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0
제30화. 나 오면 안 되는 거였어?
-챙!
사선으로 휘두른 검격에 뭔가가 튕겨 나갔다.
주변이 어두운 탓에 잘 식별되진 않았지만, 끝이 뾰족한 단검 같은 느낌이었다.
-슈욱!
정체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이번엔 다른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나둘 날아오던 투사체는 점점 수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한쪽에서 대여섯 개가 날아들었다.
그리 위협적이진 않은 터라, 막는 데 무리는 없었다.
그렇게 막기를 약 1분 정도.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뒤에 있던 이사벨이 정령 소환 주문을 읊었다.
“윌 오브 더 위습(Will of the Wisp)!”
호명과 함께 주변에 발광이 일어나면서 잠시 눈이 움츠러들었다.
다시금 눈을 떴을 땐, 눈앞에 곱게 다린 흰색 옷을 입은 백발 소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암흑이 짙은 전방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사방에 깔린 어둠이 걷히면서 감춰져 있던 공간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중앙에 자리한 원형 테이블이었다.
테이블 위는 정돈되지 않은, 매우 어지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 주위엔,
“저들이 이 마계 온건파의 간부들인가 보죠?”
얼굴을 후드와 복면으로 감춘 정체불명의 마족 무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사벨은 자기가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내뱉었다.
“힘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단체가 힘으로 제압하려 들다니. 본인들 스스로도 좀 부끄러운 행위 아닌가요?”
길리안은 계속 머리만 조아리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괴한들을 향해 검을 겨눈 채, 천천히 분위기를 살펴봤다.
방금 전 나에게 날아온 칼날들은 두말할 것 없이 저들이 던진 것이겠지.
허나 단순히 나를 탐색하겠답시고 던진 건 아닐 것이다.
순전히 날 죽일 목적이었다.
“내가 죽는 게 브릴리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애초에 당신들 같은 존재가 없었다면, 브릴리스 님께서 이 길을 걷지도 않으셨을 겁니다!”
길리안은 울분에 목소리로 소리쳤다.
“벨져 님 여기 좀 보세요.”
잠자코 있던 메이가 대뜸 나를 불렀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지점에 낯선 보랏빛 선이 그어져 있었다.
“이건?”
“흡수의 마법진이에요!”
“위험한 거야?”
“이 위에 있는 대상의 마력을 강제적으로 빨아들이는 장치에요. 머물러 있으면 있을수록, 체내의 마력을 무방비하게 뺏기고 말 거예요!”
즉 마력을 기반으로 마법을 부리는 메이와 이사벨에겐 치명적이란 뜻이었다.
“나름 계획은 잘 짰네요. 우리와 직접적으로 맞서기보단, 흡수의 마법진을 통해 시간을 벌어서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 생각이었나 봐요.”
힘을 힘으로 제압하는 게 아닌, 힘을 못 쓰게 만들어서 제압한다라.
평화를 지향하는 온건파다운 방식이긴 하네.
“어떻게 할래요, 벨져? 난 마력을 더 뺏기기 전에 빨리 처리하고 나가는 게 낫다고 보는데?”
“제가 앞장서서 왔으니, 제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이사벨은 내 뜻을 흔쾌히 받아주며 뒤로 물러섰다.
메이 또한 그녀를 따라 내 곁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준비를 마친 나는 살의를 드러내고 있는 괴한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아크베리아를 겨눴다.
알다시피 이 검은 마력을 다루기 위해 특별 제작한 마검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선 마력을 쓰지 않을 거다.
마력이 아닌 순수하게 내 몸이 체득한 검술만으로,
저들을 제압할 것이다,
그래야 저들이 날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는가?
* * *
옳지 못한 일이란 거 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고개도 못 들고 있지 않은가?
양심이 매우 찔리고, 분명 아닌 일이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브릴리스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래서 벨져를 비롯한 그의 일행들을 온건파 비밀지부로 유도해 함정에 빠트렸다.
