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너를 원한다
살다 보면 도무지 머리를 굴려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있다.
지금이 딱 그렇다.
누가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현 상황을 이해하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다.
어…….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지?
이사벨 그녀한테 뭘 준 거냐고?
뭐긴 뭐겠어?
그녀가 우리 집에 흘리고 간 마혈석이지.
아, 먼저 말할 게 하나 있는데, 여기 오기 전 브릴리스로부터 마혈석에 관해 추가로 들은 사실이 있다.
이 돌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아니, 미친 돌이다.
내가 마왕이 가진 특권에 대해선 이미 여러 번 설명했을 것이다.
마왕은 마계의 주인이기에 모든 마족으로부터 절대적인 소유권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 절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에,
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설명한 그대로다.
일곱 후보를 모두 제치고 마왕의 권좌에 앉은 자는 나머지 일곱 후보가 가진 모든 힘을 가질 수 있다.
내 몸에 깃든 전대 마왕 벨시페르의 힘,
이사벨이 계약한 정령과 그 정령들을 다루는 힘,
그 외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다른 후보들의 힘까지 전부 합쳐서 마왕만의 독자적인 힘으로 융합할 수 있단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단다.
내 가슴에 달린 이 마혈석만 있으면.
내가 또 한 번 말하지만 이 마계는 힘이 절대이자 모든 것인 세계다.
그런 세계에서 이 마혈석, 그것도 마왕 후보의 마혈석이 지닌 가치는 어떠하겠는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여자는 자기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내 집에 흘리고 간 거다.
그냥 미친 거지.
이런 엄청난 물건이 내 집에 떡하니 있는데, 내가 어떻게 맘 편히 단련을 하겠어?
그래서 돌려주러 온 거다.
브릴리스는 뭔가 의도가 있어서 남긴 게 아니겠냐고 의문을 표했지만,
아 몰라 이젠 신경 쓰기 싫어.
의도가 있건 말건, 이젠 내 알 바 아니야.
내 마지막으로 호의 베풀어주는 셈 치고, 그만 관계를 끝내려 한 건데…….
“당신 미쳤어?!”
이 여자는 대체 왜 남의 얼굴을 붙잡고 미쳤냐는 말을 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내 속마음을 눈치챈 듯 이사벨은 내 팔을 꽉 붙잡더니,
다른 마족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이 궁전 같은 집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그러곤 접견실이 아닌, 어느 으슥한 창고 같은 곳으로 데려가더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진짜 손님맞이 이런 식으로 할 거야?
하다못해 차는 내줘야 할 거 아니야?
다행히도 의자랑 테이블은 있…….
-쾅!
앉자마자 이사벨이 테이블을 대차게 내려쳤다.
“말해요.”
“뭐, 뭘 말입니까?”
“그걸 가지고 내 집에 찾아온 이유가 뭔지 설명하라고요!”
그거라 하면 단연 마혈석을 의미했다.
“그, 그야 이건 이사벨 후보의 마혈석이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가문의 높으신 분께서 직접 데리러 오셨다던데, 혹시 급하게 가느라 두고 가셨나 해서…….”
“당연히 일부러 두고 간 거잖아요! 그걸 등신 같이 흘리고 다니는 멍청이가 어딨어! 내가 왜 이걸 남기고 갔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이거, 모른다고 하면 엄청 큰일 날 것 같은데.
“그, 그게 그러니까…….”
“모르면 모른다고 해요!”
“예. 모릅니다.”
숨겨봐야 의미 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 대답이 오죽 기가 찼는지 이사벨은 급기야 헛웃음을 터트렸다.
눈에는 ‘이 구제 불능 후보를 어찌해야 하나?’ 고심하는 속내가 그대로 엿보였다.
연신 헛웃음을 흘리던 그녀는 고개를 푹 떨궜다.
“내가 당신을 인정했단 뜻이잖아…….”
우수에 젖은 목소리가 귀를 타고 머리에 울렸다.
잘못 들었나 싶어 나도 모르게 얼굴을 내밀었다.
“예?”
“내가 벨져 후보를 인정했다고요! 나를 능가하는! 나보다 더 자격 있는 마왕 후보로 인정한 거라고!”
