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6
제26화. 뺏기면 안 된다
다시 지하 회의장으로 돌아온 이사벨.
눈을 흘기는 원로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그녀는 태연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벨져 후보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오셨습니까?”
앉은 순간, 바로 추궁이 시작됐다.
“별 얘기 안 했는데요?”
“저희 원로회는 이사벨 님께서 벨져 후보와 나눈 대화 내용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소상히 얘기해주십시오!”
이사벨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다가도, 한쪽 손에 쥐고 있던 브로치를 원로들에게도 보였다.
“이거 돌려주러 왔대요.”
“마혈석?!”
빈 껍데기에 불과했던 조금 전과 달리, 브로치에는 잔잔한 마력을 뽐내는 마혈석이 박혀 있었다.
“벨져 후보의 저택에 두고 오신 겁니까?”
“네. 그랬나 봐요.”
“그, 그걸 돌려주러 손수 찾아온 거랍니까?”
“네. 그렇다던데요?”
원로들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서로의 눈치를 보며 눈동자를 굴렸다.
그 사이, 이사벨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턱을 치켜들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친애하는 원로회에게 선언할 사실이 하나 있어요.”
“서, 선언이라 하시면?”
“저 이사벨 이뉘디아는 지금 이 시간부로 벨져 후보와 후보 단일화를 할 겁니다.”
잠시 회의장에 정적이 흘렀다.
정적 속에서 원로들은 또다시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에 한 원로가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물었다.
“후, 후보 단일화라 하시면, 역시 벨져 후보가 이사벨 님의 밑으로 들어오게 됐단 의미입니까?”
대다수의 원로들은 생각했다.
조금 전 독대에서 이사벨이 마침내 벨져로부터 단일화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그렇기에 저리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거라고.
그게 아니고서야,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요?”
이사벨은 그런 원로들의 생각을,
“내가 벨져 후보의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건데요?”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원로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부 자리를 박차며 소리쳤다.
미친 거 아니냐고,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가문을 대표하는 질투의 종주로서 책임감은 있는 거냐는 등.
반발을 비롯해 그녀를 향한 모욕이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이사벨은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쾅!
앉았던 의자를 발로 강하게 걷어차면서 분위기를 제압했다.
그녀의 눈엔 어느샌가 독기로 범벅되어 있었다.
“내가 마왕이 되면 가장 먼저 뭘 하려고 했는지 아세요?”
때아닌 질문에 원로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바로 당신들부터 죽이는 거였어요…….”
이사벨은 그런 원로들을 보며 거침없이 진심을 내뱉었다.
“자리의 무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요? 착각도 정도껏들 하셔야죠. 이 마혈석의 힘을 유지하고 더 성장시킨 장본인은 나예요. 의자에 앉아 혀만 나불거린 당신들이 아니라…….”
원로들은 전부 사색이 된 얼굴로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닫지 못했다.
분명 원로회를 전체를 모욕하는 불순한 언행임에도 불구하고, 원로들은 어떠한 반박도 하지 못했다.
“내가 키운 힘을 내 맘대로 쓰겠다는데, 왜 일조도 안 한 당신들이 압수니 뭐니, 지껄이는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요?”
이사벨은 한 명, 한 명 시선을 보내며 그들과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원로들은 그 시선을 전부 회피했다.
그녀의 감정에 반응한 마혈석에선 어느샌가 선명한 붉은빛이 일고 있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군요.”
긴 침묵 속에서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원로장이 입을 열었다.
잔잔히 울린 목소리에는 흥미와 여유가 담겨 있었다.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원로회 전원. 밖으로 나가세요.”
“예? 이렇게 끝내신다고요 원로장님? 하지만…….”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세요.”
그 말에 원로들은 전부 일어나 도망치듯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회의장에는 이사벨과 원로장 단둘만 남게 되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딱히? 그냥 간만에 딸이랑 오붓한 둘만의 시간을 가질까 해서…….”
딸이란 말에 이사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네요.”
“조금 전의 나는 오죽했겠니?”
원로장은 어둠 속에서 히죽 미소를 지었다.
현 이뉘디아 가문의 원로회를 이끄는 수장, ‘레나벨 이뉘디아’.
