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
제3화. 망나니 마왕 후보
영화를 보면 어느 비중 있는 인물이 등장할 때, 웅장한 음악이 깔리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경우가 있지.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아직 눈앞의 마족으로부터 자기소개를 듣진 못했지만 20년 용사 생활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마족,
위험한 놈이다.
“다, 다일 님?”
급기야 브릴리스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한 반응을 보였다.
다일이라.
나로선 당연히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얼굴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 나와 함께 회담장에서 똑같은 마왕 후보로서 자리하고 있던 마족 중 한 명이었다.
눈빛만으로 제압할 수 있을 듯한 매서운 눈매가 특히나 돋보였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겁니까 벨져? 당장 설명하십시오! 왜 당신이 제 하수인의 머리를 붙들고 있는 거죠?”
머리를 붙잡은 왼손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처음엔 ‘우리 후보님께서 나타나셨으니 넌 이제 끝났어!’라는 생각으로 킥킥대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이 하수인은 지금 떨고 있었다.
내가 아닌, 저 다일이라는 마족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벨져 님께서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건 제가 설명을…….”
“하수인은 입 다무세요.”
브릴리스는 나를 변호하기 위해 나섰지만, 단칼에 제지당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로 인해 발생한 상황.
그러므로 브릴리스가 아닌 내가 해명하는 것이 당연하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뭐 해명할 건 없다고 보는데?
나는 붙잡고 있던 마족의 머리를 놓은 뒤, 그와 정자세로 마주했다.
“오해랄 것도 없습니다. 당신의 하수인이 내 하수인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하는 걸 내가 목격했고, 그래서 사과를 하라고 지시한 겁니다.”
“모욕적인 언행?”
그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에게 한 것도 아니고, 당신의 하수인을 향해 한 언행을 갖다가 사과를 시켰다고요? 그것도 당신의 하수인에게?”
나는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뭐 문제 있나?
잘못을 저질렀으면, 당연히 잘못을 한 대상에게 사과해야지, 그럼 누구한테 하겠어?
인간 사회에선 문제랄 것도 없는 일이었다.
상황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엔 여전히 불신과 의심이 가득했다.
“그 모욕적이었다는 언행이 뭡니까?”
그는 기어이 그 언행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그쪽 하수인에게 직접 물어보시지 그래요?”
“어느 발언에서 어떤 모욕을 느꼈는지 당신에게 물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그냥 사과 한 번 하고 깔끔히 끝내면 될 것을 되게 복잡하게 만드네.
이거 내가 내 입으로 굳이 말해야 하나?
그냥 나 뒷담 까다 걸린 놈들 교육 좀 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이리 귀찮게 따지려고 들어?
아 솔직히 나를 욕했다고 하기도 애매하잖아?
난 아직 이 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고!
“단순 모욕적인 수준이 아니었죠?”
속으로 쌍욕을 토하던 와중, 복도 다른 쪽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벨져 후보가 그 자리에서 저 마족의 목을 베도 상관없을 만큼, 거의 능멸하다 싶을 정도의 말이었으니까요.”
목소리와 함께 복도 저편에서 단정한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그러니까.
저 마족도 일단 면식은 있는 마족이다.
이 다일이라는 마족과 마찬가지로 마왕 후보로서 회담장에 자리하고 있던 마족 중 하나.
양쪽으로 곱게 땋은 금색 머리카락이 특히나 돋보였던 마족이었다.
그녀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품은 채 하수인으로 보이는 두 명의 마족과 함께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던 겁니까 이사벨 후보?”
“엿들은 것까진 아니고, 그냥 우연히 들었다 정도로 해둘게요.”
그게 엿들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로 뱉진 않았다.
그녀는 나를 한 번 쓰윽 쳐다보는가 싶더니, 나를 대신해 조금 전 있었던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이야기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굳이 어디서 모욕을 느꼈냐고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다일 후보는 어찌 생각하시나요?”
설명을 끝낸 그녀는 여유로운 눈웃음을 지으며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저였으면, 사과고 뭐고 그냥 그 자리에서 저 마족의 몸을 뜯어다가, 두 쪽으로 분리된 자기 몸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했을 거예요.”
곱디고운 얼굴과 다르게 입은 곱지가 않으시네?
