서 피는 게 맞고 물고기는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게 맞아. 본래 살던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넘어온 이방인들이 좋은 이상향을 품고 있을 리는 만무하지. 안 그런가? 복제자와 떠돌이 의사?”
두 형제는 말이 없었다.
형의 눈치를 보는 코흐에 반해 이노투스는 무표정을 이어 나갔고,
그렇게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가던 순간,
-콰콰광!
창밖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렸다.
마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밖을 쳐다봤다.
붉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균열과 함께 생성된 거대한 구멍.
그 안에선 요란한 굉음과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마족들은 아예 집 밖으로 뛰쳐나와 난데없는 이상 현상을 눈앞에서 관전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높게 솟은 바위산 절벽 꼭대기에서 벨져의 저택 쪽으로 주시하던 이사벨 일행 역시, 같은 광경을 목격했다.
“저건?”
“아공간 게이트 아니야?”
자기가 나올 때까진 대기하란 벨져의 말도 잊은 채,
일행들은 너도나도 먼저랄 것 없이, 각자 벨져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렇게 주변에 있던 모두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머지않아 구멍 난 하늘에서 삐죽 튀어나왔다.
길고 거대하면서도 요리조리 흔들리는 것이, 꼭 어떤 짐승의 꼬리처럼 보였다.
꼬리에 이어 기다린 신체가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바실리스크!”
생명체의 정체를 깨달은 마르샤가 소리쳤다.
탐욕의 종주 네로의 최대 심복 마수 중 하나인 바실리스크.
닭의 볏 혹은 왕관처럼 보이는 흰 무늬와 몸 양쪽엔 작은 날개가 달린 거대한 뱀 형의 마수.
그 마수가 어째서인지 구멍 안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있었다.
“키에엑!”
마침내 얼굴까지 빠져나온 바실리스크는 구멍을 보며 포효를 내질렀다.
바실리스크의 숨결은 닿는 것만으로도 관목을 말라비틀어지게 할 만큼 치명적인 위력을 가져서, 용마족마저 경계하는 마수였지만,
“까아악!”
그 위력이 무색하게 바실리스크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계속 숨결을 퍼부었다.
그때 구멍 속에서 거대한 검기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서걱!
검기는 바실리스크의 한쪽 날개를 베어버렸다.
비행의 균형을 잃은 바실리스크는 크게 비틀거렸고, 그 사이로 누군가가 떨어져 나와 땅으로 추락했다.
육중한 체구를 지닌 익숙한 순혈 마족,
바로 네로였다.
허나 주인이 떨어지건 말건, 바실리스크는 계속 구멍을 향해 숨결 뿜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이번엔 구멍 속에서 여러 개의 검기가 비처럼 쏟아졌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쏟아지는 검기의 비를 온몸으로 맞은 바실리스크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수십 조각으로 썰린 사체가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곧 구멍 안에서 검기를 날린 장본인, 벨져가 모습을 드러냈다.
벨져는 피눈물을 흘리며 아직까지 숨결을 뿜어대는 바실리스크와 눈을 마주했다.
이에 천천히 검을 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죽음의 위기를 감지한 바실리스크는 달아나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서걱
벨져의 자비 없는 마지막 일격이 바실리스크의 몸을 갈랐다.
“내 바실리스크가…….”
간신히 몸을 일으킨 네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절망했고,
전신이 피로 얼룩진 벨져는 무심한 모습으로 땅에 안착했다.
다시 벨져와 마주한 네로는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왜? 왜 방관했던 거냐? 이 정도로 무지막지한 힘을 지녔으면서?”
벨져는 침묵으로 응답했다.
“내 마수들을 단 혼자서! 전부 도륙 낼 수 있는 힘을 지녔으면서! 그동안 왜 가만히 쳐 있었냐고! 네 힘이 얼마나 무지막지한지 몰랐던 거냐? 이 힘이면 다른 후보들도 충분히 굴복시킬 수 있었잖아! 근데 왜 이제 와서 드러낸 거냐고!!!”
보고의 재보들을 모두 잃은 네로에게 이제 남은 건 악밖에 없었다.
얼굴에 핏줄이 돋고 성대가 끊어질세라 소리쳤지만, 벨져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붉게 물들여진 아크베리아의 검 끝을,
네로의 목으로 겨눌 뿐.
“뭐 힘에 휘둘리지 않는 평화로운 마계 이딴 거라도 꿈꾸는 거냐? 그게 가능할 것 같아? 그렇게 힘을 꼭꼭 숨겨봐야, 네놈에게 반기를 드는 놈들만 늘리는 꼴이라고!”
“글쎄? 과연 그럴까?”
침묵을 유지하던 벨져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마계에서 제일 많은 부를 축적하고, 그 누구보다 욕심이 그득한 탐욕의 종주를 한순간에 몰락시킨 존재에게, 누가 반기를 들겠어?”
네로는 반박할 수 없었다.
본인조차도 살면서 누구에든 무시당한 적 없고, 하물며 반기를 든 자도 없었다.
그런 자신을 집단도 아닌 단 한 명이 이렇게 파멸을 시켜버렸는데,
어느 누가 넘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네로가 생각해도 그럴 마족은 이 마계에 있을 수 없었다.