그녀는 가문의 실질적 지배자인 동시에 이사벨의 친어미이기도 했다.
“벨져……. 그 남자를 마왕으로 만들고 싶은 거니?”
“네.”
“왜?”
“그 남자야말로 진정 마계의 왕좌에 앉을 자격이 있는 마족이니까요.”
이사벨이 대답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너,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왔는지 알지?”
“위에 있는 마족들을 전부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셨다죠 아마? 형제, 남편 할 것 없이 전부 다요…….”
“내가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뭐였을 것 같니?”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었나요?”
레나벨은 고개를 저었다.
“난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을 뿐이야.”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이사벨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단다. 내가 죽이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를 차지했을 마족들이 과연 나만큼이나 가문을 책임질 수 있었을까?”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 다시 생각해도 없었어. 그들은 전부 어리석은 이들이었거든. 이뉘디아 가를 몰락시키다 못해 파멸시킬 머저리들이었지. 그래서 여길 차지한 거란다. 보다 못한 심정으로 말이야…….”
그 머저리에는 그녀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사벨 넌 아니야. 넌 내가 가문에서 유일하게 인정한 유일한 마족이자, 후계자야.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뭐든 다 해도 돼! 물론, 온전히 너 혼자만의 힘으로 말이지…….”
“굳이 말 안 하셔도 여태 그래 왔거든요?”
이사벨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느새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레나벨은 이사벨의 고운 머리카락을 부드러이 쓸어내렸다.
“그 남자를 마왕으로 만들고 싶니?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이뤄내거라. 네가 마음에 든 남자라면 너의 전부를 바칠 가치가 충분히 있어! 단 어미이기 전에 여자로서 하나 조언해준다면…….”
쓸어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이사벨의 귓가에 레나벨은 입술을 대며 나직이 속삭였다.
“절대, 누구한테서든, 뺏기면 안 된다…….”
일직선을 그리던 이사벨의 입술이 그 말을 들은 순간 양쪽으로 올라갔다.
“당연한 말씀을…….”
* * *
이뉘디아 본가의 지하를 울리는 다급한 발걸음.
걸음의 주인은 얼굴에 초조함이 역력해 있었다.
-벌컥!
걸음 끝에 도착한 곳은 조금 전까지, 원로 회의가 진행되던 지하 회의장.
허나 안에는 원로들은 물론, 회의를 주관하던 원로장까지 이미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왔어요. 드류?”
이사벨은 원로장이 있던 자리에 앉아, 홀로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사실입니까, 이사벨 님? 벨져 후보와 단일화를 하신다는 게?”
“네. 맞아요. 뭐 문제 있어요?”
드류는 작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사벨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사벨 님. 정녕 벨져 그 남자에게 홀리기라도 하신 겁니까?”
이사벨은 차를 마시다 말고 입을 가리며 웃었다.
“홀렸다라…….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확실히 그 남자와 같이 있다 보면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부디 정신을 차려주십시오! 이사벨 님께선 그런 남자의 밑이 아닌…….”
“다른 후보의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 뭐 그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말을 잇던 드류의 입에 다시금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그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 맞아요. 오죽했으면 평소 마시던 차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인지를 못 했으니까요.”
“무, 무슨 말씀을?”
“그날 사이클롭스의 서식지 앞에서, 내 차에 특별한 걸 타 줬었죠?”
대답을 못 하는 그의 앞으로 이사벨은 검은색 액체가 담긴 작은 병을 꺼내 보였다.
“난 이런 무시무시한 걸 타달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을까?”
이사벨이 꺼낸 것은 탐욕의 종주가 관리하는 암시장에서 비밀리에 거래되는 맹독이자, 사이클롭스의 서식지에서 그녀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만든 결정적인 원흉이었다.
“내가 드류와 퍼밀리어 계약을 맺은 이유는 간단해요. 내가 아직 다루지 못한 속성의 정령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출신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건데…… 누가 알았겠어요? 날 위해 영혼을 바칠 줄 알았던 퍼밀리어가, 사실은 다른 후보 측에서 감시하라고 보낸 까마귀였을지.”
드류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할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낀 듯, 초조함이 만연했던 얼굴은 어느새 무심하게 변해 있었다.
