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7
제167화. 두 검사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낯선 침입자가 다짜고짜 대련을 하자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까?
대충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미친 소리 하지 말고 꺼지라 하거나,
그런 소리를 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 가늠해 본다거나.
시연은 후자의 반응을 보였다.
자신과 같은 검은 색 머리에 시선을 꽂혔던 것도 잠시, 시연의 눈은 곧 벨져의 허리춤에 있는 검으로 향했다.
언뜻 봐도 본인이 쥐고 있는 검과 비슷한 형태였다.
그 시선을 의식한 벨져는 슬그머니 검 자루로 위에 손을 얹었다.
예로부터 고수는 서 있는 자세를 통해서도 그 예기(銳氣)가 느껴진다고 했다.
벨져의 자세는 검을 쥔 자라면 누구도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자세였지만, 시연의 눈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못해도 수천…, 아니 수만 번은 잡아본 듯한 자세.’
마치 검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검이 곧 나이고, 내가 곧 검이라는 합일(合一)의 경지를 이룬 듯한 모습이 보였다.
노년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노인이 아닌, 동 나이로 보이는 이 젊은 남성으로부터 말이다.
시연은 검을 거뒀고, 다시 벨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오시죠.”
먼저 집을 나온 시연은 마크리아 평원으로 향했다.
* * *
햇빛을 적당히 가린 구름, 시원한 바람이 솔솔.
검술 대련을 하기에 매우 적합한 날씨.
넓디넓은 평원 위에 선 두 남녀가 검 자루에 한 손을 얹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먼저 검을 뽑은 시연이 벨져에게 물었다.
“시간은 어느 정도 원하십니까?”
“무제한.”
“승패를 결정짓는 방식은요?”
“각자의 검이 상대의 급소를 겨눴을 때.”
사실상 무규칙이나 다름없는 방식이었지만, 시연은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그쪽도 검을 뽑으시죠.”
시연의 요구에 응한 벨져도 검을 뽑았다.
마계에서 나는 흑광석으로 제작한 세상에 단 한 자루밖에 없는 마검.
허나 그 검의 형태는 길이로 보나 굵기로 보나, 시연이 다루는 검과 매우 유사했다.
물론 시연으로선 저 검이 이제껏 수많은 마수와 마족의 피가 묻은 검이란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의 검이 서로의 목을 향해서 겨눠지고,
“후우….”
작게 숨을 들이쉰 벨져가 먼저 땅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다.
-챙!
두 검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청아한 소리가 울렸다.
빈틈이라곤 일절 보이지 않은, 딱 보여줄 것만 보여준 움직임이었지만,
그 움직임 속에 담긴 벨져의 검은 매우 날카로웠다.
시연으로선 예상을 살짝 넘어서는 빠르기였지만, 당황할 정도는 아니었다.
침착하게 검을 흘려낸 시연은 역으로 좌우 이연 반격을 가했다.
-챙! 챙!
벨져는 무리 없이 막아냈다.
이후 짧은 힘겨루기 시간이 이어지고, 두 검사는 동시에 물러났다.
물러난 벨져는 검을 고쳐잡으며 자세를 바꿨다.
모르는 이가 보면, 다른 검격을 펼치고자 단순히 자세만 바꾼 것으로 보였겠지만, 시연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솟은 시연 또한 몸을 낮추며 자세를 교정했다.
-타앗!
다시 땅을 박차고 달린 벨져가 시연의 정중앙으로 검을 내질렀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일격임을 감지하고, 방어 자세를 취하려던 것도 잠시,
벨져의 검로가 딱 한 걸음을 앞에 두고 뒤바뀌었다.
시연은 재빨리 오른쪽 발을 뒤로 내빼며 자세를 바꿨다.
-챙!
벨져는 한 번에 멈추지 않고 연속으로 허공을 갈랐다.
시연은 방어와 회피를 반복하며 벨져의 검격을 막았고, 중간중간 역으로 반격도 가하며 벨져에게 흐름이 넘어가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하며 타이밍을 재었다.
두 검사는 치열한 공방을 계속해서 이어갔으며, 검술에 무지한 이가 봐도 둘의 실력은 굉장히 엇비슷해 보였다.