이후의 일을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기에,
길리안은 눈을 감고 머리를 조아리며,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했다.
스스로 봐도 참 미련하고 한심한 모습이었다.
“뭐든 넘치면 없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죠? 전대 마왕이 딱 그런 경우였고요.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고 결국 인계를 침공하는 재앙을 저질렀으니까요.”
그런 길리안의 곁으로 이사벨이 다가와 말했다.
“하지만 그 넘치는 힘을 제어하고 충분히 다룰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경우도 없어요.”
“그, 그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당연히 난 불가능하죠. 하지만, 저 남자라면 가능할 거예요.”
이사벨은 전방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고개를 들고 똑바로 마주하세요.”
그녀의 지시에 이끌린 듯 길리안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장차 이 마계를 책임질 마족의 진면을…….”
정면에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에 눈과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힘 한번 못 쓰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온건파의 마족들.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전부 싸울 전의를 잃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 곳만 바라볼 뿐.
공간에 서 있는 이라곤 오직 한 손에 검을 쥐고 있는 벨져 한 명뿐이었다.
-스윽
제압을 끝마친 벨져는 그대로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곤 미련 없이 몸을 돌려 길리안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무방비한 상태로 등을 보이고 있음에도, 벨져를 공격했던 마족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못했다.
벨져는 몸을 숙이고 있는 길리안 앞에 털썩 주저앉고선, 그와 눈을 마주했다.
“자, 이제 진실을 말할 시간이야.”
길리안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브릴리스는 어딨어?”
* * *
온건파 비밀지부로부터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온건파 전체 회의장.
새로운 수장 선출을 위한 투표 준비가 한창 진행 중에, 좋지 않은 소식 하나가 전달되었다.
“비밀지부에 매복하고 있던 단원들이 당했다고?”
질색한 얼굴의 다른 마족들과 다르게, 정작 보고를 받은 흰 수염의 마족은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마왕 선출을 반대하는 단체의 수장을 마왕 후보가 구하러 오다니. 제정신이 아니로군…….”
“어쩌면 좋겠습니까? 단원들 말로는 이미 브릴리스 님이 갇힌 곳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설사 그녀가 탈출한다고 한들, 새로운 수장이 선출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준비들이나 하게.”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단원들은 다시 할 일을 재개했다.
정작 지시를 내린 흰 수염의 마족은 회의장 밖으로 몸을 돌렸다.
“히, 히블즈 님? 어디 가십니까?”
“난 할 일을 하러 간다.”
단원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가, 지부 밖에 대기하고 있던 자신의 와이번에 올라탔다.
와이번은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붉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힘에 기반을 두지 않은 평화가, 정말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불현듯 머릿속으로 브릴리스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힘에 기반을 두지 않은 평화.
그것이 이 마계에서 가능할 리는 없다.
그렇기에 제어가 필요한 것이다.
“네가 선택한 후보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냐?”
히블즈는 씁쓸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가 가야 할 곳으로 향했다.
* * *
-다다닥
왠지 모르게 소란스러워진 밖.
방음만큼은 확실할 것 같던 독방이지만, 마족들의 분주한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브릴리스는 직감적으로 이곳에 문제가 생겼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바보같이 앉아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히블즈는 마음 편히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 했지만 절대 그럴 순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브릴리스는 즉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애초에 탈출에 도울 될 만한 여지를 남겼을 리가 없는 만큼, 지푸라기라도 이용해서 탈출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 브릴리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포크와 나이프였다.
수장의 자리는 생각보다 매우 무거웠다.
온건파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표적이 되는 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휩쓸려 붙잡히기라도 하는 상황이 온다면, 스스로의 능력으로 탈출해야 한다고 배웠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자신은 그 가르침을 전해준 마족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해야만 해.”
포크와 나이프를 집은 브릴리스는 즉시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숨을 죽이고 문에 귀를 갖다 댔다.
