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0
제20화. 절대자의 힘
정신이 깨어남과 동시에 두통이 밀려왔다.
“벨져 님!”
인상을 찡그리며 간신히 눈을 떠보니, 눈물을 글썽이며 날 보는 메이의 얼굴이 보였다.
“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볼 것도 없다.
눈을 뜬 순간 딱 1초 만에 기억이 났다.
난 사이클롭스의 주먹을 검으로 막으려다 실패했고, 부러진 검과 함께 몸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아마 그러면서 기절한 거겠지.
주변이 흐릿하다거나, 헛것이 보이진 않는 걸 보니 저승은 아닌 것 같네.
우리는 사방이 꽉 막힌 어느 나무 밑동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니?”
그래도 상황 파악은 해야 하기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벨져 님의 검이 사이클롭스의 주먹에 부러진 순간, 폭발이 일어났어요.”
“폭발?”
“네. 아마 검이 파괴되면서 안에 담겨있던 마력이 폭주를 일으킨 게 아닌가 싶어요. 벨져 님께서 검을 휘두르시기 전에도 이미 검의 상태는 매우 불안정해 보였었어요.”
그래서 안 된다고 소리친 거였구나.
내게 안액을 팔았던 암시장의 노파가 한 말이 떠올랐다.
‘흑광석과 라미아의 비늘만으론 마력의 폭주를 억제할 수 없다.’
마력의 억제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사이클롭스의 안액.
그게 없었을 때 어떤 위험이 벌어지는지 의도치 않게 아주 제대로 경험해 버렸다.
“사이클롭스는?”
“아직 근처에 있어요.”
나는 몸을 숨기던 밑동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저 앞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등대마냥 얼굴을 두리번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딱 봐도 우리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럼 정신을 잃은 나를 네가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네. 다행히 사이클롭스도 폭발에 휘말린 터라, 저희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애한테 못 할 짓을 시켰네.
얼굴 보기가 더욱 부끄러워졌다.
“본의 아니게 못 볼 꼴 보였네. 미안해 메이야.”
“아니에요! 괜찮으시다면 전 다행이에요!”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어 시선을 다른 곳에 두다 보니, 자연스레 그녀의 손으로 시선이 갔다.
지팡이를 붙잡은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서웠구나?”
“예? 아, 죄송해요. 그 사이클롭스 같은 커다란 마수는 저도 처음 보는지라…….”
무서운 게 당연하다.
웬만한 성인 남성도 겁에 휩싸여 오줌을 질질 쌀 비주얼인데, 그녀 같은 여린 소녀는 오죽했을까?
“죄송할 것 없어. 당연한 거야. 어느 누가 저 거인을 보고 안 무서워하겠니?”
“벨져 님도 사이클롭스는 처음 보는 거 아니세요?”
“응? 아, 뭐 그렇지?”
어디까지나 이번 생 한정이다.
“그런데 전혀 무서워하질 않는 것 같으세요.”
“그, 그럴 리가 있겠니? 나도 사 아니, 마족인데…… 하하!”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멋쩍게 웃어봤는데 별로 소용은 없는 듯했다.
이에 나는 마음을 놓고 편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그런 건 있어. 일전에 훨씬 더 무섭고 절망적인 경험을 하다 보면, 저런 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거든.”
“더 무섭고 절망적인 경험이요? 그, 그게 뭔가요 대체?”
“메이 너도 더 크다 보면 알아서 경험하게 될 거야.”
사실 경험 안 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대화는 여기까지. 이제 그만 가자!”
“어, 어딜요?”
“어디긴? 당연히 저 사이클롭스 잡으러지! 내 검 어딨어?”
메이는 곤란해하는 눈으로 내 옆을 가리켰다.
아 맞다 부러졌었지?
칼날이 동강 나다 못해 나뭇가지도 못 자를 정도로 무뎌진 반쪽짜리 검이 구석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검으로 잡긴 글렀군.
나는 미련을 두지 않고 그대로 밑동에서 나왔다.
-쿵!
내 기척은 또 어떻게 느꼈는지, 등을 돌리고 있던 녀석은 나를 바로 마주했다.
폭발에 당해서인지, 눈에선 이전보다 더한 살기가 느껴졌다.
