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73
제173화. 근위 기사단
시연은 반사신경을 발휘해 검을 뽑았다.
머리가 아닌 말 그대로 수천, 수만 번의 발검을 통해 얻은 감각에 의한 동작이었다.
-챙! 스릉! 채앵!
각각 머리, 가슴, 허벅지로 파고든 세 번의 검격은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쐐액!
마지막 하단부에서 정면으로 파고드는 네 번째 검격은 대처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못 막는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 그때,
“정화의 칼날(Blade of purification)!”
시연의 머리 위에서 떨어진 금빛의 칼날이 네 번째 검격을 쳐냈다.
반드시 들어갈 거라 예상한 검사는 크게 당황했지만, 이내 빠르게 물러섰다.
시연은 바로 칼날의 소환한 장본인을 바라봤다.
“자, 잘돼서 다행이네요.”
메이가 멋쩍게 시선을 회피하며 마도서를 덮었다.
덕분에 목숨을 구한 시연은 두어 번 숨을 토해냈다.
허나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섬(一殲)…….”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주문에 이번엔 벨져가 고개를 돌렸다.
차분히, 그러면서도 담대하게.
내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이든, 마수든 상관없이, 그냥 베어버리겠다는 원초적인 마음으로,
단 한 명의 적을 멸하기 위한 베기.
도검술의 제 1경지 일섬(一殲)의 바람 가르기.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비기가 벨져의 눈앞에 있는 남자로부터 발휘되고 있었다.
준비를 마친 남자는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대의 운이 나쁜 걸 탓하시오. 젊은 검사여.”
“과연 그럴까?”
검은 고쳐잡은 벨져는 칼날이 들어오는 방향에 맞춰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쐐액!
빗겨나간 검기는 두 개로 갈라져 벨져의 좌우로 퍼져나갔고, 덕분에 애꿎은 풀과 나무만 싹 베어졌다.
물러난 남자의 곁으로 다시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벨져 옆에도 메이와 수호, 그리고 시연이 붙었다.
“아까 뭐라고 했었지?”
“사할리스의 길드 지부가 습격을 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체 모를 괴한, 아니 도적단으로부터요…….”
시연은 경계를 곤두세우며 눈앞의 무리를 주시했다.
“선수 치기라도 한 건가?”
“정황상 그렇다고 봐야겠죠. 저들과는 어떻게 충돌하게 된 겁니까?”
“그냥 땔감 줍다가.”
“이런 상황에도 헛소리를 하고 싶으세요?”
“진짠데…….”
시연은 말을 말자며 이를 갈았다.
“긴가민가했지만, 그래도 방금 전 저 남자가 보여준 검술로 확신이 들었습니다. 벨져 씨도 그렇겠죠?”
“뭐, 쟤들이 도적단이랑 관계있다는 거?”
“그거 말고요.”
시연은 벨져에게 비기를 날린 남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저들이 보여준 검술은, 틀림없는 도검술이라는 걸요…….”
시연의 말에 남성을 비롯한 검사들은 제각각 동요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 또한 벨져, 시연과 검을 맞대면서 느낀 사실이 있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움직임, 혹은 검술을 지니고 있다고.
불안함이 감도는 대치 상황 속에서, 벨져와 검을 맞댔던 남자가 먼저 검을 거두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거기 검은 머리 여인의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요?”
다짜고짜 이름을 물은 것에 시연은 당황했다.
허나 숨길 것도 없기에, 시연은 당당히 밝혔다.
“차시연입니다.”
검사들의 눈이 또 한 번 크게 뜨였다.
“그대가 용사의 후손 차시연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뭐 잘못됐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나머지 검사들도 일제히 검을 거두었다.
한순간에 바뀐 그들의 태도에 시연은 물론, 벨져도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방금 전 기습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의 신변을 지키고자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방어 행동이라 생각해주시죠.”
“당신들의 정체는 뭐죠?”
“잃어버린 용사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자들이라 생각해주십시오. 지금은 많은 것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남자의 신호에 검사들은 하나둘 숲속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무사 안녕하시길.”
무사를 기원하는 말을 끝으로 남자도 사라졌다.
알아낸 건 하나도 없고, 의문만 가득 남은 만남.
