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비밀
아침.
평소라면 새벽 운동에서 복귀 후, 식사 담당 시녀들이 차려주는 아침을 군말 없이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겠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그 시작이 무척 고단하다.
“식단이 전반적으로 육류에 편중되어 있네요. 이런 불균형한 식단은 좋지 않아요. 채소류 비중을 늘리고, 현재 조달해오는 식자재의 품질도 한 번씩 다 검토해보세요.”
나 분명 나와 같은 마왕 후보와 단일화 맺은 거 아니었나?
근데 왜 주변인들까지 절로 피곤하게 만들 것 같은 깐깐한 셰프가 내 앞에 있는 거지?
그녀는 급기야 식탁에 차려진 고기 요리를 한 점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넣는 순간 바로 인상을 구겼다.
“기름이 지나치게 많아요! 맛도 너무 자극적이고요! 조만간 이뉘디아 본가에서 내 담당 메인 셰프를 보낼 테니까. 식자재 관리부터 음식 조리까지 전부 다시 배우세요!”
“아, 알겠습니다…….”
시녀들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는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네.
새로 온 셰프(?)의 잔소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벨져 후보?”
“예?”
“당신이 사는 이 저택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는지 알고 있나요?”
이건 또 무슨 빵 사이에 밥 넣어 먹는 소리야?
“표정을 보니 모르는 모양이네요. 이 저택은 3개의 층으로 나뉜 한 채의 건물 안에 2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나도 아직 모든 방을 둘러본 건 아니지만, 당신이 이 저택의 주인이라면, 적어도 이 집안의 살림살이 정도는 다 숙지할 필요가 있어요.”
적의 영지를 알기 전에 내 영지부터 알자 뭐 이런 논리인가?
방 서너 개라면 또 모를까, 23개나 되는 방에 일일이 뭐가 있는지 무슨 수로 기억해?
“이뉘디아 본가에서도 이렇게 사셨던 겁니까?”
“이건 극히 일부에 불과해요. 내가 본가에서 겪었던 일은 이거보다 훨씬 더 끔찍했으니까. 그냥 단계적으로 올리려고 한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듣는 것만으로 끔찍하다.
“본인의 위치를 좀 더 자각하세요 벨져 후보. 지금 이 마계에서 당신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 줄은 알아요? 최대한 가벼운 모습을 줄이고,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요.”
날 보는 시선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고?
거 말 잘하셨습니다.
“이사벨 후보가 우리 집에서 이러고 있는 꼴을 보이는 건 괜찮고요? 아직 저희가 단일화했단 사실을 공표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다른 후보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입니다.”
여유가 한껏 느껴지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한 방 먹였단 생각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 날카로운 지적이네요…….”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부분 아니겠습니까?”
“라고 할 줄 알았나요?”
이사벨은 가소롭다는 듯 경직된 얼굴을 풀고 냉소를 지었다.
“내가 벨져 후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다른 후보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건 맞겠죠. 내가 노리는 점도 바로 그 점이고요.”
이사벨은 나를 향한 간섭이 애초부터 계획한 일이라고 밝혔다.
“아마 일부는 벌써 눈치챘을 거예요. 나와 벨져 후보가 한 몸이 되어 움직이려 한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들은 벨져 후보가 아닌 내가 대표가 될 거라 생각하겠죠. 우린 그 호기심을 더 키워줄 필요가 있어요.”
그 말은 즉, 우리가 단일화했단 사실을 아직 발설하면 안 된단 뜻이었다.
그리고 때가 익었다 싶으면, 빵하고 터트려서 다른 후보들의 기를 죽이겠단 거겠지.
하기야, 그 누가 예상이나 할까?
정령 마법의 대가라 불리는 여자가 내 집에서 식단이나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내가 하는 조언들이나 머릿속에 잘 새겨넣으세요. 다른 후보들이 무슨 신경을 쓰든 말든, 그건 내가 알아서 다 관리할 테니까.”
“예, 뭐 이사벨 후보의 의도는 잘 알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온전히 따를 거란 생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애초에 잘 따를 자신조차 없으니 말이다.
빨리 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뜨자는 마음에 나는 수저를 집었다.
묵묵히 수프를 떠먹는 나의 모습을 이사벨은 부담스럽게 쳐다보았다.
