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3
제193화. 같은 검술
용마족의 침공으로 100년 전 역사가 재현된 레지에타.
허나 인간들도 그 긴 시간 동안 손만 놓고 있던 건 아니었다.
주요 도시마다 성력의 결계를 펼치면서 용마족의 접근을 막았고, 성교회 소속 단원들과 마법사들이 각 지역마다 방어선을 구축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신체 능력이 월등히 앞서는 용마족과 대등하게 싸우긴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사벨의 정령들, 세나와 시종들, 루비아와 몽마족들이 앞장서서 싸워주면서 인간들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선 마족이 인간을 위해 싸워주고 있단 얘기가 다양하게 퍼지고 있었다.
“마족이 마족이랑 싸운다고?”
“우릴 도와주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어? 자기들끼리 내분 난 거겠지!”
“그럼 지들 땅에서 싸우면 되지. 왜 여기서 싸우고 지랄이야!”
“그 벨져라는 마왕도 지금 마크리아 평원에서 다른 마족과 싸운다는 것 같은데?”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몸을 숨기고 손을 모은 채, 싸움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빌 뿐이었다.
“그 용사의 후손은 뭐 하고 있대?”
“당연히 싸우고 있겠지! 엄청 바쁘게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
물론 시연도 쉴 틈 없이 용마족과 싸우는 중이었다.
적인 줄만 알았던 이사벨과 등을 맞대면서.
“인페르노 플레임!”
상급 불의 정령 피닉스(Pheonix)가 시전한 대규모 화속성 마법에 고공비행 중이던 용마족이 속수무책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금세 회복하여 다시 하늘로 비상했다.
“딴 건 몰라도 맷집 하나는 정말 최강이네요.”
이사벨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피닉스에게 계속 마력을 공급했다.
그녀는 용마족을 군단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계속 시연을 살폈다.
“하압!”
우려와 달리, 시연은 용마족과 너무나도 잘 싸워주고 있었다.
한 명만 맡아도 다행일 거라 생각한 것관 다르게, 시연은 용마족 두 명, 세 명을 상대로도 고전하지 않고 능숙하게 맞섰다.
“진짜 싹이 자라 오르기 전에 죽여야 하나…….”
훗날 마계의 진짜 위협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지금이라도 처리하려나 싶은 생각이 든 순간,
“라이트 로드 슬래쉬!”
시연이 맞서 싸우던 용마족에게 성검술 비기를 날렸다.
성력이 발산한 신성한 기운에 휩쓸린 용마족은 전의를 상실한 채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 짧은 사이에 용마족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이전보다 훨씬 정교해지고 더 위력적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사벨은 눈을 의심했다.
“뭐야 저거?”
분명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야 할 용사의 기술이지만, 시연의 기술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딘지 모르게도 아니었다.
방금 시연이 구사한 비기는 분명,
벨져가 자주 사용하던 마검술 ‘다크 로드 슬래쉬’와 매우 유사했다.
이사벨은 잠시 용마족과 대치 중이란 사실도 잊은 채, 시연의 검술을 유심히 지켜봤다.
마음을 주고, 애정을 쏟는 존재일수록 뭐든 더 자세하게 보이는 법.
그동안 이사벨은 벨져와 단일화하면서 지금까지 메이 못지않게 벨져의 전투를 쭉 봐왔었다.
애초에 마계에선 검을 다루는 이가 거의 없었기에, 비교 대상이 없기도 했지만,
용사의 검술을 직계로 계승한 시연의 움직임을 보니, 확 와닿았다.
벨져와 시연의 검술이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것을.
전투 중에 느껴진 강렬한 시선에 시연도 이사벨을 돌아봤다.
거의 죽일 듯이 쳐다보는 날 선 눈빛에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차올랐다.
“뭐, 뭡니까?”
“당신! 그 검술 어디서 배웠어요?”
이사벨은 아예 터벅터벅 다가오며 시연을 가까이에서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성력이 전승된 시연의 검에서 빛이 발했다.
“우웁.”
성력이 발산한 기운에 구토감을 느낀 이사벨은 급히 물러났다.
“아크베리아에 성력이 전승되었을 땐, 제게 안 오시는 게 좋습니다. 결국은 당신도, 성력에 취약한 마족이니까요.”
“잠깐만,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이사벨의 미간이 더욱 가늘게 좁혀졌다.
“예?”
“당신 검! 그거 지금 뭐라고 불렀냐고!”
“아, 아크베리아 말입니까?”
