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
제2화. 그래서 내가 누구라고?
“역대 최강의 마왕이라 불렸던 벨시페르 사후 100년. 그 시간은 우리 마족에게 있어선 지우고 싶은 역사일 만큼 매우 수치스러웠습니다.”
회담을 진행하는 백발 마족을 제외하고, 회담장에 자리한 마족들은 나를 포함해 총 여덟.
그들의 외관은 전체적으로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얼굴엔 눈, 코, 입이 달려 있고, 몸엔 두 팔과 두 다리가 멀쩡히 붙어 있었으며, 남녀 구분도 단번에 가능했다.
나름 친숙하다면 친숙한 외형이었다.
뿔, 날개, 꼬리 등 인간으로선 전혀 가질 수 없는 다른 부위가 있다는 것만 빼면.
“마왕은 마계의 최대 권력자이자 마계에서 가장 강한 절대자를 뜻합니다. 우리 몸속에 마족의 피가 흐르는 한, 우린 마왕의 명을 거부할 수 없으며, 마왕의 뜻이 곧 마계의 뜻임을 인지하고, 전부를 바쳐야 합니다.”
나를 제외한 일곱 마족은 전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허나 절대자가 부재한 그 100년 동안, 우리 마계는 힘의 중심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그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힘이 곧 권력이자 모든 것인 이 마계에서 마왕의 부재를 더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서, 지금의 여러분이 모인 것이죠.”
힘이 권력이자 모든 것인 세계라.
단순해서 좋네 아주.
“1달, 1년, 어쩌면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겠죠. 하지만 저를 제외하고 지금 이 회담장에 계신 마족 중에서 새로운 마왕이 선출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여러분은 전부 자신이 마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허나 아시다시피 마왕의 권좌는 하나뿐입니다.”
그 전부에서 나는 좀 빼줬으면 좋겠는데?
난 이 자리에 원해서 온 게 아니거든?
“본인이 진정으로 그 자리엔 앉길 원한다면, 나머지 후보들로부터 인정을 받으십시오. 힘으로 굴복시키든, 협상으로 거래를 하든, 수단은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일곱 후보로부터 인정을 받은 단 한 명의 후보만이 왕좌에 앉을 수 있으며, 그 즉시 마왕의 이름으로 마계 전체를 통솔할 수 있습니다. 이 선출 과정에 따르고 싶지 않은 분이 계신다면 지금이라도 여길 떠나십시오. 말리지 않겠습니다.”
당연하겠지만(?) 그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
분위기에 압도된 나머지,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전부 동의하신 걸로 알고 계약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마혈석을 꺼내 본인 앞에 내려놓으시지요.”
마혈석? 그건 또 뭐야?
나는 슬며시 눈을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일곱 마족은 각자 가슴에 달린 브로치 비슷한 걸 떼더니 테이블 위에 올렸다.
다행히 내 가슴에도 비슷한 것이 달려 있었다.
루비처럼 보이는 붉은 보석이 달린 브로치였다.
일단 그들과 마찬가지로 브로치를 앞에 내려놓았다.
각자의 브로치를 확인한 백발 마족은 기다릴 것 없이 바로 주문을 읊었다.
나로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주문이었다.
이윽고 주문에 반응한 보석에서 붉은빛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얼마 가지 않아 촛불 꺼지듯 사그라졌다.
“계약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더 논할 것도 없을 테니, 회담은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끝이라는 말에 마족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전부 나를 한 번씩 힐긋 쳐다보고선 회담장을 나갔다.
무뚝뚝한 시선.
한심해하는 시선.
적당히 관심을 주는 듯한 시선.
꼬리를 살랑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날리는 시선 등.
저마다 반응이 가지각색으로 달랐다.
물론 그런 시선 따위, 지금의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모두가 떠난 회담장엔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후…….
어지러운 마음에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마왕 후보라.
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세계에 없어져야 할 용사라며 처형장에서 사람들로부터 돌을 맞고 있던 나다.
근데 난데없이 전대 마왕이 죽은 지 100년이 지난 마계로 오다니.
눈 깜짝할 사이에 80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거지?
일단 떠오르는 건 하나 있다.
현자들 앞에서 얼굴을 박은 이후 갑자기 들려왔던 마왕 벨시페르의 목소리.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니라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그로부터 비롯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이 싸움에 미친 마왕 같으니.
