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진실
“히블즈 님의 연락은 아직 없는 겁니까?”
“히블즈 님만이 아닙니다! 브릴리스 님을 감시 중이던 단원들도 전부 연락을 안 받아요!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히블즈가 회의장을 떠난 지 어느덧 두 시간.
회의 시간이 육박해도 감감무소식에 간부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우선 히블즈 님의 말대로 저희는 저희의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일단 회의를 시작한 다음, 곧장 투표를 이행합시다!”
의견을 맞춘 간부들은 바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회의장에는 이미 수십 명의 단원들이 회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온건파 전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일부 단원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브릴리스 님은? 아직 안 오신 거 아니야?”
“대표가 없는데 회의를 시작하겠다고? 이건 무슨 경우야?”
전체 회의는 말 그대로 조직의 전체 단원들이 모여서 진행하는 회의다.
요직이 없는 일반 단원이 부재중이면 모를까, 수장이 부재중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전체 회의라니?
사정을 모르는 단원들로선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사정을 아는 듯한 일부 단원들은 침묵으로 일관 중이었다.
“오늘 회의는 우리 마계 온건파의 새로운 방향을 정하기 위한…….”
-벌컥!
술렁임을 애써 무마시키며 회의를 진행하려는 순간, 회의장의 문이 대차게 열렸다.
모든 단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대표가 자리에 없음에도 진행되는 전체 회의라니. 이게 무슨 경우 없는 행위입니까?”
“브, 브릴리스 님?”
회의장에 들어선 이는 다름 아닌 온건파의 수장 브릴리스였다.
회의를 진행하려던 간부들은 물론, 일반 단원들까지, 평소와 다른 그녀의 분위기에 모두가 당황을 금치 못했다.
브릴리스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단상으로 향했다.
그러곤 의연한 눈으로 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이 회의가 어떤 목적으로 열렸는지 아는 단원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단원도 있을 겁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가 회의장 전체에 울렸다.
“오늘 회의에선 저를 수장직에서 해임하고, 새로운 수장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장내는 다시 술렁거렸다.
“그동안 제 뜻에 반감을 품은 단원들이 많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전에도 말씀드렸듯, 우리 온건파에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현재 마계의 흐름상, 새로운 마왕의 등장은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 흐름을 탈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가 처음 수장이 되고 이 뜻을 밝혔을 땐, 단원들이 거센 반발이 일어났었다.
100년간 고수해온 온건파의 의지를 부수는 짓이라며 일부 고함을 지른 단원들도 있었다.
허나 이번만큼은 아무런 반발 없이 조용했다.
“절대적 존재가 가진 힘의 위험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을 제어하고 다룰 줄 아는 마족이 마계를 책임진다면, 우린 이전과 다른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잠자코 경청하던 와중, 한 단원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 그런 마족 아니, 마왕 후보가 정말로 있다고 보십니까?”
“있습니다.”
브릴리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전 오늘로써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 온건파의 뜻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마왕 후보라는 것을…….”
-벌컥!
그때 회의장의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브릴리스가 걸어온 길을 따라 뚜벅뚜벅 단상으로 걸어오는 흑발의 마족.
그의 정체를 아는 간부 단원들은 전부 경악했다.
“베, 벨져 후보?!”
전대 마왕의 후손이자, 그동안 브릴리스와 온건파의 지원을 받고 있던 여덟 명의 마왕 후보 중 한 명 벨져.
그가 처음으로 온건파 단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브릴리스는 살며시 뒤로 물러나 단상에 오른 벨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벨져는 벙쪄있는 단원들을 쭉 둘러보다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딱 세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자기소개 따윈 필요 없다는 듯 바로 본론으로 진입했다.
“첫째, 난 마왕이 될 겁니다.”
마왕 후보이기에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이었다.
이 발언에 크게 놀라는 단원은 없었다.
“둘째, 난 싸움을 싫어합니다.”
허나 두 번째 발언에선 절반에 가까운 단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넘치는 투욕을 주체못해 인계를 침공한 전대 마왕의 후손이 싸움을 싫어한다는 발언을 한다?
이건 깊게 해석하자면, 선조이자 전대 마왕인 벨시페르와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선언한 셈이었다.
“셋째, 난 마계의 평화를 원합니다.”
이 발언에서 모든 단원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싸움을 싫어하면서 마계의 평화를 원하는 마왕 후보.
이는 브릴리스가 말했던 온건파의 뜻을 받아줄 수 있는 마왕 후보와 일치했다.
“이상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
단원들이 그 메시지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몰라 전부 혼란에 빠졌다.
“그럼 벨져 후보께선 우리 온건파의 뜻을 받아주는 후보가 되어주시겠단 겁니까?”
혼란 속에서 한 단원이 물었다.
“그렇겠죠?”
벨져는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답했다.
“지, 진심으로요?”
“진심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 자유겠지만…….”
일부 단원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얼굴이 어찌 거짓말을 하는 마족의 얼굴이겠냐고.
벨져의 얼굴엔 어떠한 가식이나 거짓도 서려 있지 않았다.
굴하지 않는 당당함만 존재할 뿐.
“정면 돌파라. 벨져 후보다운 행동이네요.”
회의장 2층 난간에서 메이와 함께 상황을 지켜보던 이사벨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에 메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차라리 빨리 얘기해주셨으면 좋으셨을 텐데, 그동안 브릴리스 님께선 왜 온건파에 관한 사실을 벨져 님께 숨기신 걸까요?”
“벨져 후보가 저리 문제없이 받아줄 거란 생각을 못 한 거겠죠. 나 역시 마찬가지고…….”
마계 온건파는 근원적으로 전대 마왕의 벨시페르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창립되었다.