“이사벨 님은 마계의 주인이 될 그릇이 못 됩니다. 이사벨 님께서 선택하신 그 남자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유언치곤 좀 시시한데요?”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던지요. 당신의 주인도 곧…….”
이사벨은 그가 보는 앞에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로 갈 거예요.”
-쐐액!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갈퀴손이 튀어나와 드류의 목을 베었다.
잘린 목은 바닥에 힘없이 굴렀으며, 목을 잃은 몸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스스스
목표를 제거한 갈퀴손은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사벨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드류의 잘린 목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아쉽네요. 그래도 차는 당신이 타 준 게 제일 맛있었는데…….”
피식 웃으며 다시금 도도하게 차를 음미하는 그녀였다.
* * *
이사벨의 저택을 다녀온 지 어느덧 사흘이 흘렀다.
크게 신경은 안 쓰여도 잔잔히 떠오르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래서 사람 관계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거다. (정확히는 마족 관계)
막상 끊으려고 마음먹어도 계속 생각이 난단 말이지.
끝이 더럽다면 또 몰라.
하필 또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이…….
‘새로 만든 검. 멋있네요. 당신이랑 어울려요.’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뭐 그렇다고 앞으로 아예 안 볼 관계가 됐다는 건 아니다.
나와 그녀가 같은 자리를 꿈꾸는 후보 자리에 있는 이상, 언제 어디서든 또 부딪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벌어질 일 벌써부터 고민하면 뭐 할까?
마음이 뒤죽박죽 할 땐 역시 단련이 최고지!
저택 뒤편, 넓은 연무장에 홀로 자리한 나는 검을 뽑기 전 몸을 풀기 위해 어깨를 돌렸다.
역시 장소와 도구가 사람 아니 마족을 만든다고,
좋은 집에서 좋은 검으로 단련하니 기분이 이리 상쾌할 수가 없다.
거기에 방해한다거나 딱히 신경 쓸 사람도 없으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세계가…….
“팔자 좋아 보이네요?”
검을 뽑다가 하마터면 떨어트릴 뻔했다.
황급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내 앞엔,
“입이 아주 귀에 걸렸네. 검이 그렇게도 좋아요?”
이사벨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오신 겁니까?”
“어떻게 오긴요? 당연히 걸어왔죠.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 아니 제 말은 어떻게 들어오셨냔…….”
“이래서 당신이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지낸 시간만 무려 3일이에요. 그동안 내가 저택 구조도 파악 못 할 거라고 생각했나요?”
순간적으로 몸에 소름이 돋았다.
“후훗. 그리 당황할 필요 없어요. 전에도 말했죠? 우린 이제 적이 아니라고…….”
이사벨은 그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짓다가도, 익숙한 양피지 문서를 건넸다.
“이, 이건?”
이전에 그녀가 내밀었던 후보 단일화 서약서였다.
내가 서로의 이름에 두 줄을 긋고 그 위에 새로 덧쓴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걸 용케 안 찢고 갖고 있었네?
“난 이미 서명했어요. 벨져 후보만 서명하면 돼요. 서명하는 순간 효력이 발휘하면서 우리의 관계는 새롭게 정립될 거예요.”
“관계라 하시면?”
“당연히 단일화된 관계죠. 벨져 당신을 대표로 하는…….”
그녀는 어리둥절한 나를 재촉하듯 펜을 들이밀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서약서를 몇 번이고 꼼꼼히 읽어보았다.
하지만 내용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여자, 정말 진심인가?
“당신이 그랬죠? 내 힘을 원하는 게 아닌, 나 자체를 원한다고.”
“그, 그랬긴 했습니다만…….”
“긴장하세요. 벨져 후보. 난 당신 하수인들처럼 안일하지 않아요.”
그건 굳이 설명 안 해도 아는 사실이다.
“당신을 마왕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어요. 그 점을 잊지 말고 꼭 기억해두세요. 내가 당신을 인정한 이상, 당신은 꼭 마왕이 돼야 해요.”
대답을 할 수 없어 입을 더듬거리는 나를 마주하며, 이사벨은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은근슬쩍 내 손에 펜을 쥐여 주었다.
“그 옆엔 꼭 내가 있어야 하고…….”
나는 그녀의 말과 눈빛에 홀리듯 얼떨결에 이름을 적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