나를 인정해? 더 자격 있는 마왕 후보로? 당신이?
“그래서 마혈석을 남기고 간 거잖아요! 내 힘을 당신이 마음대로 쓰라는 의미에서! 아무리 모르는 게 많은 후보라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알아들어야죠! 이 마혈석에는 내 힘만 담겨있는 게 아니에요! 내 진심도 담겨있다고요!”
“지, 진심이요?”
“그래요, 진심! 당신이 마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진심!”
나를 향한 울분과 감정을 토해낸 이사벨은 비로소 의자에 몸을 기댔다.
차분히 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스리는 그녀를 멍하니 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지 모르는 시간이 흐르고,
대충 정신이 돌아왔을 때쯤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이사벨 후보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건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마음이 진심이란 건 확실히 알았어요. 알긴 했는데…….”
그래. 경위야 어찌 됐든, 이 여자가 지금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단 건 확실히 인지했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제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
“그래서 이 마혈석은 제게 왜 주신 겁니까?”
이사벨은 다시 한번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여태 뭘 들은 거예요! 내 힘을 쓰라고 준……!”
“아니, 그러니까요!”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사벨 후보가 나를 인정한 거랑, 내가 이사벨 후보의 힘을 쓰는 게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냔 말입니다!”
* * *
180번.
지난 18년 동안 이사벨이 죽음 직전의 순간을 경험한 횟수다.
대략 1년에 열 번꼴.
손가락 튕기듯 가볍게 극복한 적도 있었고, 천혜의 운으로 빗겨 갈 만큼 힘겹게 극복한 적도 있었다.
어디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가문 내에선 모두가 적이었으며, 모두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 대상들을 전부 제치고 질투의 종주 자리에 오른 것이 바로 자신.
모든 죽음의 순간을 순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인 181번째 순간에선 그러지 못했다.
혼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고, 누구에게 도움조차 구할 수 없었다.
독에 중독된 듯 몸에 힘이 빠지고, 마력은 모이지 않는, 한낱 데빌 울프조차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상태에 처했을 때.
그 순간 이사벨은 두려움을 느꼈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스스로가 인정한 사실.
진정 마왕이 될 마족이라면 설사 죽음의 사신이 눈앞에 있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거늘.
결국 느껴버리고 말았다.
무려 180번이라는 많은 순간을 경험했음에도, 끝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평생을 외롭게 싸우다 죽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이라니?
이렇게 외롭고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이사벨은 그 사실이 두려웠다.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곁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그 고독함이 너무나도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시켜준 이가 바로,
벨져였다.
데빌 울프에게 둘러싸여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을 구해주었다.
기분이 묘했다.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퍼밀리어에게 조차도 보호받는단 기분을 못 느꼈었는데,
자신이 직접 적이라고 선포했던 남자로부터 보호를 받은 것이다.
그뿐이던가?
그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은 그에게 도움까지 요청했다.
사실상 목숨을 구걸한 거다.
마왕의 권좌를 노리는 마족이 두려움을 느낀 것에 이어, 남에게 목숨까지 구걸하다니.
이미 마왕이 될 자격을 박탈당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벨져의 집에서 요양하면서 쭉 생각했다.
이 남자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거대 마수를 상대로도, 자신보다 한참 위인 마왕 후보를 상대로도 절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이 남자라면, 전대 마왕을 뛰어넘는 마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든 순간, 이사벨은 깨달았다.
자신은 어느덧 그를 인정하고 있다고.
이후론 스스로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마혈석을 남긴 것이었다.
자신이 인정한 남자이기에, 자신의 모든 힘을 줘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디 그 힘이 앞으로의 더 험난할 싸움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심과 함께 남기고 온 건데…….
“그 힘, 이사벨 후보가 저를 위해 써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마혈석과 함께 돌아온 벨져의 대답은 너무나도 생뚱맞았다.
“내 힘을…… 당신을 위해 쓰라고요?”
이사벨은 잘못 들었나 싶어, 바로 되물었다.
“예. 뭐가 잘못됐습니까?”
