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39
제39화. 거인과 용기사
결투 상대인 메이, 그녀의 주인인 나,
그리고 결투를 관전하던 다른 후보와 퍼밀리어들까지.
아마 지금쯤 전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왜 시작하자마자 포기하는 건데?
이래서야 마치 처음부터 싸울 의사가 없던 것 같지 않은가?
심지어 그 생각은,
“야 미켄! 너 미쳤어?”
일을 저지른 당사자의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루비아는 급기야 결투장 안으로 날아가더니, 자기 퍼밀리어의 멱살을 붙잡기에 이르렀다.
“내 위세 깎아내리려고 작정했어? 왜 시작하자마자 포기하고 난리야!”
반응을 보아하니, 그녀가 지시한 일은 아닌 듯했다.
미켄은 주인의 손에서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도 변함없는 미소를 유지했다.
“누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어리고 귀여운 레이디를 상대로 어떻게 싸울 수 있겠어요? 그건 남자로서 할 짓이 못 된다니까요?”
참으로 타당한 이유였다.
살다 살다 신사도를 따지는 마족은 또 처음 보네.
근데 뭐 누님?
저 둘 설마 가족 관계인가?
“어…….”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메이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둘을 쳐다봤다.
이에 미켄은 자기 주인을 뿌리치고선, 그대로 메이에게 다가갔다.
“미안합니다, 레이디. 주인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으셨을 텐데, 애석하게도 제 쪽에선 싸우고 싶단 마음이 전혀 안 들더군요.”
“그, 그럼. 제가 이긴 건가요?”
“물론이죠!”
그는 대답과 더불어 품에서 붉은 꽃 한 송이를 꺼냈다.
“아름다운 그대를 향한 제 마음입니다. 부담 없이 받아주셨으면 좋겠군요.”
메이는 얼떨결에 꽃을 받았다.
마음을 전한 미켄은 미련 없이 몸을 돌리더니, 계속 잔소리를 퍼붓는 자기 주인을 끌고 결투장 밖으로 나갔다.
“벨져 님, 저 이겼나 봐요.”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져서 그런지, 메이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 수고했어…….”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 외엔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 * *
첫 결투가 다소 싱겁게 끝난 탓에,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다음 결투가 진행되었다.
“좋아! 이번엔 내 차례로군!”
두 번째는 식탐과 탐욕의 대결.
식탐의 종주 그룸 후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먼저 결투장에 나섰다.
분위기만 봐선 대리인이 아닌 본인이 직접 나설 기세였다.
허나 그건 아닌 듯, 그가 서 있는 지점 바로 위로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휘이익!
달빛을 조명 삼아 밤하늘을 활주하는 거대한 생명체.
푸른 날개를 퍼덕이며 기세를 펼치던 생명체는 머지않아 지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낙하했다.
-펑!
그러곤 그룸 후보가 나타난 것과 똑같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푸른 안개가 터져 나왔다.
“나의 최강 심복이자 퍼밀리어 드라칸 굴라다!”
주인의 소개와 함께 안갯속에서 늠름한 자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마족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커다란 뿔이 인상적이었다.
용마족이라.
마족 중에서도 가장 소수에 불과하지만, 위세만큼은 최상급으로 알려진 일족.
나로선 마냥 낯선 부류는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부류도 아니다.
일단 난 용사 시절 때에도 용마족과 싸워본 경험이 없다.
레지에타를 침공한 마왕 군단에 용마족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전투에 직접 참전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지켜만 봤을 뿐.
당시 유리스에게 듣기론, 그들은 마왕의 명에 의해 억지로 온 것일 뿐, 정작 인계 침공엔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저들이 어떤 힘을 가졌고, 어떤 전투 방식을 애용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알 수 있겠지.
이에 맞서 탐욕 쪽에서도 자신의 퍼밀리어를 내보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나버렸군요.”
말과 다르게, 비만 마족의 입엔 의미 모를 미소가 번졌다.
그의 지시를 받고 온몸을 로브로 가린 마족이 결투장에 들어섰다.
가만 보니, 얼굴이 붕대 같은 것으로 칭칭 감겨있었다.
“네로 님의 퍼밀리어. ‘이노투스’입니다.”
언뜻 병약한 환자처럼 보이면서도 꽤나 께름칙한 기분을 주는 마족이었다.
-휘릭
곧 준비를 마친 두 퍼밀리어 사이로 시작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갔다.
“계약 소환…….”