본인의 선조와 핏줄을 부정하는 집단을 우호적으로 볼 수 있는 마족이 이 땅에 얼마나 있겠는가?
사실상 불같이 화를 내며 등을 돌려도 문제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네요.”
“어떤 부분이 말인가요?”
“브릴리스는 대체 뭘 믿고 처음부터 벨져를 후보로 선택한 걸까요?”
지금이야 이사벨도 아무 의심 없이 믿는다지만, 후보가 되기 이전의 벨져는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를 수많은 마인 족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브릴리스는 그런 벨져를 꾸역꾸역 찾아서 후보로 만든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처럼.
“참으로 실없는 말이 아닐 수 없군요!”
소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누군가의 감정 실린 외침이 울렸다.
“벨져 후보 당신이야말로 대체 뭘 믿고 우리 온건파를 받아주겠다는 건지, 전 이해랄 수가 없습니다!”
몰려가는 분위기 속에서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발언이었다.
당황한 단원들 속에서 한 마족이 당당하게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을 본 브릴리스의 얼굴이 순간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반갑습니다. 벨져 후보. 전 마계 온건파 소속 단원 오비에 그레이우돈이라고 합니다.”
“그레이우돈?”
벨져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조금 전 자신이 상대하고 온 히블즈 그레이우돈과 관련 있는 마족임을 바로 인지했다.
“백번 양보해서 온건파의 뜻을 따르겠다는 벨져 후보의 마음이 진심이란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으로 브릴리스 수장과 함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드는군요.”
“자, 잠깐만요, 오비에!”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브릴리스가 황급히 달려와 오비에 그레이우돈의 앞을 막았다.
그의 초조한 눈빛을 본 오비에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엇을 그리 불안해하시는 거죠 브릴리스 님? 수장께서 진심으로 벨져 후보를 지원하려 한다면 적어도 그와 진실을 공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비에의 직언에 브릴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분하고 당당했던 좀 전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아이처럼 허둥대고 있었다.
“반응을 보니, 아직도 말 안 하신 모양이로군요. 그러면서 뭘 함께하겠다는 겁니까? 과연 진실을 안 벨져 후보가 그래도 우리 온건파의 뜻을 따르겠다고 할 수 있을지 심히 궁금해지는군요!”
“오비에 제발……!”
급기야 브릴리스가 사정하려는 모습까지 보이려 하니, 벨져가 손을 들어 만류했다.
그냥 말하게 두라는 듯이.
“100년 전, 브릴리스 사니타의 선조인 유리스 사니타는 당시 레지에타의 용사와 모의해서 전대 마왕이자 당신의 선조인 벨시페르를 죽였습니다!”
근 10초간 회의장에 정적이 웃돌았다.
10초가 지나고 나서야 단원들 사이에서 조금씩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원 대부분은 몰랐겠지만, 브릴리스 수장을 비롯해 몇몇 간부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당신에겐 말하지 않은 겁니다! 세상에 적수가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강했던 전대 마왕이 한낱 인간 용사의 손에 죽어야만 했던 이유! 그건 바로 유리스 사니타가 용사에게 마왕의 약점을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순간 브릴리스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말하지 않으려 했던 게 아니었다.
몇 번이고 말하려 했지만,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녀의 선조와 벨져의 선조는 서로 원수 관계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100년 전, 마계를 제패하고 인계를 침공했던 마왕 벨시페르.
그런 그를 지지하고 옆에서 보좌해주었던 유리스 사니타.
하지만 그녀는 용사에게 접근해 마왕의 약점을 알려주고, 용사가 승리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이것은 사니타 가문과 온건파 고위 간부들로부터 대대적으로 전해져온 명백한 진실이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브릴리스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반드시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려 했고, 그럼에도 함께해 줄 수 있는지 부탁하려 했지만, 결국은 우유부단했던 마음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차마 벨져의 얼굴을 볼 수 없던 브릴리스는 제자리에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런 거였나요……?”
덩달아 진실을 알게 된 이사벨도 인상을 구겼다.
“마계에 수치의 역사를 안겨준 장본인이 다름 아닌 본인의 선조였다니. 하기야 그러니 더 말할 수 없었던 거겠죠.”
“어……. 제,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지금 저 오비에란 분이 말한 사실이 무슨 문제가 되나요? 어차피 옛날 분들의 일이고, 현재의 저희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아닌가요?”
메이로선 이 사실이 왜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시대가 다른 과거의 일인 데다가, 당사자들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 않은가?
비록 메이의 혈통인 크라우넬가 역시 전대 마왕 사후 혈통 전체가 탄압받는 비극을 경험했지만, 워낙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녀였기에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당사자도 그리 생각하면 좋겠죠. 하지만…….”
이사벨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리 낙관적인 성격의 벨져라고 한들, 조상의 원수와 그 후손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전대 마왕 사후, 마왕의 핏줄이 받아왔던 멸시와 모욕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이건 아무리 벨져라도 화를 낼 수밖에…….”
“곤란해하시는 것 같은데요?”
우려를 표하는 이사벨과 달리, 벨져의 얼굴을 본 메이는 다른 의견을 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곤란은 벨져가 아닌 브릴리스가…….”
바로 부정하려던 이사벨은 벨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입을 멈칫했다.
그러곤 천천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 상황에서 곤란해야 할 이가 누구겠는가?
두말할 것 없이 여태 진실을 감추고 있던 브릴리스다.
이를 본인도 아는 듯 브릴리스는 차마 벨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 채, 몸을 떨며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로선 배신감과 수치가 한데 어우러져 매우 분노한 벨져의 모습을 생각했겠지만,
아니었다.
오비에로부터 진실을 들은 벨져는 현재,
“뭐, 뭐죠? 저 반응은?”
한쪽 입꼬리를 애매하게 올린 채, 굉장히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