시연은 뭐가 문제냐는 듯 성검과 이사벨을 번갈아 쳐다봤다.
아크베리아.
벨져가 다루는 마검과 똑같은 이름.
인간이 다루는 성검과 마족이 다루는 마검의 이름이 동일한 것을 과연 우연으로 봐야 할까?
이사벨은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너 뭐야?”
이사벨은 급기야 감정을 자제 못 하고 소리쳤다.
“너 뭐냐고! 뭔데 용사의 후손이라는 네가 벨져의 검술을 다루는 거야?”
갑작스러운 추궁에 당황한 것도 잠시,
시연도 눈초리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당신들의 마왕이란 자는 대체 어떻게 저와 제 선조의 검술을 답습한 겁니까?”
“답습?”
검이 제아무리 인간의 무기라고 한들, 이사벨은 차마 자신이 인정한 마계 최강의 남자가 한낱 인간의 비술을 답습했을 거라곤 차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말싸움을 이어가려는 차,
“이사벨 님!”
마크리아 평원에서 수호와 함께 날아온 메이가 하늘에서 반가운 손짓을 하며 나타났다.
“드, 드래곤?”
처음 보는 수호의 본모습에 시연은 잠시 넋을 놔버렸다.
그사이 땅에 안착한 메이가 쪼르르 달려오자 이사벨이 바로 따지듯 물었다.
“여긴 왜 왔어요?”
“벨져 님이 다른 쪽을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지금 그룸 후보님이랑 싸우고 계세요.”
“식탐의 종주랑요?”
용마족의 대표와 1대1로 혈전을 벌이고 있단 사실도 놀랐지만, 정작 이사벨이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당신들, 알고 있었죠?”
“네? 어떤 걸요?”
“저 용사의 후손이라는 인간이랑, 벨져가 구사하는 검술이 비슷하다는 거 말이에요! 비슷한 걸 넘어서 아예 똑같잖아요!”
메이와 수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벨져 어딨어요?”
수호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마크리아 평원이라고,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긴 합니다만…….]“당장 안내… 아니지. 잠깐 기다려요.”
이사벨은 수호 등에 타려다 말고, 다시 정령들과 전투 중인 용마족들을 주시했다.
“정령의 계약자로서 명하노니, 모든 상급 정령이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세요!”
-후우웅!
주문을 읊은 동시에 이사벨의 발밑 주변으로 다수의 소환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앞서 소환했던 불의 대정령 피닉스를 비롯해,
물의 대정령 나이아드(Naiad), 바람의 대정령 에리얼(Ariel), 얼음의 대정령 프린셔(Freinture)까지.
마계에서도 볼일이 드문 고위 정령들이 인계에 한꺼번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이곳을 절대적으로 사수하세요.”
정령들을 제각기 고개를 끄덕였고, 그 즉시 용마족 군단과의 전투를 개시했다.
급 어지러움을 느낀 이사벨은 이마를 붙잡으며 휘청거렸다.
수호가 부축해주었다.
[괜찮으십니까?]“신경 쓰지 마요. 마력을 한 번에 많이 써서 그런 거니까. 그보다 빨리 날 벨져가 있는 곳으로 인도하세요.”
[알겠습니다.]수호는 바로 드래곤 폼으로 변신해 이사벨과 메이를 등에 태웠다.
이사벨은 아직도 넋을 놓고 있는 시연을 향해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요?”
“……네?”
“여긴 내 정령들이 알아서 해줄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말고 빨리 이 위로 올라타세요.”
“저, 저도 말입니까?”
“당신이라도 옆에 있어야, 그 남자가 시치미 안 떼고 바른대로 불겠죠. 잔말 말고 얼른 오세요.”
약 2초 정도 더 멍을 때리던 시연은 검을 집어넣고 얼떨결에 수호의 등에 올라탔다.
처음 타보는 드래곤의 등은 무척이나 포근하면서도 안락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꽉 잡으세요 시연 님.]수호는 그렇게 모두를 데리고 벨져가 있는 마크리아 평원으로 향했다.
수호의 비행 속도를 고려하면 벨져가 있는 마크리아 평원까지는 10분이면 도착했다.
그렇게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질 때쯤.
“…어?”
돌연 메이가 허공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왜 그래요 메이?”
“그게 좀, 이상해요.”
“뭐가요?”
“벨져 님의 상태요…….”
메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사벨을 돌아봤다.
벨져의 퍼밀리어가 된 이후, 지금까지.
메이는 단 한 번도, 벨져에게서 생명이 위급할 정도의 나쁜 기운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벨져가 있는 마크리아 평원이 가까워질수록.