이거야 원 수프를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우리 호칭 정리도 좀 하죠?”
“푸흡!”
사레가 들린 나머지 먹던 수프를 도로 뱉고 말았다.
연신 터져 나오는 기침을 간신히 멈춘 후에야 다시 이사벨을 쳐다보았다.
“무, 무슨 호칭 말입니까?”
“아니 그렇잖아요. 이제 난 당신에게 있어 후보 신분도 아닌데, 굳이 딱딱하게 후보라는 호칭을 뒤에 붙여야겠어요?”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내가 그렇다고 이 여자를 브릴리스나 메이 대하듯 하대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럼 이사벨 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님도 붙일 필요 없다니까요? 그냥 편하게 이사벨이라고 부르세요. 나도 둘이 있을 땐 벨져라고 부를 테니까.”
“노,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나는 수프를 입안으로 욱여넣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웬만해선 절대,
이 여자와 둘이 있을 상황을 만들지 말자고.
* * *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벨져는 도망치듯 연무장으로 떠났다.
마치 감옥에서 해방된 것 마냥, 호탕하게 검을 휘두르는 벨져를 보며 이사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벅
그런 그녀의 뒤로 브릴리스가 찾아왔다.
이사벨은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돌렸다.
“할 말 있어요?”
브릴리스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이사벨을 잠시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사벨은 개의치 않고 그 시선을 받아주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나한테요?”
이사벨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벨져 님을 향한 이사벨 후보 아니, 이사벨 님의 진심은 잘 알았습니다. 제가 채워 드릴 수 없는 점을, 이사벨 님께서 채워주고 계신다는 점 또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브릴리스는 말하는 동시에 이사벨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제 비밀을 벨져 님에겐 숨겨주십시오.”
이사벨은 조금 당황한 듯 입가에 지은 미소를 거뒀다.
“나도 당장 까발릴 생각은 없어요. 어쨌든, 브릴리스가 벨져 후보를 지원하는 것에 악의는 없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감사합니…….”
“하지만 오래는 못 기다려요.”
이사벨은 안심하지 말라는 듯 말을 단칼에 잘랐다.
“벨져 후보도, 그리고 나도 이해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거예요. 그걸 브릴리스의 입으로 직접 말해줘야 하고요. 그것만 지켜준다면 내 입이 열릴 일은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든 브릴리스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렸다.
샘솟는 불안에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는 두 주먹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 * *
울타비스는 내게 검을 만들어주기 전에 말했다.
검은 검을 다뤄줄 수 있는 완벽한 주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급 검사가 어느 날 명검을 얻었다고 해서, 소드 마스터가 되지 않듯,
나 역시 마검의 완벽한 주인이 되기 위해선, 이 검과 오랜 친목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시간 개념 없이 검을 휘두르다 보니, 하늘은 어느덧 검게 물들어 버렸다.
새 검에 정신 팔린 나머지 단련에만 하루를 꼬박 소비했다.
이러고 보면 나도 참 정상은 아니란 말이지.
오늘은 이만하면 될듯싶다.
나는 아크베리아를 검집에 집어넣으면서 연무장을 떠났다.
나올 때보다 한껏 어두워진 저택 안.
당연하겠지만 이미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이다.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발소리도 죽인 채 조용히 내 방으로 향하는 도중,
-스윽
불현듯 느껴진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방.
브릴리스가 업무를 보는 방이다.
빛에 이끌리듯 내 몸은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했다.
문 앞에 이르자 최대한 기척을 숨기며 조심조심 고개를 내밀었다.
놀랄 것도 없이 딱 예상했던 광경이 보였다.
하늘이 빨갛건, 까맣건 상관없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업무를 보는 브릴리스.
정확히 무슨 업무인진 모르겠지만, 아마 이사벨과 의도치 않은 단일화로 인해 할 일이 매우 많아진 게 아닐까 싶다.
나야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 시간까지 단련한다지만, 과연 브릴리스는 이 일을 좋아서 하는 것일까?
모든 일에는 흥미와 관심이 받쳐줘야지, 그러지 않고선 절대 오래갈 수 없다.
이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는 만큼, 그녀 역시 어떤 목적을 갖고서 날 지원하고 있단 생각은 처음부터 들긴 했다만…….
그 목적이 어떻든 간에 내가 왈가왈부할 건 없겠지.