“쟤 잠에서 깬 거 아니라고 했지?”
“네. 수면 마법의 힘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저 거인은 지금 자의가 아닌. 정령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어떤 정령인데?”
“제가 정령 마법의 전문이 아니라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어둠의 정령 ‘셰이드(Shade)가 아닐까 싶어요.”
들어본 적 있다.
숙주의 그림자 속에 숨어 대상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어둠의 정령.
확실히 현재 놈의 그림자는 형태가 온전치 못하고 매우 불안정했다.
근데 이러면 사이클롭스가 아니라, 정령이랑 싸우는 거 아니야?
뭐 딱히 상관은 없겠지.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쉰 나는,
그대로 외눈의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워어어!”
사이클롭스 역시 포효를 내지르며 거대한 두 다리를 움직였다.
아 참고로 지금 내 손엔 검도, 검을 대체할 그 무언가도 없다.
-후우웅
대신 내면에서 잔뜩 끌어올린 마력을 양손에 가득 집중시켰다.
내 아무리 과거에 검성이라 불리며 검의 정점에 이르렀다곤 하나, 솔직히 욕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한 세계를 제패한 절대자의 힘을 쓴다는 건 과연 어떤 느낌일까?
이 몸뚱이는 그 절대자의 피와 힘을 이어받은 계승체다.
그럼 나 역시 지금은 그 힘을 쓸 수 있는 것 아니겠어?
내가 그토록 겪고, 당하며, 고통을 느꼈던 마왕의 힘.
난 그 힘의 위력을 알며, 감각을 경험한 유일한 존재다.
그러니 그의 기술도 충분히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주면 나무들을 차례차례 발판 삼아 사이클롭스 머리 위로 튀어 올랐다.
마력과 투기심에 반응한 내 몸에서 검은 오라가 번졌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용사의 힘이 아닌,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마왕의 힘이,
100년의 시간을 거쳐 다시 세상에 펼쳐지는 순간이다!
“어비스 리디머(Abyss Redeemer)!”
* * *
급박해지는 심장과 가빠지는 호흡.
멈추지 않는 전신의 떨림까지.
생전 처음으로 사이클롭스를 마주한 메이는 마법은커녕 마력조차 모으지 못할 만큼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저 거대한 마수를 두고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마족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있었다.
바로 자신의 주인 벨져.
처음 입었던 충격으로 조금 전까지 정신을 잃고 있었던 그다.
자칫 생명의 경계를 넘었을 수도 있던 굉장히 위험한 상황을 겪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벨져의 눈엔 일말의 작은 두려움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진정 마왕의 자격을 갖춘 마족의 모습인 걸까?
다시금 싸울 준비를 갖춘 벨져의 얼굴엔 여유와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런 그가 사이클롭스의 위로 날아오르고,
검이 아닌, 마왕의 후손으로서 가진 힘을 깨워내며 주문을 외치니,
-파지직
벨져의 등 뒤에서 선명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법진은 곧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검은 심연으로 변했으며, 그 안에선 꿈틀거리는 다수의 형체가 튀어나왔다.
마치 마족의 손 같은 모습이었다.
심연에서 나온 검은 손은 사이클롭스의 목, 팔, 다리 할 것 없이 신체를 닥치는 대로 붙잡았다.
사이클롭스는 저항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콰직!
검은 손은 무자비한 힘으로 거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댔고, 저마다 찢은 부위를 쥔 채 다시 심연 속으로 돌아갔다.
그 이후의 기억은 메이에게 없었다.
기절하거나 정신을 잃은 건 아니었다.
벨져의 진정한 힘을 바로 앞에서 직관한 나머지 넋을 잃고 멍해진 기분?
그 중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만 인지를 못 하고 말았다.
그녀가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땐, 사이클롭스의 거대한 육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괜찮아 메이야?”
손을 흔들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는 벨져만이 보일 뿐이었다.
* * *
한편, 10여 분 전.
100년의 긴 휴식에서 깨어난 사이클롭스는 벨져와 메이를 쫓아갔지만,
이를 주도한 당사자 이사벨과 드류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이사벨 님?”
드류가 조심스레 불렀지만 이사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둘이 시야에서 사라진 지는 이미 30분이 채 넘었지만,
그녀는 좀처럼 움직이려는 기색 없이 팔짱을 끼며 나무처럼 서 있기만 했다.
