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97
제197화. 돌아오지 마
레지에타를 재침공한 마족은 인간들에 의해 전부 토벌되고,
그들의 주축이었던 마왕은 차시연과 격렬한 혈전 끝에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불을 지피고 축하하며 노래를 불러댔고, 용사를 찬양하는 구호성이 도시마다 울려 퍼졌다.
하지만 승리에 취해있는 인간들 중 상당수는 진실을 알지 못했다.
레지에타를 재침공한 마족은 순전히 인간들의 손에서만 토벌된 게 아님을,
그들은 소수의 마수 무리만 물리쳤을 뿐,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할 수 있는 용마족들은 건들지도 못했다.
거기에 벨져는 시연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게 아니었다.
그저 자취만 감추었을 뿐.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알 필요도 없었고, 지금의 현실에 충분히 만족했으니.
언제 다시 모습을 드러내 또 다른 파멸의 시간을 가져올지도 모르건만,
그 잠깐의 기쁨에 취해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시연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 * *
벨져가 레지에타에서 모습을 감추고 일주일이 흘렀다.
에헤른에 도착한 시연은 오자마자 바로 현자들을 대면했다.
“수고했네 시연! 참으로 장한 일을 해주었어!”
카리타스가 가장 먼저 달려와 시연의 손을 맞잡았다.
시연은 그 손을 정중히 뿌리치고선 분명하게 말했다.
“저는 마왕과 싸워서 이긴 게 아닙니다.”
“아네. 알고 있어. 하지만 열심히 싸워준 건 사실 아닌가? 그 악랄한 마족이 죽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자가 왜 죽어야 하죠?”
시연의 날 선 물음에 카리타스의 낯빛이 어둡게 변했다.
“벨져 그 남자가 실질적으로 레지에타에 끼친 피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수하들이 대륙 곳곳에 나타난 용마족들과 싸워주면서 우리 인간을 지켜줬습니다! 현자님들도 아실 거 아닙니까?”
세 현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 후, 순결의 현자 산테가 입을 열었다.
“시연 양은 그 벨져란 마족이 왜 레지에타에 왔다고 생각하지?”
시연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 정말 그럴까? 아니야. 우리도 알고, 자네도 알다시피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 그게 대체 뭘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습니다.”
“그래 맞아! 알 수 없네! 그 마족의 입으로 직접 듣지 않고선 모르지. 그렇기에 더욱 위험한 거야! 그래서 더더욱 없애야 하는 거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막상 나올 말은 없었다.
분위기를 살피던 카리타스가 둘 사이를 중재하며 나섰다.
“솔직히 고백하지. 마크리아 평원에서 보았던 그 힘은 우리가 쓴 걸세. 우리는 창세신 레지에 여신님의 가호를 받아 레지에타 대륙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사명이 있네. 불결한 마족 무리가 인계를 파멸시키는 걸 막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여신님의 힘을 썼어야만 했지. 거기에 자네가 휘말렸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네만…….”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성력이었으면 평원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가 전부 초토화되었을 거 아닙니까? 그 근방에는 무고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그 사람들 희생시키실 생각이셨습니까?”
시연의 당찬 지적에 카리타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우리가 그 힘을 왜 썼을 것 같나? 그건 다 자네가 약했기 때문이야 시연 양!”
그때, 보다 못한 파티엔이 나섰다.
“100년 전의 차시혁도 이 힘을 쓰는 걸 반대했지. 그래서 우린 말했네. 자네가 마왕을 물리쳐주지 못한다면 우리도 이 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시혁은 보란 듯이 마왕을 물리쳐줬지! 이제 알겠는가 시연 양? 우리가 힘을 쓰지 않길 바란다면, 시연 양이 더 강해지는 수밖에 없네! 이게 다 시연 양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시연의 내면에서 낯선 감정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경멸.
현자들을 향한 경멸감이었다.
자신이 약해서? 약해서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 거기까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힘에 휘말릴 무고한 사람들은?
그들은 정말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그렇게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얻은 질서가 무슨 의미가 있단 걸까?
이것이 정말 자신이 지키고 싶은 세상의 질서인가?
급 밀려온 회의감에 시연은 고개를 푹 떨궜다.
그런 시연의 어깨에 산테가 손을 얹었다.
“시연 양. 자네는 선조가 행한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실수… 요?”
“지금 세상 사람들은 자네를 마왕을 물리친 영웅이라 칭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네. 앞으로 자네에게 펼칠 세상을 상상해보게. 얼마나 좋은가? 돈과 명예는 물론, 그보다 더한 욕망도 채울 수 있네. 그냥 이 세상을 누리게. 자네는 그럴 자격이 있어.”