죽었으면 곱게 잠이나 잘 것이지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벨져 님?”
머리를 붙잡으며 절규하던 와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회담이 끝났는데도 안 나오시길래 걱정돼서 와봤습니다.”
은발의 웬 낯선 마족 여인이 내 뒤에서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누구지?
정체를 당연히 알 리 없는 나로선, 그녀의 물음에 뭐라 답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거기에 여담이지만 굉장히 예뻤다.
미쳤구나.
지금 마족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
“그, 그냥. 잠시 생각할 게 좀 있어서…….”
존대를 할지, 하대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뒷말을 흐리며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나와주십시오. 전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이름 모를 그녀는 아무 반문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말하는 태도나 분위기로 봐선 이 몸의 원래 주인과 관련 있는 마족인 듯 보였다.
시종이나 하수인 정도로 생각하면 되려나?
뭐 하나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없네.
나는 찰거머리처럼 의자에 붙어 있던 엉덩이를 떼고 마침내 밖으로 나왔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정보다.
현재 아는 거라곤, 여기가 마계라는 것과 내가 전대 마왕 벨시페르의 후손이라는 것,
그리고 마왕 권좌 쟁탈전(?)이라는 이상한 이벤트에 휘말렸다는 것뿐.
아직은 정보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책을 뒤지든, 누군가를 붙잡고 하루 온종일 묻든, 알아낼 수 있는 전부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그 후에 내가 뭘 해야 할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테니.
일단은 좀 전에 날 찾아왔던 그 미모의 마족에게 돌아가 보자.
밖에서 기다린다고 했으니 분명 이 근처에…….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브릴리스 양?”
좌측 모퉁이 너머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자격도 없는 마족을 후보랍시고 꾸역꾸역 내세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잖아요? 거기에 돌발 행동까지 잦은 후보라니. 저라면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
“도, 돌발 행동이라니요? 회담장에서 뭔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 설마 아직 못 들으신 거예요?”
조금 전 나를 찾아왔던 이름 모를 마족과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의 마족들이 보였다.
나는 나서지 않고 벽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엿들었다.
“회담 시작 전에 갑자기 일어나선 ‘벨시페르!’ 하고 외쳤다던데요? 오죽 어이가 없었으면 진행자이신 위즈 님께서 정색하시면서 지적하셨답니다. 아무리 제일 가능성이 없는 후보라지만, 적어도 이 회담이 어떤 자리인지 설명은 하고 오셨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방금 그 말 취소하십시오! 벨져 님은 전능하신 전대 마왕 벨시페르 님의 유일한 핏줄이자 후손이십니다! 벨져 님 안엔 그분의 자랑스러운 피가……!”
“인간 용사에게 목 베인 마왕이 전능합니까?”
말을 잇던 그녀의 입이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얼굴엔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인지한 마족들은 더욱 의기양양하게 조롱을 이어나갔다.
“그건 자랑스러운 핏줄이 아닙니다. 수치스러운 핏줄이죠!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마왕이라니요? 당신의 후보가 마왕이 되면 틀림없이 그 수치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겠습니까?”
“수,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전대 마왕님은 영광스러운 패배를……!”
영광스러운 패배란 말에 마족들은 기어이 배를 붙잡고 폭소했다.
난 아직 저 마족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저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는 알 것 같았다.
더불어, 이 몸의 원래 주인이 평소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도 말이다.
저 여자, 이름이 브릴리스라고 했던가?
나에게 있어 그녀는 누구인지, 그녀에게 있어 나는 누구인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저 눈을 보고서 하나 확신한 건 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굉장히 치욕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겨우 한 계단 위에서 한 계단 아래에 있는 이들을 조롱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기만.
원래 살던 세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던 매우 익숙한 상황이지.
저 상황을 전부 지켜본 난 이제 어찌해야 할까?
가장 좋은 건 상황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뒤늦게 나타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의연하게 말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몸은 이미 모퉁이를 돌아 그들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베, 벨져 님?”
내 인기척을 어떻게 느꼈는지, 브릴리스는 바로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를 조롱하던 마족들 역시 조금 당황하나 싶었지만, 곧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 가벼운 묵례를 취했다.