시연은 당장에라도 쫓아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정작 벨져는 쫓긴커녕 검을 집어넣으며 움직일 여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안 따라가셔도 되겠습니까?”
“싸울 마음이 없어 보이는 얘들이랑 굳이 싸울 필요는 없지.”
벨져는 그리 말하면서 스리슬쩍 수호를 봤다.
수호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미 냄새를 다 맡아놨다는 의미였다.
-스슥!
검사들이 물러나자마자 이번엔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벨져 님을 뵙습니다!”
시연과 메이를 따라온 흑마교회의 단원들이었다.
“너흰 또 어쩐 일이야?”
아까부터 기척을 감지했던 터라, 벨져는 별 감흥 없이 그들을 맞이했다.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시연이 벨져의 어깨를 잡으며 소리쳤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사할리스에서 멀리 벗어나셔야 해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벨져는 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사할리스가 도적들한테 습격당했다면서? 거기 안 가?”
“거길 왜 갑니까?”
“우리 도적단 토벌하러 온 거 아니었니?”
벨져는 시연이 여기 온 목적을 그새 잊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그녀의 정신 상태를 살짝 걱정했다.
“도적단은 이미 토벌되었을 겁니다!”
대답은 아이리네가 대신했다.
“부르크 왕국의 1왕자 ‘레이든 부르하르크’가 왕실 근위 기사단을 이끌고 사할리스에 입성했습니다!”
“걔들은 또 왜?”
“표면상으론 도적단 토벌을 돕고자, 왕실에서 특별히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근위 기사단 중 일부엔 성교회의 단원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아이리네의 말이 끝난 순간, 수호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돌린 도시 쪽으로 눈을 돌린 수호는 밤바람에 실려 오는 불결한 냄새에 눈을 찌푸렸다.
“용사의 후손 차시연의 옆을 지키고 있는 벨져 님의 생포입니다!”
* * *
그 시각, 사할리스 길드 지부.
지부 밖에선 도적단의 습격에 당한 용병과 모험가들이 부상을 치료 중이었다.
“젠장! 비열한 놈들 같으니라고! 한창 자고 있을 야밤에 쳐들어와?”
“이 도시는 대체 방비를 어떻게 하는 거야? 저런 수상한 놈들이 출입하게 놔두고!”
“하마터면 내가 당할 뻔했군.”
제각각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비록 도적들에게 당했다곤 하나, 그들은 생명에 치명적인 급소는 대부분 노리지 않았고, 팔, 다리 등 다치면 전투가 힘들 부위들만 집중 공략해서 무력화시켰다.
그 과정이 쭉 이어졌다면, 토벌대 전원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겠지만,
마치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를 예상이라도 한 듯, 야밤에 뜬금없이 사할리스에 온 기사단이 있었으니.
바로 부르크 왕실 가문 직속의 근위 기사단이었다.
“근데 뭐지? 왜 갑자기 근위 기사단이 사할리스에 온 거야?”
“누가 보면 도적단이 아니라 반란군인 줄 알겠네. 솔직히 기사단이 온 것까진 그렇다고 치겠는데…….”
“저기 있는 저 사람. 진짜 1왕자야?”
용병과 모험가들의 시선은 전부 거리 중앙에 자리한 백금빛의 갑옷으로 무장한 기사단 쪽에 있었다.
그들의 앞엔 가죽 갑옷과 검으로 무장한 도적단들이 대치 중이었다.
언뜻 봐도 기세가 우세한 쪽은 기사단이 쪽이었으며, 반면 도적단은 일부 단원들이 부상 부위를 쥐고 있는 등, 수세에 몰려 있었다.
곧 기사단 쪽에서 금발의 젊은 남성이 앞으로 나왔다.
부르크 왕국의 1왕자, 레이든 부르하르크였다.
“너희들이 다인가?”
당장 보이는 도적단의 수는 스물.
아무리 야밤의 기습이라곤 하나, 고작 스무 명을 상대로 200명에 달하는 토벌대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토벌대들도 할 말은 있었다.
도적단이 보여준 검술은 그동안 이 일 저 일 다 해본 용병과 모험가들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낯선 검술이었다.
그냥 중상급 기사들 수준의 검술이겠거니, 하고 상대했다가 제대로 당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근위 기사단은 달랐다.