꾸며진 세상을 누려라.
즉 입 닥치고 살라는 이야기였다.
누구처럼 나대다가 몰락하지 말고.
“자격이라고 하셨습니까……?”
현자들을 향한 시연의 경멸감은 순식간에 분노로 진화했다.
“그럼 하나만 묻겠습니다. 현자님들은 대체 어떤 자격으로 제 선조이신 차시혁을 죽이셨습니까?”
카리타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헛웃음을 뱉었다.
“질문이 좀 이상하군 시연 양. 차시혁은 우리가 심판한 게 맞지만, 이유 없이 그를 죽인 게 아니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다시피, 입에 다 담을 수도 없는 죄를 저질렀으니…….”
“정말 그분이 그 죄를 저질렀습니까?”
시연의 한 손은 어느새 검 자루에 얹어져 있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그 죄는 정말로 제 선조께서 저지르신 게 맞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차시연?”
산테의 어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당신들이 지키고 싶었던 건 레지에타의 질서가 아닌, 본인들의 안위 아니셨습니까? 그래서 제 선조를 죽이신 거겠죠! 그분께선 당신들의 그 추악한 진면을 알아버렸으니까요!”
-스릉
시연은 결국 검을 뽑았고 현자들을 향해 겨누었다.
허나 현자들은 당황하긴커녕, 오히려 킥킥 웃어대며 박수까지 쳤다.
가장 먼저 웃음을 멈춘 산테가 말했다.
“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지금이라도 그 검을 집어넣고, 여길 나가게.”
“당신들의 입으로 진실을 듣기 전엔, 여길 나가지 않을 겁니다. 물론, 당신들도 나갈 수 없습니다!”
진실이란 말에 산테는 다시 한번 웃었다.
“진실. 진실이라. 왜 인간들은 그런 의미 없는 것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지금 네 모습을 차시혁이 본다면 아마 이렇게 얘기할 것 같군.”
“뭐라고요?”
“때로는 모르는 게 낫다고.”
그 말은 시연에게 스위치로 작용했다.
끝내 분노가 이성을 잠식한 시연은 아크베리아와 함께 현자들에게 질주했다.
하지만,
-쿵!
그 질주는 1초도 못 가고 멈춰버렸으며, 몸의 균형을 잃은 시연은 바닥에 고꾸라졌다.
이건 마치 보이지는 않은 무거운 압력이 온몸을 짓누르는 기분.
순식간에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시연은 간신히 고개만 든 채 현자들을 쳐다봤다.
현자들은 아예 배까지 부여잡으며 시연의 비참한 모습을 조롱하고 있었다.
“정말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똑같이 행동하는군!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어! 암 그런 법이지!”
“이보게 시연 양. 우리가 싸울 힘이 없어서, 마족들과 안 싸웠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 우린 싸울 필요가 없기에 안 싸운 거야! 용사라는 이름의 다루기 좋은 인형이 있으니까!”
인형. 인형이란다.
레지에타의 평화가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악착같이 싸워온 자신에게 인형이라니.
굴욕감과 수치심이 몰려온 시연은 어떻게든 움직이고자,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력이 시연의 몸을 더욱 짓눌렀다.
“레이든 왕자.”
카리타스의 부름에 지하광장의 문이 열리며 레이든이 들어왔다.
순간 시연의 상태를 보고선 크게 놀랐지만, 빠르게 표정을 고쳤다.
“지금 당장 차시연을 왕국, 아니 레지에타의 대역 죄인으로 규정하고, 대륙 전역에 알리세요.”
“죄, 죄목이 무엇입니까?”
“적과의 내통으로 할까요? 왕국을 찾아왔던 그 이사벨이란 마족과 일련의 모의를 꾸몄다고 하면 좋겠군요. 레이든 왕자도 현장에 있었으니, 더욱 신빙성이 있을 겁니다.”
대놓고 누명을 씌우는 행위에도, 레이든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현자님들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들이 내린 지시를 이행할 뿐.
레이든은 분노와 억울함에 가득 찬 시연의 눈을 순간적으로 마주쳤지만,
“당장 죄인을 끌고 가라.”
바로 시선을 회피하며 밖에 대기 중이던 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 * *
에헤른 왕성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지하 공간.
벽면에는 습기가 물방울 모양으로 떨어지고, 발밑에는 미끄러운 이끼가 쌓여 있다.