이노투스는 주저할 것 없이 마력을 발현하면서 주문을 읊었다.
소환 계약을 맺은 마수를 불러들이기 위한 주문이었다.
-후우웅!
곧 그의 주변으로 다수의 열 개에 달하는 소환 마법진이 형성되더니, 각기 다른 열 명의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우(狂牛) 미노타우로스, 전격(電擊)의 가고일, 괴조(怪鳥) 하피 등.
이름만 들어도 수백 명에 달하는 인간을 겁먹게 할 마수들이 다채롭게 등장했다.
한 번에 저리 많은 마수를 소환할 수 있는 마족은 과거에도 흔치 않았다.
저 정도면 아무리 용마족이라고 해도 버겁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던 와중,
-스스스
드라칸의 몸에서 다시 푸른 안개가 분출되었다.
안갯속으로 몸을 감추는가 싶더니, 머지않아 빠르게 걷히며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와 같은 마족의 형태가 아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가소롭구나! 전능한 용마(龍魔) 앞에서 마수는 잡종에 불과하거늘!”
지상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일족답게, 용마족에겐 특권이 있다고 한다.
바로 하나가 아닌 세 가지의 모습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
마족과 똑같은 신체 구조를 가진 인간형이 첫 번째 모습이고,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한 사족보행 드래곤의 형태가 두 번째 모습이다.
이 두 개의 형태는 제약 없이 자유로운 변신이 가능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모습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드러내지 않는다나 뭐라나?
해서, 실제로 용마족의 세 번째 모습을 직접 본 마족은 많지 않다고 했다.
대신 과거에 그 광경을 목격한 한 마족은 그 세 번째 모습을 보고 이렇게 정의했단다.
용기사(The Dragon Knight).
마족과 드래곤의 융합체.
즉 두 종족의 힘을 한꺼번에 다루는 데에 매우 용이한 이족보행의 신체라는 것이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주는 동시에, 종족적 한계를 느끼게 한다고 했다.
“이, 이게 말로만 듣던 용기사의 모습?”
나는 물론이고, 이사벨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생부터 마족이었던 그들도 용마족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인 듯했다.
“키이익…….”
강자 앞에서 약해지는 건, 모든 생명체의 어쩔 수 없는 본능.
기세 좋게 소환된 것이 무색할 만큼, 최강의 생명체를 마주한 마수들은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소환이 됐으면 주인의 명을 따라야 하는 것이 소환수의 숙명이기에,
마수들은 도망치고 싶은 본성을 꾹 억누르며 용기사에게 돌진했다.
-후욱!
아무리 수적 차이가 난다고 한들,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
용마의 마력을 담은 손짓 한 번에 마수들은 전부 흔적도 없이 소멸하고 말았다.
역시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일족이라 이건가?
저놈들이 레지에타에서 깽판 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급 밀려왔다.
“준비 운동도 안 되는구나! 네가 부를 수 있는 마족은 이게 끝이냐?”
드라칸은 입에서 브레스 같은 연기를 뿜으며 도발했다.
이노투스는 반응하는 기색 없이 또 다른 주문을 읊었다.
-후우웅
앞서 보였던 계약 소환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마력이 나타났다.
뭔가 비장의 마수라도 소환하나 싶던 순간,
-콰앙!
공중에 펼쳐진 마법진 밑으로 거구의 육체가 떨어졌다.
낙하하면서 생긴 충격으로 주변에 거센 파동이 일었다.
뭘 소환했길래 이렇게 요란한…… 어라?
“벨져 님! 저건 설마?”
메이와 나는 동시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거대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거대 육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이클롭스?”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였다.
기어이 저 마수와 소환 계약을 맺었다고?
저 비만 마족이 소환한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다만, 쟤는 퍼밀리어잖아?
자기 주인이랑 같이 계약을 맺은 건가?
“쿠워어어!”
드래곤 못지않은 포효가 황무지에 울려 퍼졌다.
앞서 갈려 나간 마수들과 다르게 드라칸을 응시하는 사이클롭스의 외눈엔 두려움의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재밌구나!”
이에 투욕이 돋은 듯 드라칸의 몸에서 더 방대한 마력이 분출되었다.
덩치가 비슷해서 그런지, 나름 흥미진진한 구도가 형성되었다.
허나 암만 사이클롭스라고 해도 저 용기사를 이기긴 힘들 것이다.
-쾅!