“굉장히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인 기운이 벨져의 영혼으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 * *
마계의 투기는 단순히 싸움을 향한 욕망만 증가시키는 기운이 아니었다.
흡수자의 기본적인 신체 능력은 물론, 맷집과 마력도 더더욱 강해질뿐더러, 때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능력까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룸은 그 마계의 투기를 무려 절반을 넘게 흡수했으며, 이로 인해 맷집과 무력 면에선 전대 마왕 벨시페르를 웃돌 정도로 강력해졌다.
하지만 그룸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투기까지 빨아들이면서 두려움을 없애고, 손가락 마디까지 잘근잘근 씹어 먹어서 모든 힘을 흡수하려 했던 이 벨져란 마족이,
100년 전, 마계의 모든 투기를 흡수한 마왕을 상대로도 이겼던, 용사의 영혼이 들어있다는 것을.
그룸으로선 모를 수밖에 없었다.
“커거걱….”
힘없이 벌어진 입에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피.
그룸은 살면서 오늘만큼 식욕을 느끼지 못한 날이 없었다.
분명 온몸엔 힘이 들어가지 않고, 뱃속에선 고동 소리까지 울리고 있음에도,
음식을 먹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자고 싶다 뿐이었다.
-쿵!
그룸의 육중한 신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날카롭게 솟은 그의 양쪽 뿔 사이엔 그의 식욕을 없앤 장본인인 벨져가 피 묻은 아크베리아를 쥔 채 자리하고 있었다.
그룸에게서 더는 일어날 여지가 없음을 판단하고선 검을 집어넣었다.
“안 죽이실 겁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전투를 관전하던 다일이 물었다.
“얘는 그 비만 마족이랑 달라. 잘못한 게 없잖아.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지. 나 대신 그 지랄 맞은 기운을 전부 먹어 치워줬으니까.”
이내 엎어진 그룸의 얼굴 사이로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일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참으로 교만하구나…….”
저 답 없는 용마족이 언제 일어나 다시 싸우자고 달려들지도 모르거늘,
심지어 벨져는 무방비 상태가 된 그룸에게서 마혈석을 떼 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함께 전투를 지켜봤던 다일의 퍼밀리어 페르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다일 님. 지금이 기회 아니겠습니까?”
그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긴 했으나, 벨져 역시 큰 타격을 입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미 온몸은 맨살이 보이지 않을 만큼 피로 범벅되어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피 섞인 가래가 터져 나왔다.
용케 정신을 잃지 않은 게 대단할 따름이었다.
“지금이라면 제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결심을 굳힌 페르는 이미 검 자루에 손을 얹고 있었다.
다일 또한 지금이 최선의 기회라는 생각에 지시를 내리려는 순간,
-스릉!
벨져가 다시 검을 뽑았다
“이봐 마족 검사.”
갑자기 자신을 부른 것에 당황한 페르는 얼떨결에 검을 반쯤 뽑았다.
“그럼 너 말고 마계에서 검 쓴다고 설치는 놈이 누가 있냐?”
굳이 꼽자면 벨져와 페르 단둘뿐이었다.
“내가, 예전부터 너한테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
“뭡니까?”
“너, 그 검으로 얼마나 많은 마족을 죽였냐?”
벨져는 피에 물들여진 섬뜩한 눈동자를 굴리며 덤덤히 말을 이었다.
“이 도검술이란 게 말이야. 사실 기본 정신이라는 게 있거든? 꼭 멸해야 하는 적이 아니면, 필요 없는 살생은 하지 않는다……. 그냥 비술서로만 검술을 익혔던 네놈은 모르고 있었을 거야.”
그 붉은 시선에서 위협을 느낀 페르는 검을 완전히 뽑아 자세를 취했다.
“근데 내가 붙어봤던 네놈의 검은…… 짙어.”
“뭐가 짙다는 겁니까?”
“살검(殺劍)의 기운…. 그냥 자기 하나 강해지자고 마수든, 마족이든 닥치는 대로 베어 죽인 흔적이 니 검에 굉장히 짙게 묻어있어. 그래서 내가 엄청 역겨웠거든. 너 새끼의 검이…….”
“그게 이제 와서 왜 궁금하신 거죠.”
“알려줘야 하거든. 곧 올 사람한테.”
어느새 살기마저 느껴진 눈을 희번덕거리며, 벨져는 다일과 페르를 향해 검을 겨눴다.
“검을 단련해도, 네놈처럼 역겹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