아 그러고 보니, 쟤들 인간 아니었지?
하기야 겉과 속이 다른 건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쟤들이라고 뭐 다를까?
무슨 목적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를 대신해 상황을 설명해준 덕에 내 입으로 말하는 수고는 덜게 되었다.
“게르바.”
“예! 다일 님!”
“지금 당장 벨져 후보와 그의 하수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다일 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가 하라고 할 땐 말 안 듣고 쭈뼛대더니만, 주인의 명이 떨어지자 석고대죄하듯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그러면서 이래저래 사과의 말을 하긴 했는데, 목소리를 하도 떤 나머지 뭐라 하는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사과가 되시겠습니까 벨져?”
“뭐, 그럭저럭은요…….”
솔직히 여기서 뭘 더 하라고 요구하기도 난감하다.
사과도 끝난 마당에 더 있어 봐야 나만 곤란하지.
나는 헛기침과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돌렸다.
“마, 마차가 있는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벨져 님!”
상황 내내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브릴리스는 황급히 나를 따르며 가야 할 곳을 안내했다.
가기 전, 나를 도와준 이사벨이란 마족과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목적 없는 호의는 없다고, 그것이 마계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뭔가 꿍꿍이가 있기에 나를 도와준 것임을 그녀의 눈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 * *
마계의 하늘은 참으로 빨갛다.
석양이 지는 저녁 하늘보다 더 빨갛다.
밤이 되면 인계와 마찬가지로 까매지려나?
적응이 안 되면서도, 저 적응 안 되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내가 정말 마계에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 낯선 땅에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한바탕 소동 이후 회담장을 빠져나온 난, 현재 브릴리스가 준비한 마차를 타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 벨져 님?”
“음? 어…… 왜?”
내 하수인이라고 판명도 났으니 하대해도 되겠지?
“조금 전의 그 일 말입니다만…….”
그 일이라면 당연히 사과 소동을 말하는 거겠지.
브릴리스는 맞잡은 두 손을 비비적거리며 뜸 들였지만, 나는 보채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저를 위해 나서주셨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겠지 뭐 아무래도?
나는 그렇다고 확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하신 겁니까?”
무모해? 뭐가? 대체 그 상황의 어디가 무모했다는 건데?
“딱히 무모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냥 네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 같아서 나선 거였는데……. 내가 뭐 잘못한 건가?”
“자, 잘못이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넌 내가 그 상황에서 그냥 지나갔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랬습니다. 벨져 님이 절 위해 나서주신 게 처음이시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라는 놈.
아무래도 지 조상을 닮진 못했던 것 같다.
거의 망나니나 다름없었던 모양이군.
하기야 용사에게 죽은 마왕을 대놓고 수치스럽다고 평하는 마당에, 그 핏줄을 주변에서 좋게 보지도 않았겠지.
아니, 잠깐만.
가만 생각해보니까 또 어이가 없네?
용사한테 죽은 게 뭐 어때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마왕과 싸웠고, 마왕도 본인의 패배를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고!
지들의 절대자인 마왕이 고작 인간에게 죽었다는 사실을 어지간히도 받아들이기 싫었나 보지?
왜? 억울하면 복수라도 하지 그랬어?
정작 내가 죽기까지 20년 동안 죽 닥치고 얌전히 있었으면서 수치는 무슨.
“도착했습니다 벨져 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을 때리던 와중, 브릴리스가 도착을 알렸다.
“큰일을 치르시느라 무척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이만 푹 쉬십시오.”
글쎄다.
네 마음과 다르게, 난 지금 푹 쉴 수 없는 입장이라서 말이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마저 정리하는 것에 이어, 새로 알아내야 할 것도 엄청나게 많은…….
어라?
마차에서 내려 정면을 마주한 나는 눈 앞에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에 그만 몸이 정지되었다.
뭐야 이 집은?
“왜 그러십니까 벨져 님? 무슨 문제라도?”
그, 글쎄. 이걸 문제라고 봐야 할진 모르겠지만.
이거 이 몸뚱이 주인이 사는 집 맞아?
용사 시절 때 딱 한 번 이런 집을 본 적 있다.