서로의 손을 맞잡은 용기사와 거인은 그대로 힘겨루기에 돌입했다.
“제법이구나! 제아무리 사이클롭스라고 한들, 내 힘을 이 정도나 버티다니! 아니지! 소환 술사인 너의 힘이 가미되었다고 봐야겠군!”
이노투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애초에 결투가 시작된 이후, 그는 마법 주문 외엔 입 자체를 열지 않았었다.
“허나 어림없는 수준이다! 최강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 용마족이 힘으로 쓰러트리지 못할 생명체는 없으니까!”
드라칸은 포효와 함께 사이클롭스의 외눈을 향해 브레스를 날렸다.
위협적인 불길에 시야가 차단된 사이클롭스는 순간적으로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틈을 놓치지 않은 드라칸이 바로 사이클롭스의 목을 낚아채고는,
잡은 즉시 엄청난 악력을 가했다.
“카각!”
압도적인 힘에 동공이 풀린 사이클롭스는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
승리를 확신한 드라칸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려는 찰나,
“푸확!”
사이클롭스의 입에서 튀어나온 분비물이 드라칸의 얼굴을 덮쳤다.
일단 피는 아니었다.
녹 빛의 진득한 액체로 마치 가래처럼 보였다.
갑작스러운 분비물 공격에 당한 드라칸의 얼굴은 바로 일그러졌다.
그는 더 이상 즐기려는 기색 없이, 사이클롭스의 목을 그 자리에서 터트려버렸다.
-쿠웅
머리를 잃은 거구의 육체가 쓰러지면서 일대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후우 후우…….”
흥분을 진정하지 못한 드라칸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노투스를 응시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둘의 대결은 약간 상성이 안 맞았나 싶지 않다.
소환 술사의 능력은 결국 마수를 소환하는 것에만 한정되어있을 뿐, 정작 마력 자체로 상대를 제압할 힘은 없다.
그런 와중에 상대는 태생적으로 마수를 굴복시킬 신체를 가진 용마족이니, 상대가 되겠는가?
사이클롭스를 몇십 마리는 소환해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후우웅
허나 이런 내 속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노투스는 다시 마력을 발현했다.
설마 여기서 또 소환할 마수가 있는 건가?
그의 머리 위로 세 번째 마법진이 생성되려는 순간,
“졌습니다.”
이노투스가 뜬금없이 패배를 선언했다.
“무슨 소리냐? 네놈, 아직 힘이 더 남아있는 거 아닌가?”
“애초에 전 그쪽과 상성이 안 맞습니다. 제 쪽에서 어떤 마수를 소환한다고 한들, 용마족의 힘을 넘어설 순 없을 것 같군요. 의미 없는 힘 낭비를 할 바엔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싱거운 놈이로군.”
드라칸은 흥미가 떨어진 듯 다시 인간형으로 모습을 바꿨다.
“잘했다 드라칸!”
그룸은 손뼉을 치며 드라칸의 승리를 치하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퍼밀리어와 다르게, 주인은 어느 정도 만족한 듯 보였다.
저 이노투스란 마족을 칭찬할 생각은 없지만, 나름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본다.
애초에 상성이 안 맞는 싸움을 잡고 늘어져 봐야 힘만 소진될 상황에, 적절한 구실을 만들어 패배의 정당성까지 부여했다.
거기에 사이클롭스를 계약 마수로 소환하는 임팩트 있는 모습도 보여줬으니, 이 정도면 주인의 위세를 깎아내리긴커녕, 오히려 잘 유지해 준 셈이다.
이를 증명하듯, 비만 마족의 얼굴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되기를 바랐을지도?
“이상한데…….”
여태 내 옆에서 결투를 관전하던 메이가 대뜸 의문을 표했다.
“이상하다고? 뭐가?”
“그, 그게, 방금 저 이노투스란 분이 소환한 사이클롭스, 아무래도 계약 소환으로 부른 마수는 아닌 것 같아서요…….”
“계약 소환이 아니라고?”
누가 들을세라, 나는 급히 말소리를 줄였다.
“계약 소환이 아니면 뭔데?”
“그걸 아직 잘 모르겠어요. 뭔가 다른 계열의 마법을 쓴 것 같긴 한데…….”
메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메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이노투스란 마족은 소환 마법 외에 다른 마법도 꽤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뜻인데…….
저 칭칭 감긴 붕대 속에 어떤 진면을 숨긴 건지, 그리 달갑지 않은 호기심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