더 지켜보다간 들통날 것 같아, 조용히 빠져나오려는 순간,
-풀썩!
어라?
이거 무슨 소리야?
나는 급히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브릴리스!”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며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불과 1초 전까지 두 눈 똑바로 뜨며 일을 하고 있던 브릴리스가 대뜸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쓰러져 버렸다.
“브릴리스! 정신 차려! 브릴리스!”
얼굴을 감싸며 연신 이름을 불러봤지만, 그녀의 감긴 눈은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선, 바로 의료담당 시종을 불러왔다.
“과로로 인한 빈혈입니다.”
쓰러진 원인은 과도한 업무와 수면 부족으로 인한 빈혈 및 탈진.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에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간호를 위해 다른 시종을 깨우려는 것을 바로 만류했다.
아무래도 내가 간호하는 것이 맞을듯싶었으니.
“흐으음…….”
브릴리스는 강제(?)로 수면 당한 와중에도 편히 자지 못해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볼수록 내 머릿속에 품은 의문은 점점 더 커져 나갔다.
브릴리스는 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지원하는 것일까?
나에게 이런 저택과 돈까지 주면서 후원하는 마족이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거짓말이다.
브릴리스는 순전히 본인이 원해서 날 지원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뭔진 아직 모르겠다만…….
이리 가까이서 얼굴을 보니 또 누굴 닮았단 생각이 든단 말이지?
누구였더라?
전생의 어느 순간에서 그녀를 닮은 이를 본 기억이…….
“베, 벨져 님?”
기억을 더듬던 와중 브릴리스가 눈을 떴다.
“정신이 들어?”
“제, 제가 왜?”
“업무 중에 과로로 쓰러진 널 내가 데리고 와서 눕힌 거야.”
“면목 없습니다…….”
면목은 내가 없을 지경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가 쓰러진 이유는 결과적으로 나 때문 아니겠는가?
“아무리 나를 위해서라지만, 좀 쉬면서 해. 그러다 잘못되면 너만 억울하다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요즘 일이 너무 즐거운 나머지 저도 모르게 그만…….”
즐거워? 일이?
순간적으로 그녀가 쓰러지면서 머리에 이상이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브릴리스는 그런 내 생각을 진심 어린 미소로 부정했다.
“처음 벨져 님을 찾았을 때만 해도, 괜한 짓 한 건 아닐지, 마왕의 자리는 관심도 없는 분을 억지로 끌어낸 건 아닐지. 정말로 고민 많이 했습니다…….”
어. 내가 감히 예상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아마 다 맞았을 거다.
이 몸의 본주는 정작 마왕이 될 생각이 없었거든.
그러니 딴 후보의 치마 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벨져 님 입으로 직접 마왕이 될 거라며 말해주시고, 또 여기에 필요한 힘을 키우기 위해 매일 같이 단련에 열중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데, 제가 어찌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요? 잠자는 시간조차 제겐 아까울 지경입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다가도, 침묵 끝에 넌지시 물었다.
“브릴리스. 넌 왜 날 마왕으로 만들려는 거야?”
브릴리스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내가 마왕이 되면 너에게 뭘 해주면 되는 건데?”
“벨져 님께 뭘 바라고자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브릴리스는 오히려 바라는 게 없다며 내 물음을 반박했다.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날이 밝으면 벨져 님을 비롯한 모두에게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편할 대로 해. 대신 오늘은 일 더 하지 말고. 그대로 푹 자.”
“알겠습니다.”
브릴리스는 싱긋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만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주고자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나갈까 싶다가도 다시 슬쩍 고개를 돌렸다.
“너무 부담 갖지 마. 네 비밀이 뭐든, 어쨌든 전부 나를 위한 일들이란 거잖아?”
“물론입니다.”
“그럼 됐지 뭐.”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왔다.
용사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 목적 없이 호의를 베풀어준 인간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어느 세상이든 대가 없는 호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게 뭘 바라고자 이러는 것이 아니란 브릴리스의 말은,
내게 참 묘하게 다가왔다.
날이 밝으면 다 말해준다니, 얌전히 기다려봐야지.
허나 다음 날 눈을 뜬 내가 가장 먼저 듣게 된 소식은,
“브, 브릴리스 님이 사라지셨어요!”
다름 아닌 브릴리스의 실종 소식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