“슬슬 벨져 후보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심이 어떠…….”
“깨운다면서요.”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닌 반문이었다.
“나보고 수면 마법을 해제하고 사이클롭스를 깨운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예. 그랬습니다만…….”
“근데 안 깨웠네요? 수면 마법을 해제한 게 아니라, 셰이드를 사이클롭스의 몸으로 주입했잖아요. 그렇죠?”
“예. 맞습니다…….”
“왜 그랬나요?”
딱딱하단 말론 미처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무심한 목소리.
식은땀이 흐르는 긴장감에 드류는 꿀떡 침을 삼켰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듯, 벨져 후보는 이사벨 님의 적입니다! 저희로선 자비를 베풀어줄 이유가…….”
“저 남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줄 이유가 없는 거랑, 내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게 무슨 관계가 있죠?”
드류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머뭇거렸다.
“솔직히 의외였어요. 내가 벨져 후보를 직접 감시하겠다고 했을 때, 난 드류가 앞장서서 반대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무 말 없이 따라주더라고요?”
“그, 그야 이사벨 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보니…….”
“정말로요?”
이사벨을 살짝 고개를 돌려 드류와 눈을 마주했다.
드류는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가 바라본 이사벨의 얼굴엔 뚜렷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물론 선의의 미소는 아니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드류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제 충정을 의심하지 말아주십시오! 이사벨 님은 저의 주인이시자, 장차 이 마계의 모든 마족을 제패하고 마왕의 권좌에 오르실 분입니다! 부디 제 어리석은 일탈조차도 이사벨 님을 위한 헌신임을 알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사벨의 표정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근 이사벨 님께선 벨져 후보에게 지나친 집착을 보이고 계십니다! 이는 저뿐만이 아닌, 다른 수행인들 역시 동일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지금 이사벨 님께서 신경 쓰셔야 할 건 벨져 후보가 아닌 다른 유력 후보들에게…….”
“이봐요 드류.”
어느샌가 앞으로 다가온 이사벨이 그의 머리를 들쳐 올리며 물었다.
“혹시 질투했어요?”
정말 가증스럽고도 같잖다는 얼굴로.
“내가 저 망나니 후보에게 관심을 준 게 일탈의 사유였어요? 그랬던 거예요?”
드류는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사이클롭스의 사나운 외눈보다 더 소름 끼치는 두 개의 눈이,
“건방지네요?”
그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으니.
“크르르…….”
그때, 고막을 울리는 섬뜩한 기음이 울렸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가 울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요?”
이사벨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어디선가 나타난 데빌 울프 무리가 그들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물러나십시오 이사벨 님!”
드류는 벌떡 바닥에서 일어나 재빨리 이사벨의 앞을 막아 세웠다.
데빌 울프의 수는 점점 늘어났으며, 전부 이사벨을 향해 짙은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추궁은 나중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상황부터 해결하시지요!”
이사벨은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살며시 뒤로 물러났다.
드류는 바로 데빌 울프와의 전투에 나섰으며, 이사벨은 거대한 나무에 기대며 그 광경을 지켜만 보았다.
“크르르…….”
그러자 이번엔 그녀가 기댄 나무 뒤에서 동일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데빌 울프 무리였다.
“아무리 지능 없는 마수라지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네요? 애써 차지한 서식지가 다 타고 없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요?”
그녀의 독기 어린 협박에도 데빌 울프는 접근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길게 솟아난 송곳니의 잔뜩 침을 바르며, 도발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어이없는 마음에 이사벨은 연신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한 손에 마력을 발현하며 주문을 읊었다.
“정령의 계약자로서 명하노니, 불의 정령이여 내 앞에 모습을 드…….”
허나 그 주문은 다 읊어지지 못한 채 중간에 끊기고 말았다.
소환 의식을 도중에 중단한 것이다.
가늘게 떠져 있던 이사벨의 눈이 점점 크게 변해갔다.
얼굴에 한가득 서려 있던 짜증과 불쾌함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대신 혼란과 당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사벨은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마력을 발현 중이던 자신의 왼손을 바라봤다.
“마, 마력이…… 없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