교대로 서 있던 경비원의 인기척은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보초가 없음을 확인한 브릴리스는 나이프를 문틈 사이에 넣고는, 포크를 문구멍 사이로 집어넣으며 문을 열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끼릭 끼릭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이리저리 비틀어봤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역시 잠금장치는 허술하지 않았다.
“크읏!”
순간 힘의 중심을 놓친 브릴리스는 그만 나이프를 놓치고 말았다.
극심하게 밀려오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허나 이대로 멈출 순 없었다.
아픔을 애써 누른 브릴리스는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잡았다.
-철컥!
그때, 문 너머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너무 컸던 탓일까?
수상쩍게 생각한 밖에서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당황한 브릴리스는 두어 발짝 뒤로 물러섰다.
-끼익
심장 소리가 귓가를 쿵쿵 울렸다.
탈출을 시도했단 걸 들킨다면, 단순히 도구를 빼앗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절망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괜찮은 거지?”
차마 생각지도 못한 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어리둥절한 눈은 그녀의 차올라있던 긴장감을 한순간에 완화해줄 만큼 안정감을 주었다.
“베, 벨져 님? 여긴 어떻게?”
“아. 혹시 나 오면 안 되는 거였어?”
벨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되물었다.
벨져만 온 것이 아니었다.
열린 문 너머론 메이와 이사벨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브릴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를…… 구하러 와주신 겁니까?”
“어.”
벨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얼빠진 얼굴 할 시간 없을 텐데요? 지금 온건파에선 당신을 해임하고 새로운 수장을 선출하기 위한 움직임이 한창 진행 중이라던데, 그거 막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요?”
이사벨은 얼른 정신 차리라는 듯 브릴리스를 나무랐다.
브릴리스로선 아직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나를 못 믿어서 문제라며? 그럼 너희 단원들이 나를 믿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온건파의 뜻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마왕 후보로?”
이미 여기 왔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정체를 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브릴리스를 바라보는 벨져의 눈빛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혀 상관없었다는 것처럼.
브릴리스는 잠시 고개를 숙이며 눈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곤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세 번 정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일이 끝나면 전부 설명 드리겠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벨져는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투표가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서둘러 온건파 전체 회의장으로 가시죠!”
다음 행선지가 결정된 벨져는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독방을 나와 지부 밖으로 향하는 동안 곳곳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단원들이 보였다.
“안심해. 전부 기절만 시킨 거야.”
그 시선을 의식한 듯, 벨져는 브릴리스를 안심시켜주었다.
잠시 차올랐던 불안감이 그 한마디에 싹 내려앉았다.
“……감사합니다.”
브릴리스는 일이 무사히 끝나면 모두에게 꼭 정식으로 감사를 표할 것을 다짐했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밖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부 밖은 기암괴석이 곳곳에 자리한 바위산 중턱이었다.
“알려준 장소로 제시간에 가려면 두 다리론 무리일 거예요. 비행이 가능한 바람의 정령을 소환할 테니, 모두 그걸 타고 가도록 하죠.”
브릴리스는 바로 상급 정령을 소환하기 위한 영창을 시작했다.
잠자코 기다리던 벨져는 낯선 기척을 느끼고선 하늘을 올려 보았다.
고개를 들자마자 번쩍하고 발광이 일어났다.
발광이 끝날 때쯤 눈부신 전격 투사체가 나타나더니, 그들이 있는 쪽으로 낙하했다.
“모두 물러서!!”
빠르게 검을 뽑은 벨져는 공중 위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른 즉시 아크베리아를 수직으로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그렇게 날아간 검기는 바로 투사체를 반으로 가르며 바로 소멸시켰다.
투사체가 발사된 방향에선 와이번에 올라탄 흰 수염 마족의 모습이 보였다.
“망나니 후보치곤 제법이군.”
중저음의 목소리에는 무시할 수 없는 연륜이 느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