“시발…….”
허무한 마음에 나오는 건 욕뿐.
벨져는 두꺼운 살에 파묻힌 네로의 목덜미로 마침내 칼날을 대었다.
“마계의 모든 걸 소유한다……. 좋다 이거야, 그게 네놈이 원하는 마계라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근데 네놈은 실수를 하나 했어. 그게 뭔지 알아?”
“뭐?”
“이미 주인이 있는 소유물을 건드렸다는 거야.”
아크베리아의 차가운 감촉을 온몸으로 느낀 네로는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끝내 굴하지 않고, 다시 악에 받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하! 저깟 어설픈 연놈들이 네 녀석의 힘보다 더 가치 있다는 거냐? 어차피 죽을 거 내가 가기 전에 예언 하나 해줄까? 네놈이 그딴 알량한 마음으로 저 마족들을 대하는 한! 저 녀석들은 앞으로 더 많은 걸 네게 요구할 거야! 그러면서 차츰 빼앗아 가겠지! 네놈이 소유한 모든……!!!!”
예언이 아닌 저주에 가까웠던 마지막 말은 완전히 이어지지 못했다.
시퍼런 마검의 칼날이 두꺼운 목을 가르면서 네로의 목은 하늘로 솟구쳤고, 그대로 피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벨져는 탐욕의 광기가 사라지지 않는 그 목을 물끄러미 보다가도,
“하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탄식했다.
-털썩!
그러곤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 *
같은 시각 마계 어딘가.
녹음이 우거진 대지 위로 검붉은 마법진이 그려지면서 빛을 발했다.
잠시 후,
마법진 위로 육중한 체구를 가진 익숙한 마족이 엎어진 채로 소환되었으니,
바로 네로였다.
“뭐, 뭐야?”
깨어난 네로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순간 이곳이 저승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니었다.
이곳은 명백한 마계.
분명 벨져에 의해 목이 베이고 죽었을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이쪽을 보시죠 네로 후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네로는 즉각 고개를 돌렸다.
“다, 다일?”
교만의 종주 다일과 그의 퍼밀리어 페르가 우직한 자세로 네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로는 현 상황에 관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네, 네놈이 날 구해준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죽었습니다. 네로 후보. 벨져 후보에게 목이 베이지 않았습니까?”
“그, 그럼 이건 뭐야? 왜 난 멀쩡한 상태로 살아있는 거냐고?”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탐욕의 종주 네로 아와라티아는 더 이상 마계에 없습니다. 당신은 주변인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마법을 통해 구현한 가짜, 즉 모방체입니다.”
벌떡 일어선 네로는 다일의 멱살을 붙잡았다.
“모방체? 네까짓 게 뭐라고 건방지게 날 모방시켜? 내가 가짜라고 해서 힘이 없을 줄 알아? 지금 이 자리에서 마수 열은 거뜬히……!”
“소환할 마수는 있고요?”
네로의 입은 바로 닫혔다.
다일은 잡힌 멱살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모방한 당신을 소환한 건 내가 아닙니다. 난 그쪽에 재주가 없으니까요.”
“뭐? 그럼 누가?”
“당신이 제일 잘 알지 않겠습니까? 모방 마법의 대가이자, 복제자라는 이명이 있는…….”
-뚜벅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린 네로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노투스?”
퍼밀리어인 이노투스가 손에 마력을 발현한 채 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뭐야? 너 이 자식 설마…!”
“당신이 왜 모든 걸 잃었는지 아십니까 네로 아와라티아?”
다일은 이제는 후보라는 존칭까지 빼며 네로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건, 당신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뭐래는 거야 재수 없는 새끼가!”
“본인 소유물에 대한 가치를 지나치게 책정한 나머지, 다른 소유물의 가치를 판별하지 못했지요. 벨져 후보가 지닌 힘의 가치를 꿰뚫어 보지 못한 게, 당신이 파멸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껍데기 같은 날 데리고 네 하수인으로라도 삼겠다는 거야? 네가 순순히 응해줄 것 같냐?”
일직선을 그리던 다일의 입에서 비웃음이 터졌다.
“당신은 그냥 내 앞에서 말만 하면 됩니다.”
“말은 뭔 놈의 말?!”
“뭐든지요. 나는 모르지만, 당신은 알고 있는 걸 전부 내게 털어놓으세요. 그럼 마왕 후보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당신을 영면으로 인도하겠습니다.”
네로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미친 듯이 웃어댔다.
“영면 좋아하시네! 네가 네놈한테 털 건 단 하나도……!”
-서걱!
목 밑에서 들린 낯선 소리에 네로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깔끔하게 절단된 왼쪽 손목과 그곳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다량의 피.
곧 사방에는 고통에 찬 네로의 비명이 가득 울려 퍼졌다.
“모든 걸 잃은 당신에게 남은 건, 이제 그 몸뚱이뿐이겠죠…….”
“이 개새끼가!!!”
“그 몸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제가 전부 지켜보겠습니다. 시작해라 페르.”
명을 하달받은 페르는 피 묻은 다루이버를 무자비하게 휘둘렀고,
다일과 이노투스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만 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