벨져는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혈석에는 이사벨 후보의 마력과 더불어 그동안 정령을 다루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오신 이사벨 후보의 노고가 담겨있지 않습니까?”
이사벨은 침묵으로 응답했다.
“그렇게 힘겹게 쌓아오신 힘을 어찌 이리 쉽게 내주신단 말입니까? 대체 무슨 이유에서요?”
“그, 그야 당연하잖아요! 마왕은 마계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요! 마왕이 되기만 하면, 내 힘만 아니라 다른 후보들의 힘도 전부 본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요! 그 모든 힘이 모인 존재야말로 최강의 존재가……!”
“전대 마왕도 그랬답니까?”
이사벨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저는 아닌 걸로 압니다만?”
벨져는 정색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대 마왕, 그러니까 제 선조이신 벨시페르는 단 혼자만의 힘으로 마계를 제패하고 마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가 절대적인 존재였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분명한 약점이 있던 존재였습니다!”
이사벨은 아무런 반문 없이 벨져의 말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다룬 것은 오직 본인의 힘뿐이었고, 다른 마족의 힘은 일절 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본인들의 힘을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주는데 직접 써주길 원했지요! 이에 마왕의 하수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그를 지원했습니다. 이 점은 용사가 마왕을 상대하는데 가장 힘든 부분이었고요.”
마치 본인의 경험담을 말하는 것 같은 생생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말을 잇는 벨져의 눈에는 당당함이 가득했다.
“저를 인정해서 마혈석을 남기신 거라고요? 제가 이사벨 후보의 힘을 직접 쓰길 원했다고요? 그게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지 정녕 모르시는 겁니까?”
“무, 무책임이요? 이게 왜 무책임…….”
“당연히 무책임하지요! 제게 힘을 다 줘버리고 나면, 이사벨 후보에겐 대체 뭐가 남습니까?”
벨져는 급기야 이사벨의 양어깨를 붙들며 질책하기에 이르렀다.
“살면서 죽음의 순간을 너무나도 많이 경험하셨다면서요? 앞으로는 안 그럴 거란 보장 있습니까? 말해보십시오! 제가 이 마혈석을 돌려 드리러 오지 않았더라면, 이사벨 후보는 앞으로 어찌 되는 겁니까?”
이사벨은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허나 벨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힘이 전부인 세계에서 힘이 없는 존재란 곧…….
폐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란 걸.
“제가 정말로 마왕이 되길 원하신다면…….”
잠시 숨을 고른 벨져는 어깨를 붙잡고 있던 두 손을 자연스레 위로 이동시켰다.
마치 자신의 눈을 분명히 마주하라는 듯,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러자 이사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힘을 저를 위해 써주십시오. 난 이사벨 후보의 힘이 아닌, 이사벨 후보 자체를 원합니다.”
힘이 아닌 힘을 쓸 수 있는 존재 자체를 원한다.
벨져는 마혈석이 아닌 말로써 직접 자신의 진심을 전했으며, 다시금 마혈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고조된 감정으로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벨져의 말이 끝나자 빠르게 식어갔다.
벨져의 눈을 쭉 마주했던 이사벨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를 원한다고요?”
급 자신이 미친 짓을 했다고 생각한 벨져는 황급히 얼굴에서 손을 뗐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참 알다가도 모를 남자네요 당신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 벨져를 보며 이사벨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오히려 모르는 건 나였을지도.”
그러면서 어떤 결심이 선 듯 테이블에 있는 마혈석을 가지고 있던 빈 브로치에 집어넣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복구시켰다.
“돌려주러 와줘서 고마워요. 볼일도 끝나셨을 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아, 예, 그러겠습니다…….”
벨져는 얼떨떨한 마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먼저 나가려던 이사벨은 다시 한번 몸을 돌렸다.
“새로 만든 검. 멋있네요. 당신이랑 어울려요.”
“그, 그렇습니까?”
“멀리 안 나가요. 조심히 가세요.”
생긋하고 남긴 마지막 미소를 끝으로 이사벨은 방에서 나왔다.
그러곤 마혈석이 박힌 브로치를 당당히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이후 얼굴에 웃음기를 싹 거둔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을 질책했던 원로들이 있는 지하 회의장으로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