그러곤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물론 순순히 보내줄 생각은 없다.
“어디가?”
그 한마디에 마족들은 바로 멈춰 섰다.
나는 말 없이 손짓으로 그들에게 오라고 지시했다.
마족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 눈치만 보더니 이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 저희에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할 말? 아주 많지.
하지만 난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속내를 감춘 눈으로 녀석들을 쳐다만 볼 뿐.
예상하지 못한 내 반응에 마족들은 미간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저희가 브릴리스 양과 나눈 대화를 들으신 겁니까?”
그나마 눈치 빠른 마족 하나가 먼저 입을 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역시나 침묵이었다.
“오해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순전히 마계의 미래를 위한 대화를 논하고 있었을 뿐. 벨져 님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아무렴요! 마왕 후보를 보필하는 같은 처지의 하수인끼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죠 브릴리스 양?”
브릴리스는 나와 그들의 눈을 번갈아 볼 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 고민하는 거겠지.
이 상황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 내게 피해가 덜 돌아올지를 말이다.
큰 확신은 없지만, 왠지 느낌이 그랬다.
“마왕 후보라고 했나?”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만?”
“나도 마왕 후보야?”
“무, 물론입니다!”
“마왕 후보가 뭔데?”
그들로선 다소 어이가 없을 원초적인 질문이었다.
짧은 정적이 흐른 후에야 한 마족이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미래의 마왕이 될 자격과 가능성을 가진 마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명쾌한 대답이었다.
나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질문을 이었다.
“마왕이면 이 마계에서 어떤 명령이든 내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거잖아? 그렇지?”
“마, 맞습니다!”
“너희는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대상인 거고.”
“그, 그렇지요!”
그들은 내가 왜 이런 당연한 질문을 반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누구라고?”
“여, 여덟 명의 마왕 후보 중 한 명이신 벨져 님입니다…….”
자질구레한 질문들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저들의 입으로 확실히 매듭짓게 했다.
이제 내게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가능성의 높낮이를 떠나서, 어쨌든 미래에 니들 머리 위에서 군림할지도 모르는 게 나란 건데…….”
달리 말하면, 이런 미개한 잡것들에게 조롱을 받을 만큼 하찮은 존재가 아니란 거다.
그런 날 두고 이 어리석은 마족들은 대체,
“그런 날 니들은 뭘 믿고 비아냥대는 거냐?”
무슨 깡으로 설치는 걸까?
“그, 그것이…….”
조금 전까지 당당했던 그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다 못해 퍼렇게 질리고 말았다.
나는 변명할 게 있으면 어디 지껄여보라는 의미로 마족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 아무래도 저희가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급히 사과드리겠습니다!”
눈치 빠른 마족이 급히 고개를 숙이자, 나머지 마족들도 뒤따라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니야.”
“예?”
“사과해야 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고.”
슬그머니 돌아가는 내 고개를 따라, 마족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브릴리스.
내 의도를 알아챈 그들의 표정이 이제는 질리다 못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저, 전 괜찮습니다 벨져 님!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됩니다!”
깜짝 놀란 그녀는 급히 나를 만류했다.
처음엔 왜 막는 건지 싶어 의아했지만, 그녀와 마족들의 얼굴을 보고선 뭔가 촉이 왔다.
하수인이 하수인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이 상황.
이들에게 있어선 단순 사죄 이외의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허나 하지 말라면 하고 싶어지는 게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기에,
-콱.
나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앞에 있던 마족의 머리를 붙잡아 브릴리스를 향해 당겼다.
“무, 무슨 짓을?”
“하라고. 사과…….”
녀석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나는 놔주지 않았다.
“꼬,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저희를 더 건드셔봐야 벨져 님께 좋을 건 없습니다!”
그럼 니들은 뭐 건들면 좋을 게 있어서 쟤를 건드렸냐?
암만 협박을 지껄여봐야 소용없다.
니들 입에서 그녀를 향한 사과가 나오지 않는 이상, 난 이 손을 놔줄 생각이 없으니.
“무슨 일입니까?”
그때 다른 방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왜 당신이 제 하수인의 머리를 붙잡고 있는 겁니까 벨져?”
복도 너머에서 나타난 또 다른 마족이 나를 날 선 눈으로 째려보며 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