그들은 기민하고 날렵하게 몰아치는 도적단의 검술을 묵직한 롱소드 검술로 맞받아쳤다.
거기다 도적단은 토벌대와 이미 한 번의 전투를 거친 터라, 체력적으로 다소 지친 상태였으며, 그 상태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정예 기사들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레이든은 그들 앞에서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검을 버리고 투항하라. 먼저 투항하는 이들은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도적단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긴급 치료 중이던 단원들도 다시 일어서서 검을 잡는 등, 끝까지 맞서겠단 결의를 보였다.
레이든은 그들을 잠시 훑어보았다.
“정작 있어야 할 자는 보이지 않는군.”
그러면서 이번엔 주변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보고 있는 거 다 압니다. 그만 나오시죠.”
주변엔 대답 없이 적막만 감돌았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이번에도 나오지 않으시면, 이들의 목숨은 전부 용사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될 겁니다.”
경고에 이어 레이든은 손가락을 들어 셋을 가리켰다.
들자마자 하나를 접어 둘을 가리켰고,
나머지 하나를 이어서 접으며 하나를 가리키자, 대기 중이던 근위 기사단이 일제히 자세를 바꾸었다.
그렇게 나머지 하나까지 접어지려는 순간,
“성격 급한 건 여전하시군요. 레이든 황자님.”
도적단이 아닌, 군중 속에서 크진 않지만, 선명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덥수룩한 수염에 머리를 풀어 헤친 누가 봐도 거지의 행색.
그는 부상 중인 용병들을 지나쳐 유유히 도적단의 앞으로 이동하며 레이든과 대치했다.
“오래 사셔야 할 분이, 삶을 그리 조급하게 사시면 어쩌십니까?”
“경만큼 살 생각도 없으니, 괜한 걱정은 집어치우시죠.”
둘은 서로 한마디 주고받으며 신경전을 벌였다.
노인은 슬그머니 눈동자를 돌려서 도적단의 상태를 확인했다.
“설마하니, 황자님께서 직접 근위 기사단을 몰고 올지는 몰랐습니다.”
“저도 경께서 아직 살아서 이 짓거리를 이어가실지는 몰랐습니다.”
“얼추 승기를 잡으신 것 같긴 한데, 어떻습니까? 오늘은 제 얼굴을 봐서 이들을 그냥 보내주시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오늘 보내봐야, 훗날에 다시 잡힐 거. 그냥 경께서도 이리로 오시죠. 지금 오시면 최소한의 대우는 해드리겠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살벌한 주고받음이 이어지고,
이내 둘은 말로는 해결될 게 없음을 각자 판단한 듯, 손이 서서히 허리로 향했다.
“오늘 검을 뽑을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이 늙은이가 춤이라도 한번 춰야지. 황자님의 마음이 풀리실 듯하군요.”
“저도 경의 예속들을 잡겠다시고,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춤사위는 짧게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작심한 둘은 그대로 검을 뽑았다.
검과 검이 마주한 순간 팽팽함은 더욱 고조되었으며, 그 광경을 본 일부 사람들은 기백에 압도된 나머지 숨을 참기도 했다.
두 검사는 누가 먼저를 가릴 새도 없이, 동시에 첫발을 뗐다.
-저벅
허나 첫발을 뗀 것이 무색하게, 더 내딛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다른 방향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 것이다.
멈춘 몸과 함께 자연스레 돌아가는 눈.
평범한 이의 발소리였다면 이렇게 반응하지도 않았다.
절대 방심할 수 없는 강자를 눈앞에 두고, 본인들의 기백으로 주변을 잠식한 이 긴장감 있는 상황에서, 차마 몸을 멈추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던 건,
단순 발걸음만으로도 둘의 기백을 아울렀기 때문이었다.
누구인가?
대체 누구길래?
자신들이 형성한 이 검의 영역에 발을 들이다 못해 흔들림까지 준단 말인가?
두 검사는 어둠 진 골목 끝자락으로부터 서서히 나타나는 발소리의 주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등장한 발소리의 주인은,
“호오?”
각기 다른 자세로 검을 쥐고 있는 둘을 보며 흥미롭단 반응을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