당시 레지에타 대륙 상권과 경제를 주무르고 있던 어느 거상의 호화스러운 저택.
그 저택이 지금 딱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 *
사람이 아니, 생물이 살아가는데 가장 먼저 갖춰야 할 능력이 뭔지 아는가?
바로 적응력이다.
지금 있는 곳이 익숙한 내 집 앞마당이든, 낯선 타지든 간에 상관없이,
살려면 여기가 어디고, 내가 뭘 해야 살 수 있는지 빠르게 알아내야 한다.
영문모를 환생 이후 호화 저택에 입성한 지 어느덧 3일.
이 저택은 어찌나 답 없이 큰지, 오죽하면 집안에 서재를 대신해 도서관이 다 있었다.
그 덕분에 이 낯선 땅에 대한 정보와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일단 이 땅의 정식 명칭은 ‘마계 디아펠리스’.
인계 레지에타와 마찬가지로 어엿한 지명이 존재했다.
또 인계와 다르게 마계에 사는 마족이라 해서 다 같은 마족이 아니었다.
일단 나 같은 경우엔 ‘인간을 닮은 마족’이라는 뜻에서 ‘마인족’이라고 하는데, 내가 봐도 이 머리의 뿔만 없으면 영락없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이 마인족은 전체 마족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흔하디흔한 종족인 동시에 마계에서 가장 천대받는 종족이라고 한다.
재밌는 건, 3일 전 나를 포함해 회담장에 자리했던 8명의 마왕 후보 중 마인족은 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재밌는 건 나를 제외하고 마왕 후보로 입선한 그 일곱 마족은 각각 마계에서 명망 있는 일곱 가문의 후계자라는 거지.
그 가문은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색욕, 나태, 식탐 등 각각 모든 죄악의 근원이라고 알려진 칠죄종(七罪宗)을 상징한다고 했다.
난 그들과 아무 연관 없이, 그저 전대 마왕의 후손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마왕 후보로 입선한 거란다.
즉 귀족 7명이 모인 자리에 과거의 영광만을 가진 천민 하나가 낀 셈인 거다.
“벨져 님. 식사 준비 다 됐습니다.”
때마침 밥 시간을 알리기 위해 브릴리스가 방으로 찾아왔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요즘 독서 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지신 것 같습니다.”
“아 뭐, 그렇지.”
나는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었다.
마족 사이에서도 대놓고 수치라고 하는 전대 마왕의 후손인 나를 달갑게 보는 마족은 없을 터.
그런 나를 찾아 마왕 후보로 만든 이가 바로 브릴리스란다.
저택 시종들 말에 따르면, 마왕 같은 거 되기 싫다고 극구 거절한 나를 겨우겨우 설득하여 후보로 입선시켰다고 했다.
이 호화 저택도 사실상 이 몸의 본주를 꼬시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던 거다.
-서걱서걱
빵과 함께 나이프로 썰어낸 고기를 한입에 넣었다.
처음엔 마족의 음식이라고 해서 마수 껍데기로 요리를 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인간의 주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로선 그나마 다행인 일이지.
지금 먹고 있는 고기가 무슨 고기인진 전혀 모르지만.
“브릴리스.”
“예. 벨져 님.”
“나 단련을 좀 할까 하는데.”
“다, 단련 말입니까?”
단련이란 말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저 뒷마당에 있는 연무장처럼 보이는 장소, 내가 써도 되는 거지?”
“무, 물론입니다! 저 연무장은 벨져 님을 위한 곳이니 언제든,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됩니다.”
브릴리스는 적극 환영한다는 듯 반색을 표했다.
“단련에 필요하신 게 있다면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바로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필요한 거라.
어차피 기본적인 운동이야 맨몸으로 다 할 수 있는 거고.
달리 필요한 게 있다면 아마…….
“그럼 검 하나만 갖다 줘.”
브릴리스는 어째서인지 대답 대신 두 눈을 끔뻑였다.
“거, 검 말입니까?”
나로선 별로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녀가 왜 저런 난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찾아보긴 하겠으나,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브릴리스가 검을 구하러 떠나고 약 한 시간 뒤.
“죄, 죄송합니다! 저택을 다 뒤져봤지만, 검이라고 할만한 것은 이것밖에…….”
나는 그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