목검이 아닌, 진검으로 이뤄지는 검술 대련이었지만, 서로의 검엔 어떠한 살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과 검을 부딪치면 부딪힐수록 상대가 더 높은 경지를 보여줬으면 하는 기대감이 시연과 벨져의 눈에 또렷이 돋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을 공방이 이어지고,
아래에서 위로 사선으로 휘둘러진 시연의 검과 상단에서 찍어 내린 벨져의 검이 충돌한 순간,
-채애앵!
이전과 다른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변에 파동이 일었다.
그러면서 두 검사는 동시에 파악했다.
힘과 힘이 충돌한 그 찰나의 순간, 각자의 자세 및 움직임이 미세하게 흐트러졌음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시연과 벨져는 전력에 가까운 속도로 다음 검을 휘둘렀다.
-스스스
파동이 잦아드는 사이, 쉴 새 없이 들리던 평원 위의 검 소리가 멎어 들었다.
그리고 두 검사의 검은 각자 노리려던 급소에 정확히 겨눠져 있었다.
벨져의 검은 시연의 목에,
시연의 검은 벨져의 심장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똑같은 속도로 말이다.
아득한 숨소리만이 서로의 고막을 울리던 차, 벨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승부라고 봐야겠지?”
“그런 것 같군요.”
둘은 동시에 검을 물렸다.
시연은 긴 숨을 토해내며 아직 진정되지 않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당신, 도검술의 계승자였군요.”
“아닌데?”
“감추실 필요 없습니다. 처음 움직임은 이 왕국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롱소드 검술이었지만, 이후 자세를 바꾸고 보여준 움직임은 틀림없는 도검술이었습니다.”
도검술을 구사한 건 맞지만, 계승자라는 말이 잘못되었다.
애초에 도검술이란 이름을 정의하고 그 체계를 구축한 이나 바로 벨져 즉 차시혁 본인이었으니.
하지만 그 사실을 설명할 방도는 없기에, 벨져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처음이군요. 저와 도검술의 계승자를 만나는 게, 레지에타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오셨습니까?”
순간 뜨끔한 벨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나 내색하진 않았고, 덤덤히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80년 전의 그 일 이후, 도검술의 계승한 모든 무인들은 레지에타를 떠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쭤본 말이었는데, 아니었습니까?”
“아니야. 맞아.”
그 세계가 걸어서도, 바다를 건너서도 갈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게 문제일 뿐이다.
시치미를 뗀 벨져는 역으로 물었다.
“그럼 그쪽은?”
“뭐를 말입니까?”
“그쪽은 어디서 배웠냐고. 검술….”
시연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제 이름을 안다면 제가 어떻게 검술을 익혔는지 얼추 아실 텐데요?”
“나 아직 그쪽 이름 들은 적 없는데?”
“아까 레오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저 찾고 있단 사람들, 그거 당신들 아니었습니까?”
정곡을 찔린 벨져는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했다.
시연 또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답했다.
“검술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스스로 지킬 힘을 기르고자, 저희 혈족은 대대로 선대의 검술을 계승하고 익혀왔습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죠. 큰일을 도모하려는 게 아닌, 어디까지나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배워온 거니까.”
“누가 뭐라 했나?”
이번엔 시연이 대답하지 못했다.
우수에 찬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시연을 보며 벨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쪽은 아닐지 몰라도, 제가 검을 다룬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보는 사람들이 이 땅엔 많으니까요.”
“신경 쓰지 마 그딴 거. 그 인간들이 너한테 뭘 해줬다고?”
당황한 시연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떨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미간이 골짜기처럼 찌푸려졌다.
“……근데 왜 자꾸 말을 놓으시죠?”
“그럼. 그쪽도 놓던지.”
벨져는 문제 될 거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잠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짓다가도 고개를 내저었다.
“됐습니다. 그냥 편한 대로 부르시죠.”
“벨져 님~!”
그때, 먼발치에서 둘의 대련을 지켜보던 메이와 수호가 달려왔다.
‘벨져?’
시연으로선 본의 아니게 이제야 이름을 듣게 되었다.
레지에타에선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건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꼬르륵
그때 벨져의 배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배고프십니까?”
“…그런가 보네.”
벨져는 멋쩍은 듯 뺨을 긁었다.