그 이끼의 끝에는 몸이 쇠사슬로 구속된 시연이 만신창이의 상태로 자리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이틀이 지났는지, 사흘이 지났는지도 알 수가 없는 이 고독하고도 비참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시연의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단 하나였다.
‘성급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너무 성급히 저질러버렸다.
현자들의 위험성은 이미 루백도 경고하지 않았는가?
자신보다 몇 배는 강했을 차시혁도 제압한 그들에게 무턱대고 반기를 든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할 따름이었다.
통곡의 신음이 지하 공간에 처절하게 퍼지는 그때,
-터벅
발소리가 들리며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연은 기척만으로도 누군지 바로 직감했다.
“차시연…….”
현자들의 지시에 따라 그녀를 여기 가둔 장본인, 레이든 왕자였다.
오른손엔 검을 쥐고 있었다.
자신을 죽이러 온 것이라고 판단한 시연은 아무 말 없이 목을 내주었다.
레이든은 기다렸다는 듯 검을 들었고,
-삭!
시연을 구속하던 사슬을 잘라냈다.
시연의 몸엔 상처 하나 입히지 않았다.
한순간에 몸이 자유로워진 시연은 얼떨떨한 눈으로 레이든을 바라봤다.
“여러 눈을 피하느라 좀 늦었다. 밖에 말을 대기시켜놨으니, 그걸 타고 속히 왕국을 아니, 대륙 자체를 벗어나라.”
“……저를, 풀어주시는 겁니까?”
“그들에겐 도망갔다고 알릴 것이다.”
시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왕자는 현자들의 명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진짜 인형이 아니었던가?
“내 비록 왕자의 직함을 달고 있다곤 하나, 실상은 내 마음대론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인형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에게 감히 대적할 생각조차 못 했었지. 고작 이 비루한 목숨 하나를 지키겠답시고…….”
레이든 또한 질서 유지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현자들의 폭정을 싫어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항상 꼬리는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대항한 이들의 최후를 항상 봐왔으니까.
“하지만 넌 다르다. 하나뿐인 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은 채, 마왕과 용감히 맞서주었고, 감히 그 현자들에게 진실을 말하라며 나무라기까지 했어. 왕국과 세상을 구해준 네게 이 정도밖에 해줄 수 없어서, 무척 부끄러울 따름이다.”
“레이든 왕자님…….”
시연은 비틀거리는 몸을 다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든은 평범한 검 한 자루와 작은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당장 줄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경고하는데, 다신 돌아오지 마라. 레지에타니, 용사의 후손이니, 모조리 잊고, 너 하나만을 위해서 살아라. 이 땅에서 네가 할 일은 끝났다.”
아니라고.
아직 자신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검을 받은 시연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현자들에게 대적한다고 한들, 이길 가능성도 미지수일뿐더러,
한 번 더 패배했다간 이번엔 자신만이 아닌, 이렇게 도움을 준 레이든 왕자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는 내 쪽에서 갚은 것이다.”
결국, 시연은 입술을 꽉 깨물며 레이든 왕자를 지나쳤다.
시간이 지나 보름달이 검은 하늘 중천에 뜬 한밤중.
시연은 준비된 말을 타고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 에헤른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났다.
이후 얼마나 달렸을까?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광활한 초원 위에서 시연은 멈춰 섰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밝은 달빛.
저 달을 이젠 레지에타에서 볼 수 없단 생각에 먹먹함이 차오른 시연은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아아아아아!!!”
절규하고 울부짖어 봐도 위로해줄 이 하나 없는 비참한 현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애초에 잘못을 하긴 한 건지,
그냥 나란 존재가 태어난 것부터 잘못된 건 아닌지,
이런 식으로 구질구질하게 삶을 이어갈 필요가 있는지.
시연은 진지하게 의문이 들었다.
삶에 대한 회의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가는 그때,
-피이잉!
시연의 주변에서 갑자기 발광현상이 일어났다.
“……빛?”
정체불명의 빛은 다름 아닌 레이든 왕자가 주었던 주머니에서 일고 있었다.
이끌리듯 주머니에 손을 넣은 시연의 손에 이윽고 뭔가가 잡히니,
-화악!
빛이 한순간 크게 번지면서 시야를 덮쳤다.
빛은 머지않아 걷히면서 시연의 시야도 차츰 되돌아왔지만,
“여긴?”
다시 눈을 뜬 시연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전이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앞엔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마족 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시연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시혁의 후손님…….”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