시연 또한 가뜩이나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예정에 없던 대련을 한 터라, 허기가 꽤 진 상태였다.
시연은 엄지를 들며 마을 쪽을 가리켰다.
“마을로 가시죠. 그래도 먼 데서 오셨는데, 제가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좋은 대련을 해주신 거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주시죠. 본의 아니게 제 쪽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먼저 마을 쪽으로 향하는 시연을 벨져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옆에서 자리를 지키던 메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벨져 님. 왜 진심으로 싸우지 않으셨어요?”
“싸운 게 아니야. 대련을 한 거지. 실력이 어느 정도 되나 싶은…….”
“그래도 대단한 것 같아요. 검으로 벨져 님과 이렇게까지 호각으로 겨룰 줄이야. 역시 용사의 후손이라서 그런 걸까요?”
벨져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이번엔 수호가 물었다.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상쾌해. 이상하리만큼.”
마을에 처음 입성했을 때 느낀 그 답답함과 거북함이 시연과 대련을 하는 동안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몸에 비늘이 돋을 정도로 두 분한테서 같은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님의 느끼신 투기를 억제할 존재는…….]수호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말을 삼켰다.
허나 벨져는 이미 몸으로 느꼈다.
자신과 똑같은 검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저 여인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말이다.
“묘하다고 해야 할지, 기구하다고 해야 할지…….”
벨져와 일행들은 그렇게 시연을 따라 다시 마을로 향했다.
* * *
노을이 지는 저녁,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술집으로 몰려들 시간.
시연과 벨져 일행은 떠들썩한 술집 안을 가로질러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시연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휙휙 고개를 돌렸다.
좋지 않은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따라 들어오던 벨져가 툭 던지듯 말했다.
“인기인이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적어도 이 마을 주민들 중 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당사자는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의식조차 안 했지만, 관전자인 벨져의 심경은 매우 불쾌했다.
“술은 드시나요?”
“먹으려고?”
“그럼 술집에 와서 안주만 드실 생각이었나요?”
“너 몇 살인데?”
“19살입니다.”
부르크 왕국에선 술 판매와 관련해서 나이 제한 같은 건 없었다.
따라서 시연은 물론, 더 어린 나이인 메이도 술을 먹는 게 가능했지만…….
“성인도 안 된 처자가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술을 마시겠다고?”
지구식 꼰대 의식이 발휘된 벨져는 눈을 부릅뜨며 시연을 나무랐다.
기가 찬 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 놓는 것까진 얼추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럼 그쪽은 몇 살이기에 저한테 그런 말을 하나요?”
적어도 너보단 많다라는 말을 하려던 벨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본인의 현재 신체나이는 인간 기준으로 18세.
19세인 시연보다 무려 한 살이나 어렸다.
급 곤란해진 벨져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결국, 메이 것을 제외한 세 개의 맥주가 주문되었다.
시연은 바로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가 단번에 비웠다.
“후….”
취기가 오른 시연의 볼살이 붉게 달아올랐다.
벨져는 그런 시연의 모습을 그윽하게 보며 잔을 들이켰다.
그때, 비어있던 주위의 테이블에 다른 손님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채웠다.
언뜻 보기엔 벨져 일행처럼 평범하게 술과 음식을 먹으러 온 이들로 보였지만, 벨져의 눈엔 그리 보이지 않았다.
마계에 있을 때 다른 후보 세력들로부터 감시당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벨져는 경험을 통해 얻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들의 주위로 감시자들이 붙었다는 것을.
이마저도 익숙한 상황이라는 듯 시연이 나직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드시면 됩니다.”
사람들로부터 이런 무례한 시선을 받는 것도 모자라, 감시당하는 것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니.
벨져의 주먹에서 잠시 멈췄던 떨림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사람 없는 술집으로 가는 게 낫지 않았나 싶은데?”
“가봐야 똑같습니다. 차라리 여기처럼 보는 눈들이 많은 게 낫죠.”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사람이 없는 장소라는 건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목격자가 적게 나오는 장소라는 뜻.
벨져는 이런 거북한 상황에서 굳이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가슴 한 켠에서 다시금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오! 이게 누군가?”
그때 낯설지 않은 목소리의 누군가가 벨져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